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동성당 게시판

[멋진 배낭여행-5] 태국

인쇄

장정대 [changjhon] 쪽지 캡슐

1999-10-26 ㅣ No.1043

 

 ◎세계인과 대화하는 배낭여행 5회 {치앙마이 트레킹}

 

 - The more you talk, the more you are satisfied -

   (대화를 많이 하면 할수록 만족도도 커진다.)

 

방콕을 출발한 지 꼭 일년만에 치앙마이에 도착한 셈이군. 한 해가 바뀌었으니까. 700Km 이상을 달렸으니 결코 짧은 거리는 아니다. 치앙마이가 가까워지면서 밝은 햇살을 받기 시작한다. 새로운 곳을 찾을 때마다 떨칠 수 없는 긴장 흥분 기대, 바로 배낭여행의 참 맛이다.

 

아침 7시쯤에 도착했다. 터미널이라고 할 것도 없이 그저 소박한 시골 마을의 어느 버스 종점에 도착했다고 하는 것이 더욱 운치 있겠다. 각자의 배낭들을 챙겨 들고 나오자마자 대기 중이던 발빠른 호객꾼들이 자신의 게스트 하우스가 최고라며 유치작전에 총력전을 펼친다. 서구 젊은이들은 대체로 그들끼리 잘 어울린다. 즉석에서 얘기를 나눈 뒤 곧 룸메이트를 구한다. 흔히 남녀로 구성된다. 우리의 시각으로 보면 서로 친한 친구로 보일 때가 많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들에겐 실리주의와 합리주의가 우선하기 때문에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일 뿐이다.

 

어쨌든 그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흩어진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의 노하우로 보다 싸고 편안한 곳을 찾기로 했다. 동네 가운데로 진입하다가 또 다른 우리 한국인(철규 씨) 한 명과 합류하게 된다. 우리는 몇 집을 알아 본 후 한 집을 숙소로 결정한다. 일단 배낭을 풀고 빵과 커피로 아침을 때운 뒤 취침이다. 간밤의 긴 버스 여행의 여독을 풀기 위해서였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동서양 어딜 가나 배낭족들이 모이는 곳엔 20대의 서양인 배낭족들이 숫적으로나 질(국제감각, 경제감각, 영어구사 능력-비영어 사용권에 한해...)적으로 전체의 분위기를 압도한다. 그들은 소위 선진국내지 강대국의 젊은이들이다. 즉 여행 문화가 앞 선 나라들의 공통점은 바로 힘있는 나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서구 젊은이들의 활달한 문화 활동(=경제활동)이 가능한 것은 역시 그들의 부모와 모든 기성 사회인의 이해와 협조 그리고 격려없인 불가능하다고 하겠다. 우리에게도 거시적 안목의 투자 마인드가 절실하지 않나 생각해 본다.

 

I think that every country that has its own capacity or power(능력과 힘) to become a strong country in the world depends on(좌우된다) many factors, most of which have an effect on one another. Power depends to a great extent(넓은 의미에서) on a nation’s natural resources of course, such as coal, gold,... and the number of tourism including backpackers.(배낭 여행자를 포함한 관광객의 수)

 

오후 3시쯤 같이 모여 시내 구경에 나섰다. 1월 달임에도 한낮엔 굉장히 덥다. 태국 제 2의 도시인데도 방콕에 비해선 너무나 조용한 전원도시 같은 느낌을 받는다. 우선 방콕의 큼직한 자동차 소음과 숨막히는 매연의 현장을 떠올려 볼 때 그렇다. 이곳의 물가 또한 싼 점이 맘에 든다. 바나나가 자그마하지만 맛은 결코 적지 않다. 한 다발에 5B(150원)정도. 툭툭이 운전자들이 수시로 접근하며 탈것을 권한다. 그런가 하면 삼발이 자전거 운전자도 생존 경쟁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뜨거운 낮이라 그런지 정말 한산한 분위기다. 코코넛 나무 그늘에 삼발이 자전거를 세워 놓고 세상 편하게 낮잠을 즐기는 가난하지만 여유롭게만 보이는 장면들이 참 이채롭다. 아이로니컬 하게도 행복 지수의 높은 순위는 저소득층이 차지한다는 통계가 과장은 아닌 것 같다.(미국 뉴욕 할렘가의 유스호스텔에 머물때 네델란드 호주 케나다 일본 베낭족들과 함께 같은 테마를 놓고 얘기를 나눈 적도 있다. 빈민층으로 대표되는 그곳 흑인들의 밝고 명랑한 표정과 행동을 보면서 과연 행복의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가에 대해....)

