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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결혼식(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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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환 [hwancan] 쪽지 캡슐

2000-08-18 ㅣ No.1305

너의 결혼식 #11

 

문이 열리면서 나오는 사람은 다름아닌 그 삼촌이라는 깡패새끼였다. 그놈은 전에 그랬던

 

것처럼 나에게 한발자국씩 저벅 저벅 걸어왔다. 난 그녀곁에 다가가서 말한적이 없었으므로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제 저녁에 꿨던 꿈이 생각나서 오금이

 

저려왔다.

 

’일어나..’

 

그놈은 키가 180이 넘기 때문에 서서봐도 위협감이 느껴질 정도인데, 앉아서 위를 쳐다보며

 

그 말을 들으니, 정말로 저승사자가 ’너 이놈 죽을때가 됐다’ 라고 호령하는 것 같았다. 난

 

가능하면 당당하게 보이고자,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퍽.........’

 

내 몸이 돌아가는 방향을 보니, 아마도 저번과는 반대쪽 뺨을 맞은 것 같다. 내 몸은

 

저번과 마찬가지로 공중제비를 한 바퀴 휙 돌더니, 길 옆 차도로 고꾸라졌다. 극심한

 

고통이 내 왼쪽뺨을 감싸왔다. 하지만 불행중 다행으로 새단이 내 뒤를 막고 있어서,

 

차들이 나를 치고 지나가지는 않았다.

 

’삐삐 내놔...’

 

역시 뭔가가 있었을 거라는 상상은 했었다. 하지만 설마 삐삐가 걸렸으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왜냐면 그녀가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만 음성을 보낸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뿔싸..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조직폭력배 정도면 전화를 도청할 수 있는 도청장치

 

정도는 수십개 소유하고 있었으리라. 아마도 그녀가 집에서 메시지를 보내다가 저

 

깡패놈한테 덜미를 잡힌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삐삐를 그놈에게 넘겨줄 수 없었다.

 

삐삐마져 없다면, 내가 그녀와 대화할 수 있는 수단이 하나도 남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입에서 흐르는 피를 닦으며 그놈에게 말했다.

 

’ 없어요.. 삐삐 같은거..진짜 없’

 

’ 퍽........’

 

둔탁한 소리가 내 양미간 사이에서 들리는 가 싶더니, 온 세상이 흐리흐리 해 졌다. 누가

 

내 몸을 뒤지는 것 같았지만, 의식을 회복할 수가 없었다.

.

.

 

 

’형.. 정신 들어요?? 형 이게 맨나 뭔 꼴이유??’

 

어디선가 낳잊은 목소리가 들리는 가 싶더니, 정신이 조금씩 들어왔다. 눈을 뜰려고 시도를

 

했는데, 양미간이 쇠뭉치에 맞은 듯이 너무 아프고 뜨거워서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여..여기 어디야??’

 

’형~~ 움직이지 마요.. 지금 얼굴 위에 물찜질하는 수건 올려놨단 말이예요. 여기 만화방이예요..’

 

아.. 눈이 안 떠지는 이유가 따로 있었군. 나는 내 손으로 수건을 벗긴후 양미간의 아픔을

 

참으며 억지로 눈을 떠 보았다. 만화방에 있던 쿠션 의자가 일렬로 중앙에 놓여있었고,

 

거기에 내가 누워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나를 빙 둘러싸고 수근수근 거리는 모습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왔다.

 

’아... 지금 시간이 몇시지?? 동민아?’

 

’형.. 지금 시간 따져서 뭐하시게요. 지금 7시 조금 넘었어요..’

 

’ 아.. 오늘 아르바이트.. 오늘 6시까지 가야 하는데.. 주인아저씨가 오늘 급한일 있어서 절대 빠지면 안된다구 신신 당부했는데...’

 

그녀와 연락 수단인 삐삐를 뺏겨버린것도 큰일이었지만, 나의 밥줄인 아르바이트를 자꾸

 

빠지는 것 역시 큰일이었다. 나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전에 맞았던 오른쪽뺨에

 

오늘 왼쪽뺨까지 맞고, 또 양미간에 무엇으론가 맞았으니 , 얼굴이 정말로 말이 아니었다.

 

난 거울을 달라구 해서 퍼렇게 멍이 든 내 양미간을 바라보면서, 동민이에게 내가 뭘로

 

맞은 것 같냐고 물었다. 동민이는 자기도 제대로 보지는 못했는데, 맞던 곳 바로 앞

 

슈퍼마켓 아주머니가 보니 구둣발로 양미간을 찬 것 같더랜다.... 지독한 놈들.. 정말로

 

나를 죽일 속셈이었나. 삐삐였으니까 이정도였지, 아마 내가 그녀와 만나서 이야기라도

 

했으면 정말로 죽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동민이가 위에서 만화책을

 

보고 있다가 소동이 있고 얼마후 바로 달려내려와서 응급조치를 해 주는 바람에 피는

 

멎었지만, 여전히 양뺨과 양미간은 퉁퉁 부어 있었다.

 

’지금 가야 되.. 호프집... ’

 

난 동민이를 이끌고 호프집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내 얼굴의 아픔보다, 이제 그녀와

 

연락할 수단이 전부 없어졌다는게 내 가슴을 아프게 짓눌렀다. 이젠 정말 끝장인가.. 이젠

 

진짜로 그녀를 멀리서 바라만 볼 수 밖에 없는건가.. 여러 가지 절망적인 생각을 하면서

 

나의 발걸음은 어느새 호프집에 다다랐다. 그런데 머리를 다듬으며 호프집으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발을 옮기는 순간, 나는 뭔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리고 눈을 뒤로 돌렸다.

 

알고보니 호프집 패널이 뭔가에 맞아 박살이 나 있었다. 갑자기 불안한 예감이 온몸을

 

감싸돌면서 몸이 부르르 떨렸다. 나는 발을 날려 지하 호프집으로 뛰어 내려갔다.

 

’쿵.......’

 

호프집 지하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난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어버리고 말았다. 따라서

 

들어온 동민이도 그 자리에 숨소리도 내지 않고 멈춰 섰다. 호프집은 전쟁이 한차례 쓸고

 

지나간 것처럼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쓰러져 있는 테이블들, 깨져서 어지럽게 널부러 진

 

병과 술잔들, 뭔가에 맞아 구멍이 나 버린 생맥주통. 정말로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한 채로 그 자리에 꼼짝않고 앉아 있었는데, 그 상황에서 계속 서 있던

 

동민이가 가계 구석편 카운터 뒤쪽에 쓰러져 있는 주인아저씨를 발견하고 아저씨를 외치며

 

그쪽으로 뛰어갔다. 나도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아저씨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아저씨의 입

 

양쪽과 코는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구두발 자국들이 아직도 옷 전체에 선명히

 

남아있었다. 아저씨는 동민이가 아저씨를 외치면서 흔들자, 겨우 정신을 차리셨다.

 

’저기.. 112에 신고를.. 112에...’

 

내가 아저씨를 부축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자.. 동민이는 아저씨를 부축하던 손을 놓고

 

전화기 있는 쪽으로 달려가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아.......안돼..!!! 수화기 어서 내려놔..!!!’

 

우린 아저씨의 비명 가까운 외침에 깜짝 놀랐다. 동민이는 아저씨가 왜 그러시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얼굴 표정을 지으며 전화기를 잠시동안 붙잡고 있다가 다시 우리 곁으로

 

걸어왔다. 아저씨.. 아니 나에게는 아버지나 다름없는 아저씨. 내가 대학들어와서부터

 

공익으로 근무할때를 제외하고 나를 계속해서 아르바이트로 써 주셨던 나의 소중한

 

친구이자 나의 후견인인 아저씨. 내가 사정이 있어 가불 좀 해달라구 하면 아무런 이유도

 

묻지 않고 척척 돈을 잘 가불해 주시던 아저씨. 지금 그 아저씨가 내 앞에서 피곤죽이 되어

 

앉아계신다. 그리고 이렇게 엉망으로 당하셨으면서도, 뭐가 두려우신지 경찰에 신고도

 

못하게 하신다. 하지만 이번에도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단지 눈물만이 뺨을 적시며

 

흘러내릴 뿐이었다.

 

’진석아...........’

 

’예.. 아저씨.........’

 

’..........미안하다..........’

 

’예... 아저씨.......’

 

우린 몇 년간을 알고 지낸 사이였으므로, 대화를 하는데 있어서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난 아저씨가 무슨말을 하고 싶어 하시는지, 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를 통해서

 

다 알 수가 있었다. 난 아저씨를 동민이에게 맡기고 , 휘청거리는 몸의 중심을 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호프집의 입구를 향해서 터벅 터벅 느린 발걸음을 옮겼다.

 

’ 진석이형....’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아저씨는 카운터 위에 있는 종이 하나를 묵묵히 가르키고

 

계셨다. 나는 그 종이를 힘없이 치켜들어 읽어보았다.

 

’ 너 박진석. 오늘부터 학교가 종강하는 12월 7일까지 학교 근처 출입 엄금. 만약 출입하다가 걸릴시엔 넌 죽고 너희집은 불질러 버리겠음. - 성미 삼촌 ’

 

이게 절망의 끝일까.. 아니면 이보다 더한 절망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지금 나의

 

기분은 뭐랄까.. 에베레스트를 등정하다가 눈사태를 만나 산 밑까지 굴러떨어지는

 

기분이랄까.. 이젠 그녀를 멀리서 바라보는 것 조차 허용되지 않다니.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만 같지 못했다. 집까지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하고 땅만 보고 걸어온 나는 방안에

 

들어가서 그대로 고꾸러 졌다. 하지만 문득 한가지 생각이 떠 올라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비록 그녀 삼촌이 삐삐를 빼았아갔 다 할 지라도, 내 등록번호는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므로, 그녀가 보낸 음성이 음성사서함에 들어와 있을거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난

 

긴장된 마음에 재빨리 호출 번호를 눌렀다.

 

’띠.....띠.....띠.....딸칵’

 

’뚜.........’

 

’뚜?’

 

내 호출기는 음성사서함이 있는 호출기다. 뚜 라는 소리가 날 리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후에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국번입니다 ’ 라는 소리가 전화기로부터 들렸다. 나는

 

내가 정신이 없어서 잘못 눌렀겠지 생각하며, 다시 전화기 버튼을 하나씩 하나씩

 

조심스럽게 눌렀다.

 

’뚜....뚜......딸칵.. 지금 거신 ... ’

 

난 심장 고동소리가 빨라지는 것을 느끼며, 재빨리 수화기 버튼을 눌렀다 때고 그녀의 호출

 

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뚜.....뚜...딸칵.. 지금 거신 번호는 ..’

 

난 전화기를 통채로 들어 바닥에 내 팽개쳤다. 이제 난... 이제 난 나의 사랑하는 그녀의

 

목소리를 다시는 들을 수 없게 되는 건가.. 그럼 이렇게 우리의 사랑.. 우리의 4년간의

 

사랑은 끝이 나는 건가... 내 머리속에는 그 어떤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단지 내가 이런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자라는 사실 밖에는...

 

-계속-

 

너의 결혼식 #12

 

오늘도 그녀는 어김없이 오후 4시 무렵이 다 되어서, 학교 교문쪽 에 나타났다. 너무도

 

아름다운 그녀, 비록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는 내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그

 

어느때보다도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나는 내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집게 모양을 만들어,

 

두 손가락 안에 그녀를 넣어본다. 너무도 아름다운 그녀. 하지만 그녀를 태운 저 망할놈의

 

검정색 새단은 오늘도 여느때와 다름없이 차 한번 막히지 않고 도로를 질주해서 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다. 나는 내 손 안에 남아있는 그녀의 온기를 느끼며,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녀가 떠난 교문 앞 빈 자리를 멍하니 바라본다.

 

’ 오빠.. 오늘도 청승떨구 계시는 건가요?? 피...’

 

’ 아.. 민정이 왔구나.. ’

 

민정이는 같은 과 후배이자 그녀와도 상당히 절친한 친구이다. 민정이는 오늘도

 

여느날과다름없이 쪽지 몇장을 나에게 건네준다. 난 민정에게 감사를 표시한 후, 내가

 

가지고 있던 글씨가 빽빽히 들어찬 연습장 몇 장을 민정에게 건내준다.

 

’ 그럼 이번두.. 잘 부탁해.. 이제 며칠 안 남았어...’

