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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베오상 5장 1절- 7장 50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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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숙 [sjs88] 쪽지 캡슐

2003-07-17 ㅣ No.463

인근 적들과의 싸움

 

 5   그 주변 이방인들은 유다인들이 제단을 다시 쌓고 성소를 복구하여 전과 같이 만들어 놓았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노하였다. 그래서  자기네들과 함께 살고 있던 야곱의 후손들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하고 유다인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유다는 이스라엘을 괴롭혀 오던 에사오의 자손들을  에돔의 아크라바테네에서 공격하여 큰 타격을 주고 굴복시킨 다음 많은 전리품을  빼앗았다. 그리고 전에 길목에 숨어 있다가 지나가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방해하고 잡아 가기도 했던 바이얀 자손들의 악한 짓을 생각하고 유다는 그들을 여러 망대 속으로 몰아 넣은 다음 공격하였다. 유다는 그들을 완전히 없애 버리기로 맹세하고 망대 속에 있던 사람을 모두 태워 죽였다. 그는 암몬 사람들에게로  건너 가 거기에 강한 군대와 수많은  민중이 집결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의 사령관은 디모테오였다. 유다는 그들과 여러 번 싸워 그들을  쳐부수고 야젤과 그 부락들을 점령한 다음 유다 나라로 돌아 왔다.

 

 

갈릴래아의 유다인 구출

 

   길르앗의 이방인들은 자기들 영토 안에 사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없애 버리려고 집결하였다. 그러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데마 요새로 피신하여 유다와 그의 형제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우리 주위의 이방인들이 합세하여 우리를 없애 버리겨 하고 있읍니다. 그들은 우리가 피신하여 있는  이 요새를 점령하려고 공격준비를 하고 있읍니다. 우리는 벌써 많은  사람을 잃었읍니다. 튜비에 살던 우리 동포들은  모조리 학살을 당하였읍니다. 이방인들은 그들의 처자들을 잡아 가고 그들의 재산을 빼앗고 우리 동족 약 천명을 죽였읍니다."   유다와 그의 형제들이 이 편지를 읽고 있을 때 갈릴래아에서  또 전령들이 도착하였다. 그들은  다 떨어진 옷을 입고 있었는데, 전하는 말이 프톨레매오와 띠로와 시돈에 사는  주민들과 갈릴래아에 사는 전 이방인들이 합세하여 그들을 멸망시키려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유다는 백성과 함께 이 소식을 듣고 큰 회의를 소집하여 적으로부터 공격받고 있는  불행한 동포들을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의논하였다.

   유다가 그의 형 시몬에게 말하였다.     "형님은 부하를 골라 갈릴래아로 가서 거기 있는 동포를 구해 내십시오. 나는 동생 요나단과 함께 길르앗으로 가겠읍니다."   유다는  즈가리야의 아들 요셉과 민중의 지도자인 아자리아에게 나머지 군대를 맡겨서 유다 나라의 수비를 당부하며 이렇게 명령하였다.     "이 백성을 지켜라. 그러나 우리가  돌아 올 때까지 이방인들에게 싸움은 걸지 말아라."   갈릴래아로 가는 시몬에게는 병력 삼천이 배당되고 길르앗으로 가는 유다에게는 병력 팔천이 배당되었다. 시몬은 갈릴래아로 가서 이방인들과 여러 차례 싸워 그들을 무찌르고 그들을 프톨레매오 성문까지 추격해 갔다. 이 전투에서 이방인들 약  삼천 명을 죽이고 그들에게서 많은 전리품을 빼앗았다. 시몬은  갈릴래아와 아르바타에 살고 있던 유다인들을 구출하여 크게 기뻐하면서 유다로 돌아 왔다. 유다인들은  그들의 처자들은 물로 재산까지도 남김업이 건져 가지고 왔다.

