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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삐, 스승, 선생, 아버지 등으로 불렸던 유다교 지도자들의 행실에 대한 꾸짖음 #<가연중31일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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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8 ㅣ No.1531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질문 1:

마태오복음 23장 9절 말씀해설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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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부의 말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글들은 어떤 특정인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하여 마련된 글들이 결코 아니기에, 다음의 당부의 말씀을 드립니다:

(1) 지금까지 필자의 글들을 읽고서 필자에 대한 "분노(anger)" 혹은 "질투(envy)"를 가지게 된 분들은, 혹시라도 그분들께 "걸림돌(stumbling block)"일 수도 있는, 많이 부족한 죄인의 글들을 더 이상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2) 그리고 위의 제(1)항의 당부의 말씀을 읽고도 굳이 이 화면의 아래로 스스로 이동하여, 많이 부족한 죄인의 아래의 본글을 읽는 분들은, 필자에 대한 "분노(anger)"와 "질투(envy)" 둘 다를 가지지 않을 것임에 동의함을 필자와 다른 분들께 이미 밝힌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3) 그리 길지 않은 인생 여정에 있어, 누구에게나, 결국에, "유유상종[類類相從, 같은 무리끼리 서로 사귐 (출처: 표준국어대사전)]"이 유의미할 것이라는 생각에 드리는 당부의 말씀입니다.

 

(4) 아래의 사진은 제1530번 글을 공개한지 30분도 경과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에, 동일한 ip(인터넷 접속 주소)를 사용하면서, 한 명이 한 개 이상의 id를 사용하여, 반대적어도 두 번하였음을 보여준다는 생각입니다. 조회 2건반대 3건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누군가 한 명이 동일한 ip(인터넷 접속 주소)로 접속하게 되는 단체 혹은 자신의 컴퓨터에서 한 개 이상의 자신의 가족들 혹은 단체 구성원들의 id을 사용하여 고의적으로 이런 행동을 하였다면, 악의적 의도를 지닌 자가 아니라고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서로의 얼굴을 대면하지 않는 인터넷 게시글 대화의 환경이므로 다른 이들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전혀 알 수가 없을 것이라는 대단히 잘못된 판단과 무지 때문에 여전히 어둠 속에 갇혀서 위와 같은 추한 행동을 하는, 악의적인 의도를 가진 자 때문에라도, "유유상종[類類相從, 같은 무리끼리 서로 사귐 (출처: 표준국어대사전)]"은 유의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꼬리가 길면 밟힌다(표준국어 대사전: 나쁜 일을 아무리 남모르게 한다고 해도 오래 두고 여러 번 계속하면 결국에는 들키고 만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는 속담이 빈말이 아니라는 생각을 또한 하게 됩니다.

 























 

답변:

+ 찬미 예수님!

 

1. 들어가면서

1-1. 우선적으로, 질문을 주신 마태오 복음서 23,9는,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가해 연중 제31주일 복음 말씀(마태오 23,1-12)에 포함된 것으로 파악이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신 질문은, 최소한도로, 마태오 복음서 23,1-12 문맥 안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1-2. 다음은 "새 번역 성경"의 마태오 복음서 23,1-12 전문입니다:

 

출처: http://bible.cbck.or.kr/bible_read.asp?p_code=&GS=S&Bible=47&Jang=23&x=21&y=11

(발췌 시작)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꾸짖으시다(마르 12,38-40; 루카 11,39-52; 20,45-47)

23 1)

1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2)
3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4 또 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짐을3)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
5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4)
6 잔칫집에서는 윗자리를5),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7 장터에서6) 인사받기를, 사람들에게 스승이라고7) 불리기를 좋아한다.
8 그러나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8)
9 또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9)
10 그리고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11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12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10)

 

1-3. 예수님께서 마태오 복음서 23,1-12에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 등의 유다교의 종교적 지도자/인도자(guides)들을 꾸짖고 계심은, 다음에 발췌한, 이어지는 "새 번역 성경"의 마태오 복음서 23,13-36 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발췌 시작)