 

’ 치.. 오빠 뭐 좀 해봐요.. 남자가 왜 그렇게 쪼잔해요 쪼잔하기는..그리고 수업도 좀 들어오시구요.. 교수님 단단히 화나셨어요.. 졸업 학점 안 줄거라구 벼르시던데요... ’

 

민정이 눈에는 내가 쪼잔해 보이나 보다. 아니 민정이 뿐만이 아니라, 내 자신이 나를

 

쳐다봐도 내가 쪼잔해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날 학교 출입 금지령이 떨어진 이후,

 

건달 30명 가량이 학교 주위에 배치되고 정문과 후문에만 5명씩 10명이 배치된 상황에서,

 

이들을 모두 물리치고 그녀에게 다가가려고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미친짓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역시 그녀가 출발하고 난 후에도, 삼촌 깡패의 부하 녀석들은 교문

 

주위를 어슬렁 거리며 내가 나타나나 나타나지 않나 그것만 살피고 있었다. 나를 겁쟁이라

 

놀려도 내가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직접 그런 상황에 닥쳐본 사람이 아니면 그 기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내 자신을 이런말로 자위하면서, 그녀가 나에게 보내준 쪽지를 손에

 

쥐었다. 쪽지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다름아닌 민정이었다. 민정이는 우리 두 사람이 서로

 

만나지 못해서 둘 다 죽을 표정을 하고 다니는게 보기 안스러웠던지, 자신이 고등학교때 써

 

먹었던 방법이라고 말 하면서 서로간에 쪽지를 교환해 보는게 어떠냐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그리고 자신이 기꺼이 운반책을 하겠다는 말까지도. 우리는 그런 민정이의

 

아이디어를 쌍수를 들고 환영하며 받아들였고, 그렇게 쪽지를 주고받은지 근 일주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삐삐사건 이후 그녀에 대한 삼촌의 감시는 더욱 심해져서, 남은

 

보름간 학교 오갈 때 소지품 조차 그 삼촌이라는 작자한테 검열을 받으면서 다녀야 했다.

 

그러므로, 편지지로 편지를 주고받는다는건 너무나도 무모한 발상이었다. 그래서 그녀와 나

 

둘 다 연습장을 이용하여 연습장의 절반 정도를 영어 단어나 잡설로 까득 채운다음, 나머지

 

반절에 정성스럽게 서로에 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다행히 근 일주일간 아무런 해꼬지가

 

없는 걸 보면 이 방법이 삼촌에게 걸리지는 않은 모양이다. 난 조심스럽게 쪽지를 펴

 

보았다. 여러 가지 잡설 사이로, 그녀와 나만이 볼 수 있는 비밀의 사랑의 속삼임이

 

정성스럽게 쓰여 있었다.

 

’ 오빠... 사랑하는 오빠.. 오빠는 저를 아주 먼 발치에서 나마 잠깐동안이라도 볼 수 있으시겠죠? 하지만 저는 달라요. 저는 오빠가 어디있는지 오빠의 얼굴, 아님 오빠의 손, 아님 오빠의 머리카락 하나 조차도 볼 수 없어요. 엄마는 삐삐사건 이후 작정을 단단히 하신 모양이예요. 매일 학교를 갔다오면 먼저 책가방을 일일이 검사를 하고, 그리고 나서는 그 이민혁인가 하는 사람의 자랑을 하면서 저녁 내내 시간을 보내세요. 저는 정말 요즘 지옥에서 살아가는 기분이예요. 그런데 만약 이렇게 살다가 진짜로 그 이민혁 인가 하는 사람과 결혼하게 된다면, 전 정말로 차라리 죽는 쪽을 택하겠어요.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 지금의 우리보다 더 애절할 수 있었을까요. 견우와 직녀는 비록

 

364일동안 못 만나더라도 칠월 칠석날 단 하루는 하루종일 만나서 정겨운 사랑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는 데, 우리는 그렇게 1년에 하루라도 만날 수 있을까요. 다른 사람은 서로

 

안보는 시간이 길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하는데, 저는 오빠를 볼 수 없는 만큼 오빠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더욱 커져만 가는 것 같아요... 사랑해요 오빠.. 보고싶어요... ’

 

난 그녀가 내게 보내준 쪽지를 두 번, 세 번 계속 반복해서 읽어 보았다. 하지만 읽고 나면

 

남는건 그녀에게 쪽지를 받아 볼 수 있다는 만족감이 아니라, 내 자신의 무능력에 대한

 

절망감 뿐이었다. 비록 나는 내 자신을 ’저건 어쩔수 없는 상황이다. 아무리 임꺽정이라구

 

해도 저 상황에서는 어떻게 할 수 없을 것이다’ 라고 자위를 하지만, 내 자신이 무능력한건

 

결국 어떤 자위로도 감출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었다.

 

’ 자신의 여자 하나 지키지 못하는 쪼다같은 놈.. ’

 

어제 저녁 잠을 못자게 했던 악몽의 말이 다시 머리속에 떠 올랐다. 그래 난 쪼다같은

 

놈이다. 쪼다같은 놈이라서 내 여자가 나의 바로 앞에서 나를 못만나 슬프게 울고 있는데도

 

그녀에게 다가가 안아주지 못한다. 하지만 자기 비하를 하면 할수록 난 헤어나올수 없는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들 뿐이었다.. 이럴 때 그녀의 용기를 주는 목소리라도 들어볼 수

 

있다면.. 그러면 정말로 힘이 날텐데.. 난 고개를 떨구었다...

 

-계속-

 

너의 결혼식 #13

 

시간은 물과도 같이 빠르게 흘러, 드디어 종강이 내일로 다가왔다. 그리고 오늘은 우리과

 

종강파티가 있는 날이기도 하다. 오늘 그녀 역시 종강 파티에 참석할 것이므로, 나는

 

혹시나 내가 그녀와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밤잠을 설치고

 

아침부터 교문이 멀찍히 보이는 카페 창가에 앉아 교문을 바라보고 앉았다. 오늘 과연

 

그녀를 만날 수 있다면 무슨 말을 해줘야 하나. 근보름만에 보는 건데. 그동안 잘 지냈냐고

 

물어봐야 되나. 아님 아무 말 없이 그냥 안아줘야 하나. 아님 입맞춤을 해야 하나. 아니..

 

아직 만나지도 않았는데 상상에 들떠 있다니.. 나는 이런 내 자신을 한심해 하며 교문앞에

 

검정 새단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검정 새단이

 

학교 교문 옆에 나타났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그녀와 함께 다니는 경호원이 옆좌석에서

 

나와 문을 열자 모자 쓴 그녀가 차에서 내렸다. 그녀.. 요즘 계속 모자를 쓰고 다닌다.

 

나와 함께 학교를 다닐 적에는 모자를 쓴 적 이 없었는데... 그러고 보니 멀리서 보는

 

거지만 그녀 얼굴이 너무 안되 보인다는 생각이 든다. 하기야 내가 이런 말을 할 처지가

 

아닌 것 같다. 지금 내 얼굴이 훨씬 더 말이 아니니깐.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 동안,

 

그녀는 벌써 교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안타까운 한숨을 쉬며, 그녀가 들어간

 

교문만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 형......형.......!! 뭐해요??’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교문만 바라보며 멍하니 있던 나를 동민이가 와서 흔들어 깨웠다.

 

동민이는 이런 내가 너무도 안스러운지, 측은한 눈빛을 띄며 말을 이었다.

 

’ 형.. 오늘 과 종강파티 있는 건 아시죠?’

 

’ 어... 엉...’

 

’ 오늘 제가 수시로 상황 보고 해 드릴테니까는, 어디 가지 마시구

 

여기 잠자쿠 앉아 계셔야 되요.. 알았죠? 혹시 오늘 성미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길지도 모르니깐..’

 

’어.. 엉...’

 

 

동민은 내가 맨정신에서 대답하는건지 , 아니면 몽롱한 상태에서 대답하는건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다가, 자신의 삐삐를 나에게 건냈다.

 

’형.. 제가 제 삐삐 형한테 드릴테니까요, 이거 가지구 제가 학교 상황 연락드릴테니까는 확인하세요. 그런데 성미는 음성 못 넣을거 뻔 하니까, 음성 오면 바로 저 인줄 아세요. 어젠가 성미가 저한테 쪽지로 말을 해 주는데, 자기 몸 어딘가에 지금 도청장치가 붙어있데요.. 그래서 요즘은 친구들이랑두 형과 관련된 대화는 다 쪽지로 하구 있어요..참... 사랑이라는게 뭔지...휴우...’’

 

동민이는 내게 이렇게 말하고는, 이내 수업이 있다고 말하며 학교로 들어갔다. 비록

 

동민이가 저렇게 말은 했지만, 나는 혹시라도 그녀가 동민이 삐삐로 음성을 남길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메시지가 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동민이가 수업

 

들어간 지 한 시간쯤 지났을까, 삐삐에 음성이 하나 들어왔다. 난 긴장된 손으로 전화기

 

버튼을 눌렀다. 실망스러웠지만, 동민이였다.

 

’ 형 나 동민인데.. 오늘 학교 분위기 장난 아닌데.. 평소에 못보던 등치좋은 애들이 주변에 많이 눈에 띄어. 근데 평소때는 내 주위엔 아무도 없었는데, 오늘은 내 주변에도 나를 감시하는 애들이 생긴것 같은 기분이 드네. 왠지 기분이 오싹하군. 그럼 형 내가 점심때 쯤에 다시 한번 연락할께...... ’

 

난 동민이의 메시지에, 그놈들이 동민이한테 해꼬지를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잠깐

 

들었지만, 얼마 안 있어 오늘도 그녀를 만나지 못하게 되면 어쩌나하는 불안감에 온몸이

 

사로잡혔다. 오늘 못 본다면 내일은 종업식. 내일은 다른 날보다 수업도 일찍 끝나고, 또

 

내일 저녁에 그녀가 학교에 머물만한 구실은 하나도 없다. 즉, 오늘 못 보면 내가 그녀를

 

볼 수 있을 확률은 거의 0에 가까워 지는 것이다. 난 목이 타 왔다.. 물을 두잔이나

 

들이켰지만, 목의 갈증은 쉬 사라지지 않았다. 점심 무렵이 되어서야 동민이의 두 번째

 

메시지가 들어왔다. 그런데 이번 메시지는 아까 메시지와는 다르게 약간감이 멀게

 

느껴졌다. 나는 그 이유를 이내 알 수 있었다.

 

’형.. 저 동민인데요.. 저 지금 화장실에 들어와서 친구한테 핸드폰 빌려서 입 가리구 전화하는 거예요. 지금 성미하고 친한 애들한테 건달 한명씩 다 붙었어요, 물론 저한테도 한명 건달이 붙었구요. 공중전화로 이 이야기 했으면 정말 큰일날뻔 했네요. 그러니 혹시 말이 잘 안들리더라두 양해하세요. 아까 성미랑 글로 이야기 했는데 , 아침에 엄마랑 삼촌 이야기 하는 거 들으니 오늘 학교 안에만 20명, 학교 밖에는 약 40명 가량의 건달들을 배치 한다구 하더래요. 즉, 오늘 학교 주변에 엄청 감시가 살벌하단 말이죠. 그래서 성미한테 혹시 형한테 뭐 전해주고 싶은거 없냐고 물으니깐, ’ 오빠 오늘은 정말로 위험한 것 같으니까 절대로 제 곁에 다가오지 마세요. 오늘 종강파티에도 아마 그들이 계속 따라다닐꺼예요..그러니 절대로 오지 마세요’ 라고 전해주라고 하더군요. 형.. 오늘은 성미 말대로 정말로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조금있다가.. 성미한테 형 있는 카페 위치 말해줬으니깐, 교문 나갈 때 성미 얼굴이나 보세요. 그럼 이만..’

 

수화기를 잡고 있는 손의 맥이 탁 풀리면서.. 수화기를 떨어뜨렸다. 정신을 차리고

 

수화기를 다시 전화기 위에 올려놓은 뒤, 나는 창가에 있는 자리로 돌아와 털썩 주저

 

앉았다. 학교밖에 40명이라.. 나 혼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숫자였다. 난 절망에 빠진채 , 그대로 테이블에 머리를 쳐박았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절망감에 짓눌려 잠깐 잠이 들었었나 보다. 시계를 쳐다보니 시간은 5시를 향하고 있었다.

