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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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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철 [saintleo] 쪽지 캡슐

2003-04-19 ㅣ No.2354

앤드류 마리아

 

한 유대인 가게에 굽이 달린 큰 잔이며 굽이 높은 유리잔 들이 진열장 안에 하나 가득 전시되어 있었다. 그 한쪽, 큰 황금 잔 곁에 잘 빠진 나무잔이 하나 놓여 있었다.

 

큰 황금잔이 나무잔을 보고 비웃었다.

 

"넌 얼마나 하찮은지 모르지. 너 같은 잔으론 거지라도 술을 마시지 않을 거야!"

 

하지만 나무잔은 묵묵 부답이었다.

 

바로 그때 손님 둘이 가게에 들어왔다. 한 사람은 부유한 로마인, 한 사람은 가난한 어부였다. 부자는 커다란 황금잔을 샀고, 어부는 나무잔을 샀다.

 

나무잔은 커다란 이층 방에 옮겨져 식탁 위에 놓였다. 그는 턱수염을 기른 남자의 따뜻한 손길이 자신을 감싸는 것을 느꼈다. 남자는 그에게 포도주를 따르고는 이런 기이한 말을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나의 피다. 나를 기념하여 이것을 마셔라."

 

그렇게 해서 나무잔은 그 남자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고 그는 눈물을 흘렸다.

 

그는 지금 그리스도의 보혈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 날, 황금잔은 빌라도의 총독 관저로 옮겨졌다. 그는 재력가의 재산이 된 게 자랑스러웠다. 나무잔과는 달리 자신은 가치 있고, 가난한 어부의 술잔 노릇보다는 좀더 근사한 사명을 띠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는 흑인 노예의 손길을 느끼며 빌라도 앞에 놓여졌다. 총독의 두 손이 그의 위에 놓이더니 물이 부어졌다. 빌라도의 손 씻을 물이 그 큰 잔에 부어진 것이다.

 

빌라도는 예수 그리스도께 십자가형을 언도한 뒤 군중들을 향하여 소리쳤다.

 

"나는 이 자의 죄로부터 손을 씻었다!"

 

이 말을 들은 큰 황금잔은 몹시 기뻐 소리쳤다.

 

"이건 특전이다, 내가 이분의 손 씻은 물을 담고 있다니!"

 

큰 황금잔은 모르고 있었지만 그 물에는 불의와 비겁과 오만의 얼룩들이 녹아 있었다. 그것은 영원히 기억될 범죄의 물이었던 것이다.

 

 

 

인생의 가치는 우리가 누구인가에 달려 있지 않고,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사느냐에 달려 있다.

 

『지혜의 발자취』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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