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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결혼식(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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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환 [hwancan] 쪽지 캡슐

2000-08-17 ㅣ No.1299

너의 결혼식   

 

이글은 요즘 통신상에서 약간 유명한 글입니다. 실화라고 하네요.

 

제가보기엔 실화가 아닌것 같기두 하구...무슨 드라마 같기두

 

하구...어쨋든 여러분들이 보고 한번 평가해 보세요.

 

많이들 울었다구 하는데 쩝~~ 감정이 무딘건가...난 그냥 잼있었습니다.

 

얘기가 워낙 긴 관계로 총 30편까지 있는데 우선 10편까지 짤라서 올립니다.

 

 

너의 결혼식 #1

 

아침이 밝아온다. 이런 벌써 시간이 9시가 다 되어 가는군. 어제 친구들과

 

결혼식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술을 좀 많이 마셨더니만 너무 늦잠을 자버렸군.

 

빨리 챙기지 않으면 결혼식에 늦겠다. 샤워를 시원하게 하고, 깔끔하게 면도를

 

한후, 준비해 둔 양복을 걸쳐입었다. 원래 내 스타일 자체가 양복 스타일이

 

아니다보니 잘 안맞는 감도 있었지만, 얼굴을 찌뿌렸다 폈다하면서 양복에

 

얼굴을 맞춰보았다. 이제 남은건 헤어 스타일뿐, 오늘은 결혼식인걸 감안하여

 

평소에 안하던 올빽 스타일을 한번 시도해 보았다. 역시 평소와는 달라서 잘 안

 

넘어가긴 했지만, 그럭저럭 봐줄만하게 만들어졌다. 이제 출발하는 일만

 

남았나.

 

서둘러 집을 빠져나와, 지나가는 택시를 힘찬 소리로 불렀다. 택시기사도 나의

 

이런 기쁨 마음을 아는지 ’어서옵쇼~’ 라는 큰소리로 나를 맞아주었다. 똑같은

 

큰 소리로 목적지 결혼식장을 말해준후, 나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정말로 멋진

 

풍경이다. 지금까지 서울하늘아래 살면서, 이렇게 멋진 풍경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풍경을 바라보며, 의자에 몸을 파묻는다.

 

 

’예 아주 좋은 사연 보내주셨구요, 신청곡 틀어드리겠습니다. 이소라, 김현철이 부르는 ’그대안의 블루’......’

 

기사아저씨가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그대안의 블루가 흘러나온다. 훗훗,

 

그대안의 블루. 그녀와 나의 사랑의 시발점이 된 노래.....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건 대학교 과 OT때였다. 그때 난 3학년이었고, 그녀는 그해 들어온 새내기

 

신입생이었다. 하지만 우리 둘은 모든 면에서 너무 달랐다. 나는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내가 학비를 벌어 근근히 대학을 다니는 고학생이었던

 

반면, 그녀는 재벌집 총수의 딸이었다. 그리고 외모만 보더라도, 나는 그저

 

평범하기 그지없는 외모에 불과했는데, 그녀는 말 그대로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였다. 나는 이런 그녀를 그저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으로 취급했었다.

 

눈길을 준 다는건 사치에 불과했으니까. 그녀 역시도 나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는 듯 했다. 하지만 운명의 여신의 장난이었을까, 아니면 우리는 원래 서로를

 

만나도록 운명지어진 사이였을까, 이렇게 서로 안맞는 우리 둘이 마주할수 있는

 

뜻밖의 기회가 생기게 되었다. 흔히 OT가면 제비뽑기를 하여 남, 녀 한명씩

 

뽑아 커플송을 부르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녀와 내가 여기에 우연히 뽑히게

 

된 것이다. 그래도 과애들에게는 다소나마 인기가 있던 내가 뽑혀서 그런지

 

몰라도, 과 친구와 후배들은 열광을 하며 나와 그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너무나 엄청난 환호에 얼떨떨해하며 무대로 나가 곡을 고르려고 하는데, 한

 

친한 선배가 일어나서 ’너희둘 이 곡 불러서 100점 나오면 너흰 CC가

 

되는거야~!!’ 라고 외쳤다. 다른 모든 과 친구와 후배, 선배들이 열광하며

 

’100점 씨씨’를 외쳐댔다. 나와 그녀 모두 얼굴이 술먹은 사람처럼 빨개졌다.

 

나는 그녀에게 곡을 고를 것을 권유했다.

 

’아무거나 한번 골라봐요. 그냥 대충 부르고 들어가게요.’

 

’저 혹시.. 이 노래 아세요??’

 

그녀가 내게 내민곡은 이소라, 김현철이 부른 그대안의 블루였다. 그 당시

 

대히트였던 곡이어서 나 역시도 노래방에서 많이 연습했던 곡이다.

 

 

’ 아.. 저두 이 노래 좋아하는데.. 이걸루 할까요??’

 

그녀는 수줍은 듯 고개를 끄덕였고, 노래방 기계의 반주가 흐르기 시작하면서

 

그대안의 블루가 흘러나왔다.

 

’난 난 눈을 감아요.. 빛과 그대 모습 사라져.. 이젠 어둠이 밀려오네......’

 

그녀의 고운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울려 퍼지면서, 장중은 그녀의 아름다운

 

목소리에 모두 도취한 듯 조용해 졌다. 드디어 내가받을 차례인가. 평소에도

 

좋아하고 자주 즐겨부르는 노래였지만, 이렇게 아리따운 그녀와 함께 부르니

 

마이크 잡은 손이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난 배에 힘을 한껏 준 다음 그녀의

 

노래를 받았다.

 

 ’ 저 파란 어둠속에서.. 그대 왜 잠들어가나..세상은 아직 그대 곁에 있는데....’

 

내 부분이 끝난후 나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후렴구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런.. 그녀도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정말로 이렇게 예쁠수가 없는 것 같다.

 

그녀가 입가에 약간의 미소를 띈다.. 내 노래에 만족을 했나..

 

’ 사랑은 아니지만 우리의 만남 어둠은 사라지네.... 시간은 빛으로...’

 

세상에 태어나서 그렇게 행복했던 순간은 아마 처음이었을 것 같다. 물론

 

그녀같이 아름다운 여인이 내 곁에 있어서 그런면도 있었지만, 다른 사람과

 

노래를 하면서 이렇게 서로 음이 잘 조화를 이룬 경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부른 노래는 내 귓가에는 김현철과 이소라가 부른 원곡보다도 더

 

아름답게 들렸다. 나 뿐만이 아니었을까. 노래를 듣는 OT를 온 모든 신입생과

 

재학생들은 눈도 껌뻑이지 않고 노래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녀는

 

어떨까. 내가 행복함을 느끼는건 아마도 내 앞에 서 있는 그녀의 행복한 얼굴을

 

보고 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노래에 도취해 있는사이, 노래는 벌써 끝부분에 다다르고 있었다.

 

’ 그대 눈빛속의 나.. 내 눈빛속.. 그...대~~~~~~ ’

 

지금까지 난 너무 어렵게 살아왔다. 행복이란게 어떤건지 살면서 느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난 그때 행복이란게 무엇인지 깨달았다. 사람들이 왜 사랑을

 

하는지, 어떻게 세상을 살아나가는 지도. 노래가 끝나고 나자 그녀는 수줍은 듯

 

나에게 미소를 지으며 윙크를 했고, 사람들의 환호성에 노래방 기계에서 나는

 

팡파레 소리는 묻혀버렸다.

 

’ 아.. 그렇게 해서 그 처자랑 사귀게 된건가 총각??’

’ 예.. 그렇게 되었습니다.. 참 우연이었죠..하하’

 

기사아저씨는 내 이야기가 재미있는지 차를 모시면서도 백밀러로 나를 흥미로운

 

눈초리로 연신 쳐다보신다.

 

’ 자네 한마디로 횡재 했구만.. 허허허~’’

 

나는 아저씨의 말을 웃음으로 받으며.. 다시금 옛일에 대한 생각에 잠겼다.

 

그래 우리의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었었지. 그렇게 말이야..

 

-계속-

 

너의 결혼식 #2

 

사귀구 나서 얼마후에 물어본 말인데, 그녀 역시도 처음 입학해서부터 내가

 

맘에 들었더랜다. 뭐, 착하고 순수해 보이는게 맘에 들었데나 뭐래나. 그래서

 

커플송 부를 때 나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불렀댄다. 물론 나

 

역시도 그랬었지만. 우리의 운명적인 사랑은 OT에서 막을 올려, 우리가 대학을

 

다니는 동안 더욱 활활 타올랐다. 물론 우리가 사귀는데 있어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내가 어렵게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교를 다니는

 

고학생이다보니, 그녀랑 데이트를 할 시간이 충분히 없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아무런 부족함 없이, 그리고 노는것두 최고급으로 놀던 그녀의 수준을 맞추기

 

위해서는 내가 한달 내내 아르바이트 해서 번 비용이 하루 놀기에도 부족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는 역시 달랐다. 그녀는 지금까지의 약간 사치스러운

 

생활들을 정리하고, 나에 맞게 좀 더 검소한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의 주 데이트 장소는 학교앞 카페가 되었고, 식사는 주로 분식점에서

 

해결하거나, 나의 자취방에서 해결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것에 대해서 전혀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고, 내가 가끔가다 한번씩 좀 좋은곳에 가서 먹자고 하면

 

뭐하러 돈을 낭비하냐고 나에게 핀잔을 주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내게

 

말했었다. 이 세상에서 나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건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닌,

 

바로 오빠 의 사랑이라고. 난 이런 그녀를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다.

 

’ 훗.....’

