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대림 제4주일(다해) 루카 1,39-45; ’21/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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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1-12-13 ㅣ No.4874

대림 제4주일(다해) 루카 1,39-45; ’21/12/19

 

 

 

  

 

 

 

살다가 어려움이 닥치면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나 봅니다.

하느님께서는 왜 나를 커다란 나라 미국의 부잣집에서 태어나게 하지 않으시고, 아시아의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나도록 하셨을까?’

하느님께서는 왜 나를 잘 생기고 힘센 사람으로 태어나도록 하지 않으시고, 이렇게 작고 못생기게 만들어 놓으셨을까?’

 

창세기에 요셉이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그는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열한 번째로 태어나 다른 형제들보다 좀 특출났고, 아버지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요셉이 특출 난 아이로 태어난 것은 요셉의 선택이나 잘못이 아니고, 또 야곱의 총애를 받는 것도 요셉의 선택이나 잘못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다른 형제들의 눈에는 요셉이 그야말로 눈엣가시였습니다. 그래서 형제들은 시기와 질투에 눈이 멀어 요셉을 이집트의 노예로 팔아버립니다. 이집트에 팔려 가서 갖은 고생을 다 하던 요셉은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이집트의 국무총리가 되어 나라를 잘 다스립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스라엘에 기근이 들어, 이집트로 먹을 것을 구하러 옵니다. 요셉은 자신에게 와서 머리를 조아리며 먹을 것을 팔아달라고 하는 형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어릴 적 꿈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면서도, ‘원수는 왜 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하면서 복수의 칼을 갈지 않고, 형들에게 말합니다. “내가 형님들의 아우 요셉입니다. 형님들이 이집트로 팔아넘긴 그 아우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저를 이곳으로 팔아넘겼다고 해서 괴로워하지도, 자신에게 화를 내지도 마십시오. 우리 목숨을 살리시려고 하느님께서는 나를 여러분보다 앞서 보내신 것입니다.”(창세 45,4-5)

 

요셉은 비록 겉으로는 아버지의 편애와 형제들의 질투와 시샘으로 자신이 이집트로 팔려 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 사실을 인간의 눈으로만 보지 않고 하느님의 눈으로 재해석하여 바라봅니다. 그래서 주 하느님께서 나중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근에 빠져서 고생할 줄 알고 미리 형제들과의 시샘을 통해 자신을 미리 이집트로 보내어 이스라엘이 기근에 빠졌을 때 도와주라고 안배하신 것이라고 받아들입니다. 요셉은 자신의 현실을 자기 개인의 역사로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주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자기 민족 공동체에 대한 하느님의 안배로 해석하고 행동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엘리사벳이라는 여인이 나옵니다. 엘리사벳은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석녀라는 판정을 받은 여인입니다. 그런데 남편 즈카르야가 사제로서 하느님의 성전에 예를 올리러 들어갔다가, 신비스러운 체험을 하였고, 그 후 자신의 몸에 태기가 생겼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남편 즈카르야에게서 충분한 설명을 듣기는 하였지만,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을 겪으면서 자신에 대한 하느님의 개입을 명확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비록 엘리사벳의 남편 즈카르야가 처음에 천사를 통해 들려온 하느님의 뜻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여 벙어리고 되었고, 나중에 아기를 낳은 후에야 천사의 말대로 아기 이름을 요한이라고 지음으로써 비로소 말을 하게 되었지만, 그는 자신의 부부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개입을 자기 개인 가정의 영광으로 돌리지 않고, 자기 민족과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개입성을 깨우칩니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그분께서는 당신 백성을 찾아와 속량하시고 당신 종 다윗 집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힘센 구원자를 일으키셨습니다.”(루카 1,68-69) 더군다나 자기 아기의 역할을 세상을 구원하실 구세주의 길을 준비하는 자로서 밝히고, 이러한 새로운 구원의 길을 여시는 주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아기야, 너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예언자라 불리고 주님을 앞서 가 그분의 길을 준비하리니 죄를 용서받아 구원됨을 주님의 백성에게 깨우쳐 주려는 것이다. 우리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시어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76-79)

 

그러던 차에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합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에게 여느 여인이라면 , 너 솔직히 말해, 누구 아이야?”라는 질문이라도 할 법한데 그러지 않습니다. 자신의 몸에 생긴 태기를 통해 하느님의 섭리를 경험하고 있는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바라보면서 성령의 역사하심을 깨닫게 되고, 그런 성령의 역사하심을 믿고 순응한 마리아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루카 1,42) 성령의 임하심을 느끼고 있는 엘리사벳은 마리아의 태중에 있는 아기가 구세주라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43) 아울러 엘리사벳은 마리아의 아기를 맞이하는 자신의 아기가 뱃속에서 반응을 일으키는 것도 신기하게 밝힙니다.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44) 그러면서 엘리사벳은 마리아가 주 하느님의 섭리와 안배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인류 구원사업에 동의하고 받아들였다는 사실 때문에 마리아에게 감탄과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45)

 

엘리사벳에게 찬사를 받은 마리아도 즈카르야와 엘리사벳 부부와 같이 자신에게 일어난 하느님의 개입을 자기 개인의 영광으로 돌리지 않고, 자기 민족과 인류에 대한 하느님 구원사업의 시작임을 알아차리고 찬미를 올려드립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46-50)

 

이상의 요셉과 엘리사벳과 마리아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사건과 상황을 접하고 겪으면서, 피하고만 싶었는데, 주 하느님께서는 왜 내가 그 사건과 상황을 겪도록 하셨는가?

내 개인적인 아픈 추억을 통해 주 하느님께서는 나와 나와 관련된 사람들에게 어떠한 일을 이루려고 하셨는가?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의 과거들이 오늘 나와 우리를 어디로 향하도록 하는가?

아울러 이제 살 만큼 다 살았다고 여기고, 더 이상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싶은 우리 상황에서, 과연 주 하느님께서는 무엇을 이루시려고 나를 선택하시고 이처럼 섭리하시며 안배하고 계시는가?

주님의 선택을 받아 이렇게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나는 지금 행복한가?

나를 섭리와 안배 속에서 이끌고 계신 주 하느님 대전에 서서, 지난 내 생애의 순간순간을 부끄럽거나 감추거나 회피하려고 하지 않고, 주님께 감사히 봉헌하며 찬미와 영광을 돌려드리고 있는가?

 

다가오는 성탄 축제를 맞으며,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꿈꾸며 우리를 통해 드러난 주 하느님의 뜻을 다시 한번 되새겨 봅시다. 나의 생애를 통해 신비로이 섭리하시고 안배하시며 이루어 나가시려는 주님의 뜻이 무엇이며, 나는 지금 주님께서 이끄시는 여정의 어느 자리에 와 있는지 살피고, 주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나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성찰하면서, 다가오는 예수 아기의 탄생을 기쁘고 감사히 맞이합시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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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4주일 꽃꽂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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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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