 

5시.. 조금만 있으면 먼 발치에서나마 다시 그녀를 볼 수 있게 된다. 나는 아까의 절망감을

 

떨쳐버리고,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설레임을 안고 가지고 있던 워크맨

 

이어폰을 귀에 꼽으며 교문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몇곡의 노래가 지나간 후, 4시 수업이

 

끝난걸로 보이는 학생들이 몇몇씩 짝을 지어 교문 밖으로 빠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학생들이 나오기 시작하는군.. 나는 긴장하며 귀에서 이어폰을 뽑아 손에 들고, 창에

 

얼굴을 붙이고 눈을 크게 뜨고 교문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한명.. 두명... 사람은 계속

 

지나가는데, 같은 과 사람들과 그녀는 아직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 난 초초한 마음을

 

달래려고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후우...하아...후우.. 하아...’

 

그녀랑 얼굴을 마주하지 못한지 어언 13일째, 하지만 오늘은 잘만하면 비록 가까이서

 

얼굴은 못 보더라도 먼 발치에서나마 서로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것도

 

같았다. 난 고개를 돌려 카페 뒷면에 붙어있는 거울을 바라보며 머리를 단정하게 다듬은

 

후, 다시 눈길을 교문쪽으로 돌렸다. 바로 그때였다.

 

’아......’

 

동민이가 앞장 선 채, 같은 과 사람 20여명과 함께 그녀가 걸어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지난 한달가량 보아온 짜증나는 경호원놈도 약간의 거리를 두고 따라오고 있었다.

 

그녀는 교문쪽으로 나오면서 이쪽을 힐끔 힐끔 보는 것 같더니, 사람들한테 뭐라고 말을 한

 

후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새단에 다가가 창문을 두드렸다. 그녀는 약간 긴 시간동안 새단

 

기사와 이야기를 한 후, 자신을 따라 다니는 경호원 놈에게도 신경질적인 얼굴로 뭐라고

 

쏘아댔다. 그러자 그는 알았다는 의미로 고개를 한번 끄덕인 후, 누군가에게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더니 새단을 타고 교문에서 사라졌다. 그녀는 새단이 사라져 가는 것을 물끄러미

 

쳐다본 후, 과 사람들이 모여있는 교문 곁으로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그녀는,

 

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난 손에 들고있던 워크맨 이어폰을 바닥에 팽개치고, 두 손을

 

창틀에 올리며 최대한 유리쪽에 가까이 얼굴을 붙이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 너무나 보고싶던 그녀... 비록 먼 발치에서였지만, 난 그녀와 얼굴을 마주볼 수

 

있었다. 그녀는 주변이 신경쓰이는 듯 이쪽을 계속 바라보지 못하고 연신 좌 우를

 

돌아다보며 사람들과 이야기 하고는 있었지만, 그녀는 순간 순간 두 주먹을 꼭 쥐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얼마만에 보는 그녀인가.. 눈 앞이 조금씩 흐려짐을 느낀다. 난 소매로

 

재빨리 눈을 닦은 뒤, 입김을 정면의 유리창에 이쪽 저쪽 호호 하고 불고 나서 아까 생각해

 

두었던대로 두손으로 커다랗게 하트를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슬픈 얼굴로 나를

 

바라보다가 나의 이런 모습을 보고 입을 손으로 가리며 잠깐동안 웃더니, 양손을 가슴 있는

 

곳으로 가져가 왼손으로는 주먹을 만들고 오른손은 펴서 그 주먹위에서 돌리는 손짓을 하기

 

시작했다. 저 신호.. 아니 저건.. 아 맞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는 생각이 났다. 저건

 

수화로 ’사랑한다’ 는 의미였다. 하하.. 너두 참..난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우린

 

비록 말은 못 했지만, 몸짓을 통해서 우리의 사랑을 속삭이며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그녀의 곁에 서서 주변을 살피고 있던 민정이가 그녀의

 

옷자락을 잡아끌며 도로 윗편을 그쪽에서 안보이게 안절부절 가르키기 시작했다. 그녀는

 

깜짝 놀라며 유정이가 가르키는 쪽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쪽은 내 시야 밖이었기

 

때문에, 나는 직접 보지는 못하고 단지 좀 더 많이 보고자 창문에 귀를 바싹붙이고 그쪽을

 

바라 보았다. 아직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황급히 고개를 돌려 그녀를 다시

 

쳐다보자, 그녀는 나와 그쪽을 번갈아 쳐다보며,

 

어쩔줄 몰라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두근....두근....두근...’

 

내 가슴은 고동질을 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초의 시간이 흘렀을 까, 드디어 나는 왜

 

그렇게 그녀가 당황해 했는지 알 수 있었다. 학교 주변에서 그녀를 감시하던 건달 한명이

 

그녀의 이런 수상한 움직임을 눈치채고 내가 있는 곳을 쳐다보며 들고 있는 무전기에 뭐

 

라고 이야기를 하며 옆으로 오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를 다시 쳐다 볼 겨를도 없이, 난

 

재빨리 몸을 탁자 아래로 숙였다. 그리고 엉금 엉금 기어서 창문쪽 시야에서 벗어난 후,

 

커피숍 뒷문을 통해서 학교 반대편 쪽으로 정신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내 머리속에는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단지 이번에 잡히면 죽는다는 것 .. 이것만이 떠오를

 

뿐이었다. 얼마나 달렸을까..난 달리기를 멈췄다. 내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숨이 목에까지 찬 나는 손으로 무릎을 짚으며 연신 헥헥 거렸다. 온 몸에서 나는 땀과

 

함께, 내 눈에서도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씁쓰름한 땀이..

 

-계속-

 

너의 결혼식 #14

 

’형.. 형.. 일어나세요...’

 

동민이의 목소리에 난 눈을 떴다. 내 방이었다. 언제 내가 방에 들어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하기야 요즘 생활하는 것 자체가.. 현실이 아닌 것 같으니까.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동민이가 테입 하나를 건낸다. 알고보니 동민이 뿐만 아니라, 친구와

 

후배 몇몇이 방에 와 있었다. 그들에게 눈인사를 한 후, 난 테입을 들여다 보았다,

 

아무것도 안 적혀있는, 길거리에서도 구하기 힘든 싸구려 테입이었다. 난 테입을 들어 앞

 

뒤로 돌려보다가, 동민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 저녁에.. 노래방 갔었어요.. 그리구 성미 노래 부르는거 녹음해 온 거예요. 성미가 부탁해서..’

 

’ 그.. 그래???’

 

난 약간 놀란듯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위에 있는 워크맨을 집어 테이프를

 

넣었다.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이어폰을 꼽았는데, 동민이가 내 이어폰을 다시 귀에서 빼며 말했다.

 

’형.. 할말이 있어요.. ’

 

아참.. 지금 분위기가 평소와는 다르군.. 난 주변에 앉아있는 친구와 후배들의 얼굴을 주욱

 

돌아봤다. 다들 뭔가 비장한 결심을 한 듯한 얼굴이었다. 난 궁금해 하는 얼굴을 하고

 

동민이의 입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 형.. 내일이 종업식이예요. 내일 지나면, 형 성미 이대로 영영 못 보게 될지도 몰라요. 형. 그래도 좋으시겠어요?’

 

’ 어... 어.. 그게 말이지.. 너희들도 알다시피...’

 

그래도 최소한의 자존심이랄까, 나는 ’깡패가 무서워서 못다가 가겠다’ 라는 말은 차마

 

입밖으로 꺼내지를 못하고 말끝을 흐렸다. 동민이는 이런 나의 심정을 알겠다는 듯, 바로

 

입을 열었다.

 

’형.. 형도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하실 수 없다는 거 잘 알구 있어요. 하지만 이렇게 성미를 떠나 보낼수 만은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오늘 2차 노래방 끝나구 나서, 몇몇 애들끼리 3차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가 같은 과 학우로서 두 사람을 도와줄 수 있을까 의논을 해 봤어요. 그러다가 좋은 생각이 떠올라서, 이렇게 저녁에 테입도 전해줄 겸 해서 찾아온 거예요.’

 

’아.. 뭔데??’

 

동민이와 옆에 앉아있던 친구들은 비장한 눈빛을 보이며 자신들이 세워놓은 계획을 하나씩

 

하나씩 차근 차근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 계획이라는게 대충 이랬다. 우선 자신들이 학교

 

총학측에게 사정 이야기를 해서, 내일 하루간 교수, 학생과 교직원, 그리고 이들과 관계된

 

사람을 제외한 학교와 관련이 전혀 없는 사람의 출입을 막아 그녀의 삼촌 부하들의 학교

 

진입을 막은 후, 그녀만을 학교에 들어오게 한다. 그리고 난 후, 내가 정문이 아닌

 

후문쪽으로, 친구 들의 도움을 받아서 학교에 들어간다. 그리고 학교에서 그녀와 만난 후.

 

아무도 모르게 아는 선배의 차를 타고 정문으로 빠져 나온다. 그래서 둘이 잠적한다.. 가장

 

뒷 부분에서 어디로 잠적해야 될지 아무도 이야기 해 주지 않았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방법이 생기겠지 라는 생각이 들어 난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덧붙인 말에, 이미

 

총학 측 사람들과 아까 술자리에서 이야기도 끝났다고 한다.

 

’형..어때요?? 계획??’

 

’그런데.. 저쪽은 조직폭력배구.. 또 내일이 마지막 날이니까.. 인원도 상당할텐데.. 그놈들이 안으로 쳐들어 오는걸 어떻게 막으려구??’

 

나의 이 말에 동진이는 그건 걱정 마라는 투로 말을 받았다.

 

’ 형.. 아까 저희꽈에서 ’사랑사수대’ 라구 해서 내일 교문 막을 사람 지원자를 찾았었거든요. 근데 자그만치 15명이나 지원을 했어요. 그리구 아까 형네집 오기전에 오늘 참석 안했던 과 사람들한테도 전화했는데, 10명 정도가 더 도와줄 수 있겠다고 하더라구요. 이렇게 저희쪽 25명에 총학측에서 한 50명정도의 ’해방조국’ 멤버를 지원해 준다고 했으니까, 너무 걱정 않 하셔도 될 꺼예요. 설마 70명이 넘는 사람이 문 두개 못 틀어 막겠어요?’

 

난 아직도 뭔가가 꺼림직 하다는 투로 다른 질문을 던졌다.

 

’ 들어올때는 어떻게 들어올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나갈때는 어떻게 나가지.. 분명히 양쪽 다 조직폭력배들이 가로막고 있을텐데.. 그걸 어떻게 뚫어?’

 

’........’

 

’ 형.. 우리 해방조국을 무시하시는 겁니까. 우린 깡패새끼들보다도 더 무서운 백골단 새끼들이 쳐 놓은 바리케이트도 단방에 때려부쉈던 일당백의 용사들입니다.’

 

뒤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정탁이가 방바닥을 바라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힘차게 말을

 

했다. 정탁이는 나보다 2년 아래의 과 후배로, 1학년때부터 ’해방조국’에 참여, 지금까지

 

있었던 수 많은 시위에서 백골단과 전경들로부터 우리학교 학우들을 지켜냈던 배테랑급

 

사수대중 한명이었다. 난 정탁이의 듬직한 모습을 바라보며, 잘하면 정말로.. 정말로 해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얼굴에 미소를 띄웠다. 하지만 이런 기쁨의 순간도 잠시, 곧

 

그녀의 삼촌.. 저승사자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순간 얼굴이 굳어졌다. 이런 나의 우유부단한

 

얼굴을 바라보며 한심한 얼굴표정을 짓던 동민이가 나에게 소리치며 말했다.

 

’ 형.. 우리는 벌써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해낼 자신도 있구요..이제 결정이 남은 건 오직 형 혼자 뿐입니다. 어서 결정을 내리세요!!’