 

 

길르앗의 유다인 구출

 

   유다 마카베오와 그의 동생 요나단은 요르단강을 건너서 사흘 동안 광야를 진군하여 나바테야 사람 몇을 만났다. 그들은 유다의 군대를 평화롭게 맞이하면서 길르앗에 있는 유다인들이 당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많은 유다인들이 큰 요새도시인 보스랑와 보소르, 알레마, 가스포, 마케드, 카르나임에 갇혀 있다는 것이었다. 길르앗의  다른 도시들에도 일부 유다인들이 잡혀 있다고 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적들은 요새들을 공격하여 점령한 후  거기에 있는 사람들을 그 날로 없ㅇ애 버릴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유다는 이 말을 듣고 갑자기 전격방향을  바꿔 광야를 가로질러 보스라로 진군, 그 도시를 점령하였다. 거기에서 그는  남자들을 모조리 칼로 베어 죽이고 재산을 모두 노획한  다음 도시를 불살라 버렸다. 그리고 나서  유다는 밤에 군대를 이끌고  다데마의 요새 쪽으로 진군해 나아갔다. 아침이 되자 유다는 싸움이 이미 시작되어, 나팔소리와 큰 고함소리에 섞어  전쟁의 소음이 하늘을 찌르는 듯하는 것을 보고 부하 군인들에게     "오늘 우리 동포를  위해 싸워라" 하고 격려하였다. 유다의 군대는  세 분대로 나뉘어 나팔을 불고 큰 소리로  기도를 올리면서 적의 후면으로 진격해 갔다. 마카베오는  그들에게 큰 타격을 주고, 그 날 적군의 약  팔천명을 죽였다. 그리고  그 도시를  털고 불태워 버렸다. 거기에서 유다는 진군을 계속하여 가스포와  마케드와  보소르와  그 밖에 길르앗에 있는 여러 도시를 점령하였다.  일이 이렇게 되자 디모테오는  세로 군대를 조직하여 라폰 맞은편  강 건너에 진을 쳤다. 유다는 정탐꾼을 보내어 적진을  살피게 하였는데 그들은 돌아 와서 이렇게 보고하였다.    "우리 주변이 모든 이방인들이  디모테오와 합세하여 대단히 큰 군대를 만들었읍니다. 아랍인까지도 용병으로 써 강 건너에 진을 치고 당신을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읍니다."    유다는  이 말을 듣고 그들과 응전하러 나아갔다. 유다와 그의 군대가  강가로 접근하고 있을 때 디모테오는  부하 장교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만일 유다가 먼저 우리 쪽으로 건너 오면 우리는  그를 당해 낼  수거 없을 것이고, 우리는 틀림없이 질 것이다. 그러나 만일 유다가 겁을 먹고 강 건너 저편에 진을 치면 우리가 그리거 건너 가서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유다는 강가에 이르러 행정관일 유다의 율법학자들을 그 곳에 비치하고,       "여기에다 아무도 진을  치지 못하게 하여라. 전원이 나가서 싸워야 한다" 하고 명령하였다. 그리고 유다는 선두에 서서  적진을 향하여 강을 건넜고 그의 모든 부하가 뒤따랐다. 이방인들은 유다의 군대 앞에서 패망하여 무기르 내던지고 카르나임에 있는  성전 경내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불태워 버렸다. 이렇게 해서  카르나임은  유다에게 굴복하고 적은  그 이상 더 유다에게 저항할 수가 없었다.

   유다는  길르앗에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을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모았다.   그들은 처자를 이끌고 재산을 거두어 큰 집단을 이루어 가지고 유다를 따라 유다의 땅으로 향하였다. 도중에 그들은 큰 요새도시인 에브론에 도착하였다. 그 도시를 지나가려면 왼쪽으로 오른쪽으로도 돌아 가는 길이 없었기 때문에 한가운데를 뚫고 지나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도시의 주민들은 길을 막아 그들을 받아 들이지 않고 성문들을 돌로 막아 버렸다.  유다는 그들에게 친선사절을 보내어 말을 전하였다.     "우리는 우리 땅으로 가기 위하여 그대들의 땅을 통과하려 한다. 조금도 그대들을 해칠 생각은 없고 다만 지나가려는 것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성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유다는 전군에 명령을 내려 각자 있는 곳에서 진을 치라고 하였다. 모든 군인들은 진을 치고 그날 하루 낮과 밤을  꼬바기 공격하여 도시를 손아귀에 넣었다.  유다는 그 도시의 모든 남자를 칼로 쳐죽이고, 도시를 털어 쑥밭을 만든 다음 시체들을 밟으며 그 곳을 통과하였다. 유다의 군대는 요르단강을  건너 벳산 앞 큰 평야에 이르렀다. 유다는 줄곧 낙오자들을 모으고 백성을 격려하여 마침내 유다 땅에 이르렀고 그들은 기쁨에 넘쳐 시온산으로 올라 가 번제를 드렸다. 한 사람도 목숨을 잃지 않고 안전하게 돌아 온 것을 감사하는 제사를 드린 것이다.

