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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 동료 순교자 대축일(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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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심온 [p460117s] 쪽지 캡슐

2006-09-17 ㅣ No.1344







      9월 17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루카 9장 23-26절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결실, 순교> - 양치기 신부님
      
      우리 한국 순교 성인들의 생애를 읽을 때 마다 와 닿는 첫 느낌은 
      안타까움입니다. 아쉬움입니다. 안쓰러움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어서 드는 느낌은 처절함입니다. 비참함입니다. 
      여기서도 끝나지 않습니다. 마침내 드는 느낌은 경이로움입니다. 
      놀라움입니다. 입이 딱 벌어집니다.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습니다. 
      
      순교의 때가 도래했을 때, 우선 당장 몸을 피하고 나서 
      후일을 도모할 수도 있었을 텐데, 단 하나뿐인 소중한 목숨 
      그렇게 가볍게 여겨서야 되겠나, 하는 생각도 많이 듭니다. 
      
      그러나 다가온 순교의 기회 앞에 우리 신앙의 선조들께서는 
      조금도 물러섬이 없었습니다. 
      순교의 마지막 기회로 여기고 바로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순교의 영예를 얻고자 각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순교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투옥된 이후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너무 아깝다는 이유로, 누구누구와 인척관계란 이유로 
      강제로 형 집행에서 면제시켰습니다. 
      다시는 천주교 근처 얼씬거리지도 말라고 
      단단히 이르며 방면시켰습니다. 
      
      그런 순간, 우리는 어떻게 처신했겠습니까? 
      이것도 다 하느님 뜻이겠지, 나중에 기회가 또 오겠지, 
      지금은 일단 조용히 지내야지, 
      하는 생각도 들어 많이 햇갈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순교자들은 사형집행에서 면제되는 것을 
      아주 수치스런 일로 여겼습니다. 
      가장 큰 하느님의 선물을 넣었다가 놓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순교자는 방면되어 집에 왔다가, 
      ‘이건 정말 아니다’며 다시 발길을 관헌으로 돌렸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말로 할 때 집으로 돌아가라는 포졸에게 
      계속 졸라댔습니다. 나를 다시 가두라고. 
      제발 좀 정신 차리라며 등을 떠미는 포졸들에게 
      제발 다시 투옥시켜달라고 애걸복걸했습니다. 
      
      이러한 우리 순교성인들의 신앙,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어찌 보면 너무도 무모해보이기도 하지만 
      정녕 놀라운 신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순교성인들의 무고한 죽음, 
      그 비참한 죽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우리 순교성인들의 죽음은 어떤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 추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들이 참혹한 죽음 앞에서도 그리 당당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눈앞에 뵙는 듯이 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아직 보지도 알지도 못했던 천국을 
      일찌감치 맛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루하루 먹고 사는 일에 정신없는 제게,
      아직 제 자신조차도 극복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제게, 
      우리 순교성인들의 생애는 너무나 커 보입니다.
         
      자신에게 다가온 마지막 순간인 죽음 앞에서 
      우리 순교성인들처럼 그리도 침착하고 의연한 태도를 보인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 것입니다. 우리 순교성인들의 전기를 
      꼼꼼히 읽어보면서 그들은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라 
      죽음을 맞이하러 나가셨습니다. 
      
      가장 값진 선물을 받은 어린이처럼 죽음 앞에서 기뻐하셨습니다. 
      그들은 우리 후손들에게 순교를 통해서 한 인간의 생애가 
      이렇게 숭고할 수 있다는 것, 이렇게 당당할 수 있다는 것,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우리 순교성인들의 죽음은 어쩌면 자청한 죽음, 예정된 죽음, 
      계획된 죽음, 준비된 죽음이었습니다. 
      그들은 한 평생 이 마지막 순간, 
      장엄하게 낙화할 순교의 순간을 꿈꾸어왔던 것입니다. 
      그들의 평생에 걸친 순교자적 생애는 
      휘광이의 칼날 아래 활짝 피어나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결실을 맺게 된 것입니다.
         
      우리 순교성인들의 죽음은 어쩌면 한 점 티 없는 
      어린 양이셨던 예수님, 순결한 봉헌제물이셨던 
      예수님의 삶을 판에 박은 듯이 빼닮았던 
      가장 고결한 죽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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