13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사람들 앞에서 하늘 나라의 문을 잠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자기들도 들어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들어가려는 이들마저 들어가게 놓아두지 않는다.
14 .
15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개종자 한 사람을 얻으려고 바다와 뭍을 돌아다니다가 한 사람이 생기면, 너희보다 갑절이나 못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16 불행하여라, 너희 눈먼 인도자들아! ‘성전을 두고 한 맹세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성전의 금을 두고 한 맹세는 지켜야 한다.’고 너희는 말한다.
17 어리석고 눈먼 자들아! 무엇이 더 중요하냐? 금이냐, 아니면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18 너희는 또 ‘제단을 두고 한 맹세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제단 위에 놓인 예물을 두고 한 맹세는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19 눈먼 자들아! 무엇이 더 중요하냐? 예물이냐, 아니면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20 사실 제단을 두고 맹세하는 이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고,
21 성전을 두고 맹세하는 이는 성전과 그 안에 사시는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며,
22 하늘을 두고 맹세하는 이는 하느님의 옥좌와 그 위에 앉아 계신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다.
23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시라와 소회향은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들은 무시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십일조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행해야만 했다.
24 눈먼 인도자들아! 너희는 작은 벌레들은 걸러 내면서 낙타는 그냥 삼키는 자들이다.
25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그 안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26 눈먼 바리사이야! 먼저 잔 속을 깨끗이 하여라. 그러면 겉도 깨끗해질 것이다.
27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죽은 이들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 같기 때문이다.
28 이처럼 너희도 겉은 다른 사람들에게 의인으로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하다.
29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묘를 꾸미면서,
30 ‘우리가 조상들 시대에 살았더라면 예언자들을 죽이는 일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고 말하기 때문이다.
31 그렇게 하여 너희는 예언자들을 살해한 자들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언한다.
32 그러니 너희 조상들이 시작한 짓을 마저 하여라.
33 너희 뱀들아,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지옥형 판결을 어떻게 피하려느냐?
34 그러므로 이제 내가 예언자들과 현인들과 율법 학자들을 너희에게 보낸다. 그러면 너희는 그들을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또 이 고을 저 고을 쫓아다니며 박해할 것이다.
35 그리하여 의인 아벨의 피부터, 너희가 성소와 제단 사이에서 살해한 베레크야의 아들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땅에 쏟아진 무죄한 피의 값이 모두 너희에게 돌아갈 것이다.
36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모든 것이 이 세대에 닥칠 것이다.”

(이상, 발췌 끝)

 

2.

2-1.  질문 2: 위의 발췌문에서, 차용(借用) 번역 용어들인 "스승(NAB에서 "Rabbi" 로 번역됨)" "선생(NAB에서 "Master" 로 번역됨)" 가 나타내는 의미들의 차이점이 무엇인지요?

 

게시자 주 2-1: 위에 발췌된 본문에서 서로 비교되고 있는 집합들은 {모세, 율법 학자, 바리사이들}{스승, 아버지, 선생} 이므로, 원 질문인 질문 1 그 자체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자 한다면,  우선적으로 차용(借用) 번역 용어들인 "스승(Rabbi)" "선생(Master)" 가 각각 나타내는 자구적 의미(literal senses) 사이의 차이점을 제대로 이해하여야 할 것입니다.

 

2-2. (질문 2에 대한 답변 시작) 다음은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가, 여기를 클릭하면 안내의 글을 읽을 수 있듯이 프랑스어본 공동번역 성경(TOP)의 주석을 우리말로 번역하여, 대단히 최근인 2010년에 발행한, "주석 성경"에 주어진 마태오 복음서 23,1-12 에 대한 주석들 전문인데, 위의 질문 2에 대한 답변이 바로 아래의 제(7)항제(10)항에 주어져 있다는 생각입니다. 예수님께서 일종의 과장법을 사용하셨다고 합니다: 

 

(발췌 시작)