 

 

요셉과 아자리야의 패망

 

   유다와 요나단이 길르앗 땅에 있고 유다의 형 시몬이 프톨레매오 맞은편 갈릴래아에 있을 떼에 즈가리아의 아들인 요셉과 그와 함께 군대를 지휘하던 아자리야는 마카베오 형제들의  용감한 행동과 전공에 대한 소문을 듣고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도 나가서 우리 주위에 있는 이방인들과 싸워 이름을 떨칩시다."    그들은 휘하군대에게 명령을 내리고 얌니아로 진군해 갔다. 그러나 고르기아와 그의 부하들이 도시에서 나와  그들을 맞아 싸웠다. 그 결과 요셉과 아자리야는 패배하여 유다 땅 경계까지 쫓기게 되었고 그 날 하루 동안에 이스라엘 사람 약 이천 명이 죽었다. 이토록  크게 패배한 것은 그들이 유다와 그의 형제들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들이 큰 공을 세우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임무를 맡기신  가문의 출신이 아니었던 것이다. 한편 유다와 그의 형제들은 온 이스라엘과 모든 이방인들 사이에서 그들의 이름이 알려진 곳 어디에서나 큰 명성을  떨쳤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들을 찬양하면서 그들에게  몰려들었다. 유다와 그의 형제들은 나아가 남쪽  땅에 사는  에사오의 자손들을 공격하여 헤브론과 그 주변 마을들을  점령하고 요새들을  부수며 주위의  망대들을 불살라 버렸다. 그리고 나서 불레셋 땅으로 진격하여 마리사를 지났다. 그 때에 명성을 얻으려고 무모하게 싸우러 나갔던 사제 몇 사람이 전사했다.  유다는 불레셋 땅 아조토로 향하였다. 거기에서 유다는 그들의 제단을 헐어 버리고 그들이 섬기는 조각우상들을 불태워 버렸다. 그리고 그들의 여러 도시에서 재물을 약탈해 가지고 유다 땅으로 돌아 왔다.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죽음

 

 6   안티오쿠스는 내륙의  여러 지방을 돌아 다니다가 페르샤의 엘리마이스라는 도시가 금과 은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 도시의  신전에는 재물이 무척 많았고, 특히  마케도니아 왕 필립노의 아들로서  그리이스의  첫째 왕이 되었던  알렉산더가 이 도시에 남겨 놓은  금투구와 갑옷과 무기들이 그 성전 안에 있었다. 안티오쿠스는 그 도시로 가서 그 곳을 점령하고 재물을 약탈하려 했지만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그 도시 사람들이  그의 계획을 미리 알고 그와 맞서 싸워 왕을 쫓아 버렸기 때문이었다. 왕은 비통에 잠겨  그 곳을 떠나 바빌론으로 도망쳐 갔다. 안티오쿠스가 페르샤에 있는 동안, 전령이 와서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다. 즉, 유다 나라에 진격했던  군대가 패배하였다는 것, 대군을 이끌고 먼저 진격했던 리시아가 유다인들에게 참패를 당했다는 것, 유다인들은 아군을 무찌르로 빼앗은 무기와 포로와 많은  전리품으로 강력하게 되어 있다는 것고 유다인들은 안티오쿠스가 예루살렘 제단 위에 세웠던  가증스러운  우상을  부수어 버리고 그 대신 그 성전 주위에 전과 같이 높은 성벽을 둘러 쌓았으며 왕이 세웠던  도시 벳술에도 높은 성곽을 쌓았다는 것이었다. 안티오쿠스왕은 이 보고를 듣자 매우 놀라 큰 충격을 받고 속이 상한 끝에 병상에 눕게 되었다. 모든 일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겹치고 겹친 슬픔으로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있다가 마침내  죽음이 가까이 온 것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친구들을 곁에 불러 놓고 이렇게 말하였다.     "내 눈에서는 잠이 사라져 갔으며 근심걱정으로 마음이 아프다. 처음에 나는 이렇게 생각했었다.  ’권좌에 있을 때에 나는 좋은 사람이었고,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했다. 나에게 이런 큰 고통과 슬픔이 닥치다니 어찌 된 일이냐?’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예루살렘에서 몹쓸 짓을 했구나. 거기에 있는 금은기물을 모두 빼앗았고 까닭도 없이 유다의 주민들을 몰살하려고 군대를 보냈었다. 바로 이 때문에 내가 지금 이 재난을  당하는구나. 아! 나는 큰 슬픔을 안고 이국땅에서 죽어 간다."

