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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베오 상 9장 1절 ~ 10장 8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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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숙 [sjs88] 쪽지 캡슐

2003-07-21 ㅣ No.465

베레아 전투

 

 9   데메드리오왕은 니가노르가 전장에서 죽고 그 군대는 멸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바키데스와 알키모스를 다시 유다 땅으로 보내어 오른쪽 진영을  담당한 정병을 인솔하게 했다. 그래서 그들은 갈릴래아로 통하는 길로 진군하여 아르벨라 지방의 메살롯을 향해 진을 쳤다. 그리고 그 지방을  점령한 후 많은  사람을 살육하였다. 셀류싯 왕조 백 오십 이년 정월에 그들은 예루살렘을 향해 진을 쳤다가  보병 이만과 기병 이천을 거느리고 그 곳을  출발하여 베레아로 향하였다. 그 때 벌써 유다는 정예병력 삼천을 데리고 엘라사에 진을 치고 있었다. 그들은  적군의 수효가  많은 것을 보고 몹시 무서워하여 많은 자들이  진영을  탈출, 남은 병력은 불과 팔백 명뿐이었다. 싸움이 임박한 마당에 많은  병사들이 탈출한 것을 안 유다는 병력을 다시 모을 만한  시간이 없으었으므로  기가 죽었다. 유다는 몹시 낙담되었으나     "용기를 내어라. 혹시 우리가 그들과 맞서서 싸울 수 있을지도 모르니 적을 향해 돌진하자" 하고 남은 자들을  격려하였다. 그러나 부하들은  유다의 생각을 돌이키려고,   "그것은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우리의 목숨을 아껴 두었다가 동료들과 다시 와서 싸우도록 합시다. 지금 우리는 수효가 너무나 적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래도 유다는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적군을 보고  도암가다니 그런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만일 우리가  죽어야 할 때가 왔다면 우리 동포를 위해서 용감하게 죽자. 우리의 명예를 더럽힐 만한 일은 조금도 남기지 말자."

 

 

유다의 전사

 

   그 때에 적군은 진지를 떠나 유다의 군대와 맞서 싸우려고 진격해 왔다. 그들의 기병대는 두 부대로 나뉘었고 투석부대와 활쏘는 부대와 특전대들이 모두 다투어 선봉을 섰다.  바키데스는 군대 오른쪽에 서 있었고 주력부대는  나팔을 불면서 군대 양측면에서 진격해 나왔다. 유다가 인솔하는 군대도 나팔을 불었다. 양쪽에서 터진 고함소리로 온 땅이 진동하였고 전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되었다. 유다는  바키데스와 그 군대의 주력이 진영 오른쪽에 있는 것을 보고 자기 주위에  몰려 든 용감한 군사들과 함께 적군의  오른쪽을 분쇄하여 아조토산까지 그들을 추격해 갔다. 왼쪽 진영에 있던 적군은  자기 진영의  오른쪽이 부서지는 것을 보고 공격 방향을  바꾸어 유다와 그 군대의 배후를 찔렀다. 전투는  격렬하게 되어 양군이 모두 많은 사상자를 냈다. 이 전투에서 유다가 전사하였고 그의 부하들은  도망쳤다.

 

 

유다의 장례

 

   유다의 형제 요나단과 시몬은 유다의 시체를 거두어 모데인에 있는 선조들의 묘지에 묻었다.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몹시 울었다. 그들은  여러 날 동안 통곡하면서 그의 죽음을 슬퍼하여,     "이스라엘을 구출한 영웅이 죽다니 웬말인가" 하고 울부짖었다. 유다의 행적과 그가 치른 전쟁과 그의 빛나는 공적과 위대한 명성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나 많아서 이루 다 기록할 수가 없다. 유다가 죽은 후 이슬아렐 전 영토에서 율법을 저버린 자들이 머리를 들기 시작하엿고 악을 일삼는  자들이 사방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게다가 때마침  큰 기근이 있어 온 나라가 그들 수중에 넘어가고 말았다.

   바케데스는  이스라엘 민족의 반역자들을 뽑아 각 지방을 다스리레 하였다. 그들은 유다의 편이었던 사람을 찾아 내어 바키데스에 데리고 갔다. 바키데스는  그들을 웃음거로 만들어 보복하였다. 이렇게 하여 이스라엘 예언자들이 자취를 감춘 후 처음 맛보는 무서운 압박을 받게 되었다.