(1) 마태오 복음서 저자는 이 23장에서, 당시 자기가 속한 교회(*)가 바리사이들에게 소속된 유다교 회당과 논쟁을 벌이는 데에 유용한 예수님의 말씀들을 한데 모아 놓았다. 이 단락은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 대한 서술(1-12절); 이들에 대한 한탄(13-31절); 두 가지 질책과(32-33절) 예수님의 상대자들에게 닥칠 춘엄한 심판의 예고(34-36절); 예루살렘에 내리는 꾸지람이다(37-3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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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당시에 복음사가 마태오가 속하였던 교회가 스테파노의 순교(기원후 37년경) 전후의 예루살렘 교회였음은 다음의 글들로부터 알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50.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33.htm <----- 꼭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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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모세의 자리에 않다' 는 이스라엘 민족의 위대한 스승이며 입법자인 모세의 합법적인 후계자요 [모세 율법의] 해설가임을 뜻한다. 율법 학자들은 대부분 바리사이들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권위를 인정하시는 것이다.

 

(3) 일부 수사본들에는 "힘겨운" 이라는 말이 들어 있지 않아, 이를 괄호 속에 넣기도 한다. "짐" 은 법 규정 전체를 가리키는 유다교의 표현 방식이다. 율법 학자들이 바로 이 규정들의 수호자들이다(11,30 참조).

 

(4) "성구갑(聖句匣)"은 율법의 핵심이 되는 말씀을(탈출 13,1-10; 13,11-16; 신명 6,4-9; 11,13-21) 적은 양피지를 넣은 조그마한 가죽 상자로, 유다인들은 늘 또는 기도할 때에 이것을 미아와 왼쪽 위팔에 매달았다(신명 6,8). "옷자락 술" 에 관해서는 9,20 각주 참조. 모든 유다인이 이 술을 달았지만, 바리사이들은 편헙한 신앙심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기다랗게 만들어 달았다.

 

(5) "윗자리" 는 잔칫집 주인의 바로 오늘쪽 자리로서, 제일 좋은 음식으로 가장 먼저 대접받는다.

 

(6) 옛날 이스라엘이나 유다 땅에서 "장터" 는 고을이나 마을의 모든 공적인 생활이 전개되는 곳이었다.

 

(7) "스승" 에 해당하는 그리스 말은 히브리/아람 말 라삐(랍비) [게시자 주: NAB에서 "Rabbi" 로 번역됨]를 그대로 음역한 것이다.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이 라삐 호칭을 예수님께서 당신의 적대자들과 관련하여 두 번 (여기와 다음 절), 예수님을 배신하는 유다가 그분을 부를 때에 두 번 사용한다(26,25.49).

 

(8) 이 절의 말씀은 제자들에게 스승 또는 교리 교사의 직무 수행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와 하느님께만 속한 권위를 자기 것인 양 행사하지 말라는 것이다.

 

게시자 주 (8):

(8-1) 다음은,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가해 연중 제17주일 복음 말씀(마태오 13,44-52)제52절에서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율법 학자" 라는 단어에 대한, 가톨릭 보편 교회의 교도권에 매우 충실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에 주어진 해설 전문이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a_ot_17.htm

(발췌 시작)

52. "Scribe": among the Jews a scribe was a religious teacher, a specialist in sacred Scripture and its application to life. Our Lord here uses this word to refer to the Apostles, who will have the role of teachers in His Church. Thus, the Apostles and their successors, the Bishops, are the "Ecclesia docens", the teaching Church; they have the authority and the mission to teach. The Pope and the Bishops exercise this authority directly and are also helped in this by priests. The other members of the Church form the "Ecclesia discens", the learning Church. However, every disciple of Christ, every Christian who has received Christ's teaching, has
a duty to pass this teaching on to others, in language they can understand; therefore, he should make sure he has a good grasp of Christian doctrine. The treasure of Revelation is so rich that it can provide teaching which applies to all times and situations. It is for the word of God to enlighten all ages and situations--not the other way around. Therefore, the Church and its pastors preach, not new things, but a single unchanging truth contained in the treasure of Revelation: for the past two thousand years the Gospel has always been "good news".