 

나는 먼 하늘을 쳐다보며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그녀가 처음 나의 자취방에

 

와서 해 준 요리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때가 아마, 우리가 만난지 200일지

 

조금 지난 시기였던 것 같다. 그때 우리는 대체로 나의 자취방에서 만나고 놀고

 

다 했기 때문에, 내가 없어도 그녀는 나의 자취방을 많이 들락거리며 방정리도

 

해주고 청소도 해줬다. 그러던 어느날, 아르바이트에 지친몸을 이끌고 9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발을 들여놓았는데, 그녀가 여태 집에 안가고 방에 있는

 

것이었다. 놀란 내가 그녀에게 자초지종을 물으니, 나를 위해서 맛있는 요리를

 

준비해 놓았단다. 그녀가 만들어 놓은 요리는 두부된장찌개. 뚜껑을 열으니,

 

맛있는 냄새가 코를 진동했다. 나는 그녀에게 함께 먹기를 권했는데, 그녀는

 

아까 집에오기 전에 친구를 만나 잔뜩 먹구 왔다고, 나에게 혼자 먹으라구

 

했다. 난 감격한 얼굴을 띄고, 그녀가 해준 두부된장찌개을 한 숟가락 떠서

 

후후 분 다음 입에 가져다 넣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냄새가

 

좋다구 해서 맛도 똑같이 좋으란 법은 없다는 것을. 그리고 모든 음식은 항상

 

입에 넣기 전에 확인해 보고 넣어야 된다는 것을. 이건 말이 된장찌개지, 똥을

 

씹은 기분이 들었다. 인상을 찌뿌리며 입에 넣은걸 뱉으려는 순간, 나는 내

 

앞에서 두손을 가슴팍에 모아 꼭 쥐고 자신의 첫 요리를 어떻게 평가해 줄지

 

두눈을 말똥말똥 뜨고 나를 쳐다보는 그녀가 앉아있는 것을 발견했다. 난

 

뱉으려는 욕구를 간신히 물리치고, 그것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얼굴에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 맛있다.... -.-;;’

 

그녀는 나의 이 말을 듣구 얼굴에 웃음을 띄며 ’와~ 다행이다’를 연발하며

 

좋아했다. 비록 맛은 똥 맛이었지만, 그녀의 저런 기쁨을 조미료 삼아

 

’기쁨두부된장찌개’를 거의 다 먹었다.그녀는 내가 찌개를 먹는 동안 내내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를 않았다. 그녀에게 정말로 잘 먹었다는 칭찬을 계속

 

해 준 뒤, TV를 보면서 난 그녀가 설거지를 끝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TV소리 사이로 어디선가 여자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난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부엌에

 

쭈그려 앉아 흐느끼구 있었다. 싱크대 위에는 내가 나중에 먹으라고 덜어놓은

 

듯한 된장찌개 그릇과 숟가락이 하나 놓여있었다.

 

 

’오빠 미안해요... 맛도 없는 요리 만들어서.. 괜히 오빠 먹느라 고생하게 만들구..담부턴 요리 안 만들께요....’

 

그녀가 흐느끼며 말했다. 난 이런 그녀를 일으켜 세운후, 그녀를 꼭 껴안아

 

주며 말했다.

 

’ 첨부터 요리 잘하는 사람은 없는 거니까 걱정마. 그리구 오빤 그요리 자체

보다도, 너의 정성을 맛있게 먹었다는 생각밖에 안나. 오빤 지금까지 그렇게 맛있는 요리 먹어본 적이 없는 것 같은걸..’

 

이건 진심이었다. 난 요리 자체의 맛 보다도, 그녀의 사랑의 맛에 반해서 그

 

요리를 다 먹은 거였다. 그녀는 나의 이런말을 듣구 조금은 위안이 되었는지,

 

다시 얼굴에 미소를 띄며 나에게 꼬옥 안겼었다.

 

’ 하하.. 총각은 참 아량도 좋구만.. 내 여펜네가 그랬다면 밥상을 콱 뒤집어 버렸을텐데 말이야.. 하하..’

 

나는 기사 아저씨의 웃음에 따라 웃으며.. 그녀와의 달콤했던 과거 사랑의

 

추억에 더 깊이 빠져들었다.

 

-계속-

 

너의 결혼식 #3

 

내가 그녀를 만난 건 3학년 때, 원래 우리 학교 자체가 군대를 늦게가는 풍조가

 

만연했기 때문에 나 역시도 3학년 때까지 군대를 안가고 있었다. 아니,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 하늘이 나를 군대 못 가게 만든 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빽도 뭣도 없는 나는 3학년이 끝나고 나서는 어쩔 수 없이 군대를 가야

 

했다. 하지만 이것 역시 하늘이 도왔을까. 걸으면 발바닥이 조금씩 아파서 재검

 

신청을 했는데 평발이라는 판정이 나왔다. 그래서 현역이 아닌 4급 공익으로

 

서울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학교를 다니고, 나는 공익 근무처와

 

집을 오가면서 우리의 사랑을 지속시켜 나갈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가 나는

 

제대를 하게 되었고, 우리는 똑같은 4학년으로 학교를 함께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에게 기념일이라는건 참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생일, 결혼 기념일,

 

100일 , 200일 , 300일.. 사람들은 이 날을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날처럼

 

생각하며 그 기념일과 관련된 사람과 즐겁게 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나와

 

그녀의 기념일은 별로 그렇지 못했다. 내가 주 5일간 저녁 시간에 아르바이트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별로 없었던 것도 이유였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기념일을

 

멋지게 챙겨줄 만한 넉넉한 돈이 나에겐 없었기 때문이다. 호프집 저녁

 

아르바이트 하나 하는 것으로는 내 등록금과 생활비를 빠듯이 맞출 수 있었을

 

뿐, 돈을 모아서 뭔가를 해 본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특히 내가

 

군대를 가면서는 호프집 아르바이트도 그만두게 되었기 때문에, 돈은 더욱

 

쪼달리게 되어 기념일이 다가와도 그녀에게 반듯한 선물 하나 해줄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와 만난지 1000일이 다가오던날. 나는 결심을 했다. 비록

 

지금까지의 100단위 기념일은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었지만, 이번 1000일 만은

 

정말로 성대하게, 그리고 멋진 기념일 선물을 준비해 주겠다고. 하지만 그동안

 

변변치 않은 선물만 계속 해 왔고, 또 그녀가 지금 무슨 선물을 가장 받고 싶어

 

하는지 알 길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며칠간을 무슨 선물을 해야 할까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와 가장 친하면서 나하고는 별로 친하지 않은

 

같은 학교 여 후배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이 후배역시 그녀와 같은 소위 말하는

 

상류 계층의 딸이었는데, 그 후배는 나와 그녀가 사귀는걸 1학년때부터

 

못마땅하게 여겨왔었다. 하지만 그 후배를 통하지 않고서는 그녀가 지금 무엇을

 

가장 갖고싶어하는지 알 길이 없어서, 얼굴에 철판을 깔고 수업을 들으러 가는

 

그 후배를 붙잡고 약간 더듬거리는 말투로 물었다.

 

’혹시.. 성미가 요즘 같이 다니면서, 가장 갖고 싶어했던 눈치를 보이던 물건이 있었나요?’

(그렇다 그녀의 이름은 성미다. 김성미. 정말 아름다운 이름이다.)

 

그녀는 나를 한번 획 쳐다보더니, 꼭 길가는 똥개 본 마냥 다시 눈을 앞으로 휙

 

돌렸다. 그리곤 가던 길을 마저 걸어갔다.

 

’저...저기.......’

 

내가 다시 그녀를 제지하자. 그녀는 귀찮다는 듯이 다시 휙 뒤를 돌아보며

 

쏘아대듯이 말했다.

 

’ 압구정동 갤러리아 백화점 귀금속점에 가면, 카키색 사파이어가 예쁘게둘러진

 

70만원 상당의 은반지가 있어요. 전에 같이 거기 쇼핑갔다가, 성미가 그걸 갖고

 

싶어하는 눈치더라구요. 그럼 이만.....’

 

그녀는 대수롭지 않은 듯 그 말만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나는 눈앞이 깜깜해 지는 것을 느꼈다. 70만원이라... 내 두달 생활비

 

하구도 자그만치 10만원이 남는 돈이다. 한달에 10만원도 저축 못하는 내가

 

어디서 70만원이라는 거금을 마련한다는 말인가. 정말로 그당시에는 깝깝할

 

노릇이었다. 하지만 그 70만원짜리 반지는 시간이 지나도 내 머리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저녁에 잘려구 이불에 누워두, 머리 속에는 온통 반지 생각

 

뿐이었다.

 

’ 여자친구가 갖고싶은거 하나 선물해 주지 못하는 병신같은놈...’

 

배고 있던 베개로 뒤통수를 감싸며 돌아누었다. 하지만, 반지는 머리속에서

 

사라지지 않으면서 계속 나를 괴롭혔다. 그때가 965일째였으니까, 딱 35일 남은

 

시점이었다. 수중에 있는 돈은 고작 10만원, 반지를 사기위해 뭔가를 하려면

 

그때 시작해야 되는 타이밍이었다.

 

 

’ 그래 좋아.. 한번 죽어보자.. 내 목숨 바쳐 까짓거 반지 하나 사주지 뭐..’

 

어려운 결심을 했기 때문일까, 그날 저녁 나는 한숨도 못자고 밤잠을 설쳐야

 

했다. 다음날 아침, 난 학교 가기에 앞서 집앞에 있는 생활정보지들을 한부씩

 

전부 뽑아들었다. 그리고 강의실에 들어가서 교수님이 앞에서 수업하시는데도

 

불구하구 맨 뒷자리에 앉아 할 만한 아르바이트에 빨간줄을 그었다. 이런 나를

 

그녀는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오빠.. 왜 그래?? 뭐 돈빌려서 안 갚은거 있어?? 웬 아르바이트를 찾어??’

 

’아.. 다른 친구 녀석이 아르바이트 자리 찾아달라구 부탁해서..그거

 

찾아주는거야..하하’

 

’핏..... 싱겁기는..’

 

난 그녀에게 이 사실에 대해서 입을 다물기로 했다. 그리구 아르바이트 역시

 

그녀가 모르는 시간대에 있는 것을 골라서, 내가 반지를 선물할때까지 그녀가

 

절대로 내가 반지를 선물할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기로 다짐했다.

 

왜냐.. 그래야 그 선물이 더욱 값지고 감동적인 것이 되는 거니까.... 그때

 

내가 찾은 아르바이트는 저녁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근무하는 노래방 알바와,

 

아침 4시30분부터 6시30분까지 근무하는 신문배달 알바였다. 한달근무하면

 

나오는 비용이 앞에것이 35만, 뒤에것이 30만... 5만원 모자란건 내 생활비를

 

좀 아껴써서 마련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 그래.. 한번 해 보자~!!!’

 

아마도 그때 한달이.. 아버지 돌아가시구 나서 어머니, 큰형과 함께 조그만

 

사글세 방 하나에서 살아야 되었던 때 이후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던 것

 

같다. 원래 호프집 아르바이트가 9시에 끝나니까, 나에게 있어서 쉴 시간은

 

9시부터 10시까지 1시간과 새벽 2시부터 4시30분까지의 2시간30분밖에 없었다.