 

’ 잠... 잠시만 생각할 시간을 줘... 잠시만.. ’

 

그녀의 얼굴과, 그녀의 삼촌의 얼굴.. 두 얼굴이 머리 속에서 서로 교차하면서 계속 오버랩

 

되었다. 지금은 그녀의 얼굴이 보인다. 나에겐 그녀가 필요하다.. 그녀없는 나의 삶은

 

물없는 물고기요, 열쇠없는 자물쇠와 같다. 아니.. 도저히 그녀없이 산다는 것 자체를

 

상상할 수 없다. 기회는 내일뿐. 내일이 지나면 그녀를 죽는날까지 영원히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 한번 해 보는거야.. 내일 그녀와 함께.. 학교를 빠져나와.. 아무도 모르는 그

 

먼 곳으로.. 떠나면 되는거야. 하지만 그녀의 얼굴이 보인 것도 잠시. 곧 무서운 그녀의

 

삼촌의 얼굴이 그녀의 얼굴에 오버랩 되며 떠올랐다. 한국에서 알아주는 조폭계의 부두목,

 

이 정도 실력이라면 우리가 어디를 도망 가더라도 충분히 찾아낼 수 있을꺼야...왜 흔히들

 

그러잖아.. 사람을 찾으려면 폭력배들에게 부탁을 한다고.. 그리고 아마 그 날이 내가

 

죽는날이 되겠지. 음.. 삶이냐 그녀냐.. 그것이 문제로다.. 내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주변에 앉아있던 녀석들은 긴장되는 얼굴로 내 얼굴만을 바라보며 숨소리를 멈췄다. 하지만

 

나는 쉬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단지 땅만을 바라보며 혼란스러워 할 뿐이었다.

 

 

 

’................’

 

 

그렇게 잠시동안 정적이 흘렀다. 그런데 방이 조용해지자, 어디선가

 

조그맣게 사람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까 플

 

레이 버튼을 눌러놓은 워크맨 이어폰에서 조그맣게 소리가 새어 나

 

오고 있었다. 얼핏 들으니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아, 난

 

동민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그녀였다. 목소

 

리가 평소와는 다르게 약간 쉰 듯한 느낌을 주었다.. 아마도 너무

 

많이 울었기 때문일까..노래를 부르기 전에 무언가 사람들에게 말을

 

하는 모양이다.

 

 

’ 여러분들도 사랑 많이 해 보셨죠? 저 역시도 대학 들어와서부터

 

한 사람을 사랑했고, 지금도 여전히 사랑하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

 

는 지금 어떤 사정으로 인해서 서로를 못만나고, 서로를 그리워만

 

하고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서로를 못 만나다니.. 도대체

 

하늘은 왜 우리를 처음에 만나게 한 것이었을까요.. 하늘이 원망스

 

러워 지는 밤이예요. 하지만 저는 믿어요. 우리는 꼭 다시 만날것이

 

라는 것을.. 그 사람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죠? 그 사람을 그리

 

워 하는 마음을 노래에 담아 015B의 ’슬픈인연’을 부르도록 하겠습

 

니다. ’

 

 

도청 장치 때문이었을까, 그녀는 아주 절제된 단어만을 사용해서

 

나를 향한 그녀의 마음을 표현했다. 조금후 박수소리와 함께, 음악

 

첫부분의 아름다운 기타의 선율이 흐른다..

 

 

’멀어져 가는 저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난 아직도 이 순간을.. 이별이라 하지않겠네..

 

달콤했었지.. 그 수..많았던 추억속에서..

 

흠뻑..젖은... 두 마음..을 우린 어떻게 잊을까

 

아~~ 다시 올......꺼.............흑흑.......’

 

 

그녀는 노랫말을 잊지 못하고 흐느꼈다.. 그리고 흐느끼는 그녀의

 

목소리와함께, 땅을 짚고 있던 나의 두 주먹은 부르르 떨렸다. 그

 

래.. 그녀가 없는 삶은 죽은 삶이나 마찬가지다.. 비록 내가 죽더라

 

 

도 그녀를 다시 찾고야 말겠다.. 난 결심한 듯한 얼굴을 하며 , 내

 

앞에 앉아있던 동민이의 손을 꽉 잡았다.

 

 

:밑에 글은 지금 제가 올리는 글과는 상관없거든요

날짜는 별루 상관없지만(이미 이 글은 완결되어있기때문에...)

실제루 이 글이 올려질 때는 날짜가 계산되어 있었거든요

지금 이 글을 읽구 나중에 끝까지 다 읽으시면 아마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지금 지루한 듯 해두 끝까지 읽으시면 아마 후회하시지 않을꺼에요

 

-계속-

 

너의 결혼식 #15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귀에 꼽아져 있는 이어

 

폰을 뽑으며, 난 희미하게 눈을 떴다. 동민이가 나를 흔들어 깨우

 

는 중이었다. 깜작 놀란 나는, 황급히 일어나 책상위에 있는 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낮 12시였다.

 

 

’ 형.. 지금 뭐하구 있수?? 오늘이 무슨 날인데 아직도 자고 있는거

 

야.. 10시까지 내방으로 오라니깐..’

 

 

동민이는 한심한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아차.. 어제 늦게까지 그녀

 

의 테입을 듣느라 잠을 안 자고, 새벽녘에 잠깐 눈을 감고 있는다

 

고 있었던게 벌써 12시가 되어버렸나 보다. 난, 동민에게 멋적은 웃

 

음을 한번 웃어준 뒤, 대충 씻은후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집밖으

 

로 나왔다. 어제 이야기 했던 나의 교내 진입은 오늘 1시 정도에

 

행해질 예정이었다. 난 발걸음을 재촉하면서, 동민에게 지금 상황에

 

대해서 물었다.

 

 

’ 아침에, 요즘 교내에 불량배들이 진입해서 학내 난동을 조장할 우

 

려가 있어서, 종업식을 하는 오늘 학교와 연관이 없는 신원이 불분

 

명한 자들에 대해서 학내 출입을 제한한다는 학생회측의 짧은 방송

 

이 있었어요. 그리고 아침 6시 가량에 등교한 같은 과 학우들이, 정

 

문 10명 후문 10명씩 서서 수상한 사람들의 출입을 막기 시작했죠..

 

깡패 놈들.. 처음에는 말도 안돼는 개소리 하지 마란 얼굴로 우리한

 

테 시비를 걸며 길을 트라고 협박하더니, 우리가 끝까지 버티자, 갖

 

은 상소리를 다 해가면서 학교 주변에서 그냥 모여 있더군요. 그래

 

도 학교인건 아는지, 폭력을 써서 무리하게 뚫으려고 하진 않더군

 

요. 성미는 아까 9시 정도에 학교에 도착했는데, 따라 다니는 경호

 

원이 자신이 함께 못 따라 들어간다는 이유로 성미도 학교 못 들어

 

가게 막으려 했지만, 성미가 뿌리치고 우리들 사이로 학교로 들어

 

왔어요. 물론, 경호원은 미친 듯이 발악을 하며 우리들 사이를 뚫으

 

려 했지만..결국은 못 뚫고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더군요..그래서 지

 

금 현재 상황은.. 정문쪽에 약 40명.. 후문쪽에 20명 정도 건달들이

 

몰려 있는 것 같구요.. 다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서 풀어져서 그런

 

지.. 당구장에서 놀고 있는 놈들이 꽤 되더군요.. 우리한테는 좋은

 

기회가 되겠지만.... 아참.. 그리고 성미는 오늘 수업 안 들어가구 과

 

방에서 형 오기를 기다리구 있어요.’

 

 

나의 사랑하는 그녀.. 과연 오늘은 그녀를 만날 수 있을까.. 그녀의

 

얼굴을 머리속에 그리며 길을 걸은지 얼마나 되었을까, 우리는 행

 

동 대기 장소인 동민이의 자취방에 도착했다. 동민이는 학교 후문

 

쪽 자취거리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2층에 위치해 있어서 창문

 

을 열고 옆쪽으로 내다보면 학교 후문쪽이 멀리서나마 보였다. 어

 

제의 사건도 사건이었지만, 오늘같은 날 정문을 뚫고 들어가는 것

 

보다는 후문쪽을 통해서 들어가는게 보다 쉬울 것 같아 동민이의

 

방을 행동대기 장소로 정했었다. 난 긴장된 마음으로, 창문을 조금

 

씩 열어 학교 후문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얼굴이 익은 같은 과

 

학우 몇 명이 후문에 서서 학교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신분증을 검

 

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건달로 보이는 20대 10명 가량이

 

서로 옹기 종기 모여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나머지 10명은 어디로

 

갔나.. 아마도 근처 당구장에 당구치러 간 것 같았다. 그들은 자기

 

들끼리 잡담을 나누다가, 한번씩 문을 지키는 학우들에게 다가가

 

뭐라고 큰소리를 치며 시비를 걸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잡담을

 

나누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난 10명에 가까운 숫자를 보며, 과연

 

내가 저 숫자를 뚫고 학교로 진입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며 ,

 

창문벽에 기대어 앉았다. 동민은 내가 한 것처럼, 얼굴만 살짝 내밀

 

어 학교 주변을 살피더니, 벽에 기대어 앉으며 입을 열었다.

 

 

’ 형.. 조금만 기다려봐.. 지금까지 저놈들의 행동 패턴을 연구한 결

 

과, 조금있다가 1시정도 되면.. 몇 명만 남겨놓구 다들 근처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가거든.. 그때를 노려서 학교 안으로 들어가는 거야..

 

알았지??’

 

 

난 동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얼마후 ’정말로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특히 그녀의 삼촌, 그

 

저승사자의 얼굴이 뇌리에 스쳐 지나가면서, 나의 이런 의구심은

 

더욱 강해졌다. 하지만, 곧 있으면 그녀를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난 이런 좋지않은 생각들을 머리속에서 툴툴 털어버리고 주

 

먹을 불끈 쥐며 후문 앞의 상황을 예의 주시하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동민이의 예상은 정확했다. 1시가 가까워 오면서, 후문을

 

지키고 있던 건달들은 아마도 그중에서 제일 짠밥이 적은 것으로

 

생각되는 3명을 후문에 남겨둔 후, 자기들끼리 큰 소리로 떠들어

 

대며 근처에 있는 식당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행동의 시간이 다

 

가온 것을 알고, 난 상기된 얼굴로 침을 꿀꺽 삼키며 창문벽에 기

 

대어 앉았다.

 

 

’ 형.. 준비 되셨죠??’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속을 교차하며, 난 잠시동안 정신이 멍멍해

 

지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교문에 들어가고.. 못 들어가고.. 그

 

녀를 만나고.. 못만나고.. 학교에서 빠져나오고 .. 못빠져나오고..그

 

상황 상황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게 될지.. 그 광경들이 슬라이드

 

필림처럼 내 눈앞을 오버랩 되며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안있어 머리 속이 조용해 지면서, 영상.. 비록 흐릿하게 떠오

 

르긴 하지만.. 하나의 영상이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아마도 그

 

녀의 방인 듯 하다.. 내가 그녀의 방에 들어간적이 딱 한번 있었으

 

니까.. 아.. 전에 반지 선물하던 날인 듯 하군.. 그녀와 난 촛불을 하

 

나 켜 놓구, 둘이 그 주위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녀..

 

그녀의 얼굴이 클로즈업 된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무언가 말을

 

하고 있다..

 

 

’ 오빠.. 세상이 우리를 방해하더라도, 우리 사랑 변치 말구.. 이렇게

 

영원히.. 우리가 세상을 떠나는 그날까지 영원히... 서로만을 사랑하

 

기로 해요.. 알았죠??후훗... 오빠.. 우리 이 촛불에 우리 사랑을 맹

 

세해요...약속..’

 

 

’약속.......’

 

 

’형~~!!!!’

 

 

동민의 소리에, 나는 번쩍 눈을 떴다. 동민은 초초해 하는 얼굴을

 

보이며, ’알았다’ 라는 말이 내 입에서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듯 했

 

다. 난 이런 동민이의 손을 잡으며.. 나지막히 말했다.

 

 

’ 돔민아.. 고맙다.. ’

 

 

난 내 새끼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반지를 다른 손으로 꼭 쥐면서,

 

마음의 결심을 다시금 굳혔다. 동민의 방을 나와, 우리는 주위를 살

 

피며 뒤쪽으로 돌아 학교 후문과 가장 가까운 골목으로 살금 살금

 

다가갔다. 동민은 후문을 잠깐동안 훔쳐보더니, 벽에 기대어 서서

 

나에게 말했다.

 

 

’지금 우리 골목이 있는 반대편쪽에, 건달로 보이는 놈들이 세명이

 

서 이야기 하구 있어요. 그리고 주변을 보니, 뭐.. 다른놈들은 다 점

 

심 먹으러 간 것 같구요.. 저 세 명만 따돌릴 수 있다면 학교로 들

 

어가는 건 우선 별 문제가 없을 것 같내요... ’

 

 

난 동민의 말에 숨을 죽이며 후문쪽을 훔쳐보았다. 밥을 못 먹어

 

불만인 듯, 건달들 세명이 여기까지 들릴 정도의 큰 소리로 상소리

 

를 해 가며 서로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눈을 돌려 후문쪽

 

을 바라보았다. 학우 몇 명은 서서, 그리고 몇몇은 앉아서 후문 앞

 

쪽과 건달들이 있는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 형...갑시다..’