 

52. "율법 학자": 유다인들 사이에서 율법 학자는, 성스러운 성경 본문과 삶으로의 이 본문의 적용에 있어 전문가인, 종교에 대하여 가르치는 자(종교적 선생, a religious teacher)였습니다. 우리의 주님께서는 여기서 당신의 교회 안에서 선생/교사(teachers in His Church)들의 역할을 장차 할, 사도(the Apostles)들에 대하여 언급하시고자 바로 이 단어를 사용하십니다. 따라서, 사도들과 그들의 계승자들인 주교들은 "Ecclesia docens", 가르치는 교회(the teaching Church)이며, 그리고 그들은 가르치는 권위와 임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교황과 주교들은 이 권위를 직접적으로 행사하며 그리고 이러한 행사에 있어 사제들에 의하여 도움을 또한 받고 있습니다. 교회의 또다른 구성원들은 "Ecclesia discens", 배우는 교회(the learning Church)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제자들 모두, 즉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이미 받아들인 그리스도 사람 각각은, 자신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이러한 가르침을 다른 이들에게 전달해주어야 하는 의무를 지니고 있으며,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교 교리를 잘 이해하고 있는지 확실히 하여야만 합니다. 거룩한 계시(Revelation)라는 보물은 너무도 풍성하여 그 결과 이 보물은 모든 시기들과 여건들에 적용되는 가르침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모든 시대들과 여건들을 교화하는(enlighten) 것은 하느님의 말씀(the word of God, 로고스, 즉 예수 그리스도)(*)이 하시는 것이지, 거꾸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그 사목자들은, 새로운 것들이 아니라, 거룩한 계시라는 보물 안에 포함되어 있는 단 하나의 불변의 진리를 설교합니다: 지난 2,000년 동안 이 복음(the Gospel, 즉 그리스도의 복음)(**)은 항상 "좋은 소식(good news)"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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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하느님의 말씀"이 곧 강생하신 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당신 자신이심에 
대하여서는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을 필독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43.htm 

(**) 번역자 주: "이 복음(the Gospel)"은 그리스도의 복음, 즉 "하늘 나라의 도래(the 
coming of the Kingdom of Heaven)"를 말한다. 이에 대한 더 자세한 글들은 다음의 
주소에 있으며, 필독을 권고한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KH_JohnPaul_II.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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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끝)

 

(8-2) 위에 발췌된 "새 번역 성경"의 마태오 복음서 23,34 뿐만이 아니라, 다음에 발췌된 사도행전 13,1; 1코린토 12,28; 에페소 4,11; 1티모테오 2,7 2티모테오 1,11를 꼭 여러 번 읽도록 하라:

 

(발췌 시작)

(마태오 23,34) 그러므로 이제 내가 예언자들과 현인들과 율법 학자들을 너희에게 보낸다. 그러면 너희는 그들을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또 이 고을 저 고을 쫓아다니며 박해할 것이다.

 

(사도행전 13,1)  안티오키아 교회에는 예언자들과 교사[주: NAB에서 teachers로 번역됨]이 있었는데, 그들은 바르나바, 니게르라고 하는 시메온, 키레네 사람 루키오스, 헤로데 영주의 어린 시절 친구 마나엔, 그리고 사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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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이 사울(Saul)이방인들의 사도인 성 바오로(St. Paul)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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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코린토 12,28) 하느님께서 교회 안에 세우신 이들은, 첫째가 사도들이고 둘째가 예언자들이며 셋째가 교사[주: NAB에서 teachers로 번역됨]입니다. 그다음은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들, 그다음은 병을 고치는 은사, 도와주는 은사, 지도하는 은사, 여러 가지 신령한 언어를 말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에페소 4:11) 그분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예언자로, 어떤 이들은 복음 선포자로, 어떤 이들은 목자나 교사[주: NAB에서 teacher로 번역됨]로 세워 주셨습니다.

 

(1티모테오 2,7) 나는 이 증거의 선포자와 사도로, 다른 민족들에게 믿음과 진리를 가르치는 교사[주: NAB에서 teacher로 번역됨] 임명을 받았습니다. 나는 진실을 말할 뿐,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2티모테오 1,11) 나는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스승[주: NAB에서 teacher로 번역됨]으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이상, 발췌 끝)

(이상, 게시자 주 (8) 끝).