 

조금이나마 잠을 자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 노래방 의자에서 새우잠을 잔 후

 

일어나 신문배달하러가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못 잔 잠을 대부분 학교

 

수업시간 에 보충을 했는데, 수업시간에 엎어져 자는 것으론 피로를 푸는데

 

한계가 있었다. 15일 정도 지나니까, 아침에 세수를 하고 나면 코에 서 새빨간

 

피가 주르륵 한 그릇 정도씩 매일 흘러 나왔다. 그리고 얼굴 역시 피를

 

흘린만큼 초췌해져만 갔다. 이렇게 까지 고생을 해 서 그깟 반지 하나 선물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학교에서 그녀의 귀여운 눈망울을 보고 있노라면

 

이런 나태한 생각이 싹 달아나 버렸다. 하지만, 이런 나의 변화를 못 알아차릴

 

그녀가 아니었다. 그녀는 내가 아르바이트 한지 20일이 되던날, 얼굴을 잔뜩

 

찌뿌리고 나의 손을 잡아끌고 학생회관 휴게실로 향했다.

 

’ 오빠 솔직히 말해.. 요새 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얼굴에 핏기가 없어??’

 

’ 아..아무일도 아니야.. 요새 저녁에 공부를 열심히 했더니만 그러네~~하하하’

 

그당시 제대하구 나서, 공부를 시작한건 사실이다. 그녀와 같은 계층의 사람이

 

되기 위한 일종의 발악으로, 나는 제대하구나서 얼마후부터 사법고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말만 시작했지 아직 법전 한권 제대로 공부한 역사가

 

없다. 하지만 나는 그녀 모르게 모든일을 하기로 마음 먹었었으므로, 그녀에겐

 

이걸 핑계삼아 거짓말을 한거다.

 

’ 법 공부가 여간 어렵니.. 그래서 보구 또보구 보구 또보구 하면서 날 새다 보니 이렇게 되었나 보네.하하하..’

 

난 멋적은 웃음을 웃었지만, 아마도 그게 쓴 웃음으로 보였을까. 아님 그녀가

 

나의 이런 바보같은 짓을 알아차렸기 때문일까. 그녀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다가 그 큰 눈망울에 조금씩 조금씩.. 눈물이 고이며 울먹이면서

 

나에게 말했다.

 

’오빠 공부도 좀 쉬어가면서 하시지.. 그런 오빠 모습을 보구 있으면 내 마음이 너무 아프잖아요..괜히 나 때문에 그러는거 같기두 하구...’

 

그녀는 끝내 말을 잊지 못하구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그 녀를

 

다독거려주며 말했다.

 

’괜찮아.. 이렇게 고생하다보면.. 언젠가 보람이 있지 않겠니.. 고생끝에 낙이라는 말도 있지 않니...그러니 걱정마..’

 

그녀는 나의 말에 충혈된 눈으로 나를 잠깐 바라보더니.. 눈물을 닦구나서

 

웃으며 나의 손을 다시 잡아끌었다. 오빠 몸보신 시켜준다고 오늘 자기가 한턱

 

내겠댄다. 비록 거짓말을 하긴 했지만, 다 그녀를 위한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그녀를 따라서 우리의 단골집인 학교앞 분식집으로 향했다. 평소에는 항상

 

라면과 떡복이를 하나씩 시켜서 둘이 나눠먹는데, 그녀가 한턱 쓰겠다는 말을

 

지키기라도 하듯 그날은 튀김도 자그만치 2인분이나 더 시켜줬다. 나는 이런

 

그녀를 사랑할 수 밖에 없었고, 나의 이런 고생은 행복을 위한 자그마한 수고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계속-

 

너의 결혼식 #4

 

악몽과 같던 30일이 드디어 지나갔다. 1000일이 이틀남은 날, 월급봉투를 받는

 

나의 가슴은 곧 그녀에게 그녀가 가장 갖고싶어하는 반지를 선물해 줄 수

 

있겠다는 마음에 한껏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더욱 그녀를 놀래주기 위해서,

 

내가 1000일이 언제인지 까먹은 냥 그날이 오기 전까지 모르는 척 행동하기로

 

작정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보는 압구정동 갤러리아 백화점,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허름한 옷에 운동화를 신은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같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 역시 나를 외계에서 온 외계인을 보는 양 바라봤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이런 시선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귀금속 코너로

 

다가갔다. 귀금속 코너의 점원 역시 이런 모습의 내가 그쪽으로 다가오는데

 

대해서 놀람 반 흥미 반으로 나를 위아래로 계속 쳐다보았다.

 

’ 저기.. 사패이어.. 아.. 사파이어군.. 사파이어가 둘레에 박혀있는 70만원짜리 은반지 있죠? 그걸 사러 왔는데요.’

 

’ 아.. 바그드아무르 (Bague de Amour)를 말씀하시는 거군요.. 바로 이 물건입니다..’

 

난 이 물건의 이름을 한번 듣고 외울 수 없었다. 점원에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2번 더 물어 본 다음, 그 물건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그녀가 끼면 뭐랄까..

 

잠용이 여의주를 얻은 모습이랄까.. 하여튼 정말로 어울릴 것 같았다. 그물건이

 

맞다고 말을 하며, 한달동안 고생해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 70만원이 든

 

흰 봉투를 조심스럽게 점원에게 내밀었다. 점원은 웃으면서 그것을 받더니,

 

돈을 꺼내서 세어보기 시작했다.

 

’ 저기.. 손님 돈이 모잘라는 데요..’

 

’ 헉.. 이 물건 70만원 아닙니까???’

 

’ 아.. 어디서 잘못 들으셨나 보군요. 이 물건 정가가 80만원, 현금가로 75만원짜리입니다.’

 

’ 아..에.. 그렇군요...’

 

난 지갑에서 황급히 5만원... 정확히 말하면 내가 다음달 먹고 살 쌀푸대..를

 

꺼내서 점원에게 건냈다. 점원은 선물할 것인지를 짐작했는지.. 포장도 이쁘게

 

해줬다.

 

’ 손님.. 나중에 또 오세요.. 그리고 선물 받으시는 분과 꼭 사랑이 이루어 지시길 빌께요..’

 

점원의 인사를 뒤로 하고.. 백화점을 부리나케 빠져나왔다. 잠깐 긴장해 있는

 

사이.. 그녀로부터 삐삐가 3통이나 와 있었다. 주변에 있는 공중전화에서

 

들어보니.. 직접적으로 말은 안해두 ’오빠 뭔가 좀 생각나는 거 없어’라든지..

 

’우리가 만난지 참 오래된걱 같다..’ 라든지 1000일인 것을 나에게 돌려서

 

말해주려는 그녀의 귀여운 목소리가 담겨있었다. 하지만 내가 1000일에 대해서

 

안다고 말을 하면 그녀가 분명히 선물이 뭐냐고 물어볼게 뻔하니까, 난

 

그녀에게 아무일도 없는 듯 그냥 태연하게 삐삐 메시지를 남겼다. 마치

 

1000일을 모르는냥 말이다.

 

드디어 D-1 이 되는날.. 호프집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에서 쉬고 있는데

 

집으로 그녀의 전화가 걸려왔다. 오늘 학교에서도 계속 정 게 손을 부여잡으며

 

’오빠 뭐 생각 나는거 없어?’를 연발하던 그녀에게 아무일도 없는 양

 

행동하기가 참 지옥같았는데, 저녁에 또 전화로 거짓말을 해야 될 것을

 

생각하니 전화 받기가 두려워졌다.

 

’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따르르르릉....’

 

결국 나는 전화를 받지 않기로 선택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삐삐에 그녀방 전화번호가 찍혔다. 언제나와 같이 ’1004’를 뒤에 붙인채

 

말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 저녁만큼은 나의 천사를 외면하기로 마음먹고..

 

그녀와 함께할 멋진 내일을 생각하며 전화기 코드를 빼구 삐삐 전원을 꺼

 

버렸다.

 

’ 허허.... 총각이니까 할 수 있는 일이었구만.. 우리 애팬내 같은 경우는 내가

 

핸드폰 잠깐만 꺼놔두 ’이 웬수 또 바람피우러 갔구나~!!’ 하면서 오만 지랄을

 

다 떨어서.. 핸드폰 끈다는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 암~~~.. 그래서

 

처자한테 반지 선물하구 이리 저리 했나~~??’

 

기사 아저씨는 내 이야기에 구미가 땅기는 듯, 연신 백밀러로 나를 쳐다보며 장단을 맞춘다.

 

’ 아.. 근데 상상도 할 수 없는 뜻 밖의 일이 벌어지는 바람에.. 좀 고생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뜻밖의 일이었죠..그건.. 지금 생각해두 말이예요...’

 

그 말이 맞다.. 그건 지금생각해도..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누구를

 

탓할 마음은 없지만.. 아니 누구를 탓해야 하는 건가... 하여튼 지금 생각해도

 

끔찍한 일임에 틀림 없는 일이 그때 벌어졌다.

 

-계속-

 

너의 결혼식 #5

 

난 그날 밤 한숨도 자지 못했다. 오만 잡생각이 머리속을 스쳐 지나갔다.

 

어떻게 이 반지를 선물하면.. 가장 멋진 선물이 될 수 있을 까.. 그냥 ’널 위해

 

준비했어’ 라는 말을 하며 몰래 건네줘야 하나.. 아님 아무도 모르게 그녀의

 

사물함 속에 가져다 놓을까.. 저녁내내 뒤척이며 생각해 낸 결과.. 그녀에게

 

강의가 거의 끝날 무렵까지 모른체 하다가.. 저녁때 그녀가 정말로 모르냐며

 

마지막으로 물어볼때, 그때 주머니에서 꺼내서 그녀의 손에 끼워주며 ’이

 

세상에서 너만을 사랑해..’ 라고 말하는 약간 유치하면서도 나름대로 멋진

 

방법을 고안해 냈다. 물론 그녀는 약간 약오르겠지만 말이다. 예상했던대로,

 

역시나 그녀는 옷도 그날따라 이쁘게 입고 평소에 안하던 화장도 이쁘게 하구

 

학교에 등교했다.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쳐다보며 ’이야~ 무슨일 있구나~오늘

 

무슨 날이니?’를 연발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나는 다른날과 다르게 그날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시큰둥한 표정만을 지으며.. 그녀에게 툭툭 말을

 

건냈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어제 일에 대해서 묻기 시작했다.

 

 

’ 오빠.. 어제 저녁에 도대체 어디 있었던 거예요.. 전화해두 안받구 삐삐쳐두 연락 안하구.. 오빠 저 정말 어제 저녁에 화났었어요...’

 

나는 가능하면.. 약간 툭툭데는 투로 대답을 하기 위해 평소에 그녀에게 절대로

 

쓰지 않는 어투를 써가며 말했다.

 

’ 애도 참.. 사람이 살다보면 그럴수도 있는거지.. 뭐 그런거 가지고 화를 내고 그러니?.’

 

어제일에 대한 나의 다정한 사과의 말을 기대하던 그녀는 나의 뜻밖의 말에

 

놀란 얼굴이었다. 그녀는 약간 얼굴을 찌뿌리다가, 다시 오늘이 1000일이라는게

 

기억에 떠올랐는지, 다시금 멋적은 웃음을 띄며 나에게 말했다.