   그리고 그는 친구들 중의 한 사람인 필립보를 옆에 불러, 그에게 온 왕국의 통치를 맡겼다. 자기의 왕관과 옷과 반지를 그에게 주고 왕자 안티오쿠스를 맡기며 잘 교육하고 잘 길러 왕이 되도록 해 달라고 했다.  이렇게 하여 백 사십 구년에 안티오쿠스왕은 그 땅에서 죽었다.

  리시아는 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어렸을 때부터 길렁 온 왕자 안티오쿠스를 왕위에 앉히고 그 이름을 유파톨이라 불렀다.

 

 

예루살렘 요새 포위

 

   한편 예루살렘 요새 안에 있던 자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성소 주위에 몰아 넣고 기회만 있으면 그들에게 해를 끼쳐 못살굴며 이방인들의 세력을 돋구어 주었다. 유다는 이들을 전멸시켜야겠다고 결심하고 온 백성을 불러 모아 공격할 채비를 하였다. 이렇게 집합하여 예루살렘 요새를 포위한 것은 백 오십년의 일이었다. 그들은 투석대와 성을 공략하는 기구를 만들었다. 그런데 성에 갇혔던  자들의 일부가 포위망을 뚫고 나가 이스라엘의 다른 반역자들과 합류하여 왕에게로 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언제 정의의 칼을 뽑아 우리 형제들의 원수를 갚아 주시겠읍니까? 우리는 기꺼운 마음으로 폐하의 부왕을 섬겨 왔읍니다. 그분의 말씀대로 행하였고 그분의 칙령에 복종하였읍니다. 우리는 우리 동족의 원수까지 되었고 그들은 우리들을 닥치는 대로 죽여 버리고 우리 재산을 강탈했읍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손을 뻗쳤을 뿐 아니라 전 영토를 짓밟고 있읍니다. 자, 보십시오. 오늘도 그들은 예루살렘 요새를 점령하려고  진을 치고 있지 않습니까? 그뿐 아니라 성소와 벳술을 요새로 만들지 않았읍니까? 폐하께서 서둘러 그들을 먼저 치지 않으신다면 그들은 말씀드린 것보다 더 흉악한 짓을 할 것이려 그 때에는 폐하께서도 그들을 당해 낼 길이 없을 것입니다."

 

 

벳즈가링야의 전투

 

   이 말을 듣고 왕은 몹시 노하여 자기 친구인 보병 사령관들과 기병대장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다른 나라와 섬나라에서도 용병들을 모집해 왔다. 그 군대는 보병 십만, 기병 이만, 전쟁훈련을 받은 코끼리가 삼십 이 마리였다. 그들은 에돔을 지나서 벳술에 진을 치고 성을 공격하는 기구들을 불사르며 용감하게 싸웠다.