 

(9) "너희에게는 하늘의 아버지 한 분뿐이시다" 로 옮길 수도 있다.

 

(10) 직역: "...... 높이는 이는 낮추어지고 ...... 난추는 이는 높여질 것이다."  8절"스승(Rabbi)", 9절"아버지", 10절"선생(게시자 주: NAB에서 "Master" 로 번역됨)"모두 명예 칭호로서, 유다교의 율법 학자들을 이렇게 부를 수 있었다. 그 가운데에서 "스승(Rabbi)" "선생(Master)" 은 현재 (공적으로나 개인적으로) 활동 중인 교사, "아버지" 는 과거에 특히 존경받던 스승(Rabbi)을 가리키는 것으로 구분 지울 수 있다.(*) 그리스도(10절) 곧 메시아의 공동체에서는, 하느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중개인들을 통하여서가 아니라 곧바로 그 원천과 접촉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일종의 과장법을 이용하시면서, 이 공동체의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형제적 겸손이 바탕을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하시는 것이다.

(이상,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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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따라서, 마태오 복음서 23,8-10에서 "스승", "아버지", 그리고 "선생"은 당시의 유다교 율법 학자(scribes)들이 통상적으로 불리기 원하였던 "명예 칭호들" 이었는데, 장차 예수님에 의하여 파견될(마태오 23,34), 예수님의 새 계명을 해석하는 데에 종사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일시적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달하고 가르치는 일을 수행하는 자들로서 " 교사", "부(즉, 신품을 받은 아버지)", "부(즉, 교회의 아버지)" 등과 같은 가톨릭 교회 교도권(Magisterium)에 의한 교계 제도적인(**) 구체적인 한정/제한 조치없이, 과거의 유다교에서처럼 통상적으로 이들 세 개의 "명예 칭호들" 중의 하나로 통상적으로 불리는 것이,

 

(i)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고유한 권위를 훔치는 행위이고,

(ii) 그리하여 그 결과, 그러한 "명예 칭호들"을 듣는 자들을, 예수님의 제자들이라면 누구나 필수적으로 겸비하여야 하는 윤리덕인 겸손(humility)으로부터 벗어나 자칫 "칠죄종"들 중의 하나인 교만/자만(pride)에 빠지게 할 수도 있기에,

 

유일한 스승(Rabbi)이시고 선생(Master)이신 예수님께서 당신의 제자들이 유다교에서처럼 통상적으로 "그렇게" 불리는 것을, 마태오 복음서 23,1-36에서 당신의 구체적인 가르침으로써, 금지시키셨다는 생각입니다. 지금 말씀드린 바에 대하여서는, 위의 게시자 주 (8) 그리고 그 성경 근거 구절들의 구체적인 제시와 함께 잘 설명하고 있는, "가톨릭 교회의 말씀 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가해-II" (출판사: 가톨릭출판사, 엮은이: 소순태), 연중 제31주일 복음 말씀(마태오 23,1-12)의 해설을 또한 읽도록 하십시오.

 

(**) 게시자 주:

(1) 예를 들어, 다음의, "교회 교역 조직의 창립자이신 예수님 -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 교리 교육 1988.06.22." 제목의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교리 교육용 일반 알현 강론 말씀을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86.htm

 

[내용 추가 일자: 2014년 3월 30일]

(2) 다음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에 수록된 가르침들의 연장으로서, 가톨릭 교회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해 온 칭호(titles)들인 "father", "teacher" 등의 사용 승인/추인/재가와 관련하여 언급하고 있는, 특히 라틴어본 Denzinger(**-1) 의 해당 항들을 그 구체적인 근거들로서 또한 밝히고 있는,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교리 교육용 일반 알현 강론 말씀들이다:

http://www.vatican.va/holy_father/john_paul_ii/audiences/alpha/data/aud19930224en.html

http://www.vatican.va/holy_father/john_paul_ii/audiences/alpha/data/aud19930310en.html

http://www.vatican.va/holy_father/john_paul_ii/audiences/alpha/data/aud19930317en.html

http://www.vatican.va/holy_father/john_paul_ii/audiences/alpha/data/aud19930224e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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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게시자 주: 라틴어본 Denzinger의 항들의 영어 번역문(즉, 영어본 Denzinger의 대응하는 항들)을 찾아 읽는 방법은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의 부록에 주어져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956.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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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내용 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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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질문 1에 대한 답변 끝). 

