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호동성당 게시판

세속안의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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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년 [skyear] 쪽지 캡슐

1999-07-22 ㅣ No.208

피정에서 안동교구의 주교이신 박석희 님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옮겨 적는 이 글이 그 분의 강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적는 것일진 몰라도  물질과 육체의 노예가 되어가는 이 현실 속에서 영과 육을 성찰하게 하는 강의이기에 기록에 남기고 싶습니다

속기의 능력도 없는 사람입니다만 제가 이해하는 수준으로 정리 했음을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교회를 사랑하자

                                               박석희 이나시오 안동교구 주교

 

교회를 사랑하는 것은 곧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94년 이스라엘 정부는 그리스도교 각국 주교 및 종교 지도자 회의를 개최한 적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지순례에 대한 개방된 자세를 갖고 세속생활 안에서의 영성생활에 대한 회의를 하였습니다

영성생활의 정의는 무엇인가  각각의 목소리가 있습니다  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간명히 인식하는 것이 좋습니다  무엇이 영성생활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곧 물질이 아닌 것 , 육을 추구하지 않는 것 이것이 영성생활입니다

손에 잡히지 않는 영은 각자의 목소리가 있는 것이며 끝이 없는 정의가 있을 수 있는 것 입니다  

다음 하느님을 흠숭하는 장소에 대해서 얘기해 봅시다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과의 우물가의 대화에서 예수님은 장소를 따지지 않을 때, 영과 진리안에서 예배할 수 있을 때가 온다고 하였습니다

영과 진리 안에서 하나되게 하는 것 그래야만 예배는 가능합니다  거짓은 분열을 가져 옵니다  영은 정의해 보았고 진리의 정의를 해봅시다  진리는 확신이어야 합니다  피아노보고  피아노라고 하는 것이 진리입니다  진리는 존재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존재하는 것이 진리입니다  어머니 아버지 아내 남편으로 존재하는 것이어야지 소유와는 틀린 것 입니다  소유와 존재는 식별되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현존안에 내가 존재하느냐

형식 안에서 만남은 존재와의 만남이 아닙니다

 

영과 진리의 일치

 

하느님은 영시이다  물질에 걸려 넘어지는 방식과 하느님께 걸려 넘어지는 방식은 틀립니다  하느님을 물질 찾듯이 찾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느님한테 말하는 것과 사람한테 말하는 것은 틀립니다  교리서 42항에 '하느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을 초월하신다  하느님은 볼 수 없고 만질 수도 없고 감각할 수도 없다  표현할 수 없는 분이시다' 이러한 하느님이실진대 가짜 하느님을 만들어 내는 우를 범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사람을 신뢰하는 것과 하느님을 신뢰하는 것도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을 신뢰하는 것은 사람에게 물어 볼 수 있습니다  누가 누구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하느님을 신뢰하는 것 내가 하느님을 신뢰하는 것 분명 남이 물어서 파악할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뢰하는 방식이 이렇게 틀립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의 많은 사람들은 똑같이 생각하려 합니다

하느님께 모든 것을 의존한다는 것은 이세상 어떤 것에도 신뢰하지 않고 의존하지 않는 것 입니다  자신의 능력 가문 배움 연줄에 의존하지 않는 것 입니다

 

주님 저는 당신께 전적으로 의존합니다 할 수 있을까

어느 순간에도 하느님께 신뢰하고 의존할 수 있는가

그것은 신앙인의 삶으로 보여줄 수 밖에 없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의미는 서로 사랑하라 입니다 (마태오 10, 25-28)

 

사람을 두려워 하는 것과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것과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이것도 사람은 물어보면 됩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 미워하는 자가 있으면서도 사랑할 수 있는 것이 그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느냐 입니다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는 길이어야 합니다

구체적 사랑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철야기도 했다고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영이신 하느님을 사람처럼 만드는 물건처럼 만드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하는 너희와 함께 있겠다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현존은 우리의 태도 밖에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보장일 수 없습니다  담보가 아닙니다  그것은 선언적인 것입니다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은 어려운 일도 내가 받아들이겠다는 사랑의 표지이어야 합니다  하느님은 사람의 고통을 알고 계십니다  그것은

하느님이 내 고통을 알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육신과 영혼을 죽게하는 자들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느님은 다 아시고 계십니다

믿음의 시련은 두려움을 나타납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하라는 말씀처럼 살 수 있을까요 우리는 세상과의 타협을 합니다  

우리는 자녀들이 어디서 교육을 받아서 형성되고 있는가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서 형성되고 있는가

우리의 삶이 세상 상식으로 살고 있는가

하느님을 믿는 자 만이 이런 두려움이 있습니다 지상의 삶을 포기하지 못하기에 두려움이 있습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살면 이 세상에 두려워 할 것은 없습니다  지옥도 물적으로 해석하지 마십시요  지옥은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곳이 지옥입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이세상에 아무것도 두려움이 없다는 것일 겁니다  

하느님의 신뢰 =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것 =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 입니다

불행 고통을 받아 들이는 것 입니다

 

영적보호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겉은 멀쩡해도 영혼은 썩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겉은 검해도 영혼은 싱싱할 수 있습니다

 

나는 홀로 있다는 것은 어느 누구하고도 함께 하고 있지 않을 때 입니다

이럴 때 하느님과 대화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하느님은 어디에서도 계십니다  그러나 사람이 지켜보듯이 지켜보는 하느님은 아닙니다  사람이 지켜보듯이 지켜보는 하느님이라고 교육되기에 그 죄가 들어날 때 재수없게 들켰네 이렇게 생각하고 뉘우침이 없게 됩니다  진정 부끄럽게 반응하는 것이 하느님이 보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조건 없는 사랑을 잊어 버렸습니다

우리는 조건 없는 사랑을 기억해 내야 합니다

 

무에서 창조하는 하느님을 생각하면서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한 자세가 되었을 때 영과 진리 안에서 일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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