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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꽃만큼 성실하고 정직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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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복 [FBIFAMILY] 쪽지 캡슐

2004-10-01 ㅣ No.692





인간이 꽃만큼 성실하고 정직할 수 있을 것인가

- 임제 <花史> 중에서 -



우주 자연을 보면, 하늘은 꽃으로써 춘하추동의 사시절을 행하고 있다. 이 꽃으로써 사람은 봄이 왔다, 여름이 왔구나, 가을이다, 벌써 겨울이다, 하고 희노애락의 감정을 털어놓았다.



인간이 꽃만큼 성실하고 정직할 수 있을 것인가. 꽃만큼 믿을 수 있고 절개가 굳을 수 있을 것인가. 춘하추동 사계절을 자로 재는 것보다도 더 정확하게 알려주는 꽃만큼 인간이 신의가 있을 것인가.



꽃은 피고 진다. 봄의 따뜻한 햇볕에 피고, 가을의 모진 바람에 용감하게 떨어진다. 그렇건만 그들은 아무도 원망하지 않는다. 아! 얼마나 숭고하고 고결한 덕행의 실천자들인가. 그 어진 마음은 어떠한 인간보다도 더욱 어질고 순수하다.



꽃은 또 어디서든지 자라고 핀다. 자리를 다투지 않는다. 좋은 땅이나 나쁜 땅이나, 자갈밭이나, 바위 틈이라도 뿌리가 뻗을 만한 곳이면 어디든 마다 않고 자라나 꽃을 피워 준다. 높고 낮은 것을 가리지 않고 귀하고 천한 것을 가리지 않는다. 인간에게 이토록 공평하고 관대한 자기희생 정신이 있을 것인가. 꽃처럼 공평무사한 마음이 있을 것인가



꽃은 이 세상에서 가장 믿을 만하고 착하고 아름답고 공평하나, 그것은 우주의 참된 본질이다. 자연과 같이 살고, 자연과 같이 죽는 진실한 충신이다, 말없이 자기를 지키고 죽어가는 만고의 어진 충신이다.



그러나 이렇게 숭고하고 아름다운 꽃에 비해 인간은 얼마나 약삭빠르고 몰염치하고 신의가 없는가. 한 가지 보잘것없는 조그만한 재주라도 그것을 자랑하고, 그것으로 대대손손 영화와 부귀를 누리려 하고, 남을 짓밟고 할퀴고 물어뜯고 때려 엎어서 자기를 그 위에 올려 세우고, 남의 송장 위에서 공명을 다투고, 후세만대에 자기의 빛나는 투쟁의 역사와 명예를 남기려 하지 않는가. 인간은 자기를 살리고 내세우려는 추악한 투쟁에서 살고 죽어간다.



그러나 아름다운 꽃에 이런 욕망이 있을 것인가. 꽃은 인간 가운데서도 가장 자랑스럽고 빛나는 군자와 같다. 군자는 인간의 꽃이다. 참된 군자는 화초의 미덕을 본받으려고 애쓰는 법이다. 꽃의 덕을 닦고 꽃처럼 결백하고 어질게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임제(林悌, 1549~1587) 조선 중기의 문인으로 선조 9년에 생원, 진사 양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알성문과에 급제, 예조정량까지 지냈으나 동서인의 붕당을 크게 개탄하고 명산을 두루 찾아다니며 시와 술로써 지내다가 3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작품 <화사(花史)>는 4대에 걸친 봉건왕조의 흥망성쇠를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화원의 풍경과 덧없이 피고 지는 화초의 생태에 비유하여 그려낸 우의적(寓意的)인 역사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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