 

3. 

3-1. 다음은 200주년 신약성서 마태오 복음서 23,1-12 전문입니다:

 

게시자 주 3-1: 그리고 마태오 복음서 23,1-12에 대한 아래의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서의 주석들은 어떤 분께서 인터넷에 올려 준 것입니다. 그런데 이 주석들이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서의 주석들일 경우에, 이 주석들을 가만히 읽어보면, 다음을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위의 제2항에 발췌된 "주성 성경"의 주석과 정밀하게 비교/검토하면서 읽으실 것을 강력하게 요청드립니다:

 

(i) 아래에 발췌된 제8절에 대한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서" 제공의 주석 (*)을 잘 읽어 보면, 마태오 복음서 23,1-12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성경에 기록된 바가, 사실은 예수님의 말씀의 기록이 아니라, 어떤 전승자가 자신 나름대로의 어떤 의도를 기록한 것이라는 주장을 주석자가 버젓이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ii) 다른 한편으로, 예를 들어, 사도행전 3,1; 5,12.20-21.42 등에 기록된 바에서, 초기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기 위하여 모였던 장소가 예루살렘의 성전이었음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기에, 초기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독자적인 교회를 가지지 못하였음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교 교회론이라는 용어 자체를 마태오 복음서 23,8의 주석에서 주석자가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마태오 복음서의 최종 저술 연대가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기원후 70년 이후라고 주석자가 확신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독자들에게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그러나 바로 이 주장을 보통 수준의 가톨릭 신자들에게 주석자가 일방적으로 펼치는 행동은,

 

(ii-1) 최근의 신약의 경전들의 저술 년대에 대한 연구 결과와 

(ii-2) 가톨릭 보편 교회 교도권에서 가르치는 마태오 복음서의 저술 연대와 많이 다르기에,

대단히 곤란하다는 생각입니다. 이 지적에 대하여서는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들을 꼭 읽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50.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33.htm <----- 꼭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770.htm <----- 또한 필독 권고

  

(iii) 제8절에 대한 주석의 앞 부분에서 마태오 복음서가 마태오가 속한 유다계 그리스도 교회에서 저술되었다고 주석함으로써 이 복음서의 독자들이 히브리어 혹은 히브리어의 방언인 아람어를 사용하였을 유다계 그리스도교 신자들이었다고 주석자가 스스로 추정(presumption)하면서도, 그리하여 그 결과 마태오 복음서가 애초에 히브리어 혹은 아람어로 기록되었을 것임을 또한 추정하면서도,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바로 이어지는 아래의 제10절의 주석 (**) 에서 갑자기, 랍비라는 단어가 히브리어이기에, 유다계 그리스도교 교회 내에는 극소수였을 그리스계 그리스도인들이 이 호칭의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제8절의 문장을 제10절에서 그리스어 단어, 카테케테스를 사용하면서, 다시 한 번 더 반복하여 언급하였을 것이라는 또다른 추정을 주석자가 임의적으로 하고 있는데, 그리하여 그 결과 마태오 복음서가 애초에 그리스어로 기록되었을 것임을 이 주석자는 또한 추정하고 있는데, 그러나 동일한 주석자가 이러한 배타적인 두 개의 상반되는 내용의 추정들을 임의적으로 제시하는 행위는, 주석자가 자신이 결론으로 제시하고자 하는 바를 무리하게 정당화하기 위하여 임의적으로 제시하는 행위에 해당하므로논리의 전개에 있어 설득력이 없을뿐만이 아니라 또한 가히 자기 모순적이라(self-contradictory) 아니할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바로 지적에 대하여 독자들께서는, 예를 들어, "200주년신약성서" 마태오의 복음서 23,10에 대한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서" 의 바로 이 주석이, 그 타당성과 설득력에 있어, 위의 제2-2항에 발췌된 "새 번역 성경"의 마태오 복음서 23,8-10에 대한 "주석 성경"의 주석과 얼마만큼 어떻게 다른지, 정밀하게 비교/검토해 보시기 바랍니다.