 

오후 6시쯤, 우리는 싸구려 먹거리 판들이 늘려 있는 곳에서 이것저것 부담 없이 포식을 한다. 열대 지방 음식 문화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이곳의 튀김요리 또한 괜찮은 편이다. 싸고 맛있다는 뜻이다. 철규씨의 제안에 따라 오늘 저녁은 밤새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기로 한다. 중국산 술도 한 병 사고 안주감으론 이곳의 특색인 각종 과일들로 구색을 맞춘다. 철규씨에게는 이곳 치앙마이가 이미 낯선 곳이 아니었다.

 

술이 한 두잔 오가며 각자의 인생철학 보따리를 풀어 제친다. 별로 말이 없던 미남 청년 강현이도 알콜의 힘을 빌려 나름대로의 자신이 선택한 배낭여행의 깊은 뜻을 쉬운 말로 풀어준다. 우리 재숙이도 한 수 거들며 맞장구를 친다. 사랑하는 조국과 민족을 떠나... 이렇게 정월 초하루 깊어 가는 밤에... 이국 땅에서 웬 사서 고생을 하고 있을까!!??, 넋두리 아닌 넋두리를 하게 된다...누구나 배낭메고 낯선 이국의 밤하늘 아래서 느껴 보는 나라사랑하는 마음과 고마움에서 비릇되는 정서일 것이다.

 

"내가 본 터키에서의 쿠르드 난민, 싱가폴 호스텔에서 본 유고 보스니아 난민 등..., 그들에겐 사랑하고 감사할 조국도, 돌아갈 조국도 없었다. 우매한 인간들은 뭔가를 잃은 다음에야 비로소 그 소중함을 안다고 하지 않던가. 국가와 민족에 대한 것 역시 그렇다." 어쨌든 그럴듯한 감상적 분위기를 잡아 보자고 하는 소린데, 갑자기 "무슨 말씀을" 하면서 철규씨가 포문을 열기 시작한다. " 타국에서 빵과 가난과 고독의 눈물을 함께 삼켜 보지 못한 사람은 자기 조국과  자기 인생에 대한 깊이를 알 수 없어요." 그의 메가톤급 발언에 갑자기 숙연한 분위기로 바뀌고... 뭐, 독립 운동가들 같은 비장함 마저...

 

그는 장기 복무 하사관 생활을 마치고 직장 생활을 하던 중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음을 발견하고 장사에 눈을 뜨게 됐다고 한다. 현재는 홍콩 시내의 청킹멘션에 숙소를 잡고 있다고 했다.(나도 있어 본 곳인데 세계 각국의 가난한 불법 체류자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생계 수단은 흔히 볼 수 있는 거리의 좌판 장사다. 주로 필리핀과 태국에서 값싼 악세사리 등을 구입하여 홍콩 시내에서 판다고 한다. 경찰에 쫓기는 때도 있지만 해 볼만하여 한두 번하게 된 것이 벌써 2 년째라고 한다. 그의 얘기는 우리 모두에게 흥미진진한 것이었다. 특히 재숙이의 눈에선 광채가 난다.

 

그렇지 않아도 재숙이는 넉넉지 않은 두 달간의 여행 경비를 현지에서 보충할 참이었다고 한다. 그 정신력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왠지 어린 아이가 물가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 만 같았다. 사실 나이 20이면 더 이상 철부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특히 선진국 젊은이들과 비교할 때) 왜 내 눈엔 끊임없이 어리광만 부리는 다 큰 아이들로만 보이는지 모르겠다. 홀로 서기, 과연 가능할까? 그것도 외국 땅에서...?

