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동성당 게시판

지나친 온정주의의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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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득길 [4omega] 쪽지 캡슐

2003-10-13 ㅣ No.5077

지나친 온정주의의 극복

 

어떤 조직이든 거기에는 조직의 목적, 사업, 조직원의 권리와 의무, 운용 원리 등을 규정하는 규약이 있습니다. 일반 사회 조직에 회칙, 정관 따위가 있듯이 우리 레지오에는 교본이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레지오는 세상의 단체와 다를 바 없습니다.

  하지만 레지오는 지난 번 훈화에서도 말씀드렸듯이 단체를 멀리 초월하는 그리스도 신비체의 특수 지체입니다. 따라서 우리 레지오는 교본의 규정과 상급평의회의 가르침에 적합해야 하되 여기에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일반 단체의 속성을 멀리 초월하여 자발적인 충성, 거룩한 희생정신, 헌신적인 이웃 사랑, 세상복음화에 대한 열망 등 성모 마리아의 영성의 불꽃이 활활 타올라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레지오의 비전이며 이상(理想)입니다. 영성의 불꽃이 꺼진 레지오는 수족관에서 숨만 헐떡이는물고기와 같습니다.

  이러한 이상(理想)에 비추어 볼 때, 한국레지오는 연륜이 쌓이면서 오히려 도입초기의 생동감을 잃어가고 있을 뿐 아니라 도달해야 할 목표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지울 수 없습니다.

왜 그럴까?

비단 레지오만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 한국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불림’의 의미, 즉 소명소식이 투철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몸은 레지오에 담고 있으면서도 마음은 세속에 두고 왔기 때문에 레지오 단원으로 복무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기쁨과 보람도 없으며, 세속적 기준으로 판단하려 들고, 기도 없이 인간적인 능력만으로 하려고 하니 힘만들고 결과는 보잘것없는 것입니다.

  지난 번 전단원 교육시에도 ‘레제오 마리애의 신원의식과 시대적 소명’이라는 주제를 미리 정해서 강의를 부탁한 바 있습니다만, 팽종섭 강사님은 그 뒤에 저와 오고간 이메일에서, “불과 수십년 내에 하느님 앞에서 셈받쳐야 레지오 단원이 현세에서 성모님의 특별한 불림을 받았다는 사실에 각별한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라고 하면서, “레지오 간부는 이러한 사실을 단원들에게 철저하게 깨우쳐 줄 의무가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 레지오단원은 항상 사명감에 불타고 영성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이 일을 해내야 할 사람들이 바로 Pr. 간부이고 선배 단원들입니다. 신입 단원이나 후배 단원 하나하나를 말로 깨우쳐주고 행동으로 모범을 보일 때 도제주의 교육을 중시하는 레지오는 수준이 상향평준화되어 우리의 이상에 가장 가깝게 접근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한 임무를 포기하고 온정주의에 끌려 상대적인 신입단원의 수준에 영합하려 할 때 그 Pr.은 이미 이상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하겠습니다. 그것은 겸손이 아니라 무관심이며, 화합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개인주의입니다. 최선을 다했는데 도저히 따라올 기미가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조직의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면 레지오와 당사자를 위해서 다른 선택을 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이 문제에 관련해서 우리 레지오는 두 가지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레지오를 그만 두게 하는 것이 당사자를 교회공동체에서 축출하는 파문이나 하는 양 심각하게 받아들여 결단을 못 내린다는 점입니다.

둘째는 레지오에서 내보내면 냉담에 빠지게 될 우려가 있으니 끝까지 함께 가야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레지오가 어느 개인의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양 착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견들이 관용과 인정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레지오에서 탈퇴하는 것이 신앙을 막는 파문이 아닙니다. 또한 레지오는 개별 신자의 신앙생활을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레지오는 그 정신에 동의한다면 소정의 절차를 거쳐 언제나 가입할 수 있고, 또한 사정 변경에 따라서 탈퇴할 수도 있는 열려 있는 조직입니다.

불필요한 온정주의에 얽매어 레지오의 발전이 저해된다는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남아 있을 단원이 어디 있나요? 현실을 모르는 말이라는 주장도 있을 줄 압니다.

“내 편에 서지 않는 사람은 나를 반대하는 사람이며, 나와 함께 모아 들이지 않는 사람은 헤치는 사람이다(마태12,30).”

항아리에 참게를 한 마리만 놓아 두면 날카로운 발로 기어나올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 마리를 넣어두면 한 마리도 기어 올라오지 못한다고 합니다. 왜냐 하면 올라가는 놈의 발을 밑에서 붙잡고 늘어지기 때문입니다.

도저히 바로잡을 가망이 없다면 과감하게 정비한 다음에 위기의식 속에서 새로운 자세로 단원 모집에 나서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경제가 IMF라는 홍역을 겪으면서 기초가 단단해 지듯 우리 교회도 그러한 시련을 거쳐야 새롭게 변화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레지오도 어떤 의미에서는 그런 재정비 기간이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가 여기에서 주장하는 것은 단원들의 질적 성장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노력해달라는 간곡한 당부에 뜻이 있지, 고뇌와 합당한 노력 없이 정비부터하라는 뜻이 아님을 잘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2003년 10월 14일

천사들의 모후 꾸리아 단장  윤  득  길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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