 

(iv) 그리고 아래의 주석 (***)이 얼마나 무모한 주석인지에 대하여서는 이어지는 제4항에서 별도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이상, 게시자 주 끝)

 

출처: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발췌 시작)

1 그 때에 예수께서는 군중들과 당신 제자들에게 말머리를 돌려 
2 이렇게 말씀하셨다. "율사들과 바리사이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3 그러니 그들이 여러분에게 말하는 것은 모두 행하고 지키시오. 그러나 그들의 행실을 따라 행하지는 마시오. 사실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는 않습니다. 
4 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짐들을 묶어 사람들의 어깨에 메우고 자신은 그것을 나르는 데 손가락도 대려 하지 않습니다. 
5 그들은 모든 일을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합니다. 사실 그들은 성구갑을 넓적하게 하고 옷단의 술을 크게 합니다. 
6 그들은 잔치에서는 윗자리를, 회당에서는 높은 좌석을 차지하는 것을 좋아하며, 
7 또한 장터에서 인사받는 것과 사람들로부터 랍비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8 그러나 여러분은 랍비라고 불려서는 안됩니다. 사실 여러분의 선생은 한 분이요 여러분은 모두 형제들입니다. 

 

-----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서 주석)

마태오가 속한 유다계 그리스도 교회에는 그리스도교계 랍비(율사. 선생)들이 있어 가르치는 일을 맡았다(13,52; 23,34). 마태오 자신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유다교 랍비들마냥 지식을 내세워 특권을 누리고자 했을 것이다. 이에 대한 비판으로 8절에선, 예수 그리스도 홀로 교회의 스승이시요 그리스도인들은 너나 없이 모두 형제라는 교회론을 주장했다(*)(참조: 5,22-24; 7,3-5; 12,50; 18,15-17.21-22).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스승이시요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만년 제자라 해도 좋겠다.

-----


9 또한 여러분은 땅에서 누구를 여러분의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시오. 사실 여러분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분입니다. 

 

-----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서 주석)

자기를 낳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는 것을 금하는 것은 아니다(15,4-6 참조) 마태오가 소속한 유다계 그리스도 교회에선 교직자들을 아버지라고 불렀던 모양인데(****) 이런 존칭을 금한다. 아직 교계제도가 확립되지는 않았지만, 마태오 교회에서 두드러지게 활약한 이들로는 그리스도교 율사들 (13,52; 23,8.10.34), 떠돌이 예언자들(5,12; 7,15-20.21-23; 10,41; 23,34.37; 24,11)을 꼽을 수 있다. 이들 교직자들을 아버지라 부르지 말라는 것이다. 신앙의 차원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한 분이시고, 땅에서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너나 가릴 것 없이 모두 그 아버지의 자녀들이라는 말씀이다.

 

(****) 게시자 주: 바로 이러한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서의 주석자 고유의 의도적 추정이 특히 위의 제2-2항에 발췌된 "주성 성경"의 주석 (10)과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다른지에 대하여 반드시 정밀하게 비교/검토하도록 하라.
-----


10 여러분은 사부라고 불려서도 안됩니다. 여러분의 사부는 오직 한 분,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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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주년 신약성서 주해서 주석)
1) 10절은 그 내용이 8절과 똑같다. 그럼 왜 8절을 다시 한번 반복했나? 8절랍비는 히브리어인지라, 그리스계 그리스도인들은 그 뜻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전승자8절의 히브리어 랍비(선생)를 10절에서 그리스어 카테케테스(사부)로 번역했다. 카테케테스는 그리스어 디다스칼로스(선생)보다 더한 존칭이다.