 

 

난 동민의 말에, 얼굴이 잘 보이지 않게 모자를 머리에 푹 눌러썼

 

다. 그리고 계획했던 대로, 동민이가 앞장을 서고 난 깡패들의 눈에

 

띄지 않게 그 뒤에서 머리를 숙인채 후문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

 

했다. 다행히 동민이가 180정도의 큰 키에 어느정도 몸도 있었으므

 

로, 나 하나 정도를 그들의 시야로부터 가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만

 

은 않을 것 같았다. 난 숨을 죽이고, 동민이를 따라 한발자국 한발

 

자국 동민이의 발만을 쳐다보며 앞으로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다행

 

히 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에 빠져, 사람들이 누가 오가는지 별 신

 

경을 안 쓰는 듯 했다. 난 그들의 큰 소리만을 동민의 어깨 너머로

 

들으며, 동민이를 벽 삼아 조금씩 조금씩 뒤쪽에서 옆쪽으로 위치

 

를 바꿔가며, 후문쪽으로 천천히 다가다기 시작했다. 다리가 후들

 

후들 떨리고 온몸에서는 식은땀이 흘렀지만, 나는 떨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동민이의 걸음 템포에 나의 템포를 맞추며 숨소리도 내지

 

않고 걸어가고 있었다. 20미터.. 19미터.. 18미터.. 17미터....이대로만

 

된다면 그들에게 걸리지 않고 학교 내로 들어가는 것도 가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6미터.. 15미터.. 14미터.. 한 걸음 한 걸

 

음 옮기면서.. 난 곧 있으면 그녀를 만나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부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야~~~~~!!’

 

 

멀리서 들리는 이 외침에, 우리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제자리에

 

꼼짝없이 굳어버렸다. 그리고 소리나는 방향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틀기 시작했다. 쿵쾅 거리는 심장 소리에 주변의 소리가 아무것도

 

안 들릴 지경이었다.

 

-계속-

 

너의 결혼식 #16

 

 

 

’야~~ 좃마니들아.. 작은형이 건더기만 남기고 나머지 둘은 얼렁 와

 

서 밥 쳐먹으란다~~’

 

 

알고보니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아니었다. 식당쪽으로 갔던 건달

 

중 한명이 동료 건달을 데리러 와서 부른 소리였다. 하지만 다행의

 

순간도 잠시, 그 건달의 눈길은 우리가 있는 후문 왼쪽 방향으로

 

휙 돌려 우리를 지나치는가 싶더니, 다시 눈을 오른쪽으로 돌려 움

 

직이지 않고 제자리에 서 있는 우리에게서 멈췄다. 난 재빨리 고개

 

를 숙였다.

 

 

’ 어.. 저새끼들 뭐야.. 야.. 모자쓴 새끼.. 너 이리와봐~’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 사이로 나를 부르는 그 건달의 목소리가 들

 

렸다. 그 건달의 소리에, 후문 오른편에 있던 건달 세명도 고개를

 

우리 쪽으로 돌리며 이쪽을 수상한 눈빛으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

 

 

’.........’

 

 

 

’ 형.. 튀어~!!!’

 

 

동민의 외침에, 내 발은 본능적으로 땅을 박차고 후문 쪽으로 뛰어

 

가기 시작했다. 앞으로 거리는 약 14미터, 난 사력을 다해서 앞으

 

로 달렸다. 그 건달들도 내가 수상한 인물인걸 알아차렸는지 , 내

 

가 있는 쪽을 향하여 뛰어오기 시작했다.

 

 

’ 이 xx.. 너 거기 안서~!!!’

 

 

나에겐 건달들이 달려오는 것을 볼 겨를이 없었다. 단지 이번에 잡

 

히면 저들이 나를 분명히 죽일 거라는 생각만이 온 머리속을 맴돌

 

뿐이었다. 난 동민의 등을 바라보며, 후문쪽을 향해서 죽을힘을

 

다해 뛰었다. 단 그들의 욕 소리를 들으며, 저들이 어느 방향에서

 

나를 덥치려 뛰어 오는지는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 옆쪽에서

 

한명, 그보다 약간 뒤쪽 대각선에서 세명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으로 보아, 한명은 나를 옆에서 덥치려고 포물선 방향으로 같이 후

 

문쪽으로 뛰고 있고, 나머지 세명은 나에게 직선방향으로 쫓아오는

 

듯 했다.

 

 

’xx 너 잡히면 죽을줄 알어~!!!’

 

’서 이 새끼야~!!’

 

 

우리가 뛰는 모습은 흡사 살기 위해서 죽을 힘을 다해 뛰는 얼룩

 

말과, 이를 잡으려는 사자의 추격전 같았다.9미터..8미터..7미터..후

 

문과의 거리가 가까워 지면서 동민의 등과 후문 틈 사이로, 내가

 

들어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같은 과 학우들의 초초해 하는 모습

 

과, 잔디밭을 박차고 일어나 후문쪽으로 달려오는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학우 몇몇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 저들이 해방조국인가.. 그

 

리고 나를 부르는 건달들의 목소리도 내귓가에 조금씩 조금씩 더

 

가까워져 왔다. 평소에 운동을 안해서 그런지, 아니면 너무 긴장을

 

한 상태에서 뛰어서 그런지, 벌써 목에까지 숨이 차 올라 입에서는

 

헉헉대는 소리가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난 죽을힘을 다해 앞으로

 

뛰었다.. 5미터..4미터..3미터..2미터.. 동민이가 기다리고 있던 같은

 

과 학우들 사이를 통해 교문 안으로 뛰쳐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아직도 2미터.. 하지만 그들이 벌써 내 옆에 와 있는 듯, 내 심장소

 

리 사이로 들리는 그들의 목소리에 온 가슴이 흔들릴 정도였다.

 

 

’xx 서~!!!!’

 

’안서 이 xx야~!!’

 

 

2미터.. 1미터.. 다른 곳은 몸으로 다 막고 내가 들어올 곳만 조금

 

터 놓은 친구들이 나를 잡으려고 손을 앞으로 내민다.

 

 

 

 

’ 휙~~~~~~~~~’

 

 

 

쫓기는 자의 본능이랄까.. 난 내 옆에서 들려오는 옷깃이 날리는

 

소리가, 나를 덥치기 위해 뛰어오른 건달의 소리라는 것을 직감으

 

로 알 수 있었다. 난 잡히지 않기 위해, 도루를 하는 야구선수가

 

포수가 던진공에 죽지 않기 위해 2루 베이스를 앞에 두고 슬라이딩

 

을 하는 것처럼 앞으로 몸을 수그리며 후문 쪽으로 내 몸을 던졌

 

다. 내 몸이 나르면서.. 모든 것이 정지.. 정지 된 것만 같았다.

 

 

 

 

 

’ 부웅~~~~~~~’

 

 

내 머리위로 손을 휘젖는 듯한 바람소리와, 건달의 욕 소리가 스쳐

 

지나갔다. 난 그대로 데굴 데굴 구르며 친구들 사이를 뚫고 후문을

 

통과했다. 학교 진입에 성공한 것이다. 넘어진 나를 사이에 끼고

 

후문쪽을 향해 해방조국 멤버들이 황소처럼 돌진하며 스쳐 지나간

 

다. 짐시후, 몸과 몸이 부딪치는 둔탁한 소리가 뒤편 후문쪽에서

 

들려왔다..

 

 

’둥~~~~둥~~~~둥~~~~~’

 

’이 xx들 안비껴~~죽고 싶어~~~’

 

’너희들이 뭔데 우리학교 들어올려구 지랄이야~~!!꺼져 이 깡패 새

 

끼들아~!!’

 

 

난 뒤를 돌아다볼 겨를이 없었다.. 성미..성미.. 지금 내 머리속엔

 

그녀의 얼굴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난 동민이의 부축을 받아 땅에

 

서 일어나며, 그녀가 지금 있다는 과방쪽을 향해서 다시 뛰기 시작

 

했다. 학생들과 깡패들이 싸우는 소리가 점점 귓가에서 멀어져 갔다.

 

인문관으로 향하는 길에서, 동민의 등 옆으로 이런 나와 동민을

 

바라보는 학생들의 모습이 하나씩 , 둘씩, 차타고 갈 때 보이는 길

 

옆의 전봇대처럼 잔상을 뿌리며 스쳐지나간다. 얼마쯤 달렸을까..

 

우린 인문관 입구에 도착했다.

 

 

’헉.......헉.......헉.......’

 

 

난 내 숨소리와 심장 뛰는 소리에 정신이 아찔아찔할 지경이었다.

 

난 정신을 차리기 위해 입구에 털썩 주저앉았다. 동민도 숨이 찼는

 

지, 내 옆에 주저앉으며 숨이 너머가는 목소리로 말을 꺼낸다.

 

 

’형..봐..내가 뭐랬어.. 우린 성공할 수 있다고 했잖아.. ’

 

 

난 동민의 말에 밑을 보던 시선을 동민에게 돌리며 헐떡거리면서

 

한번 씨익 웃어줬다. 난 잠깐동안 크게 심호흡을 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 빨리 가 봐요.... 성미 기다리고 있을텐데..’

 

 

난 동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과 방을 향해서 다시 뛰기 시작했

 

다. 과방은 3층.. 난 계단을 향해 뛰어올랐다.. 1층반.. 2층.. 평소와

 

는 다르게 있는 힘을 다해서 세 계단씩 전력을 다해서 뛰어 올랐

 

다. 2층반...3층.. 난 3층에 뛰어올라, 즉시 발 방향을 바꾸어 과방

 

이 있는 인문관 중앙쪽을 향해 뛰었다. 과방이 밀집해 있는 인문관

 

3층.. 스쳐지나가는 타과 과방 문 사이로 기타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

 

었다. 과방.. 국문과 과방.. 드디어 우리과 과방의 모습이 내 눈 앞

 

에 들어왔다... 난 뛰던 발걸음을 멈췄다..

 

 

’..........’

 

 

이게 꿈일까 생시일까... 그녀.. 나의 사랑하는 그녀.. 그동안 멀리

 

서만 바라볼 수 있었던 그녀.. 너무도 보고싶던 그녀.. 그런 그녀를

 

이제 바로 내 옆에서 만나볼 수 있다니.. 난 숨을 씩씩거리면서..

 

한발자욱 한발자욱씩 닫혀져 있는 과방 문을 향하여 다가가기 시작

 

했다. 과방에서는 평소에 들리던 기타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끼이이이익..........’

 

 

난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 문 사이로 드러나는 과방의 모습을 지

 

켜보았다. 아직까지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 과방안에선 한산

 

한 기운이 감돈다. 아마도 다들 나와 그녀를 도운다고 정문과 후문

 

지키러 나갔기 때문인 것 같았다. 난 침을 삼키며, 아직 채 열리지

 

않은 문을 오른손으로 더 밀었다. 창문.. 드디어 창문이 눈에 들어

 

왔다. 그리고 창문 앞에는 남자 한명과 여자 한명이 창문밖을 쳐다

 

보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긴 생머리.. 내 품 안에 꼬옥 들어오

 

는 좁은 어깨.. 160이 조금 넘어보이는 키....어라.. 근데 내가 못 보

 

던 옷을 입고 있다.. 그녀가 아닌가.. 이런.. 땀이 눈으로 타고 들어

 

왔다.. 난 반사적으로 눈을 비볐다.. 그런데 바로 그때 두 사람이

 

내가 들어온 걸 알아 차렸는지, 고개를 돌렸다....

 

 

 

뿌연 영상.. 흔히 눈에 무언가가 들어가면 나타나는 뿌연 영상.. 뿌

 

연 영상 사이로 두 사람의 얼굴이 흐릿하게보였다. 난 그들의 얼굴

 

을 확실히 보기 위해 눈을 껌뻑거렸다.. 껌뻑... 껌뻑.. 그들의 영상

 

이 차츰..차츰.. 또렷해진다.....

 

 

 

-계속-

 

너의 결혼식 #17

 

 

 

’오빠.....’