   유다는  그 요새를  떠나 벳즈가리야에 진을 치고 왕의 군대와 맞섰다. 왕은 아침 일찌기 일어나 군대를 이끌고 급히  벳즈가리야을 향해  돌진했다. 거기에서 그의 군대는 전투태세를 갖추고 나팔을 불었다. 그들은 코끼리를 잘 싸우게 하려고 포도즙과 오디의 붉은 즙을  눈앞에 보여 자극시켜 가지고 네모꼴  진지 사이에 배치하였다. 그리고 쇠사슬 갑옷에 구리 투구를 쓴 보병 천 명과 정예기병 오백 명이  매 코기리마다 배치되었다. 코기리가 어디를 가든지 그 기병드링 미리 거기에 가 있었고 코끼리가 움직이면 함께 따라 움직여서 코끼리를  떠나는 일이 없었다. 코끼리 등에는  방비책으로 단단한  나무탑을 얹고  그것을 띠로 코끼리 배에다 묶어 놓았다. 그 탑 속에는  코끼를 모는 사람이 이외에 코끼리를 타고 싸움을 하는 병사가 셋씩 타고 있었다. 왕은  나머지 기병들을 자기 군대의 양측면에 배치하여 네모꼴 진지들을  보호하게 하는 한편 적으로 하여금 두려워하게 하였다. 마침 태양이 금과 구리로 만든 방패들을 비추어 그 번쩍이는 빛으로 주위의 산들이 마치 불타 오르는  횃불과  같아 보였다. 왕의 군대 일부는  산등성이에, 또 일부는  얕은 평지에 비치되어 보무당당하고 질서있게 전진하였다. 수많은  군사들의  고함소리와 행진하는 소리, 그리고 무기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떨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 군대는  실로 막강했다. 그러나 유다는 군대를 거느리고 이들을 맞아 싸워 왕의  군대 육백 명을 쓰러뜨렸다. 아와란이라고도 불리던  엘르아잘은 적의 코끼리 중에서 월등히 큰 코끼를 보았다. 그런데 그 코끼리의 무장이 굉장하였으므로 틀림없이 그 코끼리에 왕이 타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는 동포를 구하고 용명을 영원히 남기기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기로 하였다. 그는 적의 네모꼴 진지 한가운데로 뛰어 들어 가서 그 코낄에 용감하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좌충우돌 적병을 치자 적병들은 양쪽으로 갈라져 물러셨다. 엘르아잘은 그 코기리 밑으로 뛰어 들어 가서 칼로 배를 찔러 죽였다. 그러나 코끼리가 쓰러지는 바람에 그도 깔려 그 자라에서 죽었다. 유다인들은 왕의 군대가 강력하고 그 사기가 높은 것을 보고 퇴각하였다.

   왕의 군대 일부는 유다인들을 치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 갔고 왕 자신은 유다 지방과 시온산을  향해 진을 쳤다. 한편 벳술 사람들은 마침 그 해가 그 고장의 안식년이어서 농사를 짓지 못했으므로 양식이 떨어져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그들은  그 도시를  버리고 물러나왔다. 왕은 벳술 사람들에게 화평을 제의했다. 왕은 벳술을 점령하고 그 도시를 지키기 위하여 수비대를 배치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성소를  포위하여 투석대와 성을 공격하는 여러 가지  기구를 정치하고 분화기와 투석기, 그리고 활과 돌을 투사하는  기계로 공격했다. 유다인들도 성을 공략하는 기구를 만들어, 그들을 대항하여 오랫동안 싸웠다. 그런데  그 해는 안식년인데다가 이방인들 사이에서 살다가 유다로 돌아 온 동포들이 남은 식량을 다 먹어 버렸기 때문에 식량이 떨어졌다. 그 기근을 참을 길이 업어 모두가 자기 집으로 흩어져 갔고 성소에 남은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다.

 

 

강화조약

 

   안티오쿠스왕 임종 때 왕으로부터 왕자 안티오쿠스를  잘 길러 왕으로 세워 달라는 부탁을 받았던 필립보가 왕과 함께 원정갔던 군대를 이끌고 페르샤와 메대로부토 돌아 와 정권을 잡으려 하고 있다는 말이 리시아의 귀에 들어 갔다. 리시아는 다급해져서  펄군하기로 결심하고 왕과 군대를 지휘관들과 병사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날이 갈수록 약해지고 식량마져 떨어져 가고 있읍니다. 게다가 우리가 맞서고 있는 적은 대단히 강합니다. 한편 우리에게는 본국의 사태를 수습할 의무도 있읍니다. 그러므로 적군과 악수하고 적군뿐 아니라 그들의 온 민족과 화목하게 지냅시다. 저들에게 자유를 주어서 전과 같이 자기에 율법을 따라서 살 수 있게 해 줍시다. 우리가 그들의 율법을 폐지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의 노여움을 샀고 따라서 의 모든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 제안은 왕과 지휘관의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왕은 유다인들에게 사람을 보내어 화평을 제의했고 유다인들은 그 제의를 받아 들였다. 왕과 지휘관들이 강화조건을  지키겠다고 맹세했으므로 유다인들은 그 요새를 비우고 나왔다. 그러나 왕은  시온산으로 들어 가 그 곳에 있는 견고한 요새를 보고는  자기가 맹세한 약속을 깨뜨리고 그 시온산 성을 무찌르라고 명령하였다. 그리고 그는 급히  그 곳을 따너 안티오키아로 돌아 왔다. 그는 필립보가 그 도시를  장악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와 싸워 실력으로 그 도시를 점령했다.