 

2) 8-10절에서 보다시피 마태오 교회에서는 아버지와 선생 존칭을 금기시했다. 아버지 존칭을 멀리한 흔적이 마르 10,30에도 있다.(*****) 복음의 지침이 이러한데도 우리 교회는 유독 금지된  존칭들을 즐겨 쓴다(敎父. 師父. 神父. 大父. 敎皇聖父. 主敎. 先生修女...). 각성하라. 존칭 좋아하는 그리스도인아!(***)

 

(*****) 게시자 주: 마르코 복음서 10,30 어디에 그러한 흔적이 있다는지, 납득할 수 없는 주장을 주석 중에서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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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여러분 가운데서 가장 큰 사람은 여러분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12 자신을 높이는 사람은 낮추어지고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높여질 것입니다." 

(이상, 발췌 끝).

 

4.

4-1. 바로 위에 (***) 표시된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서 제공의 주석은, 해당 본분에 대한 해석의 단계에서 주석자 스스로 고의적으로 왜곡을 한 후에, 이러한 왜곡을 근거로 하여 "금지된 존칭들" 운운하고 있는데, 이러한 주장은 어불성설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위의 게시자 주 (8)과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을 차분히 여러 번 꼭 읽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21.htm <----- 필독 권고

 

5.

5-1.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서에 주어진 주석들은, 이번의 글에서 구체적인 예로서 함께 고찰하였듯이, 가톨릭 교회 교도권의 전통적인 성경 해석을 존중하지도 않고 또 따르지도 않는 특정 주석자 개인의 견해가 많다는 생각이며(*), 따라서 이 주해서가 보통 수준의 가톨릭 신자들이 신뢰하면서 참고할 수 있는 책자가 결코 아님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가톨릭 보편 교회 교도권의 가르침들과 모순되는 내용들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14년 4월 15일]

-----

(*) 게시자 주: 다음에 있는, (i)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인 하느님의 계시에 관한 교의 헌장 「하느님의 말씀」(Dei Verbum), 제12항에 근거하여 향후 "가톨릭 성경 주석"의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중요한 문헌인, 2008년 10월 14에 개최된 제12차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4차 전체회의(the 14th General Congregation of the Synod of Bishops)에서 주어진, 성서학자이신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연설문의 공식적인(official) 영문본 전문과 (ii) 이 연설문의 우리말 번역문(번역저작권자: 소순태)과, Living Tradition에 게재된, 이 연설문에 대한 John F. McCarthy 몬시뇰님의 상세한 해설을 담은 영문 논문 및 이 논문의 일부에 대한 우리말 번역문(번역저작권자: 소순태), 그리고 (iii) 이들에 대한 번역자 각주들을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38.htm <----- 필독 권고

-----

[이상, 내용 추가 끝]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또한 "주석 성경"이 최근에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에서 발행된 이유들 중의 하나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5-2. 평소 성경 공부시에,

 

(0)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 해당 구절에 대한 가톨릭 보편 교회 교도권의 해석이 주어져 있는지, 우선적으로 찾아서 읽는 습관을 가질 것을 강력하게 권고드립니다그리고, 특히

 

(i) 성경 본문 중의 특정 단어들의 어원에 대한 설명이 잘 되어 있고,

(ii) 필요시 여러 필사본들 사이의 차이점들을 또한 자주 언급하고 있는, 그리고

(iii) "문헌가설""2출전설"을 더 이상 제공 주석들의 근거로 삼지 않는 듯한, 

 

"주석 성경" 에 주어진 주석들을 참고하실 것을 또한 권고드립니다. "주석 성경"에 대한 안내는 다음에 있으니 필독하시기 바랍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01.htm <----- 필독 권고

 

5-3.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발행의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본문은 다음에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cc_kr2011.htm

 

위의 주소를 클릭하면 가지게 되는 화면의 왼쪽에 있는 세로 메뉴판에서 "Search" 기능을 사용하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5-4. 또한 다음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출처 찾아보기 <----- 꼭 클릭하여 살펴보십시오

 

를 사용하면, 위의 제5-2항의 (0)을 손쉽게 실천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게시자 주 5-4:

바로 위의 제5-4항에 안내해 드린 바는 2006년 12월 16일에 처음 마련되었던 다음의 사이트에 있는 정보입니다:

 

http://org.catholic.or.kr/conservatory/frames/mp34todayreading.shtml <--- 클릭하여 살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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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업에 소요된 시간: 약13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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