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성자(하느님의 아드님, the Son)의 정의(definition), 가해 삼위일체 대축일 온라인 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자료 <가삼위일체대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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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4 ㅣ No.2060 [내용 보강 일자: 2023년 6월 1일] 게시자 주 1: (1) 오늘의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동영상은 게시자 주 2 다음에 있습니다. 본글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60.htm 에 접속하면, 본글 중에서 제시되고 있는 출처 문헌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q&a.htm 에 접속하면, 본글의 제목이 포함된, "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제공의 모든 게시글들의 제목들의 목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i) 2006년 12월 16일에 개시(開始)하여 제공 중인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날마다 영어 매일미사 중의 독서들 듣고 보기, 그리고 (ii) 신뢰할 수 있는 가톨릭 라틴어/프랑스어/영어 문서들 등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손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 (PC용, 날마다 자동으로 듣고 봄) [주: 즐겨찾기에 추가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m (스마트폰용) [주: 네이버 혹은 구글 검색창 위에 있는 인터넷 주소창에 이 주소 입력 후 꼭 북마크 하십시오]
(2)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341.htm <----- 필히 시청 요망
"KF94 마스크 미착용, 착용 시의 커다란 차이점을 잘 보여주는 실험 동영상들 - 오미크론 출현 이전인 2021년 10월 14일에 확보한 자료들임" 제목의 졸글에 추가된 중요한 방역 수칙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게시자 주 2: [첫 공지 일자: 2022년 7월 17일(다해 연중 제16주일)] (1) [PC 혹은 노트북의 경우] 바로 아래의 제(2)항에 제시된 이들 제1독서, 제2독서, 그리고 복음 말씀 본문들을 눈으로 읽으면서 이들을 또한 귀로 듣고자 할 경우에는 다음과 같이 하십시오: 바로 아래의 주소를 클릭하면, New American Bible (NAB)에서 발췌된 오늘의 영어 전례성경 본문(즉, 제1독서, 제2독서, 그리고 복음 말씀)들을, 화답송 등과 함께, 청취할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 이어지는 제(2)항 으로 이동하여 안내대로 하십시오.][원 출처: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http://ch.catholic.or.kr/pundang/4/cbs/Cycle_A/SFMs/a_trinit_mp3 <----- 여기를 클릭하라 [스마트폰의 경우] 바로 아래의 제(2)항에 제시된 이들 제1독서, 제2독서, 그리고 복음 말씀 본문들을 눈으로 읽으면서 이들을 또한 귀로 듣고자 할 경우에는 다음과 같이 하십시오:
2006년 12월 10일(다해 대림 제2주일)부터 지금까지 바로 아래의 제(2)항에 안내된 English Bible Study 까페[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영어 성경공부 자료실]에서 필자가 지속적으로 전달 제공해온 자료이므로, 여기에 진작에 올려드릴 수도 있었으나, 혹시라도 거부감을 가지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 그동안 그러지 않았던 것인데,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바로 위의 제(1)항에서 듣게 되는 NAB에서 발췌된 영어 전례성경 본문들 등을 또한 눈으로 직접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lub.catholic.or.kr/community/asp/club/attboard/read.asp?type=attboard&schcode=pundang4biblestudy&seq=8&id=1265 <----- 또한 필독 권고