 

 

’ 하..하.. 생각해 보니까 오빠말이 일리가 있는것두 같내..하..하..’

 

그리고 나서 그녀는 내 눈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 저기 오빠 있잖아요.. 오늘이...’

 

’ 아차.. 오빠 수업 늦겠내.. 성미 오늘은 오빠랑 모두 다른 수업이지..?? 오늘 수업 잘 받구.. 조금있다 저녁에 우리 잘 가는 학교앞 커피숍에서 5시에 만나기로 하자. 그럼 그때봐~~ 아~ 점심은 오빠 친구들이랑 약속있으니까 너두 친구들이랑 먹구~~’

 

난 일부러 말을 끊었다. 왜냐.. 그녀가 ’오빠 오늘 우리 만난지 1000일 된

 

날이예요..’ 라고 말할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난 황당해 하는

 

그녀를 뒤에 두고, 재빨리 교실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미안해 성미야, 다

 

오빠가 생각이 있어서 그런거니까 오빠를 용서해 주렴. 난 이런 마음을 먹으며

 

그날 하루를 보냈다. 수업내용이 내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오직 머리속에는

 

그녀에게 반지를 끼워주는 장면만이 떠오를 뿐이었다.

 

’흐흐흐....’

 

공부시간에 비실비실 웃는 나를 보고, 옆에 앉은 친구녀석이 딱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 녀석의 눈에는 ’녀석..안 어울리게 법 공부를 한다고

 

하더니..결국에는 돌아버렸군.. 돌아버렸어..’ 라고 하는 말이 씌여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친구들의 시선을 개의치 않고 비실비실 웃으며

 

하루를 보냈다. 내 일생에서 그렇게 길게 느껴진 하루는 없었을 것이리라.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흘러, 약속 시간 5시가 다가왔다. 난 발에 불이나게 달려

 

학교앞 커피숍에 도달했다. 커피숍에는 그 당시 유행했던 ’오늘같은 밤이면’ 이

 

잔잔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잘 알고 지내던 커피숍 주인아저씨와 미리 상의를

 

하여 폭죽과 케익, 좋은 자리를 마련해 놓게 했다. 실로 만반의 준비였다. 이제

 

그녀만 오면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이 되리라.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음악에 빠져있는 나의 눈앞에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이 나타났다. 함바터면 바로

 

반지를 꺼내서 그녀에게 끼워줄뻔 했는데, 나는 작전을 끝까지 지켜야 겠다는

 

생각에 반지 를 꼭 움켜쥔 오른손을 주머니 속에 깊숙이 쑤셔 넣은 후,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았다. 그녀는 아까의 내 행동에 화가 아직 덜 풀렸던

 

것일까, 약간 시무룩한 얼굴을 하고는 반대편 자리에 앉았다.

 

 

’ 오빠.. 아까 오빠답지 않게 너무하셨어요.. 성미..화났어요..’

 

’ 하하.. 오빠가 장난이었지.. 성미 화 많이 났어? 많이 났다면 정말 미안~~’

 

내가 그녀에게 평소와 같은 미소띈 얼굴을 보이자, 그녀두 아까의 일은 금새

 

까먹은냥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싱글벙글했다.

 

’ 뭐먹을까 성미야.. 오빠가 오늘은 항상먹는 블랙커피 말구 .. 맛있는거 사줄께..’

 

’그냥 오빠가 드시구 싶은거 고르세요.. 전 아무거나 다 좋아요..’

 

그녀는 두 손에 깍지를 끼고 턱을 괜 채 메뉴판을 뒤척이는 나를 싱글벙글

 

웃으며 쳐다보았다. 난 그녀의 귀여운 얼굴을 바라보다가. 조금 있으면 내가

 

천신만고 고생한 끝에 사게 된 이 반지를 끼워줄 이쁜 손을 바라보게 되었다.

 

지금까지 변변한 선물 하나 못해준 나, 1000일이 되도록 반지 한번 선물하지

 

못한 나, 이제 앞으론 이런 오명은 바이바이다. 난 감개 무량한 얼굴을 하고

 

그녀의 얼굴에서 그녀의 손으로 시선을 움직였다.

 

’앗......................’

 

난 내 눈을 믿을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럴수가.. 난 주머니 속에 있는 내 손을

 

줬다 폈다 하면서 반지가 그곳에 있는지를 확인했다. 틀림없이 반지는 그곳에

 

있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그녀의 손에 끼워져 있는 저 반지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녀의 손에는 내가 선물하려는 것과 똑같이 생긴, 그러니까

 

바그드아무르가 끼워져 있는 것이었다. 난 그녀에게 짠 하면서 내밀려고

 

생각했던 오른속을 주머니 속에 계속 넣어두구서, 도대체 이 사태가 어떻게 된

 

것인지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녀가 나의 이런 당황해 하는 얼굴과 반지로

 

향하는 나의 시선을 봤는지, 나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아.. 오빠 이 반지?? 이 반지 생각하는 거야?? 이거 어제 지은이가 나에게 우리의 오늘을 기념하여 꼭 선물해 주구 싶었다구 백화점 가서 사준 반지야.. 값도 꽤 비쌌는데.. 평소에 선물같은것두 잘 안 하던 계집애가 도대체 무슨 맘으로 이걸 선물했는지 몰라.. 근데 이거 정말 내가 갖고 싶어했던 거였거든.. 받을 때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너무 기뻐서 오빠한테 전화하려구 했는데 오빠가 전화 안받아서 얼마나 섭섭했는지... 어 오빠 얼굴 표정이 왜 그래??’

 

그렇다.. 난 철저히 당한 것이다. 그 후배아이한테 철저히 농락당한 것이다. 내

 

딴에는 한달동안 뼈빠지게 고생해서 번 돈으로 겨우 산 반지를, 그 아이는 단지

 

나를 골탕먹이기 위해서 그녀에게 선물한 것이다. 난 할말을 잃었다. 흔히

 

말하는 상류 계층, 이 잘사는 집 애들에 대해서 일종의 증오감 마저 들

 

정도였다. 내 온 몸의 힘이 발 아래로 쫙 흘러 나가는 느낌이었다. 한달.. 한달

 

동안 고생해서 산건데.. 도대체 이게 뭐야.. 난 반지를 쥐고 있던 손을 펴

 

반지를 주머니에 두고 오른손을 탁자위에 올려놓았다. 손에는 땀이 흥건히 젖어

 

있었다.

 

’오빠.. 오빠 얼굴이 왜 그래요.. 뭐 않 좋은 일이라두 있어요??’

 

’ 아.. 아무것도 아냐.. 아무것두.. ’

 

그녀는 나의 이런 말이 진심으로 들렸는지, 아니면 화제를 바꾸구 싶었는지, 내

 

옆자리로 자리를 바꿔 앉아 나의 팔짱을 끼며 나에게 소근소근 말을 꺼냈다.

 

’오빠.. 혹시 오늘 저한테 뭐 주고 싶은거 없어요??’

 

난 할말이 없었다.. 그 후배가 준 반지를 내가 다시 선물한다.. ’하..하하..

 

똑같은 반지를 내가 사가지구 왔내. 이걸로 더블링이나 하렴......’ 이렇게

 

말해야 하나? 이건 차라리 안하는 것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못하고 앞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없어...’

 

그녀는 나의 이 말에 약간 화가 났나 보다. 아마도 아까 아침녁에 있었던

 

일까지 머리에 떠오르면서 꾹참았던 화가 다시 밖으로 나온 모양이다. 그녀는

 

입을 삐쭉거리며 약간 큰 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 오빠.. 그럼 오늘이 무슨 날인지도 모르는 거야????’

 

’ 글쎄.. 모른다니까.. 애가 자꾸 왜 이래 오늘??’

 

못사는 놈의 절규랄까. 내 마음을 몰라주는 그녀에 대한 질책이랄까. 난 그녀와

 

사귄이후 처음으로, 그녀에게 큰소리를 치고 말았다. 그녀는 황당해 하는 듯한

 

눈으로 나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커피숍 안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웅성웅성 거리며 우리둘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이내 그녀의 큰 눈에는 눈물이

 

고였고, 눈물이 방울방울 뺨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난 내가 실수한 것을

 

바로 깨달았지만, 그 당시에는 그녀에게 아무말도 해 줄 수가 없었다.

 

’ 저기.. 저기.. 그게 말이야...’

 

난 그녀의 눈물젖은 얼굴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 됐어.......’

 

그녀는 이 한마디만을 남긴채, 옷 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커피숍 밖으로

 

뛰쳐나갔다. 나는 잠시동안 멍하니 앉아있다가 그녀를 빨리 붙잡아야 할 것

 

같아 따라나갔는데, 그녀는 벌써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버린 후였다.

 

 

-계속-

 

너의 결혼식 #6

 

’휴.. 답답하군..’

 

비록 해가 많이 길어지긴 했지만, 시간이 8시가 넘어가자 한강변에도 어둠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온지도 어언 세시간.. 나는 서울 생활을 하면서부터

 

뭔가 않 좋은 일이 생기거나 고민할 거리가 있으면 이렇게 한강변에 나와

 

강물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는 습관이 생겼다. 됐어를 외치며 내게서 떠나간

 

그녀, 그리고 그런 그녀를 잡지 않고 그냥 보내버린 나.. 그때 잡았어야

 

하는건데.. 지금 은 어떻게 해야 할지 나 자신 조차도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머리를 흔들면서 오른손을 주머니 깊숙히 꽂아 넣어 반지를 꺼냈다. 너무나도

 

비싼 반지. 그리고 나의 엄청난 고생을 통해서 얻어진 반지. 하지만 이 반지로

 

인해서 우리의 1000일은 박살이 나 버렸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반지를 든

 

오른손을 꽉 쥐었다. 그리고 모든 일을 꼬이게 만든 이 반지를 한강물에 던져

 

버리려는 포즈를 취했다.