   그리하여 유다의 동지들이 모두 모여 요나단에게 말하였다.     "당신의 형 유다가 죽은 후로 유다처럼 바키데스나 우리 민족을 증오하는  자들 같은 원수들을 대항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읍니다. 그래서 우리를 영도하는 자도자로 삼았읍니다."

   그 때부터 요나단은 유다 민족의 영도권을 잡고 자기 형 유다의 후계자가 되었다.

 

 

 

요나단가 바키데스의 전투

 

   바키데스는  이 사실을 알고 요나단을 없애 버리려 하였다. 그러나 요나단과 그의 형 시몬, 그리고 그의 모든  동지들은  그 계획을 알고 드고야 광야로 후퇴하여 아스팔못  가에 진을 쳤다. 바키데스는  그 날이 안식일인 것을 악고 군대를 이끌고 요르단을 건넜다.

   요나단은  민중을 맡아 다스리는  자기 형 요한을 동지인 나바테야 사람들에게 보내어 유다인들의 짐을 맡아 보관해 달라고 청하게 했다. 그런데 메드바 지방의  암브리 사람들이 나타나 요한을 잡고, 그가, 가지고 가던 물건을  모두 빼앗아 버렸다. 이 일이 있은 후  얌브리 사람들에게 큰 결혼식이 있었는데 요나단과 그의 형 시몬은 그들이  가나안의 한 귀족의 딸인 신부를 데리고 성대한  행렬을 지어 나다밧으로부터 오고 있다는 정보를 들었다. 그래서 요나단 형제는  자기들의 형 요한의 죽음을 생각하고 산으로 올라 가 숨어서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마침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많은 짐을 지고 가는 행렬이  눈에 들어 왔다. 그리고 신랑과 함께 신부 일행을 맞으러 나오고 있었다. 잠복해 있던 요나단 형제는 달려들어 그들을 죽여 버렸다. 거기에서 유다인들은 얌브리인의 물건을  모두 전리품으로 차지하였다. 그리하여 그 결혼식은 울음바다가 되었고 그들의 음악소리는 통곡소리로  번하게 되었다. 이렇게 요나단 형제는 자기들 형의 원수를 갚고 돌아 와 요르단강 가의 습지에 이르렀다.

   이 소식을 들은 바키데스는 안식일을 골라 큰 군대를 거느리고 요르단강 강에 도착하였다. 그 때 요나단은 부하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는 살기 위해 이제 힘써 싸워야 할 때가 되었다. 오늘의  형편은  어제나 그제와는 같지 않다. 보아라. 우리는 이러나 저러나 싸울 수밖에 없다. 우리 뒤에는  요르단강이 가로 막혔고  좌우에는  습지와 숲이 둘러 있으니 비켜 나갈 길이 없다. 원수의 손에서 구출해 달라고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자."

 

   전투가 시작도다지 요나단은  칼을 뽑아 들고 바키데스를 치려 했다. 그러나 바키데스는  물러서며 그의 칼을  피하였다.  그 때에 요나단과 그의 일행은 요르단강을 헤엄쳐 건너편으로 갔다. 그러나 적군은 요르단강을 건너서까지 그들을 추격해 오지는 않았다. 그 날에 바키데스군에서 죽은 사람은 천 명에 달하였다. 예루살렘에 돌아 온 바키데스는  예리고, 엠마오, 벳호론, 베델, 딤나다, 바라돈, 데폰 등 유다 도시들을 요새화하여 높은 성으로 쌓고 대문을 만들어  세워 빗장으로 단단히 잠갔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을 향하여 싸울 수비병을 세워 놓았다. 그뿐 아니라 벳술과 게젤, 예루살렘의 요새를  더욱 견고하게 하여 거기에다가 군대를 배치하고 식량을 쌓아 놓았다. 그리고는 그 지방 지도자들의 아들들을  인질로 잡아다가 예루살렘 요새 안의 감옥에 감금해 놓았다.

 

 

알키모스의 죽음

 

   셀류삿 왕조 백 오십 삼년 이월에 알키모스는 성소 내전의 벽을 헐라고 명령하였다. 예언자들의 업적을  없애 버리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벽을 헐기 시작했을 때에 알키모스가 갑자기 졸도하여 작업이 중단되었다. 그는 입이 마비되고 혀가 굳어져서 한 마디도 말할 수 없었으며 가사에 관해서도 한 마디 지시를 내릴 수 없었다. 알키모스는 심한 고통끝에 마침내 죽었다. 알키모스의 이와 같은 죽음을 본  바키데스는 왕에게로 돌아 가 버렸다. 그 후 이 년 동안  유다 땅은 평온하였다.