이것도 또한 여기에 진작에 올려드릴 수도 있었으나, 혹시라도 거부감을 가지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 그동안 그러지 않았던 것인데,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3) 바로 위에 제(1)항 및 제(2)항 제공의 정보들을 반복적으로 꾸준히 함께 활용하면, 영어 듣기 및 읽기 능력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상, 게시자 주 2 끝) [이상, 2023년 6월 1일자 내용 보강 끝]
가해 삼위일체 대축일 온라인 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자료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동영상 청취 주소: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7/가해삼위일체대축일.mp4 <----- 여기를 클릭하여 청취하십시오 가해 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동영상 목록: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13.htm 동영상 교재: 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가해 II, 가톨릭출판사, 2008년. 동영상 교안(敎案)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60.htm
시작 기도: 대성호경, 주님의 기도
이 십자성가 표적(表迹)으로써, (이마 위에 +) 우리의 주님이신 천주께서는 (입 위에 +) 우리의 원수들로부터 우리를 구하소서. (가슴 위에 +) 성부와 (이마 위에 손끝을 찍음) 성자와 (배 위에 손끝을 찍음) 성령의 이름으로. (왼쪽 어깨 위에 손끝을 찍은 후에 그리고 곧바로 직선으로 이동하여 오른쪽 어깨 위에 손끝을 찍음)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들을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가삼위일체대축일> 가해 삼위일체 대축일
탈출기 34,4ㄱㄷ.8-9; 요한 복음서 3,16-18; 2코린토 13,11-13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lerus/homilies/a_trinit.htm <----- 전문 필독 권고 [주: 교황청 성직자 및 수도자들을 위한 홈페이지 제공] (발췌 시작)
THEME of the READINGS
오늘의 독서들의 주제
삼위일체 신비의 계시(revelation)는 이 전례가 우리들에게 제공하는 본문들에서 두드러집니다. 틸출기로부터의 단락은 하느님의 단일성(unity)과, "분노에 더디고, 친절함과 성실함에 충만한, 자비와 너그러움으로 구성된", 성부(the Father) [하느님]의, 심장(heart)을 드러냅니다(reveals). "주님께서 저희와 함께 가 주시기를 바랍니다"라는 모세(Moses)의 탄원(supplication)에서, 우리는, 우리들과 함께 계시는 하느님, "임마누엘(Emanuel)"이신, 성자(the Son) [하느님의 아드님, 天主子]의 강생(Incarnation)과 계시(revelation) 쪽으로 향하는 어떤 첫 번째 단계를 얼핏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 강생 신비는, 다음과 같은, 복음 말씀에서 장엄하게 드러내어집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his only Son)을 내 주셨다." 코린토인들에게 보낸 두 번째 서간에서, 바오로(Paul)는, 다음과 같은, 초기 그리스도교 전례의 한 개의 삼위일체 정식을 채택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grace)과 하느님의 사랑(love)과 성령(the Holy Spirit)의 친교(fellowship)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기를 빕니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A. 오늘의 제1독서, 복음 말씀, 그리고 제2독서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a_trinit.htm
B. "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가 II, 제1-9쪽
입문 중에서
아리우스 이단
아리우스 이단이란, 예수님이 강생/육화하신 성자 하느님이심을 인정하지 않는 이단을 말한다.