 

 

데메드리오 일세의 등극

 

 7   그런데 백 오십 일년에 셀류쿠스와 아들 데메드리오가 얼마 안되는 군대와 함게 로마를 벗어나 해안지방에 있는 어떤 도시에 상륙하여 그 곳에서 스르로 왕이라고 선포했다. 그가 자기 조상들의  왕궁으로 들어 가려 할 때에  그의 군대가 안티오쿠스와 리시아를 체포하여 그에게로 끌고 오려고 하였다. 데메드리오는  이 사실을 보고받고,   "그들의 얼굴은 보기도 싫다" 라고 말하였다. 이 말을 듣고 그의 군대는 그 두 사람을 죽여 버렸다.  이렇게 하여 데메드리오는 그 나라의 왕좌에 올랐다. 그 때에 자기 민족을  반역하고 율법을 어긴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알키모스라는 자와 함께 그를 찾아 왔다. 이자는 그들의 수령으로서 대사제직을 노리던 자였다. 그들은 왕에게 자기 민족을  고발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유다와 그의 형제들은 폐하의  친구들을 몰살시켰고  우리들을 고향에서 추방하였읍니다. 그러니 폐하께서 가장 믿으시는 분을 한 분 그리로 보내시어 유다가 우리들을 살육하고 임금님의 영토를  짓밟은 그 참상을 보게 하시고 그분으로 하여금 그 원수들과 동조자들을  모두 벌하게 해 주십시오."

 

 

바키데스의 유다 공격

 

   이 말을 듣고 왕은 자기 친구 중에서 바키데스를 뽑았다. 바키데스는 유프라테스강 서쪽 지방의 영주로서  온 왕국에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사람이었으며 왕의 충신이었다. 왕은 이스라엘 민족의 배반자 알키모스를  대사제로 임명하여 바키데스와 함께 보내며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복수하라고 명령하였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대군을 이끌고 출발하여 유다 땅에 도착하였다. 바키데스는 유다와 그 형제들에게 평화의 사절을 보냈다. 그러나 그것은 속임수였다. 유다와 그의 형제들은 적이 대군을 이끌오는 것을 보고 그들의 평화제안을 믿지 않았다.그러나 율법학자단은 알키모스와 바키데스에게 가서 일을 공정하게 처리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스라엘 쪽에서 처음으로 화평을 제의한 사람들은 하시딤이라고 하는 경건파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아론의 후예 한 사람이 사제로 군대와 함께 와 있읍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을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던 것이다. 과연 알키모스는 대표단에게 평화를 보장하며,     "우리는  당신들에게나 또 당신들의 친구에게도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을 것입니다" 하고 맹세하였다. 이렇게 그들을 믿게 한 후에 알키모스는 그들 중에서 육십 명을 체포하여 그날로 죽여 버렸다. 이 사건을 예언한 다음과 같은 성경말씀이 있다.

        당신 성도들의 살이 사방에 흩어지고

        그 피가 예루살렘 주변에 흘러도

        그들을 묻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읍니다.

   그리하여 온 백성은 공포에 싸여 떨며 서로 말하였다.    "저자들에게는 진실도 정의도 없다. 제 입으로 한 맹세도 협약도 다 깨뜨려 버렸다."  바키데스는  예루살렘에서 철수하여 벳자잇으로 가서 진을 쳤다. 거기에서 그는 군대를 시켜 자기에게 귀순해 온 탈주병들과 이스라엘 백성 여럿을 잡아 죽여 깊은 우물에 넣었다. 바키데스는  그 지방을 알키모스에게 맡긴 다음 그를 보호하기 위한 군대를 남겨 놓고 왕에게로 돌아 갔다. 알키모스는 대사제로서의 위신을 지키느라고 안간힘을 썼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괴롭히는 자들은 모두  그에게로 모여 들었다. 그들은  유다 땅을 지배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몹시 못되게 굴었다. 알키모스와 그 일당이 이방인들 이상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갖은 악행을 저지르고 있음을 보고 유다는  유다 땅을 두루 다니면서  이탈자들에게 보복하고 그들이 지방으로 돌아 다니지 못하게 했다. 알키모스는 유다와 그의 군대가 점점 강해지는 것을 보고 도저히 그들에게 맞설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왕에게로 돌아 가서, 유다와 그 부하들이 흉악한 자들이라고 고발하였다.