 

 

벳바시의 죽음

 

   율법을 저버린 자들이 모두 모여 모의를 하다가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 요나단과 그 일당이 태평세월을 즐기고 있지 않소? 그러나 바키데스르 다시 모셔 옵시다. 그러면 하룻밤 사이에 저들을 모두 붙잡을 수 있을 것이오."    이렇게 모의를 하고 그들은  바키데스에게 가서 일을 의논하였다. 바키데스는  대군을  이끌고 떠나면서 유다에 있는  자기의 모든 동맹원들에게 비밀편지를 보내오 요나단과 그의 부하들을 잡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그들의 계획이 탄로되어 일을 실패로 끝났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흉악한  음모의 주동자들이었던 유다 사람 약 오십 명을  잡아 죽였다. 그리고 요나단과 시몬의  그 부하들과 함께 광야에 있는  벳바시로 물러가 전에  파괴된 곳을  수축하고 그 곳을  견고하게 만들었다. 바키데스는  이것을  알고 유다 지방에 있는  자기 편에 호응을  청하고는  전 군대를 소집,  진군하여  벳바시를  향해 진을 쳤다. 성을 공격하는 기루를 만들고 여러 날  성을 공격하였다. 요나단은 자기 형 시몬을 그 성에 남겨 놓고 얼마 안되는 병력을 이끌고 시골로 떠났다. 그는 천막생활을 하고 있는 오도메라와 그 형제들 그리고 바시론 가문의  사람들을  굴복시켰다. 그들고 요나단의 군대에 합세하여 쳐올라 가기 시작했다. 한편  시몬과 그의 군대는  성에서 나와 성을 공격하는 적군의  기구를 불살라 버렸다. 이렇게 양면에서  비키데스를  공격하였기 때문에 그의 작전과 공격은 수포로 돌아 가 바키데스는  대패하여 큰 곤경에 빠지게 되었다. 그래서 바키데스는 유다 사람들을 치자고 권유했던 악한들에게  크게 화를 내어 그들을 많이 죽이고 자기 나라로  돌아 갈 결심을 하였다. 이 사실을 안 요나단은  사신을 보내어 바키데스에게 화평을 맺고 포르를 돌려 보내 달라고 했다. 바키데스는  이 제안을 받아 들여 그대로 하였다. 그리고 자기가 살아 있는 한  요나단에게 절대로 해악을 끼치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전에 유다 땅에서 잡아 온 포로들을 놓아 주었다. 그 후에 바키데스는 자기 땅으로 돌아 가 다시는 유다인들의 땅에 발을 들여 놓지 않았다. 이스라엘에 다시는 전쟁이 없었으며 요나단은 미그맛에 자리를 잡고 백성을 다스리며 이스라엘 민족 반역자들을 모두 없애 버렸다.

 

 

데메드리오와 요나단

 

 10   셋류삿 왕조 백 육십년에 안티오쿠스의 아들 알렉산더  에피파네스가 데메드리오의 영토 포톨레마이스에 와서 그 도시를 점령해 버렸다. 그 곳 주민들이 자기를 환영하는 것을 보고 자기가 왕이라고 선포했던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데메드리오왕은 큰 군대를 모아 그를  쳐부수려고 출전하였다.  데메드리오는 한편 요나단에게 우호적인  편지를 보내어 그에게 높은 지위를 약속하였다. 데메드리오는,    "요나단이 알렉산더와 결탁하여 우리를 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우호관계를 맺는 것이 좋겠다" 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들이 요나단과 그의  형제들과 그 동포들에게 저지른 온갖 악행을  요나단이 생각할지도 모든기 때문이었다. 데메드리오는 요나단에게 자기 군대를 모집하여 무장시킬 수 있는 권한을 주어 동맹으로 삼았다. 그리고 예루살렘 요새 안에 잡아 두었던 인질을  돌려 보내라고 부하들에게 명령하였다.

