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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 아빠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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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 아빠 마을---
이 도시가 주는 매력으로 플로리다 주 내에서 제일 규모가 큰 대학이 위치하고 있어 늘 넘치는 젊음과 활기를 빼놓을 수 없지만 무엇보다도 교육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한해 한국에서 약 50여명의 교환 교수가 이 대학에 다녀 간다. 1 년간의 학문 활동이 끝나면 거개가 아빠만 한국에 돌아가고 자녀들과 엄마들은 그 곳에 계속 남는다. 그야말로 한해에 적지않은 기러기 아빠가 양산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들은 편리함과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같은 이웃에 몰려 살고 있으며 그 곳은 ‘기러기 마을’이라고 불려지고 있다. 가장인 아버지들은 한국으로 혼자 돌아가서 뼈빠지게 일을 하면서 그들의 뒷 바라지를 하고 있다. 좌표를 잃어버리고 표류하는 한국의 공교육에 지친 학부모들은 별거를 감수하며 아이들의 교육에 목숨을 걸고 있는 것이다.
이 대학 도시내에 미국내 베스트 50위안에 들어가는 공립 고등학교가 있어 한국 부모들은 자녀들을 그 학교에 보내려고 안간 힘을 쓴다. 미국 교육이 창의성을 키워준다는 장점을 인정하면서도 어떻게 해서라도 한국에서 하던 방식으로 과외 학습을 시킨다. 미국에 까지 와서 자식의 교육을 미국 방식대로 맡기기 보다는 한국식으로 한후 일단 일류 고교에 집어넣고 보자는 단순 교육 논리가 적용되고 있다. 그러한 부모들의 노력의 결과로 이번 학기에는 지원자 12명이 모두 입학하는 쾌거를 올리기도 하였다.
이 도시에는 오래 전에 이주하여 자리를 잡은 교포 자녀들도 물론 있다. 그들의 학부모들은 기러기 집단이 몰고 온 ‘교육 광풍’ 때문에 혼돈을 겪고 있다. 급기야는 그 경쟁에서 탈락되지 않기 위해 과외를 시키는 교포 부모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입시 시험만을 위주로 하는 과외 문화가 기존의 미국의 자율적 교육 문화를 밀치고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한국과 미국 교육의 문화가 충돌하는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이런 입시 위주의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대학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과연 적응을 잘 해나가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명문 대학에 입학했다는 승보는 자주 접해도 이들이 입학 후 미국의 엘리트들과의 힘겨운 경쟁에서 도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필자가 이곳 대학에서 강의를 하던 시절 교실 문턱에 들어서기 전부터 심적으로 부담을 주는 학생들이 항상 몇명씩 포진하고 있었다. 이들은 되지도 않는 질문으로 필자를 괴롭히기도 하고 수업이 끝나면 교수실까지 따라와서 끈질기게 논쟁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밉상인 그들의 질문속에는 교수도 상상하기 힘든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숨어있었다. 이와 반대로 전혀 질문을 하지 않은 학생도 꼭 있었는데 대부분 동양계 학생이었다. 그들은 일방적으로 강의를 듣기만 했고 그 강의에 참여하여 교수에게 도전하는 것을 시도하지 않았다.
교수에게 도전하는 것을 불손하게 여기는 동양 문화의 특성도 있겠지만 역시 창의적인 사고와 도전 정신의 부족이었다. 이런 정신의 부족 현상은 박사 코스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필기시험을 위주로 하는 코스 웍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한국계 학생들은 연구 부문에 가서는 반드시 미국 학생들에게 뒤졌다. 필자 또한 유학 시절 미국 학생들의 뛰어난 창의성을 바라보며 상대적 빈곤감을 느낀 적이 있었다. 모든 학생들에게 공통되는 현상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이런 학습 자세의 차이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유학 초기 시절 아내가 간호사로 밤 근무를 하는 이유로 가사일과 두 아들의 교육은 필자의 몫이었다. 당시 큰 아이는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필자는 직접 옛날 한국에서의 과외선생 경험을 발휘하여 열심히 과외지도를 하였다. 관심을 갖고 늘 챙겨주는 덕분에 큰 아이의 성적은 상위권이었다.
논문준비가 바빠지고 미국 생활이 주는 나르시즘 때문에 둘 째 아이는 도저히 가르칠 수가 없어 그냥 미국 교육에 맡길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17 년이 지난 지금 그 두아이는 전혀 다른 결과를 보이고 있다. 필자가 직접 지도한 큰 아이에게서는 창의력이 별로 보이지를 않았다. 그는 재수를 거듭한 끝에 이 곳 프로리다 치과대학에 겨우 들어갔다. 미국 교육 시스템에 맡겨졌던 둘째 아이에게서는 현저한 창의력과 학업 자세에 자신감이 보여지면서 필자의 한국식 지도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기도 하였다. 미시간 대학의 경제학부를 택하였던 그 아이는 올해 조기 졸업과 동시에 미국의 경제의 핵심 무대인 월가에 입성을 하였다. 극단적인 예가 될수도 있지만 분명 양국간의 교육에는 차이가 있음을 발견되는 대목이다.
유태인의 교육에서 두드러게 나타나는 두가지가 모습이 있다. 아이가 자기 전에 책을 꼭 읽혀주는 것을 생활화하는 것과 저녁 식사중 식탁에서 부모와 어떤 주제이던 토론이 진행된다는 점이다. 논리적이며 합리적인 사고 체계가 계발되는 교육의 모습이다. 유태인 교육을 언급하는 이유는 필자의 아이들의 창의적 사고 발달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시 작은 아이 방에는 상당히 많은 책이 꽂혀 있었으나 큰 아이는 그렇지를 못했다. 그 두아이의 잠재력의 차이는 바로 탐구 정신과 폭 넓은 사고의 힘을 길러주는 독서의 양에 결정되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많은 독서를 시키는 훈련에 미국 교육의 힘이 있었다는 점을 뒤늦게 발견한 필자는 큰 아이의 사고 체계를 망가트린 점에 대해 늘 罪 의식을 가질수밖에 없었다.
OECD국가중에서 한국 사람의 독서력이 하위권이라는 사실은 바로 입시 위주의 교육의 허점을 시사한다. 미국인들은 계약서이던 안내 책자이던 꼼꼼이 읽는 습관이 있다. 한국 사람들은 어떤 제품을 사도 그 설명서를 읽기를 싫어한다. 보험 회사들은 독서력이 약한 한국인의 특성을 이용하여 불 공정거래에 가까운 계약 내용들을 빽빽히 약관에 적어 소비자들을 골탕먹이는 상도는 이와 맥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인터넷과 영상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이러한 한국인의 취약점은 그 깊이가 더해져 가고 있다. 아이들이 책 읽기를 귀찮아 한다. 영상으로만 모든것을 습득하려 들기 때문에 사고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내 아이가 시험을 위한 학습만을 한다면 그 무한한 사고의 체계를 계발시키는 노력을 포기하는 것이다. 영어 구사의 부족과 합리적 사고의 미흡으로 미국 사회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던 이민 1 세들은 한결 같이 자녀 만큼은 미국 주류사회에서 성공하기를 바란다.
인간의 두뇌는 컴퓨터의 CPU와 같아서 한번 그 회로가 완성되면 좀처럼 바꾸기가 힘들다. 따라서 그 CPU는 바로 청소년 시절에 완성되기 때문에 그 기간중의 교육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명문 고교와 대학에만 집어 넣으면 그 자신의 자녀의 교육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심도 있게 돌아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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