 

 

아직 뚜렷하지 않은 영상 사이로... 내가 그동안 그렇게 듣고 싶어

 

했던 목소리..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그녀를 뚜렷히 바라보

 

기 위해 다시한번 눈을 손으로 비볐다. 뿌연 점들이 하나 하나 내

 

시야에서 사라져 가면서, 눈이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

 

나의 사랑.. 나의 전체.. 내 인생.. 내 목숨과도 같은 그녀.. 바로 그

 

녀가 내 앞에 서 있었다..

 

 

’오빠......’

 

 

그녀의 눈이 잠시 반짝거리는 가 싶더니.. 눈물이 방울을 이루어

 

그녀의 뺨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난 목이 메여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한걸음 한걸음.. 그녀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난

 

눈 앞이 다시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성......성미야...’

 

’오..오빠...’

 

 

그녀는 울먹이는 얼굴을 하다가, 이내 내 쪽으로 달려왔다. 나 역

 

시도 그녀를 향해 달렸다. 그녀의 얼굴이 점점.. 내 앞으로 다가온

 

다. 하지만 그녀는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몇 발자국 뛰어 오다가

 

내가 달려오는 방향으로 넘어지려 했다. 난 재빨리 앞으로 뛰어 그

 

녀를 밑에서부터 일으켜 세우며 끌어안았다. 그녀는 내 목을 감싸

 

며 내 품에 꼬옥 안겼다. 지금.. 지금 내 머리엔 아무 생각도 떠오

 

르지 않았다.. 하지만 내 눈에서도 뜨거운 무언가가 샘솟듯이 솟아

 

올라 뺨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행복.. 그래.. 난 지금 행복하다..

 

난 많은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단지 지금 이 순간이.. 지금 그

 

녀와 이렇게 함께하고 있는 이 순간이.. 영원히 지속되었으면 하는

 

바램 뿐이었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를 껴안고 아무말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서 있었다. 아니..우리에게는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계속 훌쩍이고 있던 성미가 목을 감싸고

 

있던 손을 풀면서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눈물로 범

 

벅이 되어 있었다.

 

 

’오..오빠...난...난..’

 

 

그녀가 무슨말을 꺼내려 했다. 하지만, 난 내 왼손 검지를 들어 그

 

녀의 입을 막았다..

 

 

’성미야.. 괜찮아.. 이젠 모두 잘될꺼야.. 아무런 걱정하지마.. 다 잘

 

될꺼야...’

 

 

난 이 말을 하며 다시 그녀를 껴안았다.. 그녀도 말을 꺼내려는 생

 

각을 접고, 다시 내 품에 꼬옥 안겼다.

 

 

’짝........짝........짝..........’.

 

 

난 문쪽에서 들려오는 박수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흐릿흐릿한 시야

 

사이로 꽤 낯 익은 얼굴이 보였다... 바로 동민이었다. 동민은 언제

 

와 있었는지, 과방 문에 기대어 서서 천천히 .. 그리고 조용히 얼굴

 

에 미소를 띄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난 동민이 와 있는것에 깜짝

 

놀라, 소매를 들어올려 눈물을 훔쳤다. 그런데 어디선가 또다른 소

 

리가 들려왔다.

 

 

’짜식.. 이 형은 아에 눈에도 안 보이는 거였냐??’

 

 

난 눈물을 닦던 손을 내리며 창문쪽을 쳐다보았다. 아차.. 그러고보

 

니 창문쪽에 그녀와 또 다른 한 사람이 서 있었지. 이런.. 성민형이

 

계셨군.. 성민형은 이런 우리를 웃음띤 얼굴로 쳐다보며 창가에 기

 

대어 서 계셨다. 과 내에서 ’큰형’으로 통하며 애들에게 어려운 일

 

이 생기면 앞장서서 챙기며 우리를 도와주는 큰형.. 난 성민형을

 

보니 왠지 모르게 가슴이 놓였다.

 

 

’진석이형.. 성민형한테 고맙다구 하세요.. 오늘 이 계획.. 성민형이

 

어제 술자리에서 다 짜신거예요.. ’해방조국’ 애들도 다 성민형이

 

데리고 오신거구.. ’

 

 

아.. 그러고 보니 아무런 연줄도 없는 나를 학생회 산하 사수대 애

 

들이 도와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성민형이 관련되고 보면 이야

 

기는 달랐다. 성민형은 재작년에 총학생회장을 하셔서 , 학생회

 

관련으로 아는 인맥이 많았기 때문이다. 수만명이 관련된 시위도

 

아무런 차질없이 계획하셨던 형인데, 이정도 몇십명 동원하는 일이

 

야 누워서 떡먹기 였을 것이다. 성민형이 내 곁에 있다고 생각하

 

니, 천군 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난 훌쩍이는 그녀의 눈물을 손

 

으로 닦아주며, 내 목을 감싸고 있던 그녀의 손을 풀어 내 손에 잡

 

고 형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 형.. 정말로 고맙습니다.. 이 은혜 평생.. ’

 

’ 쨔샤.. 아직 고맙다고 말하기는 일러.. 조금있다가 차 타고 교문밖

 

으로 빠져나가 너희들 은닉처까지 데려다 주고 난 후에 고맙다고

 

말해라..’

 

’ 앗..그럼 형이??’

 

 

형은 내 질문이 무엇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한번 가볍게 끄덕였

 

다. 그러고보니, 어제 계획에서 차를 운전해 우리들을 학교 밖으로

 

빠져 나가게 해 줄 사람이 누구인지 물어볼 것을 깜빡 했었는데,

 

알고보니 성민형 자신이 총대를 맨 것이었다. 난 성민형에게 다가

 

가며, 성민형의 손을 꼭 잡았다.

 

 

’ 형..정말로.. 감사합니다.. 정말로.. ’

 

 

난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성민형은 이런 나의 등을

 

다른 한 손으로 가볍게 두드려 주면서, 말을 꺼냈다.

 

 

’ 내가 그동안 너희 둘 사귀는거 바라보면서.. 뭐 하나 제대로 해준

 

것도 없었는데.. 그래도 하늘이 내가 너희들에게 이런 일을 해 줄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구나.. 그러니 이번일은 형이 다 알아서 해

 

결 해 줄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나중에 학교 잘 빠져나가서

 

너희들 숨을 수 있게되면.. 그때 술이나 한잔 사라.. 알았지??’

 

 

난 내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알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숙인

 

채 끄덕였다. 형은 내 등을 가볍게 다시한번 치더니 말을 이었다.

 

 

’쨔샤.. 언제까지 울고 있을꺼냐.. 빨리 눈물닦고 상황이나 지켜보게

 

이쪽으로 와라. 근데 정문 바깥쪽 상황이 예상했던 것보다 좀 심각

 

하게 돌아가고 있어서 문제다.. ’

 

 

난 성민형의 말에, 그녀의 손을 잡고 창문쪽으로 발걸움을 옮겼다.

 

우리 과방은 언덕 위에 있어서, 언덕 아래에 있는 정문이 한눈에

 

들어온다. 난 창문 바로 앞에 서서, 시선을 아래로 내리며 정문 쪽

 

을 바라보았다. 동민이도 창문쪽으로 뛰어왔다.

 

 

’앗..........’

 

 

정문앞은 벌써 빽빽한 인파로 가득차 있었다. 정문 바깥쪽에는 길

 

주위로 검정색 새단 8대 가량이 깔려 있었고, 출입구 있는쪽에는

 

검정색 양복을 입은 건달들이 교문을 틀어막고 있는 학생들과 치

 

열한 몸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학생들은 서로 서로 팔짱을 끼고 앞

 

뒤로 몇 명씩 겹을 싸서 출입구 앞쪽에서 학교쪽으로 들어오는 공

 

간을 모두 몸으로 차단하고 잇었다. 건달들 몇몇은 손에 쇠파이프,

 

흔히 말하는 연장을 들고 있었지만, 상대가 조직 폭력배가 아닌 학

 

생이고, 들어오려고 하는 곳이 나이트클럽이 아닌 학교라선 그런지,

 

연장을 쓰지 않고 손으로 학생들을 밀며 학교 안으로 진입하려고 발

 

버둥을 치고 있었다. 아마도 아까 후문쪽에서 학생들에게 막힌 건

 

달 몇몇이 정문쪽에 있는 건달들에게도 연락을 했나보다.... 이런

 

제길.. 난 그들에게 혼잣말로 욕을 하면서.. 좀 더 상황을 지켜보기

 

위해서 눈을 크게 뜨며 유리창에 얼굴을 붙였다. 건달쪽 인원은 약

 

30명, 예상보다 그리 많지는 않은 숫자였다. 그녀의 삼촌은 아직

 

정문쪽에는 나타나지 않은 듯 했다. 난 이번엔 학생들이 있는

 

정문 안쪽으로 눈을 돌렸다. 교문을 틀어막고 있는 학생수는 약..

 

20명, 그리고 교문을 빙 둘러싸고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학생

 

수는 약 100명 가량 되어 보였다. 난 과연 이 많은 사람들 사이로..

 

우리들이 차를 타고 뚫고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들어 성민형의 얼

 

굴을 쳐다보았다. 성민형은 이런 나의 당황해하는 눈만 보고도 내

 

가 무슨말을 하려고 하는지를 알았는지, 손으로 정문에서 약간 떨

 

어진 언덕 아래에 있는 약대와 음대건물 쪽을 가리켰다.

 

 

’ 저기 보이지.. 재내들만 있으면.. 건달 삼십명이 아니라 백명.. 아

 

니 천명도 얼마든지 뚫고 나갈수 있으니까.. 절대로 걱정하지마..’

 

 

교문쪽에서는 보이지 않는 약대와 음대건물 사이에는, ’해방조국’

 

의 붉은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로, 약 40명 가

 

량의 마스크를 쓴 사수대 학우들이 행동 개시 시간을 기다리며 조

 

용히 열과 오를 맞춰 쇠파이프를 바닥에 꽂고 앉아있었다. 우리 학

 

교 사수대 ’해방조국’.. 한총련에서도 넘버원임을 인정해 주어 중

 

요한 시위때가 되면 언제나 가장 앞 열에서 학우들을 지켰던 일당백

 

의 용사... ’해방조국’.. 저들이 도와준다면 정말로 차가 교문 밖으

 

로 빠져 나갈 수 있겠다는 희망이 들었다.

 

 

’ 아.. 그리고 저기 저 차 보이지?? 언덕 아래쪽에 세워져 있는 하

 

얀색 엘란트라. 저게 바로 오늘 우리가 타고 나갈 차야. 어제 친구

 

녀석한테 사정사정 해서 빌렸는데, 부디 아무런 문제 없이 주인한

 

테 돌려줄 수 있기만을 바랄뿐이다..’

 

 

난 긴장했던 얼굴을 약간 펴면서, 과방에서 대각선 아래쪽 언덕에

 

있는 흰색 차를 바라보았다.. 저 차.. 저 차가 무사히 교문 밖으로

 

빠져 나갈수만 있다면.. 나와 그녀는 해방을 얻을 수 있으리라.. 난

 

잘 하면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에 부풀어 올라, 얼굴에 환한 미소

 

를 띄며 그녀를 바라보며 손을 꽉 잡았다. 교문을 긴장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던 그녀는 나의 이런 얼굴을 보고 따라서 환히 웃으며

 

말했다.

 

 

’ 오빠.. 저두 첨에 학교 들어와서.. 성민오빠가 말해주는 것 듣구

 

깜짝놀랬었거든요.. 근데 성민오빠가 말하신 데로 지금까지 착착

 

진행되는 것을 보고 있으니까.. 잘하면 우리 모두 무사하게 교문을

 

빠져나갈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성미는 믿어요.. 하

 

늘이 우릴 꼭 도와줄 것이라는 것을.. ’

 

’아.. 성미야.. 근데 너 옷???’

 

 

난 문득 그녀가 오늘 평소에 보지 못했던 옷을 입고 있던게 떠올

 

라, 그녀에게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이때.. 동민이 말을 받았다.

 

 

’아.. 형. 그옷.. 본 적 없어?? 분명히 봤을텐데.. 하기야 자기 여자

 

가 아닌데 옷을 어떻게 입냐에 무슨 관심을 가지겠어..킥킥..... ’

 

 

동민의 이 말에 옆에 있던 성민형도 따라 웃었다. 나는 영문을 몰

 

라 어쩔줄 몰라하며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는데, 성미가 내

 

귀에 대고 소근소근 말을 했다.