[발췌 시작]. 아리우스는 기원후 300년경에, 하느님의 거룩한 말씀[The Word(logos)]이 다른 모든 창조를 위한 정밀한 도구(instrument)가 되고자 성부에 의하여 창조되었다고 결론지었다. 거룩한 말씀, 즉, 성자이신 하느님(God the Son)께서는, 아리우스에게 있어 하나의 완벽한 창조물이셨으나,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하나의 창조물일 뿐이었다. 만약에 아리우스의 설명이 참이라면, 단지 성부만이 참 하느님일 것이므로, 성자와 성령은 오로지 성부에 의한 채택(adoption)을 통하여 거룩하게 될 뿐일 것이다. 이와 같은 경우에 있어, 가장 거룩하시고 분리할 수 없는 성삼위(the Most Holy and Undivided Trinity)는, 상호 동등하고(co-equal) 또 상호 영원한(co-eternal), 그리고 이들이 함께 한 분이시고 참 하느님이신, 세 위격들간의 통공(communion, 하나 됨, 친교)이 아니라, 단지 성부께서 당신의 은총을 성자와 성령께 베푸시는 하향의 구조(descending hierarchy)가 되어버릴 것이다. 제1차 니케아 공의회(the First Council of Necaea, 325년)는 아리우스주의 이단에 대하여 대답하기 위하여 소집되었으며 이 공의회는 성자께서 성부와 ‘동질(consubstantiality of the Son with the Father)’이심을 분명하게 확언하였다(stated). 제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the First Council of Constantinople, 381년)는 성령께서 성부 및 성령과 함께 흠숭되어야(adored) 하며 그리고 영광을 받으셔야 한다고 확인하였다(affirmed). 아리우스주의(Arianism)는 거의 500여년 이후인 7세기 말에 최종적으로 완전히 사라졌으나, 그러나 아리우스주의는 여호와의 증인(the Jehovah's Witnesses)들 및 모르몬 교도(the Mormons)들의 가르침 안에서 재개되고 있다(revived). (중략) 삼위일체 대축일은 4세기 초에 삼위일체 교리를 부정하는 아리우스 이단에 대한 반박에서 비롯되었다. 이 축일은 오랜 역사 과정을 거쳐 800년경부터 이미 시작되었으나 로마 전례력에 들어온 것은 14세기 요한 22세 교황 때였으며, 이때부터 성령 강림 대축일 다음 주일을 삼위일체 대축일로 지내고 있다. [이상, 발췌 끝]. ----- 참고 1-1: 사실 아리우스 이단은 인간의 이성에 매우 잘 호소하므로, 예를 들어, 동방 가톨릭 교회들 및 정교회들에서,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경을 니케아 공의회 이후 즉시 미사에 삽입하였는데, 그 지역에 있어 교회는 특히 아리우스 이단에 의하여 심하게 타격을 입었기 때문(그 시기에 그 지역의 1/3 이상의 주교들이 스스로 이 이단을 믿었던 자들)이라는 언급을 다음의 책의 제126쪽에서 하고 있습니다: Michael Dubruiel, The How-To Book of the Mass, Our Sunday Visitor 참고 1-2: 여기를 클릭하시면, 가톨릭 교회가 전통적으로 가르치고 있는 이단에 대한 정의(definition)를 읽으실 수 있습니다.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경
출처 1: http://maria.catholic.or.kr/mi_pr/prayer/prayer.asp?menu=prayer&pgubun=3&ingId=126&sgubun=w (발췌 시작) ╋ 한 분이신 하느님을
(이상, 발췌 끝)
한문본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경":
출처 2: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842.htm [제목: 정하상의 상재상서에서 至聖, 至公, 至正, 至真, 至全 용어들의 출처들; 게시일자: 2017-07-09] (발췌 시작) (iii) 다른 한편으로, 비록 교황청의 유관 부서로부터 사용 인준을 받지는 못하였으나, 그러나 중국인 방인 사제들이 [필사하여] 지니고 있으면서 참고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에 선교사들로서 파견되셨던 예수회 소속의 부그리오 신부님(1606-1682년)과, 예를 들어, "(천주강생)성경직해"를 저술하신 주니오르 디아스 신부님(1574-1659년) 등의, 선배 및 동료 신부님들에 의하여, 1670년 경에 그 번역이 완료된, "미살경전", 미살차서, 제105쪽에 포함된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 중의 해당 문장에는 "至" 글자가 사용되지 않았음은, 다음에 발췌된 바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발췌 시작)
(이상, 발췌 끝) (이상, 발췌 끝)
예수님의 영광 = 성령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45.htm <----- 필독 권고 [제목: 가해 부활 제3주일 온라인 주일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자료]
오늘의 제1독서: 탈출기 34,4ㄱㄷ.8-9 중에서
"주님은, 주님은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이시다. 분노에 더디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며..."