 

’ 에... 에잇~~~~’

 

하지만.. 나는 그 반지를 한강물에 던질 수 없었다. 단지 돈이 아까워서.. 내가

 

너무 고생을 해서 산 반지였기 때문에 던지지 못한 것은 아니다. 그래도

 

그녀에게, 나의 사랑하는 그녀에게 이 반지를 단 한번이라두 끼워줘 보구 나서

 

던져야 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녀가 사는 동네, 압구정동은 내가 사는 곳과는 차원이 틀린 곳이었다. 집

 

한채의 크기가 보통 크기의 아파트 10개정도를 합한 것만큼 넓었고, 약 10집당

 

경비초소가 한곳씩 있었다. 정말로 이곳은 무언가 선택받은 사람들만이 사는 곳

 

같았다. 나는 버스에서 내려 우선 근처 꽃가게에서 꽃을 한다발 샀다. 장미꽃

 

1000송이를 사면 좋겠지만, 내겐 그정도를 살 돈이 없었으므로 , 10송이만

 

장미로 사고 나머지 990송이는 안개꽃으로 대체했다. 다른 선물을 살까 생 각도

 

했었지만, 이미 수중에는 남은돈이 하나도 없었다. 어둠이 깔린 밤길을 걸으며

 

경비 초소 경비원들의 감시하는 눈초리를 의식하면서, 나는 그녀의 집에서 가장

 

가까운 전화 박스에서 발길을 멈췄다. 그녀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수화기는 집어 들었지만, 번호를 누르는 손이 영 시원스럽게 움직여 주지

 

않았다.

 

’ 띠...띠.. 띠.....딸깍..’

 

아차.. 무슨말을 할까 생각을 해야 되는데.. 나는 당황하며 얼렁 전화기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녀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모든 일을 사실대로

 

고백해 버릴까.. 지은이 그것이 나를 골탕먹인거라 .. 그래서 열받아서 너한테

 

화를 냈던 거라구.. 하지만 나 때문에 둘 사이가 서먹서먹 해지는 것도 별로

 

좋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그냥 ’다시 생각해보니.. 오늘이

 

1000일이었구나, 그래서 여기 꽃다발이랑 반지를 사왔어’라구 말할까. 정말로

 

미칠 노릇이었다. 이럴땐 도대체 어떻게 말해야 하는 건가. 도저히 머리속에서

 

정리가 되지 않아, 나는 그녀의 얼굴을 마주보며 즉석에서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서 다시 수화기를 집어들고 그녀의 집에 전화를 했다.

 

’띠..띠..딸깍...’

 

난 침을 꼴딱 삼켰다.

 

’뚜............뚜...........뚜.........’

 

’뚜............뚜..........띠~리~링♪...’

 

’안녕하세요 성미입니다. 지금 성미는요 아마 잠을 자거나, 샤워를하거나,

 

외출중일꺼거든요. 그러니까 메시지를 남겨주시면 나중에 꼬옥 연락드릴께여..

 

좋은하루 되세여~~’

 

’띠......’

 

난 순간적으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녀가 집에 없다. 9시가 다 되어가는데,

 

그녀가 어딜 갔을까. 평소에 7시만 되면 칼같이 집에 들어가는 그녀인데..

 

더군다나 술도 못 마시는 그녀인데.. , 아마도 집에 있는데도 전화를 받지 않는

 

듯 했다. 음.. 이럴 때 나는 어떻게 그녀에게 말해야 하나... 우선 그녀를 집

 

밖으로 불러 내는게 중요했다. 난 다시 전화를 걸었다.

 

 

’ 좋은 하루되세여~~~ 띠.....’

 

’ 성미야.. 오빤데.. 오빠 너네집 옆 사거리 전화박스 앞에 와 있거든.. 잠깐 이야기 하게 나와줄 수 있을까? 오빠 기다린다....’

 

그녀가 나올까.. 나오지 않을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

 

그저 묵묵히 여기 서서 시계와 그녀집 대문을 번갈아보며 그녀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10분... 20분... 시간이 지나도 그녀는 나오지 않았다.

 

30분을 기다려도 그녀가 나오지 않자, 나는 혹시 그녀가 아직 집에 안 들어왔나

 

하는 마음에, 나에게 음성 남겨 달라는 말과 함께 똑같은 메시지를 호출기에

 

남겼다. 하지만 그녀는 이번에도 연락이 없었다. 시간은 벌써 10시를 넘어 10시

 

30분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난 다시 그녀의 방으로 전화를 했다.

 

’ 띠........’

 

’ 성미야.. 오빤데... 오빠가 오늘 정말 미안했어.. 그러니까 지금 잠깐 집 앞

 

공중전화 박스 있는 곳으로 나와주지 않으련? 오빠가 사과의 의미루 꽃두

 

사가지구 왔는데.... 성미야 잠깐이라도 좋으니까 나와줘...’

 

 

 

수화기를 내려놓은 나의 마음은 찹찹해져만 갔다. 그녀가 이번에는 나올까.

 

전화박스 옆에있는 슈퍼에서 평소에는 손도 대지 않는 담배를 한갑 샀다.

 

담배라는게 아마도 이렇게 찹찹할 때 피라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라이타 불을 멋지게 켠 다음 담배를 한 개피 꺼내 쭈욱 빨았다. 하지만

 

한모금 들어키기도 전에 끊임없이 기침이 나왔다..

 

 

 

’콜록......콜록.......’

 

역시 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인가. 나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그녀를 이렇게

 

중요한 1000일 날 기쁘게 해 주지는 못할망정 기분을 상하게 만들어 버리다니.

 

내 자신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그리고 과연 내가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그녀를 계속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지, 그리고 내가 과연 그녀와 계속 사귈 수

 

있을지도 궁금해졌다. 이런 저런 잡다한 생각을 하는동안, 벌써 시간은 11시로

 

치닫고 있었다. 그녀가 화가 나도 단단히 난 모양이다. 그리고 그녀의 집

 

통금시간이 10시 30분인걸 감안하면, 그녀는 이제 나오고 싶어도 나올수 없을

 

것이다. 난 이렇게 되도 싸다는 자기 비하를 하면서, 절망적인 기분으로

 

그녀에게 마지막 전화를 걸었다.

 

-계속-

 

너의 결혼식 #7

 

’띠.....’

 

’성미야 정말 미안해... 오빠 .. 성미에게 정말 오늘 잘해주려구 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되어버렸어. 아까 화낸거 정말 미안하다.. 그러니.. 잠깐이라도

 

좋으니.. 밖으로 나와주지 않으련? 오빠 성미 나올때까지.. 만약 저녁에

 

안나온다면 내일 아침까지라도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꺼야.. 제발

 

나와주렴..그럼 이만...’

 

하지만 내가 이렇게 강력하게 배수진을 쳤는데도, 시간이 30분이 지나도 그녀는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역시 내일 아침에나 그녀를 만날 수 있을까...

 

시간이 12시를 지나감에 따라 나는 포기를 하기 시작했다. 내 옆을 지나가는

 

경비들이 나를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긴 했지만, 꽃다발을 든 도둑놈은

 

없을거란 생각을 해서일까 .. 다들 그냥 지나갔다. 시간은 벌써 1시가 넘었다.

 

난 벌써 지칠대로 지쳐 전화박스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다시 전화를 할까...

 

아니면 계속 기다릴까.. 아니면 그냥 집에 갈까... 정말로 갈등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런 나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비가 한방울씩 추적

 

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비오는날 새벽에 전화박스에 쳐박혀 비구경을 한다라..

 

그 자체도 궁상맞은 짓이었지만, 내 기분 은 비의 영향 때문에 더욱 찹찹해져

 

갔다.

 

’도대체 우리가 왜.. 왜...’

 

비 때문인가... 눈 앞이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난 전화박스에서 나와서 빗속에

 

내 몸을 맡겼다. 그래 이 비야.. 나의 모든 것.. 나의 이 모든 슬픔을 흘려

 

보내다오. 못살고 멍청한 놈의 절규라고나 할까, 한참을 그렇게 비를 맞은 뒤..

 

난 절망적인 마음에 전화 박스로 들어와 다시한번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띠...’

 

’성미야.. 오빠야...’

 

난 순각 욱 하는 것을 억제하느라, 숨을 한번 내쉬었다. 하지만 아무리 감정

 

절제를 한다구 해도, 나의 서글픈 심정이 목소리에 들어가.. 목소리가 떨렸다.

 

’오빤데... 오빤데... 밖에 비가 온다... 비와 함께 . 비.. 비와 함께 모든게

 

다 떠내려가 버렸으면 하는 바램이다.. 오늘.. 아니 어제.. 1000일 .....’

 

난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하고.. 수화기를 전화기 위에 올려놓고 내입을 막으며

 

설움에 북받친 내 자신을 진정시켰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은 후, 수화기를

 

들었는데, 수화기는 벌써 녹음시간이 지나서 끊어진 후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

 

그녀의 집 대문이 열리면서 , 그녀가 잠옷 바람으로 우산도 안쓰고 밖으로

 

뛰어나오구 있었다. 나도 재빨리 그녀가 달려오는 방향으로 뛰쳐나갔다. 그녀는

 

언제부터 울기 시작했는지, 벌써 눈이 부어있었고, 목도 쉬어있었다. 헝클어진

 

긴 생머리를 보니 저녁부터 쭉 침대에 틀어박혀 울고 있었나 보다.

 

 

’흑흑...오빠.. 오빠가 어떻게 그럴수 있어... 그것두 1000일인데.. 난 1000일이라구해서 아침에 미용실두 가구 최대한 이쁘게 하구 옷도 이쁘게 입구 오빠 만나러 나갔는데,..흑흑.. 오빠가 어떻게 1000일인 걸 알았으면서도 그럴 수 있어..?

 

난 눈물과 비와 머리카락이 범벅이 된 그녀의 얼굴을 보며.. 뭐라고 말을

 

해야할지 알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말 한마디 만을 한 채, 바닥에 쭈그리구

 

앉아 얼굴을 가리고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난 내눈에서도 뜨거운 무언가가

 

샘솟는 것을 느꼈다. 나의 감정 절제는 여기가 한계인가, 난 그녀를 감싸며

 

쭈그려 앉아 울먹이는 소리로 말했다..

 

’정말...정말... 미안해 성미야... 알고 있었어.. 알고 있었는데, 1000일인거 알고 있었는데.. 선물도 정말 정성껏.. 정말 정성껏 마련했는데.. 너에게 내 선물을 줄 수가 없었어.. 그게 너무 원통해서 그랬던거야..바로 이것.........’

 

난 울먹이면서 내 주머니에서 반지를 꺼내 성미에게 보여줬다.

 

’앗..........’

 

성미는 반지를 보자 울음을 딱 그치더니, 그것을 집어들며 부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면서 반지와 나, 그리고 자신의 손에 끼고 있는 반지를 번갈아

 

보았다.

 

’ 아니 오빠가.. 오빠가 어떻게 이걸...’

 

난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건 선물의 의미로서 그녀에게 내밀었던게 아닌,

 

일종의 나를 변호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내민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난 그저

 

아무말도 하지 않고, 눈물을 손바닥으로 씻으며 땅바닥만을 바라보았다.

 

.

.

.

 

얼마쯤의 시간이 흘렀을까, 성미가 먼저 말을 꺼냈다.