 

 

’오빠.. 이거 민정이 옷이예요.. 민정이가 제 옷이랑 가방 메구 대신

 

수업 들어갔어요.. ’

 

 

아.. 그러고 보니.. 전에 동민이에게서 성미에게 도청장치가 설치되

 

어 있는 것 같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났다. 그래서 성미가 나와 만

 

나는걸 외부에서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도록..민정이가 성미와 옷을

 

갈아입고 수업에 들어간 것이었다. 민정이가 성미와 똑같은 수업을

 

들으니.. 아무 문제도 없고.. 정말로 치밀한 계획이었다. 난 이제야

 

이 옷이 생각났다는 듯 머리를 치며 ’아~ 알겠다’ 라고 말 했지만,

 

두 사람은 더 큰 소리로 웃기만 할 뿐 내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성미도 두 사람이 웃자, 얼굴에 미소를 띄며 따라웃었다.

 

난 얼굴이 부끄럼에 빨개지며, 그녀에게 말했다.

 

 

’ 근데.. 누구 셍각???’

 

’ 아.. 역시 성민형 생각이세요... ’

 

 

동민의 말에, 난 성민형을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역시 연륜

 

이라는게 사람을 이렇게 치밀하게 만드는 구나.. 멋적은 듯한 웃음

 

을 띄는 성민형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도 나중에 나이가 들면 형처

 

럼 저렇게 멋진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교문쪽

 

으로 눈길을 돌렸다. 교문쪽에서는 여전히 학생들과 건달들이 몸싸

 

움을 벌이고 있었지만, 그렇게 큰 폭력사태는 아직 벌어지지 않고

 

있었다. 아직 그녀의 삼촌이 도착하지 않은건 아마도 민정이가 대

 

신 그녀의 옷을 입고 수업에 들어갔기 때문인 듯 했다.. 그녀가 수

 

업을 듣고 있고.. 또 수상한 놈이 학교 안으로 들어가긴 했지만 나

 

라는 것도 확인이 안 되었으므로.. 무리 하면서까지 학교 안으로

 

들어올 필요가 없겠지.. 우리에게 있어선 실로 천만 다행이었다..

 

아.. 근데 왜 이런 상황에서도 차가 안 막히지.. 난 눈길을 도로쪽

 

으로 옮겼다. 저렇게 교문쪽에 사람들이 몰려있는데, 학교 바깥쪽

 

도로에는 차가 막히지 않고 잘 빠지고 있었다. 하지만 난 몇초 지

 

나지 않아, 왜 그런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차 한 대가 오른쪽 깜

 

빡이를 켜고 학교쪽으로 진입하려고 상행선에서 우회전을 하자, 뒤

 

쪽에서 교문을 지켜보고 있던 건달 두세명이 차를 발로 차고 운전

 

석 유리를 손으로 치면서 앞쪽으로 계속 나가라고 손짓을 하며 위

 

협했다. 저런 상황에서는 아마 어느 누구도 목숨 걸고 학교 안으로

 

들어오려 하지 않겠지..

 

 

’자.. 그럼 이제 상황이 대충 눈에 보이는 것 같으니.. 박진석군과

 

김성미양의 사랑 대탈출 작전을 한번 실행에 옮겨 볼까.. ’

 

 

벌..벌써.. 내가 성민형을 긴장된 눈으로 바라보자, 성민형은 얼굴에

 

미소를 띄며 우리둘을 양 팔에 끼고 과방 문 쪽으로 걸어가기 시

 

작했다. 하기야.. 여기서 시간을 더 지체할 필요가 없지.. 그런데..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제발 성공해야 할텐데.. 난 마음속으로 재

 

차, 삼차.. 계속해서 빌었다..

 

 

 

-계속-

 

너의 결혼식 #18

 

 

이 세상에는 어떤 어떤 신들이 있을까. 하느님, 예수, 부처, 알라..

 

평소 신학쪽에 관심이 없고, 또 종교가 없던 내가 그 당시 알고 있

 

던건 이 네 신 뿐이었다. 그래서 난 인문관을 빠져나와 언덕을 내

 

려오는 내내, 이 네 신들의 이름을 입 속으로 들썩이며 만약 당신

 

들이 나를 여기서 빠져 나가게 해 준다면, 난 평생을 다 바쳐 당신

 

들을 섬기겠다고 맹세했다. 아마도 사람들은 이렇게 어려울 때 의

 

지할 큰 힘이 되기 때문에, 종교를 믿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

 

다. 언덕에서 내려오자, 아까 멀게 느껴졌던 외침 소리, 욕하는 소

 

리들이 좀 더 가깝게 느껴졌다. 우린 혹시라도 정문쪽에 있는 건달

 

들의 눈에 띄지 않을까 주의를 하면서 주차장에 바쳐져 있는 차들

 

의 뒤쪽으로 해서 성민형이 빌린 차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다행

 

이 많은 학우들이 정문쪽을 틀어막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

 

에게 걸리지 않고 차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왔다.’

 

 

아까 위에서 봤던 엘란트라를 바로 앞에서 바라보니, 이제 저 인파

 

를 뚫고 밖으로 나갈 시간이 코앞에 다가왔다는 생각에 긴장되는

 

마음을 누를길이 없었다. 난 초초해 하는 얼굴로 성민형에게 말했

 

다.

 

 

’성민형. 근데 정문을 빠져 나가셔서..어떻게 하실 작정이세요??’

 

 

성민형도 학우들 사이로 들리는 폭력배들의 괴성과 처음으로 해

 

보는 탈출 시도 때문이신지, 교문쪽을 약간 긴장한 얼굴로 바라보

 

며 생각에 잠겨 있는 듯 하다가 내 말에 깜짝놀란 듯 나를 쳐다보

 

며 말했다.

 

 

’ 아.. 아.. 그거.. 그건 걱정하지마.. 너도 알다시피 우리 학교 정문

 

빠져나가서 오른쪽 길이 상행선이지 않니.. 그리고 그쪽으로 나가서

 

다시 우회전 해서 잠깐 가다가 좌회전 하면 외곽도로로 빠지는 길

 

이 나오거든. 그길 통해서 죽 내려가다가 고속도로로 들어가서, 경

 

기도 광주에 있는 친구집에 너희들 데려다줄게.. 그 친구한테 이미

 

말 해 놨거든..’

 

 

그리고 성민형은 이 말에 이어 광주는 시골이라서 특별히 오가는

 

사람이 없을테니까, 아마도 몇 개월간은 별 문제없이 숨어 지낼 수

 

있을꺼라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그럼 그 후에는 어떻게 하지요 라

 

는 질문을 하려고 했으나, 지금 이정도까지 준비해 준 성민형에게

 

더 많은 것을 바란다는 것은 나의 욕심인 것 같아 성민형에게 정

 

말로 고맙다는 말을 건내며 형의 손을 잡았다. 형도 아마 그 이상

 

은 준비해 놓으신게 없으신지, 잠깐동안 교문쪽과 ’해방조국’ 애들

 

이 있는 곳을 번갈아 쳐다보시다가, 우리들에게 차에 타서 기다리

 

라는 말만 남기고 음대쪽으로 걸어가셨다. 우린 성민형이 멀어져

 

가는 모습을 멀건히 쳐다보다가, 성민형의 말에 따라 차에 올라탔

 

다. 차 속에서, 성미는 약간 불안해 하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말

 

했다.

 

 

’오빠..오빠... 우리 진짜로 정문 통해서 나갈 수 있을까?? 나..걱정

 

되...’

 

 

내 자신은 벌써 진짜로 빠져나갈수 있을까 하는 걱정의 소용돌이

 

에 휩싸여 있었지만, 내가 걱정되는 말을 해 봤자 성미만 더 걱정

 

되게 만들꺼라는 생각에 성미를 바라보며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 다 잘될꺼야.. 오빤 다 잘 될꺼라 믿어.. 분명 하늘이 우릴 도우실

 

꺼야..’

 

 

난 그때, 그녀의 걱정스런 얼굴을 바라보며 진정으로 빌었다. 만약

 

하늘에 신이 있다면, 정말로 이번만.. 딱 이번만 그녀와 나를 도와

 

주시라고.. 내 당신에게 나의 모든 것을 바치겠으니.. 제발 이 학교

 

만 빠져나갈 수 있게 해 달라고 말이다.. 우리가 이런 저런 이야기

 

를 하면서 걱정을 떨쳐버리려고 하고 있는 동안, 차 문이 열리며

 

성민형이 들어온다.

 

 

’ 자.. 그럼 5분후에 출발이다.. ’

 

 

성민형은 결심한 듯한 얼굴을 하고 차에 시동을 걸으며, 정문쪽을

 

바라보며 나지막히 말했다. 드디어 출발.. 드디어 출발인가.. 나와

 

그녀는 두 손을 꽉 부여 잡으면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

 

제 5분후면, 우리의 앞으로의 인생이 판가름이 나게 된다. 그녀 앞

 

에서 약한 모습을 또다시 보이는 것이 죽도록 싫었지만, 내 몸은

 

내 의사와는 다르게 본능에 따라 사시나무 떨듯 일정 간격을 두고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성민형은 이런 우리를 백밀러로 바라보다

 

가, 오른손을 운전석 옆쪽에 걸치고 우리를 바라보며 웃으면서 말

 

했다.

 

 

’ 쨔샤들..겁먹긴.. 걱정마.. 이 형이 있잖아.. 이 형이 다 너희들

 

아무 문제 없이 교문 밖까지 고이 모셔다 줄테니까.. 걱정 푹 놓구

 

그냥 멋진 액션영화 감상한다고 생각해라..알았지?’

 

 

형의 말이 약간 위안이 되기는 했지만, 우린 긴장되는 마음을 늦출

 

수는 없었다. 난 호흡을 가다듬으며 차창을 통해 보이는 정문쪽을

 

바라보았다. 정문까지의 거리는 약 100여 미터, 그 가운데에는 학

 

교 잔디밭과 잔디밭을 가로질러 2차선 거리가 놓여있었다. 성민형

 

은 차에 시동을 다 걸었는지, 핸드브레이크를 풀며 차에 기아를 넣

 

었다.

 

 

’ 그럼 .. 간다..’

 

 

차는 가볍게 떨린후, 앞으로 조금씩 조금씩 전진해 나가기 시작했

 

다. 다행히 오늘의 사태 때문에 그런지 , 학교 앞 잔디밭 도로는

 

차가 없이 한산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우리를 태운 차는 주차

 

장을 빠져나와, 잔디밭 가운데에 난 도로를 따라서 정문이 있는 쪽

 

으로 천천히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와 함께, 멀리서 보이던

 

학우들의 뒷모습과 깡패들의 발악하는 모습이 시야에서 점점 커

 

지며, 그들간의 몸싸움 소리 역시 귓가에 더 크게 울려오기 시작했

 

다. 우린 최대한 몸을 낮추고, 운전석 뒷자리의 조그만 틈새를 통

 

해서 교문쪽 상황을 계속 지켜보았다.

 

 

’끼..끽..’

 

 

얼마쯤 앞으로 나왔을까... 교문과의 거리가 한 30미터쯤 남아 있는

 

지점에서, 성민형은 차를 길 옆쪽으로 부쳐 세웠다.

 

 

 

 

’ 안 비켜 이 xx들아 너희들 다 죽여버리는 수가 있어 이 씹새

 

끼들~!!!’

 

’ 너희들이 뭔데 우리학교에 들어온다고 난리야! 너희들이 경찰이

 

야 뭐야!!’

 

 

정문을 막고 있는 학생과, 이를 뚫으려는 폭력배들의 외침이 이젠

 

또렷하게 들려왔다. 이미 우리의 시야는 교문을 막고 있는 학우들

 

과 그를 지켜보는 학생들로 가득차 있었고, 간혹가다 뛰어오르는

 

폭력배들의 얼굴이 알아볼 수 있게 보이기 시작했다. 성민형은 시

 

계와 정문쪽, 그리고 해방조국 학우들이 가다리고 있는 곳을 번갈

 

아 바라보며 말했다.