게시자 주: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십계명에서 열 개의 말씀(Decalogue)들의 구분에 대하여" 제목의 글[게시일자: 2018-03-04]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04.htm <----- 필독 권고
오늘의 복음 말씀: 요한 복음서 3,16-18 중에서 [주: 개신교회(Protestant Church) 측 영향을 받고 있는 TOB(프랑스어본 공동번역성서) 에서처럼, 예수님의 말씀으로 해석함. Cf. NIV 각주.]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Douay-Rheims Bible; Clementine Vulgate(대중 라틴말 성경)에서처럼, 인용부호 " "가 사용되지 않음] For God so loved the world, as to give his only begotten Son: that whosoever believeth in him, may not perish, but may have life everlasting.
[RSV (Revised Standard Version; 주: 개신교회(Protestant Church) 측 영향을 받고 있는 TOB(프랑스어 공동번역성서) 에서처럼, 예수님의 말씀으로 해석함. Cf. NIV 각주.]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ould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NAB (New American Bible); 주: Nova Vulgata(새 대중 라틴말 성경), CEI, CP 에서처럼, 예수님의 말씀이 아니라, 바로 앞에 있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복음사가 사도 요한의 부연설명으로 해석함]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Son, so that everyone who believes in him might not perish but might have eternal life.
예수님 쪽으로 믿다(believe in) 와 예수님을 믿다(believe) 의 커다란 차이점: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49.htm <----- 필독 권고
C. [개신교회 신학] 느낌으로서 경신(religion as feeling):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18.htm <----- 제3-1항 필독 권고 [제목: religion 이라는 한 개의 용어의 그리스도교 전통적 정의(definition)와 19세기초의 한 근대주의자의 정의의 차이점; 게시일자: 2019-12-19]
(발췌 시작) 3-1. 다음에 발췌된 바는,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표제어로 수록된 "religion as feeling"이라는 세속의 용어에 대한 설명 전문입니다:
출처: http://www.therealpresence.org/dictionary/r/r075.htm (발췌 시작) RELIGION AS FEELING
The view that Christianity is essentially a religion of feeling. It was systematically developed by Friedrich Schleiermacher (1768-1834) in his Christian Faith, which dates an epoch in the history of modern theology. While rationalists and supernaturalists carried on their struggle, Schleiermacher took the ground from under their contention by removing its main presupposition. The Christian faith, he said, does not consist in any kind of doctrinal propositions. It is a condition of devout feeling and, like all other experience, simply an object to be described. Against the supernaturalists he maintained that Christianity is not something to be received on authority from without, but an inward condition of our own self-consciousness. Against the rationalists, he said that religion is not a product of rational thinking, but an emotion of the heart, a feeling that occurs independently of the mind. Moreover, this feeling is not merely personal but social in its Protestant form, since it is the common experience of a historical community derived from the Reformation.
느낌으로서 경신[복합체/체계](religion as feeling)[정의(definition) B]
그리스도교(Christianity)가 본질적으로 느낌으로 구성된 한 경신(敬神)[복합체/체계](a religion of feeling)이라는 견해(view)를 말합니다.
이 견해는 [독일의] 실라이에르마허(Friedrich Schleiermacher, 1768-1834)에 의하여, 근대 신학(modern theology)의 역사에 있어 한 사건으로서(an epoche) 그 연대를 정하는(date), 그의 책 Christian Faith에서 조직적으로(systematically) 전개되었습니다.
합리주의자(rationalists)들과 초자연주의자(supernaturalists)들이 자신들의 고투를 수행하는 동안에, 실라이에르마허(Schleiermacher)는, 그들의 논쟁(contention)의 어려움으로부터 멀리 떨어져(from under) 그 주된 사전전제(presupposition)를 제거함으로써, [자신의 견해의] 근거(ground)를 확보하였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the Christian faith)은 교리적 명제(doctrinal propositions)들의 어떤 종류를 주된 부분으로서 가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교 신앙(the Christian faith)은 열렬한 느낌(devout feeling)의 한 조건/연(緣)(a condition)이며, 그리하여, 다른 경험(experiences)들 모두와 마찬가지로, 단지(simply), [경험의 결과로서] 서술되는 한 대상(an object)일 뿐이다.
