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성당 장년게시판

내 마음이 네게 가 닿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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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호 [cary] 쪽지 캡슐

2000-05-01 ㅣ No.854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아는 사람은 안다.

우연히 보게 된 낡은 사진첩에서 오랫동안 기억 한켠에 묻어 두었던 이를 발견했을 때의 가슴 떨림을...

 

그날... 부활날...

우린 카타리나 언니가 장만한 만나를 맛나게 먹었고

기타 반주에 맞춰 사랑을 메들리로 노래했다.

우리 사이로 오래된 사진첩이 돌고 있었고.

그때 내 눈을 멎게 한 빛바랜 한 장의 사진... 그 속에서 모이세가 웃고 있었다.

아마 오대산 월정사 앞이었지.

동해안 인구의 작은 공소에 묵고 있던 우린 그날 김밥을 싸들고 나들이를 갔어.

장난기가 발동한 걸까?

돌아오는 길, 느닷없이 고인 계곡물에 뛰어들어 모두의 간담을 써늘하게 한 이는

야고보 형 맞지?

그때 야고보 형의 머리를 움켜쥐어 물속에서 꺼낸 이는 누구였을까?

 

그 수련회에 모이세가 함께 한 거지.

떠나기 얼마 전, 며칠 동안 소식이 없던 그가 우리에게 나타나 마주앙을 사주는데 뭔가 이상한 거야.

앉아 있는 모양새도 그렇고 술도 입에 안 대고.

아무리 떠날 날을 받아 놓았대도 그렇지, 그럴 모이세가 아닌데...

자꾸 채근하는 우리에게, "나 oo수술했어..." 하며 멋쩍게 웃던 모이세.

그 무렵 G(더는 밝히지 못함을 용서하시라. 혼전인 처자라 혼삿길 막힐까 저어하여...)와 예쁜 사랑을 막 시작하던 참이었지.

그때 난 왜 그 사이에 끼어 다녔는지 몰라... 속없이...

우리 빗소리와 함께 듣던 As tears go by, Love is blue는 지금도 가끔 흐르는데...

 

스텔라를 기억하시는지?

발그레한 볼에 이가 보일 듯 말 듯 수줍은 미소, 나직한 말소리.

그대가 잠시 그 시절로 돌아가 오월의 밝은 햇살 속에 라임 빛 면 셔츠와 풍성한 주름이 들어간 잔잔한 꽃무늬 스커트를 입고 서 있는 그녀를 볼 수 있다면,

알퐁스 도데의’별’에 나오는 스텔라 아가씨와 그녀가 무관하지 않음을 담박 눈치채리라.

 

스텔라 몰랐을걸...

엔젤에도 별이 쏟아지는 밤 그녀와 언덕에 나란히 앉을 수만 있다면

그녀가 별을 세다 잠들 수 있게 기꺼이 어깨를 내 주고픈 양치기가 있었음을...

지금쯤 그녀도 한때 순박한 양치기였으나 진작 늑대로 변해 있을 남정네와

오순도순 살고 있겠지?

 

그리운 이름들...

내 마음이 네게 가 닿기까지 너무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우리...

 

미국에 계신 안드레아씨, 오마이샤리프(베드로)씨,

각종 네트워크를 동원해도 이 엔젤들을 찾을 순 없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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