 

’오빠 고마워요.. 이 반지로 지금까지 제가 오빠에 대해 가졌던 의심들이 다

 

풀리게 된 것 같내요. 전 이런것두 모르고 괜히 오빠를 의심이나 하다니..

 

바보같은 나......’

 

그녀의 눈에는 다시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나는 재빨리 그녀의 눈물을

 

손으로 닦아주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 성미야 우리의 1000일 진심으로 축하해. 오빤 지금두 성미를 만난걸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기억하구 있구, 앞으로 몇십년이 지난

 

후에도, 지금과 다름없이 영원히 성미만을 사랑할꺼야..’

 

 

 

나는 아까 꽃집에서 산 안개꽃을 두른 장미꽃 10송이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꽃다발에 스며든 비가 가로등 불빛을 받아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오빠.. 정말 고마워요.. 난 오늘을 평생 잊지 못할꺼예요..’

 

그녀가 내 품에 안겼다. 고생 끝에 낙이라고 했던가, 아까 전 고생했던 기억들

 

모두가 아스라히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갔다.

 

’ 아참.. 오빠 잠깐만..’

 

내 목에 안겨있던 그녀가 갑자기 손을 풀더니, 자기의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를 빼서 오른손에 쥐었다. 그리고 나서 내가 그녀에게 선물한 반지를 왼손

 

약지에 끼더니, 지은이라는 친구에게서 선물받은 반지를 나에게 내밀었다.

 

 

’오빠 좋은 생각 났어요.. 우리 이 반지 가지구 커플링해요..’

 

’커..커플링???’

 

나의 당황해 하는 얼굴에.. 그녀가 얼굴에 미소를 띄며 대답했다.

 

’그래요 커플링.. 어차피 반지 똑 같으니까 지은이두 모를테구, 우리지금까지 커플링 한번도 못 끼어 봤잖아요..’

 

하기야 그녀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사귀면서 서로 반지

 

선물해 본 적이 없으니까. 난 돈이 없어서 그녀에게 선물을 못했고, 그녀는

 

내가 혹시라도 기분 상할까봐 나에게 선물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와 내가

 

사귄지 1000일이 다 되도록, 그녀의 손가락에는 반지하나 끼워져 있지 않았다.

 

물론 나는 말할 필요도 없고.... 그런데 커플링이라, 그것두 최고급 반지로..

 

내가 산 반지를 내가 낀다..? 그러고 보니 이건 내가 산 반지도 아니다. 나를

 

골탕 먹이려던 그 계집애가 산 반지지...난 그녀가 내미는 반지를 받아들었다.

 

그녀의 체온 때문이었을가, 반지에는 따스한 온기가 남아 있었다. 난 그녀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찬성한다는 의미로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그리고 난 손이 좀 커서 약지에는 안 들어가니까, 새끼

 

손가락에 반지를 조심스럽게 끼워 넣었다. 반지는 손가락에 쏙 들어갔다.

 

 

 

’ 와~~ 이제 우리도 커플링이 생겼으니 진정한 커플이 되었다~~’

 

그녀는 다시 내 목에 안기면서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이럴 때 나는 울어야

 

하나 웃어야 하나. 난 어쩔줄을 모르고 그저 기뻐하는 그녀를 안아주기만 했다.

 

그러다가 그녀는 깍지를 끼어서 내 목에 매달리더니 , 내 눈을 묘한 눈초리로

 

바라보며 말했다.

 

’ 오빠.. 그리구 이건 제 선물이예요..’

 

’ 어... 뭔데.......읍...’

 

그날 난 그녀에게서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생크림 잼보다도 더욱 달콤한

 

입맞춤을 선물로 받았다. 비는 우리들이 가진 세속의 모든 가치를 흘려내

 

버리듯 우리를 감싸며 잔잔히 내리고 있었다. 다행히 그날 저녁 그녀 부모님은

 

여행을 가셨기 때문에, 그녀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우린 그날밤 그녀의 방

 

안에서 작은 촛불을 하나 켜 놓고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며 모든 것을 초월하여

 

진정한 하나가 될 수 있었다. 나의 사랑스런 그녀, 난 이런 그녀를 영원히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만 같았다.

 

’캬.. 한편의 로만스가 따로 없구만~ 로만스~~ ’홍도야 울지마라’ 이후 내가 들어보는 가장 멋진 사랑 이야기 구만~ 허허허’

 

나는 아저씨의 말을 큰 너털웃음으로 받아넘기며, 그녀와의 달콤했던 입맞춤의

 

추억에 더욱 빠져들었다. 그래 우린 그렇게 사랑했었어. 세상이 아무리 우릴

 

방해하려 해두, 그렇게 말이지...

 

-계속-

 

너의 결혼식 #8

 

나는 우리의 사랑이 그렇게 지속 되기를 염원했다. 영원히 .. 아주 영원히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까지 말이다. 하지만 이건 우리들만의 꿈이었을까,

 

현실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그녀가 4학년이 되면서 조금씩 우리들 앞에

 

드리우기 시작했다. 원래 자유분방하게 그녀를 키웠던 그녀의 부모님은, 그녀가

 

3학년을 끝마칠 때까지는 남자친구를 누구를 사귀느냐에 대해 일체 간섭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의사를 존중해 줬다고나 해야 할까. 하지만 그녀가 4학년,

 

그것두 2학기에 접어들면서 그녀의 부모님은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오래전부터 나와 그녀가 사귀는 것을 맘에 안 들어하던 그녀의 어머님은,

 

그녀에게 수시로 나와 교제관계를 끊으라고 강요를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

 

당시 나와 학교에서 만나면 항시 어머니에 대한 불평만 했던 기억이 난다.

 

한편으로 돌려 생각하면 그녀 어머님 의 심정이 이해가 갈 것도 같았다. 20년이

 

넘게 곱게 키운 딸을, 그것도 어느 집에 꿀리지 않는 빵빵한 가세를 지닌

 

대그룹 가문의 외동딸을, 아무것도 가진게 없고 그렇다고 앞날이 밝지도 않은

 

나같은 놈한테 넘겨준다는 것은, 아마 딸을 수녀원에 들여 보내는 것보다

 

싫었으리라. 하지만 그녀는 내가 사법고시를 공부 한다는 것을 들어 곧 나도

 

능력있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그녀의 어머니에게 반박을 했고, 나 역시도 2학기

 

들어서 부터는 고시 공부를 더욱 열심히 하고 있었다. 하지만 4학년때부터

 

시작한 공부, 앞으로 3년이 지나도 붙을지 떨어질지 절대로 보장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그녀의 부모님은 내가 못 마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중 가을이 되었다. 96년 가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해 가을은 다른

 

가을보다 더 추워서, 우리둘은 햄스터 마냥 학교에서도 , 학교 밖에서도 꼭

 

붙어다녔다. 이젠 그녀도 4학년이 되어서 통금 시간이 늦게까지 늘어났으므로,

 

보통 내가 아르바이트 하는 호프집에서 같이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내가 그녀를 그녀 집 앞까지 데려다 주는 것으로 하루를 끝마치곤 했다. 아니,

 

정확히 이야기 하면 내가 그녀를 집 앞까지 데려다 주고 나서, 그녀 집 안에서

 

그녀와 그녀 어머니가 싸우는 소리를 들으며 찹찹한 기분으로 집으로 발걸음을

 

돌리며 하루를 끝마치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볼일이 있다고 친구집에

 

가서 혼자서 호프집에서 일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호프집으로 그녀의 어머니가

 

나타난 것이다. 비록내가 직접 만나 본 적은 없었지만, 사진을 통해서 내 앞에

 

서 있던 날카롭게 생긴 여자가 그녀의 어머니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는 그녀 어머니의 실물을 보면서, 어쩜 이런 부모한테서 그녀와 같이

 

아름다운 딸이 나올수 있을까 궁금해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어머니가

 

나를 알아봤는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혹시... 박 진 석 군??’

 

내 이름을 부르는 그녀 어머니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녀는

 

차가운 말투로 말을 이었다.

 

’ 우리 잠깐 근처 커피숍 가서 이야기 할 수 있을까??’

 

’ 혹시.. 성미 어머님??’

 

그녀는 말대신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 아.. 잠시만요.. 일좀 친구에게 넘겨주구요..’

 

나는 호프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단골 손님에게 카운터를 넘겨준 후,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근처 커피숍으로 향했다. 커피숍은 저녁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이

 

없이 한산했다. 우린 야경이 보이는 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앉은지 1분 정도

 

지났을까, 아무말도 하지않고 창밖을 바라보던 그녀의 어머니는 고개를 돌려

 

나를 위 아래로 한번 쳐다보고 난 후, 입을 열었다.

 

 

 

’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할께요. 우리 성미, 내년에 결혼할 사람 벌써 잡혀 있는 몸이예요. 그러니 좋게 말할 때 그만 만나도록 해요.’

 

’결혼할 사람이 잡혀있다니요... ???’

 

난 그녀 어머니의 말에 뒤통수를 얻어 맞은 듯 했다. 그녀와 나는 아직 결혼

 

약속을 한 적이 없다. 그렇다면 다른 남자를 말한 것 같은데, 그녀가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럼 그녀가 나를 속이며 다른 남자를

 

함께 만나왔다는 말인가. 그녀는 황당해 하는 나의 얼굴을 쳐다보며,

 

불쌍하다는 투로 말을 이었다.

 

’ 아.. 성미가 말 안했나 보지? 우리 집안 대*그룹 맏딸이자 외동딸 성미는

 

저쪽 성* 그룹 외동아들인 이민혁 군과 결혼하기로 이미 10년전부터 약조가

 

되어 있었어요. 그리고 그 10년이 되는 때가 바로 내년 4월이구. ’

 

난 어안이 벙벙해 졌다. 엊저녁 까지만 해도 둘이 손을 꼭 잡고 영원히 사랑할

 

거라고 맹세했던 애가, 내년 4월에 결혼할 날짜가 잡혔다니... 난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그녀의 어머니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 그럼 난 할 말 다 했으니까, 이만 가도록 하겠어요. 그리고 다시한번 분명히 말 하겠는데 앞으로 우리 성미 다시는 만나지 말도록해요. 지금은 좋은 말로 하지만, 다음번에는 그렇게 안될꺼예요. ’

 

그녀는 그 말을 하고는 차도 시키지 않은 채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난 들었다. 그녀가 밖으로 나가면서 ’ 재수가 없으려니까 별 거지같은 놈이 다

 

와서 혼삿길을 막어..막기는..’이라고 혼잣욕을 하는 것을. 난 하늘이 내

 

머리위로 떨어지는 것만 같아서 그녀의 어머니가 나간 후에도 한동안 정신을

 

차릴수가 없었다. 커피숍 아르바이트생이 뭐 시킬 꺼냐고 물어 보며 내 어깨를

 

흔들때가 되서야 정신을 차린 나는,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다고 고개를 흔들며

 

커피숍에서 빠져나왔다.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이게 도대체 왠 날벼락이란

 

말인가. 그녀가 내년 4월에 결혼을 하다니. 그리고 그것도 어제 오늘 잡힌게

 

아닌, 10년전부터 맺어진 약조였다니. 정말 로 앞이 깜깜해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간신히 호프집으로 돌아온 나는, 우선 호프병에서 생맥주를 한잔

 

받아서 벌컥 벌컥 들이켰다. 단골 동생은 내가 정신을 못 차리는 것을 보고는,

 

나에게 다가와 어깨를 흔들며 말했다.