   이 제의를 받은 요나단은  예루살렘에 와서 온 주민과 예루살렘 요새의 군대들의 들을 수 있도록 데메드리오의 편지를 읽었다. 그들은 데메드리오왕이 요나단에게 군대를 모집할 수 있는 권한은 주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를 몹시  무서워하였다. 요새를  지키던  군대들은  인질을  요나단에게 내주었고 요나단은  그들을 부모들에게 돌려 보냈다. 요나단은 예루살렘에 주둔하면서 그 도시를 수축하고 건설하는 일에 착수하였다. 그리고 도시의 방어를 위해 성벽을 쌓고 네모진 돌로  시온산을  둘러 쌓도록 일꾼들에게 명령하였다. 모든 일이 명령대로 잘 진행되었다. 바키데스가 세운  요새 안에 살던  이국인들은 이것을 보고  모두 도망쳤다. 그들은 저마다 살던 곳을 버리고 자기 고향으로 돌아 갔다. 그러나 벳술은  파난처였기 때문에 율법과 계명을 저버린 몇몇이 그 곳에 남아 있었다.

 

 

알렉산더 발라스와 요나단

 

 그런데 알렉산더왕은 데메드리오가 요나단에게 편지를 보내어 여러 가지 약속을 했다는 정보를 들었다. 그리고 요나단과 그 형제들의 전쟁 이야기와 그들이 빛나는 공적과 그들이 겪은 노고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 그래서 왕은,     "그와 같은 인물을  어디서 얻을 수 있겠는가? 지금이야말로 그를 친구로 삼고 우리의 동맹자로 삼아야 할 때이다" 하고 말하고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요나단에게 보냈다.    "알렉산더왕이 요나단 형제에게 인사드립니다. 나는 당신이 용감한 사람이며 우리의 친구가 될 만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읍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  당신을 귀국의 대사제로 임명하고 왕의 친구라는 칭호를 주는 바입니다. 나의 편이 되어 주시고 나의 친구가 되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알렉산더는 이 편지와 함께 진홍색 사제복과 황금관을 요나단에게 보냈다.

   이렇게 하여 요나단은 셀류싯 왕조 백 육십년 칠월  초막절을 기하여 거룩한 사제복을 입었다. 그리고 군대를 모집하여 충분한  무기를 준비하였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은  데메드리오왕은 몹시 마음이 아파서 이렇게 말하였다.     "알렉산더가 우리보다 먼저 유다인들과 유호관계를 맺고 자기 지위를 굳히고 있으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나도 유다인들에게 편지를 써서 그들을  결려하고 그들에게 높은  지위와 선물을  약속하여 그들의  도움을 청해야겠다."   이렇게 말하고 그는 유다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써서 보냈다.

   "나 데메드리오왕이 유다 국민에게 인사합니다.나는 당신들이 우리와의 협약을  지키고 우호관계를 계속하여 우리의 적과 동조하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기쁘게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게속하여 우리와의 신의를   지켜 주시기를 바랍니다. 당신들이 우리에게 보여 준 호의에 대해서는  후히 사례하겠읍니다. 당신들에게 여러 가지를 면제해 줄 것이며 여러 가지 선물을 내릴 것입니다. 지금 당장  당신들에게 자유를 주고 또 나에게 바치는  공물의 삼분의 일세와, 과일의 이분의 일세를 오늘부터 면세해 주는 바입니다. 나는 오늘부터 사직하여 언제까지라도 유다 나라와  사마리아, 갈릴래아, 그리고 유다에 편입된   세 지역에서 지금 말한  세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예루살렘과 그 지역은 신성한 장소로 인정하고 십분의 일세와 그 밖의 다른 조세를 면제하는 바입니다. 나는 또한  예루살렘 요새의 지배권을  포기하고 대사제에게 그것을 양도합니다. 따라서 대사제는  이 요새를 수비하기 위하여 자기가 뽑은 군대를  거기에 비치할 수 있읍니다. 유다 땅에서 나의 왕국 각처로  끌려 온  유디인 포로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무조건 자유석방합니다. 그리고  아무도  유다인에게서 가축세를 받아 내지 못할 것입니다. 유다인의 모든 축제일과 안식일과 초하루 축제와 그 밖의 축일로 정해진 날은 물론  이 축제일들의 전 삼일 후 삼일간 온 왕국에 사는 유다인들이 자유롭게 쉴 수 있는 날로 선포합니다. 이런 날에는 누구도 유다인에게 강제로 일을 시키거나 어떠한 부담도 줄 수 없읍니다. 유다인은  삼만 명까지 왕의 군대에 편입될 수 있고 그들은 왕의 모든 군대와 똑같이 대우를 받을 수 있읍니다. 유다인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여러 곳에 있은 왕의 큰 요새에 배치될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왕국의 요직을 맡아 왕의 신임을 얻게 될 것입니다. 유다인들을 다스리고 지휘할 사람들은 유다인 중에서 나올 것이며 유다 민족의 율법에 따라서 생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유다 땅에서 왕명으로 적용될 것입니다. 사마리아 지방에서 유다로 편입된 세 지역은  완전히 유다 땅이 되고 한 사람의  영주 밑에 속하게 될 것이며  대사젱 이 외의 아무런 권위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성소에 필요한 경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나는 프톨레마이스와 그 인접지역을 예루살렘 성소의 소유로  줍니다. 또 내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지역에서 받아 들이는 세입 중 해마다 은 만 오천 세겔을  성전에 바치겠읍니다. 전에 성전 금고에 들어 오지 않았던 보조금을 징수하여  성전에 바쳐 앞으로 성전을 위하여 쓰도록 하겠읍니다. 또 해마다  성전 수입에서 나라에 바치던 세금 은 오천 세겔더 면제합니다. 이 돈은  성전을  관리하는  사제들이 몫이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성전과 그 경내에 피난해 들오 오는 사람은 비록 왕에게 빚을 졌거나 다른 어떤 빚을 진 자라 하더라도 그 안에서 안전이 보장되고, 그가 나의 왕국 안에서 가지고 있는 소유물도 안전히  보장됩니다. 성전을  건축하거나 수축하는 모든 비용은 나의 금고에서 지불될 것이며 예루살렘 성벽의 건축과 그 주위를 강화하는 비용과 유다 전역에 성을 쌓는 모든 비용도 역시 왕의 금고에서 지불될 것입니다."

