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사순 제3주일(가해) 요한 4,5-42; ’23/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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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3-02-28 ㅣ No.5322

사순 제3주일(가해) 요한 4,5-42; ’23/03/12

 

 

언젠가 한 번 어떤 분이 오셔서, “신부님, 제가 예전에 학생 때는 회합실에서 회합하다가 전등이 나가면, 다 같이 기도하면 불이 다시 들어오기도 하곤 했습니다.”라고 하시며, 청소년 시기의 신앙생활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런데 대학에 들어간 이후에, 무슨 일이 있어서 주일 미사를 빠지게 되었는데, 가만히 보니까 미사 한 번 빠졌다고 천둥 번개가 치는 것도 아니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성당에 잘 나오지 않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왜 성당에 주일 미사를 봉헌하러 옵니까?

 

성당에 천둥번개를 맞지 않으려고 옵니까? 우리가 어릴 때부터 우리를 키워주신 부모님께 제대로 찾아 뵙지 않는다고 부모님께서 섭섭해하실지는 몰라도 우리에게 벌을 내리지 않으십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일에 미사 참례 안 한다고 해서 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벌을 내리지는 않으십니다. 우리는 지난 한 주간 동안 주님께서 우리에게 내려주신 은혜에 감사드리고, 다가오는 한 주간 동안 주님의 사랑과 안배 속에 살기를 기대하면서 축복과 은총을 받으러 성당에 와서 찬미와 청원의 제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비단 우리에게 축복과 은총을 빌 뿐만 아니라, 우리가 주님 사랑의 말씀을 듣고 성체성사를 통해 그 말씀을 실현한 힘을 받아 우리의 현실에서 그 생명의 말씀을 실현하기 위해 주일 미사에 참례합니다.

 

그럼, 성당에 와서 주일 미사를 참례하지 않으면, 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내려주실 축복과 은총을 내려주지 않으십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믿는 주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느님에 대해 이렇게 일러주셨습니다.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5.48)

 

그럼 미사 참례를 하러 성당에 오든 안 오든 주 하느님께서 똑같이 은총을 내려주신다는데, 굳이 우리가 성당에 미사를 참례하러 올 필요가 있습니까?

 

미사 성찬기도 공통 감사송 4양식에 이런 글귀가 나옵니다. “아버지께는 저희의 찬미가 필요하지 않으나 저희가 감사를 드림은 아버지의 은사이옵니다. 저희 찬미가 아버지께는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으나 저희에게는 주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도움이 되나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부모님을 찾아뵙는 이유도 우리가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려는 자식의 마땅한 자세이며 도리일 뿐만 아니라, 부모님을 찾아뵙고 함께하는 순간에 기쁨과 평화를 누리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미사에 참례하여 주님의 말씀과 몸을 받아 모심으로써 주님과 하나 되는 기쁨과 평화를 누리며, 아울러 오늘을 주님의 자녀로서 살아나갈 수 있는 힘과 은총을 받게 됩니다.

 

우리 천주교회에서는 주 하느님께 찬미의 제사를 드리는 양식을 미사로 봉헌합니다. 미사는 천주교회에서 합법적으로 축성되고 임명된 사제가 일정 시간에 일정 장소에서 주 하느님께 봉헌하는 찬미와 감사의 프로그램입니다. 그러므로 일정 시간이나 일정 장소에 도달하지 못하는 이는 미사를 통해 주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의 제사를 봉헌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대송이란 제도를 통해, 피치 못할 사정으로 미사에 참례하지 못하는 분들에게 다른 방법으로 찬미와 감사의 제사를 봉헌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줍니다. 그런데도 남는 아쉬움은 영성체를 통한 주님과의 일치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마리아에서 주님을 향한 예배를 올렸던 사마리아 여인이 주님께 여쭙습니다. “선생님, 이제 보니 선생님은 예언자시군요. 저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선생님네는 예배를 드려야 하는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말합니다.”(요한 4,19-20) 그러자 주님께서는 여인아, 내 말을 믿어라. 너희가 이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닌 곳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21) 라고 답하십니다. 박해시기나 페스트나 코로나와 같은 전염병이 창궐한 시기에 우리는 태평시대에 갖던 정상적인 미사 참례를 통한 예배 형태를 가지지 못합니다.