 

’ 형~~~ 형~~ 왜그래.. 무슨일이야.. 무슨일있어??’

 

’ 아.. 저기 너 성미알지?? 성미좀 불러줄레? 지금 아마 학교 근처 친구집에 있을거거든.. 여기 성미 호출번호 있으니까, 호출해서 성미 좀 불러주렴...’

 

난 그 동생에게 내 수첩을 건냈고, 동생은 카운터 옆 전화기로 가더니 호출을

 

하는 듯 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 정신을 차릴 때 쯤 되니까, 그녀가

 

헐레벌떡 호프집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녀는 내가 말짱히 있는 모습을

 

보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나에게 달려왔다.

 

 

’오빠 뭐야~~~ 괜히 사람 걱정하게 하구~~ 난 또 오빠가 이상하다고 빨리 와보라는 음성이 와서 얼마나 놀랬는지 알아~~ 난 큰일이나 난 줄 알았내...헤헤’

 

’맞어.. 큰일 났어...’

 

나의 이 말에 그녀의 웃던 얼굴은 순간 굳어졌다.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고

 

내 입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 아까.. 너희 어머니 우리 가계에 다녀 가셨어.’

 

그녀는 나의 말을 듣더니, 깜짝 놀란 얼굴을 했다. 하지만 이제 4학년이 되어서

 

그럴까. 과거 새내기때 처럼 계속 흥분만 해 있지않고, 손을 턱에 대고는

 

눈동자를 굴리며 뭔가를 곰곰히 생각하는 듯 했다. 그러다가 그녀는 박수를

 

한번 딱 하구 치면서 나에게 말했다.

 

’ 아 알았다.. 오빠 혹시 엄마가 나 결혼한다는 이야기 한거 아냐?’

 

난 그녀의 말에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맞다는 표시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는 약간 상기되었던 얼굴을 활짝 피고 웃으며 아무일도

 

아닌 듯 말했다.

 

’아.. 그거.. 그거 그냥 부모님들간의 약속이야. 나랑은 아무관계 없어. 나 그

 

이민혁이라는 사람. 딱 한번밖에 안 만나봤어. 그리고 내 스타일도 아니던데,

 

그런 사람이랑 어떻게 결혼하냐~ 그게 말이되~~치~~ 오빠 괜한말에

 

신경쓰지마....’

 

나는 그녀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때서야 그녀의 얼굴을

 

보면서 따라 웃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그 이야기 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 같았으므로, 더 이상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다시금 우리의

 

일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우리의 일상으로 말이다.. 하지만 뭔가 좋지 않은

 

일이 미래에서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건 왜일까..

 

 

-계속-

 

너 의 결 혼 식 #9

 

11월이 되었다. 겨울이 다가오면서 날씨는 더욱 쌀쌀해져 갔다. 그리고 우리

 

둘은 학생으로서 맞이하는 마지막 겨울방학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아직 방학이

 

한달정도 남았는데 벌써부터 이를 구상하며 하루 하루를 보내고있었다. 그날,.

 

그 악몽이 시작되는 날도 우리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방학때 어디서 뭘

 

할것인지 계획을 세우며 둘이 팔짱을 끼고 오손 도손 학교 교문을 걸어나오고

 

있었다.

 

’ 성미야.. 올 겨울엔.. 우리 겨울 바다에 한번 놀러가는게 어떨까.. 우리 아직 한번도 못 갔잖아.. 주인아저씨께 부탁하면.. 한 3일 정도 는 낼 수 있을지도 몰라..’

 

’헤헤... 것두 좋지~~~’

 

성미는 내 팔에 꼬옥 안기면서 웃으며 좋아했다. 지금까지 제대로 아무것도 못

 

해 준 나.. 이번 겨울방학에는.. 정말로 추억에 남을만한 날들을 준비해 봐야

 

되겠다고 마음 속으로 다짐하며 교문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학교

 

교문을 벗어나면서부터 무언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우리 주위를 엄습해 왔다.

 

평소 학교 근처에서 볼 수 없었던 검정색 새단들이 3대씩이나 교문 옆에 주차되

 

있었던 것이다.

 

’.........’

 

내가 걸음을 멈추자, 그녀 역시 무언가를 느꼈는지 주위를 두리번 거리면서

 

말을 멈추었다. 뭘까..이 기분.. 이 싸늘함.. 난 두려움이 엄습해 오는것을 온

 

몸으로 느끼며, 검정색 선팅으로 잘 보이지 않는 새단 창문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철컥........’

 

’앗........’

 

그녀의 짧은 외마디 비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검정새단 하나의 뒷문이

 

열리면서 검은 양복을 입은 한 거구가 튀어나왔다.

 

’김......성.......미......’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은 우리는 모두 제자리에 얼어붙어 버렸다.

 

나는 저승사자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착각했을 정도였다... 그 사람은

 

부들부들 떨고 있는 우리 곁으로 한발자욱 한발자욱 성큼 성큼 다가왔다.

 

그사람이 나에게 조금씩 가까워 지면서, 나는 이 사람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180이 넘는 키에 90은 되어 보이는 몸무게, 양복 아래로 불거져

 

나온 근육, 또 그 사람 뒤의 새단 속에서 제각기 썬그라스를 쓰고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수많은 덩치들. 난 직감으로 이 사람이 흔히 말하는 조직

 

폭력배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 사...사..삼...삼촌..’

 

이 덩치가 내 앞에 서 있다는 두려움은, 그녀의 이 말 한마디에 황당함으로

 

바뀌어 버렸다. 삼촌이라니. 이 덩치가 성미의 삼촌이란 말인가. 난 성미와 그

 

덩치를 황당한 표정으로 번갈아 쳐다보며,내 눈앞에 벌어진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생각을 정리하려고 했다.. 도대체...

 

 

’퍽..........’

 

하지만 평소처럼 나의 생각을 끝내기 전에, 내 눈에는 불똥이 튀었다. 아무래도

 

뺨을 한 대 맞은 모양인데, 내 몸은 철봉에 부딪친 양 공중에서 한바퀴를

 

돌아서 땅바닥에 그대로 고꾸라졌다.

 

’ 삼촌~~~!!’

 

’찰싹........’

 

난 쓰러져 있어서 누가 맞는지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아마도 그녀역시도 뺨을

 

한 대 맞은 듯 했다. 잠시후 그녀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고, 새단쪽에서 두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우리쪽으로 다가오더니, 울고 있는 그녀의 목소리가 새단

 

쪽으로 멀어져갔다. 주변 사람들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지만, 워낙

 

살벌한 분위기라서 감히 끼어들 염두를 못 내고 단지 쳐다만 보고 있었다. 나는

 

워낙 세게 맞았기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나지는 못하고, 단지 앉은 자세에서

 

고개만을 들어 그녀의 삼촌을 올려다보았다.

 

 

 

’ 첫 번째 경고다. 다시는 성미를 만나지 마라. 만나면 죽는다. ’

 

그 삼촌이라는 자는 말수가 적었다. 하지만 그 말 한마디 한마디는 비수가 되어

 

내 가슴속에 꽃혔다. 내 입과 코에서는 짭짤한 무언가가 계속 흘러 나오고

 

있었고, 나는 그 말에 감히 저항을 하지 못하고 그냥 고개를 떨구었다. 삼촌과

 

그녀를 태운 새단은 나의 흐린 시야 너머로 아득히 사라져 버렸다. 그동안

 

언젠가는 다가올 것 같다고 육감으로만 느껴졌던 악몽.. 그 악몽이 시작된

 

것이다. 난 정신을 잃었다.

.

.

 

여기는 천국일까 . 지옥일까. 아까 일어났던 그일. 기억 저편 너머로 아득히

 

떠오르는 그 일. 나는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 아닌 꿈이기를 바랬다.

 

다행히도 이런 나의 생각을 뒷받침이라도 해주려는 듯, 내가 눈을 떠서 처음 본

 

것은 우리방 천장이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고 했다.. 그런데..

 

’앗...’

 

입술이 퉁퉁 부어있었다. 그리고 이빨 있는 곳이 지끈 거려왔다.

 

’ 어.. 형 일어나셨어요?? 휴 다행이네..’

 

알고보니 아끼는 후배 녀석 하나가, 내 옆에서 TV를 보고 있다가 내가 일어나는

 

걸 보고 말을 건 거였다. 난 뭔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도저히 아파서 입을 열

 

수가 없었다.

 

’형.. 병원간거 기억나요??? 입술 네바늘이나 꿔맸는데.. 그리고 이빨 두 개나 빠졌어요..’

 

난 내 입이 지금 말이 아니라는 사실 보다도, 아까 일어났던 그 악몽이

 

현실이라는 것을 알게된 대 대해서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정 로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 했다. 그게 꿈이 아니라 .. 현실이었다니. 난 아픈몸을 이끌고

 

일어나, 내 삐삐부터 찾았다. 다행히 삐삐는 그 와중에 어디로 떨어지지 않고

 

내 주머니 속에 잘 넣어져 있었다. 그녀로부터 음성 메시지 하나가 와 있었다.

 

나는 즉각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 첫 번째 메시지입니다...’

 

’ 오빠.. 나야.. 오빠.. 흑...오빠.. 우리 이제 어떡하지.. 삼촌.. 우리 삼촌

 

정말 무서운 사람이거든.. 난 엄마가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는데.... 엄마가

 

삼촌한테 우리 사이를 떼어 놓으라구 부탁을 하셨나봐.. 흑.. 오빠.. 우리 이제

 

어떡해.. 흑... 오빠.. 그리구 아까 삼촌.. 집에 오셔서 우리방에 있던 전화기

 

코드도 뽑아버리셨어.. 나.. 나 이제 전화두 못하게 생겼어..

 

어떡해...어떡해...흑..’