 

 

니가노르의 패배

 

   이 말을 듣고 왕은 명성 높은 장군 가운데서 한 사람인 니가노르를 유다 땅으로 보내며 그 민족을 없애 버리라고 명령하였다. 니가노르는  이스라엘을 미워할 뿐 아니라 적대시해 오던 사람이었다. 니가노르는 대군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올라 가 유다와 그 형제들에게 거짓 평화사절을 보내며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 전쟁을 하지 맙시다. 나는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당신과 만나기 위해 부하 몇 사람만 데리고 왔읍니다,"  이렇게 하여 니가노르는 유다가 있는 곳으로 갔고 그들은 사로 평화롭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러나 적군은 유다를 납치해  갈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유다는 니가노르가 딴 생각을 품고 자기에게 왔다는 정보를  듣고는 무서운 생각이 들어 그를 다시 만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니가노르는 자기의 계획이 탄로난 것을 알고 카파르살라마 부근으로  진군하여 유다와 맞서 싸웠다. 니가노르군은 약 오백 명이 죽었고 살아 남은 자들은  다윗의 도시로 도망쳐 갔다.

   이 일이 있은 후에 니가노르는 시온산으로 올라 갔다. 사제들이 성소에서 나와 백성의 원로들과 함께 그를 환영하고 왕을 위한 제물이라고 하면서 번제물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니가노르는  그들을 비웃고 조롱하며  거만한 말을 지껄이면서 그들에게 침을 뱉고, 분노를  터뜨리며 맹세하였다.    "만일 유다와 그 군대를 당장 내 손에 넘겨 주지 않으면 내가 승리하고 돌아 온 후에 이 건물을 불살라 버리리라."   말을 마치고 그는 화를 내며 떠났다. 사제들은 성전으로 들어 가 제단과 성소 앞에 서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였다.    "이 집은  당신께서  세워 주신  집입니다. 이 집은 당신 백성이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곳이며 당신께 기도드리고 간구하는 곳입니다. 저자와 저자의 군대에게 원수를 갚아 주시고 한칼로 저들을  죽여 주십시오. 저들의 범한  여러 모독을 잊지 마시고 절대로 살려 두지 마십시오."     니가노르는  예루살렘을 떠나  벳호론에서 진을 쳤고 거기에 시리아에서 온  원조부대가 합세했다. 유다는 유다대로  군사 삼천 명으로  아다사에 진을 쳤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를 올렸다.     "옛날 아시리아왕이 보낸 자들이  당신을 모독했을 때에 당신의 천사가 나타나서 적군 십 팔만 오천 명을 죽였읍니다. 오늘도 니가노르가 당신의 성전을 모독하는  말을 했음을 다른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우리가 보는 앞에서 그의 군대를 무찔러 주십시오. 그 저지른  행실대로  저 악한 자를  다스려 주십시오."     아달월 십 삼일에 양쪽 군대는 교전하였는데 니가노르군이 참패를  당하고 니가노르 자신은  그 전투에서 제일  먼저 죽었다. 그의 군대는 니가노르가 죽은 것을 보고 무기를  내던지고  도망쳤다. 유다의 군대는 신호의 나팔을  불어대면서  그들을 뒤따라  아다사에서부터 게젤까지 온종일  추격하였다. 게다가 부근의 모든 유다 마을로부터  사람들이 나와 패잔병의  길을 막았기 때문에 그들은 되돌아 설 수 밖에 없었으며  그리하여 그들은  한 사람도 살아 남지 못하고 모두 칼에 맞아 죽었다. 유다의 군대는 많은 물자를 탈취하고 전리품을 거둔 다음 니가노르의  머리와 그가 거만하게 내저었던 오른팔을 잘라 가지고 돌아 와서 예루살렘 사람들이 보는 곳에 걸어 놓았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기쁨에 넘쳐 그 날을 큰 명절과 같이 경축하였다. 그 날을 기념하여 매년 아달월 십 삼일을 경축일로 정하였다. 유다 땅은 그 때부터 얼마 동안 평화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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