 

 

요나단의 불신과 알렉산더의 승리

 

   요나단과 그 백성은 이 말을 듣고  믿어지지 않아 그 제의를 받아 들이지 않았다. 데메드리오가 이스라엘에서 저지른 엄청난 악행과 자기들을 모비 괴롭혔던 사실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오히려 자기들에게 먼저 호의를 표시한 알렉산더를 더 좋게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알렉산더와 꾸준히 동맹관계를 유지했다. 그 때 알렉산더왕은  대군을 모집하여 데메드리오를 치려고 진을 쳤다. 두 왕이 교전한 끝에 데메드리오의 군대가 도망쳤고 알렉산더는 데메드리오를 추격하여 무찔렀다. 그는 해가 질 때까지  분전하였고 데메드리오는 그 날 전사하였다.

 

 

알렉산더 발라승와 프톨레매오의 맹약

 

   그 후 알렉산더는 에집트 왕 프톨레매오에게  사신을 보내오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하였다.     "내가 이제 내 나라에 돌아 와서 조상 때부터 내려 오는 왕좌에 오르고 왕권을 잡았읍니다. 그리고 데메드리오를 쳐부숨으로써 모든 영토의 영도권을 잡았읍니다. 나는 데메드리오와 교전하여 그와 그의 군대를 무찔렀고 그의 왕좌를 차지했읍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가 서로 우호관걔ㅖ를 맺고  당신의 딸을  내 아내로 주십시오. 그러면 나는 당신의 사위가 될 것이고 나는 당신의 마음에 들 만큼  당신과 당신의 딸에게  예물을 보내겠읍니다."   프톨레매오왕은  이 제안을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당신이 조상들의 땅으로 돌아 와 그 왕좌를 계승한 그 날이야말로 복된 날입니다. 나는 당신의 편지에 써 있는 대로 하겠읍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만나  볼 필요가 있으니 프톨레마이스에서 나를 맞아 주십시오. 당신의 원대로 내가 당신의 장인이 되겠읍니다."    

   그 후  프톨레매오는 딸 클레오파트라를 데리고 에집트를 출발하여 백 육십 이년에 프톨레마이승에 도착하였다. 알렉산더왕은 그를 영좁하였고 프톨레매오는 딸  클레오파트라를 알렉산더의 아내로 주어 프톨레마이스 왕의 결혼식답게 굉장히 호화로운  예식을 올렸다. 그 때에  알렉산더왕은  요나단에게 편지를 보내어 자기를 만나러 오라고 하였다. 요나단은 위풍을 떨치며 프톨레마이스에 이르러 두 왕을 만났다. 요나단은 두 왕과 그 친구들에게 은과 금과 그 밖의 많은 예물을 바치고 환심을 샀다. 몇몇  율법을 저버린  이스라엘의 악당들이  몰려 와서 그를 고소했지만  왕은 그들이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왕은 오히려 요나단의 옷을 벗기고 그 대신 진홍의 사제복을 입히도록 명령하였다. 부하들은 그 명령대로  그대로 하였다. 그뿐 아니라 왕은 요나단을 자기 옆에 앉히고 신하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분과 함께 시내로 들어 가서 무슨  구실로라도 이분을 고발하지 못하도록 하고 조금도 그를 괴롭히지 말도록 모든 사람들에게 이르리."  요나단이  왕의 명령으로 영광을 차지하고 진홍색  사제복을 입은 것을 보고 그를 비나하던  자들은  모두 도망쳐 버렸다. 이렇게 왕은  그를 영광스럽게 하였고 가장 친한  친구 중의 하나로 삼아  그 지방의 군사 및 행정 책임자로 세웠다. 요나단은 매우 기뻐하며 평화스럽게 예루살렘에 돌아 왔다.