 

그녀는 음성을 남기는 내내 연신 훌쩍훌쩍 거리며 말했다. 메시지를 받는 나의

 

가슴도 미어질 지경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잘 안열리는 입으로 아무일도

 

없을거니 걱정하지 마라고, 오빠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그리고 녹음을 끝마치기 전에, 그래도 모르니까 우선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당분간은 연락하지 말고 지내자고 말했다. 이 말을 하고 별표를

 

누른 뒤, 난 그대로 방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아무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냥 천장만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절망감에 짓눌려 천천히

 

눈을 감았다..

.

 

’오빠..오빠 뭐하는거야.. 수업중에 졸면 어떻게해~ 어서 일어나~~’

 

난 그녀의 말에 눈을 떴다. 강의실에서는 교수님의 수업이 한창이었다.

 

-계속-

 

너의 결혼식 #10

 

’아.. 꿈.. 꿈이었나??’

 

나의 말에 그녀는 무슨 말인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빠.. 무슨 말 하는거야? 뭐 악몽이라도 꾼거야??’

 

’아.. 아니 됐어.. 아니.. 아니야..’

 

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정말로 이렇게 길고도 실제같은 악몽은 처음 꿔

 

본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전에 그녀의 어머니가 학교를 다녀가신게 화근이

 

되었나. 난 아까의 그 악몽을 내 머리속에서 지워버릴려구 손을 깍지끼고

 

기지개를 켰다. 물론 교수님한테 안 들키게. 난 창가에 앉아 있었는데,

 

기분전환도 할겸, 안도의 한숨도 쉴겸, 햇살이 비치는 창밖을 쳐다보았다. 학교

 

교정은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난 눈길을

 

교문쪽으로 돌렸다. 교문은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학생들이 하나 둘 오가는

 

평온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 교문..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난 아까 꿈 속에서 봤던 삼촌의 새단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며, 몸을 한번

 

부르르 떨었다. 그게 현실이 아니라 꿈이었다니, 실로 그렇게 긴 꿈은

 

처음이었다. 난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며 얼굴에 안도의 웃음을 띠며

 

그녀의 손을 꼬옥 잡았다. 그녀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따라웃었다.

 

’쿠구궁........’

 

그런데 바로 그때, 창밖 어디선가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내 몸을 틀어 창밖을 바라보았다.

 

’ 앗.......’

 

내 몸은 순간 굳어버렸다. 교문쪽이 어두워지면서, 그 너머로 검은색 새단

 

수십대가 학교로 돌진해 들어오고 있었다. 난 재빨리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알아차리고, 웅성거리는 사람들 사이로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재빨리 문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뿔싸, 문에 도달하기 전에 문이 안쪽으로

 

너머지면서, 저승사자의 옷을 입은 그녀의 삼촌이 도끼를 들고 그 앞에

 

나타났다.

 

’ 너 이놈. 내가 한번만 더 성미 만나면 죽인다고 했지.’

 

그녀의 삼촌은 도끼를 휘두르며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나는 그녀와 함께

 

재빨리 방향을 바꿔, 창문틀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우선 그녀를 올려주고

 

내가 발을 창틀로 올려 몸을 바깥쪽으로 돌리는 순간, 삼촌의 도끼가 내 발

 

바로 뒤의 창틀을 둔탁하게 찍었다.

 

창문밖은 아까의 화창한 날씨와는 다르게, 먹구름이 짙게 깔리고 바람이 심하게

 

불며 번개가 치고 있었다. 난 창틀에 올라 유리창에 기대어 서서, 재빨리

 

그녀를 창문과 마주하지 않은 틀 쪽으로 움직이게 했다. 그리고 나도 세찬

 

바람을 지탱하며 그쪽으로 한발씩 두발씩 조심스럽게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몇초를 옆으로 움직인 순간, 갑자기 어디선가 굉음이 들리며, 우리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우르르.......’

 

우리를 중심으로, 양 옆에서 부터 창틀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난

 

순간적으로 왼손으로 그녀의 몸을 껴안은 다음, 떨어지는 순간에 손 잡을 정도

 

남은 창틀의 조각을 오른손으로 있는 힘을 다해 겨우 부여잡았다. 한손으로

 

허공에 매달려, 언제 떨어질지 몰라 안절 부절 하며 위를 쳐다보는데, 그녀의

 

삼촌은 벌써 창문 위에 올라 서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 너 이놈. 내가 한번만 더 성미 만나면 죽인다고 했지. ’

 

검게 그늘이 져 보이지 않는 그의 얼굴 사이로, 그의 눈이 빨갛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사후 그는 도끼로 있는 힘을 다해 나의 왼손가락을 찍었다.

 

’아아아악~~~~~~~~~~~’

 

나의 손가락은 여지없이 잘라졌고, 새빨간 피가 손가락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나와 그녀는 밑이 보이지 않는 학교 건물 아래로 계속해서 , 계속해서

 

떨어져 갔다. 그녀의 비명소리와 나의 비명소리가 온 학교에 울려

 

퍼진다.........

.

.

.

.

 

 

’따르르르르르릉........’

 

나는 번쩍 눈을 떴다. 그리고 내 잘린 왼손을 만져봤다. 왼손가락은 아직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듯 했다. 꿈이었다. 내 몸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그녀 곁에서 이야기를 해 본지도 벌써 15일이나 지난 것 같다. 그녀의 삼촌,

 

엄밀히 말하면 그녀 아버지와 사업상의 관계 때문에 의형제를 맺고 서로

 

상부상조하며 그녀 아버지를 형님이라고 부르며 따르는 건달, 은 프로 중

 

프로였다. 강남에 있는 어느 나이트클럽 똘마니에게 그 이름만 말해도 부르르

 

떨만한 대규모 폭력조직의 부두목이었으니까..그는 특히 맡은일의 뒷처리가

 

확실한 것으로 그쪽 방면에서 유명한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한번 겁주는

 

걸로 끝내지 않고, 확실하게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 그날 이후로 그녀 곁에

 

학생복을 입은 경호원 한 명을 배치했다. 말이 경호원이지, 그녀가 나와

 

학교에서 만나 이야기를 하나 안하나 감시하기 위해서 배치한 감시자나

 

다름없었다. 이 친구가 그녀를 차에 태워 학교에 데려오고, 학교가 끝나면 곧장

 

차에 태워 집에 데려갔다. 그리고 학교 내부에서 일어날 수 있는 만일의 사태,

 

예를 들어 내가 친구들을 동원하여 그녀를 그 경호원으로부터 폭력을 써서

 

빼앗아가는 사태를 미연에 대비하고자, 역시 학생복을 입은 조직폭력배 10명을

 

학교 곳곳에 그녀가 눈치 채지 못하게 배치했다. 그 악몽이 벌어진 며칠 후

 

내가 학교에서 그녀와 마주쳤을때, 그녀가 나를 본채도 안하고 도망가길래 왜

 

그러나 궁금해 했었는데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나도 그녀가 이 사실을

 

삐삐 음성으로 남겨주기 전까지는 전혀 알 수가 없었으니까. 그리고 삼촌과

 

엄마가 대화하는 것을 들었다는 그녀 말에 의하면, 엄마가 삼촌에게 내가 만약

 

그녀 곁에 다가오면 다리를 하나 분질러 놓으라고 부탁도 했다고 한다. 이런

 

그녀의 음성 메시지를 들은 이후, 나는 학교에서 그녀를 마주쳐도 그냥 멀리서

 

눈길로 대화를 할 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혹이나 내가

 

다가가려 해도, 그녀가 지레 겁을 먹고 반대 방향으로 달아났다. 그리고 같이

 

듣는 수업은 그녀가 들으러 오지 않았다. 아마도 그녀 어머니가 못 들어가게 한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겨울 방학을 한 달 남겨둔 시점에서, 서로 쳐다는 볼

 

수 있으면서 가까이 다가갈 수는 없는 그런 사이가 되어 버렸고, 그렇게 무작정

 

시간만 15일이나 흘러간 것이다. 우린 오직 삐삐 메시지를 통해서만 서로의

 

안부를 묻고 사랑을 속삭일 수 있었다.

 

오늘도 그녀는 목요일 마지막 수업 ’인간과 심리’를 듣고, 그녀 친구와 함께

 

강의실을 빠져 나왔다. 난 교문 근처에 있는 학교 캠퍼스 잔디밭에 앉아

 

이어폰을 귀에 꼽고 책을 보는 척 하면서 그녀의 얼굴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그녀 역시 어제 내가 남긴 음성으로 내가 여기 있을 것을 아는지, 나를 먼

 

발치에서 바라보며 학교 교문쪽으로 걸어갔다. 그녀의 얼굴은 지금까지 내가 본

 

그 어느때 보다도 더욱 예뻐 보였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예쁜 얼굴 한

 

구석에는 알수 없는 슬픔이 서려있었다.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자신이

 

정말로 한심스러웠지만, 이렇게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나마 내가 사랑하는

 

그녀를 바라볼 수 있다는 데 대해서 하늘에 감사하게 생각했다.

 

 

’ 방법이 생길꺼야..방법이.. 방법을 찾아보자..’

 

교문 너머에서 새단을 타고 내 시야에서 사라지는 그녀를 바라보며, 나는

 

엉덩이를 툴툴 털고 잔디밭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녀가 떠나간 빈 자리를

 

담담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교문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아직 호프집

 

아르바이트까지 한시간 정도 남아있었으므로, 학교 근처 만화방에서 그 시간을

 

때우기로 결정했다. 난 워크맨의 볼륨을 더욱 크게 높이며, 어떻게 하면 그녀를

 

다시 내 곁으로 오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음악에 맞추어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만화방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 만화방에 거의

 

다다랐다고 생각했을 무렵이었다.

 

 

’끼이이이익............’

 

난 차에 치어 죽는줄 알았다. 차가 내 앞으로 돌진해 온 것이다. 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자 가슴에 손을 올려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우선

 

내가 무언가를 잘못했나 생각해 보려구, 지금 내가 걷고있는 길이 차도인지

 

인도인지부터 내려다 보았다. 보도블럭이 눈에 들어왔다. 여긴 인도가

 

분명하다. 그렇다면 지금 내 앞에서 급정거한 차가 인도로 달려 들어와 나를 칠

 

뻔 했다는 말인데.. 이런 사람 잡을 놈을 봤나.. 나는 이어폰을 귀에서 뽑아

 

들며 얼굴에 오만 인상을 다 쓰면서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앗.......’

 

눈이 휘둥그래지면서 , 나는 주머니에 넣으려 했던 이어폰을 그대로 바닥에

 

떨어뜨렸다. 내 앞에는 차도와 인도에 반쯤 걸쳐서 검정색 긴 새단이 가로놓여

 

있는 것이었다. 난 다리에 힘이 쭉 빠지며 그 자리에 털석 주저앉았다.

 

 

’철컥....’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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