 

그리고 비단 장소 문제가 아니라, 누구에게 왜 예배를 드리는가 하는 것도 문제가 될 것입니다. 무한경쟁과 물질문명으로 치닫는 세상 그리고 현실과 실재에서 만족과 빛을 발견하지 못하는 세대, 보이는 것과 증명되는 것만을 확신하는 세대는 어쩌면 거꾸로 미디어와 판타지와 마약과 미신과도 같은 범신론과 신비주의를 통해 환상적인 대리만족을 찾게 될지도 모릅니다. “너희는 알지도 못하는 분께 예배를 드리지만, 우리는 우리가 아는 분께 예배를 드린다. 구원은 유다인들에게서 오기 때문이다.”(22)

 

미사와 같이 예배를 드리는 목적과 본질은 주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것이고, 우리의 찬미와 감사를 통해 주 하느님께로부터 사랑과 축복을 이어받는 것이며, 주 하느님께서 내려주시는 사랑과 축복으로 오늘의 한계지어진 세상에서 주님 복음 말씀이 이끄는 사랑의 십자가의 길을 주저하거나 쓰러지거나 포기하지 않고 부활의 영광을 향하여 일어나고 극복하며 초월하는 것입니다. “진실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사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이들을 찾으신다. 하느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그분께 예배를 드리는 이는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22-24)

 

부언하자면, 영과 진리로 예배드림은 장소와 방법에 구애받지 않고,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구체적인 자기 봉헌과 희생적인 실천을 의미합니다. 각자 자신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는 결심과 계획을 세워 실현하는 일이 영적으로 참되게 예배하는 길입니다.

 

먼저,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읍시다. 사도 바오로는 로마서에서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로마 12,1-2) 라고 말합니다.

 

둘째,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같이 살라고 보내주신 이 시대, 이 자리의 형제들과의 관계에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라고 하신 주님 진리의 말씀을 따라 서로 사랑합시다. 사도 바오로가 공동체 업무 안에서, “저마다 하느님께서 나누어 주신 믿음의 정도에 따라 건전하게 생각하십시오. 우리가 한 몸 안에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지만 그 지체가 모두 같은 기능을 하고 있지 않듯이, 우리도 수가 많지만 그리스도 안에 한 몸을 이루면서 서로서로 지체가 됩니다. 우리는 저마다 하느님께서 베푸신 은총에 따라 서로 다른 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로마 12,3-6) 라고 한 말에 따라, 서로의 역할을 존중하고 잘 이룰 수 있도록 배려합시다. 또 공동체 인간관계에서,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해 줄 뜻을 품으십시오. 여러분 쪽에서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과 평화로이 지내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스스로 복수할 생각을 하지 말고 하느님의 진노에 맡기십시오. 악에 굴복당하지 말고 선으로 악을 굴복시키십시오.”(로마 12,17-19.21) 라는 사도의 말에 따라, 끝까지 사랑을 포기하거나 놓지 말고 사랑을 견지합시다.

 

셋째, 우리 자신과의 관계에서,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자기 스스로를 속이거나 포기하지 말고, 스스로 지켜내고 이루어냅시다!’ 그리고 우리가 영과 진리 안에서 새로 나기가 힘들고 주님의 말씀을 이루기가 힘들 때, 주님께 성령의 도우심을 청하며 성령께서 이끌어 주시도록 맡깁시다. 주님께서는 일찍이 에제키엘 예언자를 통해 너희에게 정결한 물을 뿌려, 너희를 정결하게 하겠다. 너희의 모든 부정과 모든 우상에게서 너희를 정결하게 하겠다.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어 주겠다. 너희 몸에서 돌로 된 마음을 치우고, 살로 된 마음을 넣어 주겠다. 나는 또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어, 너희가 나의 규정들을 따르고 나의 법규들을 준수하여 지키게 하겠다.”(에제 36,25-27) 라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보일 듯 보일 듯 하면서도 선명치 않고, 들릴 듯 들릴 듯 하면서도 확연치 않기에, 알 듯 알 듯 하면서도 온전치 않아, 주님을 향한 우리의 갈증을 깊게 하고, 섣불리 알았다 싶으면 우상을 만들거나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이나, 그나마 찰나의 만남들이 우리의 타는 목마름을 적셔주고 우리를 살찌워줍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요한 4,14)

 

우리의 길이요 진리이며 생명이신 주님을 따라, 우리에게 심어주신 주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우리 삶의 기준이요 힘으로 삼고, 영과 진리의 삶으로 예배하며 살아나갑시다.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로마 5,5)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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