초자연주의자(supernaturalists)들에 반대하여(against) 그는 다음을 견지하였습니다(maintained): 그리스도교(Christianity)는 외부로부터(from without) 권위 때문에(on authority) 받아들여져야 하는 그 무엇(something)이 아니고, 다만(but) 우리의 고유한 자기-의식(self-consciousness)의 안쪽으로부터 나오는(inward) 한 조건/연(緣)(a condition)일 뿐이다.
합리주의자(rationalists)들에 반대하여(against)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경신(religion)[복합체/체계]은 어떤 이성적 사유 행위(a rational thinking)의 한 산출물(a product)이 아니고, 다만(but) 심장(heart)의 한 감정(an emotion), 마음에 독립적으로(independently of the mind) 발생하는 어떤 느낌(a feeling)[복합체/체계]일 뿐이다. 더구나, 바로 이 느낌[복합체/체계]은 다만(but), 그 반항/항의의 형태(Protestant form)에 있어, 개인적(personal)일뿐만이 아니라 사회적인데(social), 왜냐하면 그것이 [16세기 초반에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에 의하여 개시된] 그 개혁(the Reformation)으로부터 유래하게 된 한 역사적 공동체(a historical community)의 공동의 경험(common experience)이기 때문이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게시자 주 3-1: (1) 바로 위의 제3-1항에 제시된 "경신"(religion)의 정의(definition)는, 소위 말하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을 전혀 인정하지 않으며, 따라서 "온고(溫故)"에 근거한 연역적 추론 행위(deductive reasoning)을 전적으로 거부하고, 다만 자신의 고유한 느낌/경험에 근거한 귀납적 추론 행위(inductive reasonings)만을 추론 행위(reasoning)의 전부이라고 주장하는 대단히 심각한 수준의 논리적 오류(logical error)를 범하고 있음에, 반드시 주목하라.
(2) 따라서, 바로 위의 제3-1항에 제시된 "경신"(religion)의 정의(definition)를 진리로서 받아들이면, 각 개인이 그 무엇에 대한 판단의 순간에, 보편성이 결여된, 자신의 고유한 잣대(norms)/기준(standards)들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어, 각 개인에 있어 거룩함의 상실과 함께, 흐르는 세월 속에서, 해당 공동체의 구성원들 사이의 자유 의지의 의향들의 불일치로 구성되는 핵 분열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게 되어, 결국에, 해당 공동체는 자신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여 와해/해체될 것임에, 반드시 주목하라.
(3)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특히, 실라이에르마허(Friedrich Schleiermacher, 1768-1834)의 이름이 그 목록 중에 등장하는, "경신"(religion)을 적합하지 않게 서술하고 있는 예(examples)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출처: https://maritain.nd.edu/jmc/etext/relig.htm (발췌 시작) [...] Religion may thus be defined as the voluntary subjection of oneself to God, that is to the free, supernatural Being (or beings) on whom man is conscious of being dependent, of whose powerful help he feels the need, and in whom he recognizes the source of his perfection and happiness. [...]
[...]
Religion is not adequately described as "the knowledge acquired by the finite spirit of its essence as absolute spirit" (Hegel), nor as "the perception of the infinite" (Max Muller), nor as "a determination of man's feeling of absolute dependence" (Schleiermacher), nor as "the recognition of all our duties as divine commands" (Kant), nor as morality touched by emotion" (Mathew Arnold), nor as "the earnest direction of the emotions and desires towards an ideal object recognized as of the highest excellence and as rightly paramount over selfish objects of desire" (J. S. Mill). These definitions, in so far as they are true, are only partial characterizations of religion. (이상, 발췌 끝) (이상 게시자 주 3-1 끝)
따라서, 바로 위의 게시자 주 3-1에서 지적한 바에 이어서, 이 지적들의 한 결과로서, 다음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의 결론 5) 영어로 "glorious"로 번역되는 성경 용어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확인할 수 있듯이,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88.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89.htm <----- 필독 권고
"영광스럽다"[표준국어대사전: 빛나고 아름다운 영예를 느낄듯 하다]로 대단히 잘못 번역된 것은, 성경 본문의 해석에 있어, 위의 제3-1항에 안내된, [독일의] 개신교 신학자인 실라이에르마허(Friedrich Schleiermacher, 1768-1834)의 신학적 견해를 따른 것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C: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rectitude"(수용(受容)된 올바름)에 대한 졸글/논문을 읽을 수 있다. 특히, 개신교회 측 목회자들의 정독을 요청드린다: [제목: 수용(受容)된 올바름(rectitude) 안에서만 오로지 의화가 가능하다; 게시일자: 2016-04-21]
오늘의 제2독서 2코린토 13,11-13 중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grace)과 하느님의 사랑(love)과 성령(the Holy Spirit)의 친교(fellowship)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기를 빕니다."