 

그의 얘기는 계속된다. 약간의 돈을 모으면 부모님께 용돈을 보내 드리고 또 자신을 위해 저축도 한단다. 그리고 주변 국가 여행을 많이 하는 편인데 그것은  홍콩의 체류 기간이 만료되면 어차피 나갔다 와야 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그런 문제로 나온 김에 치앙마이를 거처 치앙라이를 여행한다는 것이다. 치앙마이에서는 자전거를 렌트하여 돌아보고 치앙라이에서는 더 깊은 자연의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서라고 한다. 아무리 오래 들어도 지루하지 않는 시간이었다. 참 멋진 사람이었다. (나는 치앙라이를 99년 6월에 다녀 왔다.)

 

그는 자신의 쌕에서 한영사전을 꺼내더니 자기에게 그것이 없이는 외국 생활이 불가능하다며 영어의 어려움과 고통을 털어놓는다. 나는 농담으로 받아 들였는데 그의 얘기가 사실임을 확인한 순간 너무 황당했다. 영어에 대한 기초 지식조차 없으니... 그 상태로 어떻게 외국 생활이 가능할까, 그의 고달픈 생활을 충분히 이해할 만 했다.

 

Actually however,(그러나 실제로는) it’s not difficult for me to see or meet many Koreans who stayed in foreign lands as business persons or travellers or even students and I found them have hard time with language problems.(언어문제로 고생하고 있음을) Here the language means not written English but spoken English.(영어회화) I think it’s a very serious problem for them and also for Korea who stay out of Korea.

In conclusion,(결론적으로) going abroad with the language problem, it won’t do much good for the future of Korea.

 

나는 노르웨이 오슬로 등 여러 곳에서도 같은 경우를 많이 보았다. 고등교육 이상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에선 필수적인 영어회화가 거의 안돼 애를 먹는 우리 한국인들을 많이 봤다는 얘기이다. 깊이 생각해 볼 문제이다. 문제의 심각성을 각자 스스로 깨달아야 할 시점이다.

 

다음날 아침, 늦게까지 자고 일어났다. 아침 겸 점심으로 빵과 계란후라이 그리고 커피와 과일 등으로 푸짐하게 배를 채운다. 철규씨는 예정대로 자전거 여행을 한다며 나갔다. 우리 셋은 적당한 일정을 잡아 원주민 촌 트레킹을 하기로 한다. 몇몇 여행사를 둘러본 뒤 우리는 North Star Tour에서 2박 3일의 트레킹 투어 티켓을 예약한다. 카렌 원주민 촌에서 이틀 자고 코끼리도 타고 뗏목도 타는 그런 코스였다. 상당한 기대와 흥분이 앞섰다. 그런데 일정에 차질이 생긴다. 예상 인원이 안차서 하루를 더 기다리게 된 것. 오늘 하루는 각자 떨어져 다니기로 했다.

 

사실 매일 끼리끼리만 몰려다니면 다른 나라에서 온 배낭족들과 어울릴 기회가 거의 없어진다. 주로 일본인들과 한국인들의 공통된 점이기도 하다. 그것은 결국 또 다른 시각에서의 재미있고 소중한 체험을 할 기회를 놓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나는 우선 재래 시장을 먼저 찾는다. 일상사가 무료할 때 시끌벅적한 남대문 시장을 한 바퀴 돌면 뭔가 속이 후련함을 느끼게 하는 카타르시스 효과가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나는 이곳 치앙마이, 아니 그 어떤 다른 나라의 재래 시장이라도 같은 효과를 느낀다. 가장 서민적인 분위기에 동화되고 일치감을 느끼기 때문이리라. 어쨌든 나에겐 거드름을 피고 목소리는 깔고 어깨에 힘을 넣는 작자들이 모여드는 곳은 재미없다.  대신 희노애락(喜怒哀樂)의 감정에 덧칠이 안 된 인간 본연의 모습을 맘껏 보는 것이 더 좋다. 즉, 인간 냄새가 뭉실뭉실 풍기는 곳을 말하는데 바로 재래 시장이 그런 곳이다. 그런 곳이 내게도 잘 어울린다. 회귀본능(回歸本能)의 작용일까...?

 

우선 걸쭉한 뚝배기에 국밥같은 음식을 하나 시켜 놓고 걸상에 걸터앉아 현지인들과 같이 어울려 본다. 통하는 말이래야 방문국에 대한 기본 예의로 익혀 둔 몇 마디, 안녕하세요(싸와티 크랍), 감사합니다(코푼 캅), 미안합니다(카웃 탓) 정도이지만 서로 친밀감을 나누는데는 부족함이 없다. 각종 야채와 과일, 생선과 육류 등 먹거리들이 풍요롭다. 냉장고에 보관하지 않고도 신선도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인지, 글세 ....?  한편 주방 기구나 가전제품 등 대부분의 공산품들은 조잡한 듯 하고 현지 물가에 비해 값은 턱없이 비싼 편이다.