 

 

 

아폴로니우스와의 전쟁

 

   백 육십 오년에 데메딀오왕의 아들  데메드리오는 그레데섬을 떠나 선조들의 땅에 이르렀다. 이 소식을 들은  알렉산더왕은 몹시 걱정이 되어 안티오키아로 돌아 왔다. 데메드리오왕은 코일레 시리아의 총독인 아폴로니우스를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아폴로니우스는 대군을 모집하여 얌니아에 진을 치고 대사제 요나단에게 다음과 같은 전갈을 보냈다.    

   "우리에게 반항하는  자는 그대뿐이다. 그대 때문에 나는 웃음거리가 되고 조롱거리가 되었다. 그대는 어찌하여 그 산 속에서 세도를 부리며 우리에게 대항하고 있는가? 만일 그대에게 그대의 군대를 가지고 우리와 싸울 자신이 있거든 우리가 있는 평지로 내려 오라. 여기서 한번 겨루어 보자, 여러 도시의 군대가 나를 지지하고 있다. 그대는 내가 누구이며 또 우리를 돕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사람들에게  물어 보아라. 그러면 그대는 그대의 조상들이  그들의 땅에서 싸우다가 두 번이나 패주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따라서  우리와 도저히 맞설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 곳은  돌 한 개 자갈 하나 없는 곳이며 숨을 곳도 없는 평지다. 이런 곳에서 그대는  이토록 많은 나의 기병과 보병에 도저히 대항할 수 없을 것이다."

   아폴로니우스의 말을 들은 요나단은 몹시 분개하였다. 그리하여 병력 일만을 뽑아 예루살렘을 떠났다. 형인 시온도 그를 돕기 위해 합세화였다. 요나단은  요빠성을 향해 진을 쳤다. 그 성에는  아폴로니우스의 수비대가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성 사람들은 성문을 잠그고 요나단을 들어 오지 못하게 하였다. 요나단의  군대는 그 성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성 사람들은 무서워서  성문을 열어 주었고 이렇게 하여 요나단은 요빠성을 점령하였다. 아폴로니우스는 이 소식을 듣고 기병 삼천과 큰 군대를  정비하여 아조토를 향해 진군하여  요빠성을  지나가는  체하면서 평야로  진군하였다. 그는 자기의 막강한 기병대를  믿고 이런 일을  했던 것이다.  요나단은  아폴로니우스를 추격하여 아조토까지 가서 적군과 맞붙어 싸웠다. 아폴로니우스는 기병 천 명을 미리 유다군 후방에  숨겨 놓았었다. 그러나 요나단은  복병이 자기 후방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적군은 요나단의 명령대로  그 곳을 잘 방어하였다. 적군의 말들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이렇게 적의 기병대가 지쳐 있을 때에 시몬이 군대를 이끌고 나타나 적의 주력부대와 맞서 싸웠다.    적은 시몬에게 대패하여 도망갔고 기병대도 평지에서 산산이 흩어졌다.  적은 목숨을 건지기 위해 아조토로  건너 가서  그들의 우상 다곤을  모신 신전으로 들오 갔다. 그 때에 요나단은  아조토와  도피한  적군들을  불살라 버렸다. 요나단은 계속 진군하여 이스칼론성을 향해  진을 쳤다. 성 사람들이 성문을 열고 나와 그를 성대하게 맞아 들였다. 요나단과 그의 군대는  많은 전리품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돌아 왔다. 알렉산더왕은  이와 같으  보고를 받고 요나단에게 더욱 큰 영예를 주었다. 그뿐 아니라 , 관습에 의해 왕이 친족에게만 주게 되어 있는 황금띠 죔쇠를   그에게 보냈고 에크론과 거기에 딸린  지역의 영도권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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