은총(grace)의 정의(definition) 외: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47.htm <----- 필독 권고
하느님의 사랑: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51.htm <----- 필독 권고
D. 오늘의 전례성경이 가르치는 바를 학습하기 위하여,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합시다.
성자(하느님의 아드님, 天主子, the Son)의 정의(definition)에 대하여
게시자 주: 그리스도교 신자의 정체성(ientity) 형성의 가창 밑바닥에 있는 대단히 중요한 내용을 전달하는, 바로 아래에 있는 출처의 제843번 글의 제목과 게시일자는 다음과 같습니다: [제목: The Word(유일하신 말씀)(Logos, 성자)의 정의(definition); 게시일자: 2009-06-19]
출처 1: "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다해 I, 주님 성탄 대축일(낮), 요한 복음서 1,1 중의 "말씀"에 대한 각주. (발췌 시작) 다음은 요한 복음서 1,1에 있는 ‘말씀(the Word)’이란 용어에 대한 주석들이다.
(i-1) 하느님의 역동적이고 창조하시는 말씀(creative word)(창세기), (i-2) 하느님의 창조하시는 행위의 도구로서의 의인화된(personified) 선재(先在)하는[preexistent, 즉 가시적 우주에 전적으로 앞서는] 지혜(Wisdom)(잠언서), 그리고 (i-3) 실재(reality)에 대한 궁극적 이해력(intelligibility)(그리스 철학)을, 개별 특성들이 모호한 정도에 이르기까지의 가까운 관계로 일치시킨다(combines) (엮은이 번역).
(iii) 다음은 나바르 주석 성경의 요한 복음서 1,1에 대한 해설이다:
(v) 위의 제(iii)항의 서술에서 사용하고 있는 ‘나다(beget)’ 동사의 의미에 대한 엮은이의 졸글은 다음에 있다.
(vi) 예수님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그러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살았던 유다교 신자인 유다인 철학자 필로(Philo Judeus, 혹은 Philon, 기원전 20년 - 기원후 50년)는 그리스의 훌륭한 지혜들이 본질적으로 모세 오경에 포함됨을 풍유적으로(allegorically) 설명함으로써 그리스 철학에 대한 유다주의적 종교적 사고의 우위를 주장하였는데, 이러한 주장은 그리스 철학적 개념들과 유다주의적 종교적 사고의 만남을 고찰함에 있어 상당히 유의미하다는 생각이다. 필로에 대한 간략한 소개 및 참고 자료들도 또한 다음의 엮은이 졸글에 있으니 참고하도록 하라: (이상, 발췌 끝)
E. 출처 2: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06.htm <----- 여기에 접속하여 함께 학습합시다 [제목: 1938년판 우리말본 성경직해 는 성자(聖子)의 정의(definition)도 제대로 전달하였다; 2016-07-24]
3분 복음/교리 묵상
CCCC 428. 모든 이들이 그리스도인의 거룩함/성덕에 초대받는지요?
주: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복음서 9,23).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CCCC 534. 기도는 무엇입니까?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마침 기도: 성모송, 영광송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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