 

나는 시장을 벗어났다. 어느새 툭툭이 한 대가 바짝 내게 붙는다. 지도를 보여주며 이곳 저곳 명승지 등을 소개한다. 문무앙 로드 내에 있는 왓프라싱, 왓치앙만과 왓체디루앙 등 자그마치 일곱 곳을 보여준단다. 별 관심을 안보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끈기와 요금 제시에(20 바트, 약 600 원) O.K. 했다. 나는 구두 약속 보단 간략하게나마 서면 계약을 한다. 흔히 발생하는 부당 요금 시비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서다. 좀 귀찮지만 그만큼 편함이 보장된다. 그가 내려 주는 사원들을 구경했다. 특히 왓프라싱 사원에선 우리 나라에서 보는 사원과의 차이점을 봄. 하얀 바탕의 벽에 황금색으로 칠한 문이 매우 인상적이다. 내부엔 민속 의상, 관습 등을 그려 놓았는데 그들의 전통예술이라고 한다. 기대 이상의 만족이었다. 툭툭이도 한 번 쯤 이용은 추억거리가 된다.

 

은 세공하는 곳과 치앙마이 전통으로 이어지는 우산 공예품을 생산하는 ’보상’이란 곳도 가 보았다. 쪼끄마한 앙증맞은 우산들이 이곳 어린아가씨들의 섬섬옥수(纖纖玉手)로 다듬어지고 완성되어 관광객들의 손으로 옮겨진다. 우리 나라 60~70년대의 노동 집약적 산업의 역군들이었던 언니와 누나들의 모습과 같다고나 할까. 다소곳한 태도로 방문객을 맞아 주는 아리따운 그녀들의 부드러운 미소와 유난히도 검고 맑은 두 눈동자에서 부처님의 자비와 사랑을 느낀다.

 

다음날 우리 셋과 영국인 남녀 둘 그리고 일본인 둘이 한 조가 되어 카렌족 마을로 떠났다. 준비된 도요타 픽업을 탔다. (세계 시장 점유율 포화 상태? 가는 곳마다 늘려 있는 자기 나라 자동차를 대하는 일본인들의 우월감은 어느 정도일까. 나는 아니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어쩌다 한국차를 볼 양이면 왠지 으슥해지는 느낌을 갖고 옆 친구에게 한국산이라는 말 한 두마디 쯤은 하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는 그 감정을 억제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결코 그 어떤 내색도 하지 않는다. 그 점이 더 나를 아니 한국을 우울하게 한다. 열등감일까?)

 

우리들을 태우고 비포장 도로를 달리기를  한 시간 이상, 이건 상상을 초월한 지옥 훈련이다.(사실 지옥 훈련 제 1호는 이 보다 더한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를 갈 때였다.) 코도 막고 눈도 감은 상태에서 계속 먼지를 들이마시며 달린 강행군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침내 숲속 언저리에 도착했다. 준비해 온 볶음밥으로 점심 식사를 마친다. 우리 팀을 맡은 원주민 가이드가 꽤 재미있다. 농담도 잘 하고 간단한 한국어도 한다. 숲속을 조금 들어가자 hot spring이 있었는데 거기서 계란을 삶아 먹는다. 유황 냄새가 진동한다. 약 2 시간을 걸어 들어갔을까 시원한 폭포가 우리를 반긴다. 깊은 밀림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그런 대로의 분위기를 느낄 만한 곳이다. 다시 한 시간 이상을 걸어 도착한 곳이 우리를 태우고 갈 코끼리들의 대기소였다.

                                         

▶감사합니다.         <태국-계속>        - 장 정 대 -

 

▶E-mail: jackchang7@yahoo.com)      ◎All rights reserved.

 

◆나라가 없고서 一家와 一身이 있을 수 없고, 민족이 천대를 받을 때에 나 혼자만 영광을 누릴 수 없다.

                         <島山 安昌浩>



14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