 

 

’ 앞으로 2분 10초.... ’

 

 

난 내 시계를 바라보았다. 지금 시각이 1시 10분... 앞으로 2분..그

 

러니까 12분이 되면 우리의 인생이 결정되는 건가.. 아.. 2분10초

 

면.. 130초.. 정확히 이야기 하면.. 130초 후면 우리의 인생이 결정

 

되는 거군.. 아차.. 생각을 하다가.. 벌써 10초가 흘러가 버렸다.. 이

 

제 남은시간은 120초.. 난 시계를 바라보던 시선을 그녀의 얼굴로

 

돌렸다. 그녀 역시 긴장된 얼굴로 내 손을 잡으며 내 시계를 바라

 

보고 있었다. 온 몸이 부르르 떨리는 것을 막을 길이 없었다. 난

 

시선을 정문쪽으로 돌리려다가.. 다시 시계를 쳐다보았다.. 100초..

 

아니 100초도 채 남지 않았다.. 이런 제길.. 난 재빨리 시선을 정문

 

쪽으로 돌렸다. 정문 뒤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같은 과 학우들이 차

 

가 나갈 수 있도록 차 앞쪽에 서서 구경을 하고 있던 학우들을 정

 

문 외곽쪽으로 이동시키기 시작했다. 난 다시 시계를 바라보았다..

 

70초.. 69초.. 이젠 겨우 1분의 시간만이 남았다.. 1분만 있으면.. 모

 

든게 결정되다니..신이여 우리를 도우소서.. 난 고개를 들어 나를

 

걱정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사시나무 떨 듯 떨고있는 그녀를 바

 

라보았다. 난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대신 내 팔꿈치를 뒷좌석 위

 

에 받치면서 그녀의 손을 두손에 꽉 쥐고 기도하는 자세를 취했다.

 

 

’ 제....제발.. 하늘....하늘이시여.. 우리..우리를.. 도우소서..’

 

 

난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그녀도 나와 같은 자세를 취하

 

며 두 눈을 꼭 감으면서 꼭 쥔 두 손에 머리를 붙이며 말했다.

 

 

’하늘이시여.. 우리..우리를 도우소서.....’

 

 

내 말을 따라하고 난 후, 그녀는 내 귀에 입을 붙이며 나에게 떨리

 

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오..오빠...’

 

’어..엉?’

 

’사...사랑해요....’

 

 

그녀의 눈이 눈물에 젖으며 반짝이기 시작했다.

 

 

’ 오빠두.... 오빠두 ..너만을 사랑할게... 영..영원..’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계속-

 

너의 결혼식 #19

 

 

 

’빵~~~~~~~~빵~~~~~~~~빵~~~~~~~~~’

 

 

우린 성민형이 울린 크랙숀 소리에 깜짝놀라, 정면을 쳐다보았다.

 

소리때문인지, 정문을 보고있던 학생들의 시선이 모두 우리가 타

 

고있는 차에 몰렸다. 그리고 미리 약속된 신호인 듯, 정문을 막고

 

있던 같은 과 학우들이 차를 힐끔 힐끔 쳐다보면서, 한걸음 한걸음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정문 주변에는 순간 정적이 흘렀다. 영문

 

을 모르는 폭력배들은 욕하는 것을 멈추고 가만히 서 있다가, 이내

 

무언가 수상한 점을 발견했는지 뒤로 물러서는 학생들 사이로 머리

 

를 상하좌우로 움직이며 크랙숀 소리가 났던 방향을 쳐다보기 시작

 

했다. 학우들은 횡으로 서 있던 자신들의 진형을 양 옆에서 가운데

 

있는 쪽으로 접으면서, 우리의 차가 있는 곳을 감싸는 형태로 천천

 

히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밀려오는 긴장감... 비록 두려움에 온

 

몸이 떨렸지만 난 상황을 지켜보기 위해서 차창을 통해 앞을 곧장

 

바라보았다. 학우들이 얼마쯤 밀려났을까.. 우리가 나갈길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우리 앞을 막고 있던 학우들이 비껴나자, 우리는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우리의 차를 지켜보며 서 있는 폭력배들을

 

또렷히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이제야 모든 상황이 이해가 간다는

 

얼굴을 하며 ,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우리가 탄 차를 바라보며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걸어나오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이 숨소리를

 

멈춘 듯 했다.. 너무 조용했다.. 오직 그들의 발자국 소리만이 내

 

귀에 또렷하게 들릴 뿐이었다.

 

 

’저벅.....저벅...저벅..’

 

 

 

너의 결혼식 #20

 

 

 

 

그런데.. 어.. 어.. 왜 왜그래?? 왜 뒤쪽을 쳐다보는거야?? 뒤쪽에

 

서 있던 사수대 학우들이 앞쪽에 있는 학우들의 어깨를 손으로 흔들

 

며 다급히 앞과 뒤를 번갈아 보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순간...

 

 

’ 끼이이이익...........’

 

 

두 곳에서 동시에 급브레이크를 밟는 소리가 들렸다. 한곳은 아직

 

채 교문을 빠져 나가지 못한 우리 차에서 . 그리고 나머지 한 곳

 

은.. 오른쪽에서 갑자기 질주해 들어와 건달들과 싸우고 있는 학우

 

들을 뒤쪽에서 그대로 밀어버리면서 차 앞머리를 우리쪽으로 돌리며

 

차를 급정차시킨 검정색 긴 새단에서 였다. 앞만 보며 뒤를 보지

 

못했던 약 10명의 학우들이 그 차 한 대에 받쳐 그대로 왼쪽으로 튕

 

겨 날아가 버렸다. 순간.. 너무 짧은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우

 

리셋은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굳어버린채 앞만 바라보았다. 그 새단

 

이 학생들을 치어버린 바로 직후, 봉고차 2대가 학우들을 향해 아까

 

와 같이 오른쪽에서부터 돌진해 들어왔다. 새단의 공격에 당황해서 그

 

자리에 굳어버린 학우들중 대다수가, 돌진해 들어오는 봉고에 치어

 

다시 왼쪽으로 튕겨나갔다. 정문 앞은 학우들의 비명 소리로 가득했

 

다. 아차.. 아차..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기억속에서 잠깐동안 지워

 

졌던 인물이 있다.. 바로 삼촌 깡패.. 삼촌 깡패를 까맣게 잊고 있었

 

다.. 설마.. 그놈이..설마..

 

 

내 예상은 적중했다. 새단 뒷좌석의 문이 열리면서, 그녀의 삼촌이

 

걸어나왔다. 그를 본 한 학우가 쇠파이프를 휘둘러 그의 머리를 치

 

려고 하자 , 그는 몸을 재빨리 밑으로 숙여 그 학우의 공격을 피

 

한후 그대로 주먹으로 그 학우의 얼굴을 쳤다.. 아니 쳤다는 표현보

 

다 뭉갰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맞자 마자 그 학우의 코와 입

 

에서 피가 튀었으므로..... 그는 그리고 나서 재빠르게 그 학우의 쇠

 

파이를 뺏어 들어니, 새단 앞쪽에서 그를 향해 달려오는 해방조국

 

학우 한명을 옆 날라차기로 얼굴을 후려쳤다. 그리고 그대로 다시

 

뛰어올라 차 앞쪽을 밟고 위로 뛰더니 그 뒤에 서 있는 학우 두 명의

 

머리를 파이프로 돌려치며 한번에 박살냈다. 학우들은 한방씩 맞자

 

끈이 잘려버린 꼭두각시 마냥 그 자리에서 픽픽 쓰러졌다. 이미 절반

 

이상이 차에 치어 쓰러져 버렸고, 또 이렇게 네 명이 한 방에 다 쓰러

 

져 버리자, 승리감에 고취되어 있던 해방조국 학우들은 어쩔줄을 몰라

 

하며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그녀의 삼촌은 정문쪽으로 달려오면서 다

 

시 학우 한명을 쇠파이프로 정면에서 찍어버리더니, 우리가 있는 쪽

 

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차를 타고 있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난

 

그때.. 사람이 정말로 무섭게 되면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다는 옛말

 

이.. 틀리지 않았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칼만 내 옆에 있었

 

어도, 아마 칼로 내 목을 찔렀을 것이다. 난 그때 순수한 공포가 무

 

엇인지를 온 몸으로 느끼게 되었다..난 이빨까지 달달 떨면서, 나를

 

향해 예전처럼 한걸음 한걸음 걸어오는 삼촌.. 아니 저승사자를 그

 

저 지켜보고만 있었다. 조금씩 조금씩.. 죽음이 내 곁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끼리리리리.......’

 

 

조금씩 가까워지던 저승사자가 다시 나에게서 빠르게 멀어졌다.. 성

 

민형이 차를 후진시킨 것이었다. 아.. 뒷문이 있었지.. 그런데 뒷문

 

은 아까..

 

 

 

 

 

’끼이이익......’

 

 

한 50미터쯤 갔을까.. 성민형은 다시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놀란눈

 

으로 뒤를 쳐다보니, 언덕쪽에서 손에 각목을 든 건달 열몇명이

 

우리가 있는 쪽으로 뛰어내려오고 있었다.

 

 

’ 제길...제길..제길~!!!’

 

 

성민형은 핸들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 절망에 찬 목소리로 부르짖

 

었다.. 그렇게 차 속에는 잠시 고요가 흘렀다. 그러나 형은 곧 결심

 

을 했는지, 다시 정면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꼭잡아라...’

 

 

차로 뚫고 나갈 생각이었다. 나는 성미의 몸을 내 몸으로 감싸면서

 

차 바닥쪽으로 한껏 몸을 숙였다. 이제..이제..어떻게 될까.. 차는 다

 

시 아까처럼 굉음을 내면 제자리에서 잠깐 헛바퀴를 돈 후 전 속력

 

을 다해서 교문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난 운전석 사이로 비좁

 

게 보이는 앞을 쳐다보았다. 저승사자.. 저승사자가.. 먼 발치에 멈

 

춰서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 이 xx..치어버리겠어~!!!!’

 

 

성민형은 욕을 부르짖으며, 저승사자가 버티고 있는 정문 중앙쪽

 

을 향해서 차를 돌진시켜 갔다. 저승사자가 눈 앞으로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난 20미터 정도 남겨둔 시점에서 고개를 숙이며 눈을

 

감았다. 차는 빠른 속도로 앞으로 진행해 나간다.. 그녀는 내 아래

 

에서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다. 아..하늘이여...그런데 그때였다.

 

 

 

’텅~~~~~~’

 

 

’아악~~~~~~~~~~’

 

 

차 앞에 뭔가 둔탁한 것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는 가 싶더니, 성

 

민형의 비명과 함께 차가 오른쪽 방향으로 갑자기 쏠리기 시작했다.

 

그녀를 감싸고 있던 나의 몸이 왼쪽으로 크게 쏠리는 가 싶더니,

 

잠시 후 큰 괴성과 함께 차는 어딘가를 들어받으며 멈춰섰다. 내

 

머리는 그대로 앞좌석 뒤에 부딪치면서, 난 정신을 잃었다.

 

 

 

혼미한 정신 사이로, 누군가가 차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린다. 내 머

 

리카락을 잡고 누군가 나를 차 밖으로 끌어낸다. 누구지.. 누굴까..

 

그는 나에게 확인이라도 시켜주듯, 내 머리카락을 잡고 내 머리를 위

 

로 치켜들어 내 얼굴을 바라본다. 희 하게 그의 얼굴이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그녀의 삼촌이다.. 괜한 짓을 했다는 후회가

 

내 온 몸을 감싸왔다.. 그런데 그녀.. 그녀는 지금 어떻게 됐나.. 난

 

고개를 돌려 그녀 있는쪽을 바라보려 했다.

 

 

’퍽......’

 

 

.. 잠시 눈 앞이 반짝이더니, 코가 찡하게 아파오면서 코가 막히는

 

듯 하며 코피가 뿜어져 나온다. 하지만 이번에는 물러설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난 정신을 차리고자 머리를 흔들면서 내 머리를 잡고

 

있는 그녀 삼촌의 손을 잡았다.

 

 

’퍽...’

 

 

명치를 맞았나.. 숨을.. 숨을 쉴수가 없다.. 그의 손이 나의 머리를

 

놓자.. 난 무릎으로 풀썩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이제 끝이구나..

 

몸이 앞으로 쓰러지며 땅이 내 눈쪽으로 돌진해 온다. 아..그녀..그

 

녀는.. 난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계속-

 

 

휘휴 힘들다~~~

원래 오늘 오전에 올릴려구 했었는데 할일이 갑자기 많아져서 이제야 올립니다.

일이 끝난건 아니지만 약간의 짬을 내서...TT 계속 시간이 없을것두 같아서 오늘 아예 다 올릴까 생각중임다...

근데 잼있긴 잼있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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