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하느님의 계시와 사람의 응답, 가해 연중 제19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자료 <가연중19주일> adopted

인쇄

. [121.190.18.*]

2020-08-08 ㅣ No.2086

 

[내용 추가 일자: 2023년 8월 10일] 

게시자 주 1: (1) 오늘의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동영상게시자 주 2 다음에 있습니다. 본글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86.htm 에 접속하면, 본글 중에서 제시되고 있는 출처 문헌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q&a.htm 에 접속하면, 본글의 제목이 포함된, "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제공의 모든 게시글들의 제목들의 목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i) 2006년 12월 16일에 개시(開始)하여 제공 중인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날마다 영어 매일미사 중의 독서들 듣고 보기, 그리고 (ii) 신뢰할 수 있는 가톨릭 라틴어/프랑스어/영어 문서들 등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손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  (PC용, 날마다 자동으로 듣고 봄) [주: 즐겨찾기에 추가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m (스마트폰용) [주: 네이버 혹은 구글 검색창 위에 있는 인터넷 주소창에 이 주소 입력 후 꼭 북마크 하십시오] 

 

(2)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341.htm <----- 필히 시청 요망

 

"KF94 마스크 미착용, 착용 시의 커다란 차이점을 잘 보여주는 실험 동영상들 - 오미크론 출현 이전인 2021년 10월 14일에 확보한 자료들임" 제목의 졸글에 추가된 중요한 방역 수칙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게시자 주 2: [첫 공지 일자: 2022년 7월 17일(다해 연중 제16주일)]

(1) [PC 혹은 노트북의 경우] 바로 아래의 제(2)항에 제시된 이들 제1독서, 제2독서, 그리고 복음 말씀 본문들을 눈으로 읽으면서 이들을 또한 귀로 듣고자 할 경우에는 다음과 같이 하십시오: 바로 아래의 주소를 클릭하면, New American Bible (NAB)에서 발췌된 오늘의 영어 전례성경 본문(즉, 제1독서, 제2독서, 그리고 복음 말씀)들을, 화답송 등과 함께, 청취할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 이어지는 제(2)항 으로 이동하여 안내대로 하십시오.][원 출처: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http://ch.catholic.or.kr/pundang/4/cbs/Cycle_A/Ordinary/a_ot_19_mp3 <----- 여기를 클릭하라  


[스마트폰의 경우] 바로 아래의 제(2)항에 제시된 이들 제1독서, 제2독서, 그리고 복음 말씀 본문들을 눈으로 읽으면서 이들을 또한 귀로 듣고자 할 경우에는 다음과 같이 하십시오:
(i) 위의 주소를 손가락으로 살짝 누르고 가만히 있으면 가지게 되는 작은 메뉴판 한 개에서, 다른 브라우저로 열기를 선택하십시오. 그런 다음에, (ii) 사용 중인 스마트폰에 이미 열려있는 본글의 브라우저를 찾아서 거기로 이동한 후에, 바로 아래의 제(2)항에 있는 주소를 누르면, 이들 제1독서, 제2독서, 그리고 복음 말씀 본문들을 눈으로 읽으면서 이들을 또한 귀로 들을 수 있습니다.

 

2006년 12월 10일(다해 대림 제2주일)부터 지금까지 바로 아래의 제(2)항에 안내된 English Bible Study 까페[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영어 성경공부 자료실]에서 필자가 지속적으로 전달 제공해온 자료이므로, 여기에 진작에 올려드릴 수도 있었으나, 혹시라도 거부감을 가지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 그동안 그러지 않았던 것인데,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바로 위의 제(1)항에서 듣게 되는 NAB에서 발췌된 영어 전례성경 본문들 등을 또한 눈으로 직접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lub.catholic.or.kr/community/asp/club/attboard/read.asp?type=attboard&schcode=pundang4biblestudy&seq=8&id=1279 <----- 또한 필독 권고   

 

이것도 또한 여기에 진작에 올려드릴 수도 있었으나, 혹시라도 거부감을 가지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 그동안 그러지 않았던 것인데,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3) 바로 위에 제(1)항제(2)항 제공의 정보들을 반복적으로 꾸준히 함께 활용하면, 영어 듣기 및 읽기 능력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상, 게시자 주 2 끝) 

[이상, 2023년 8월 10일자 내용 추가 끝]

 

 

가해 연중 제19주일 온라인 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자료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동영상 청취 주소: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9/가해연중제19주일.mp4 <----- 여기를 클릭하여 청취(聽取) 혹은 시청(視聽)하십시오

가해 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동영상 목록: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13.htm  

동영상 교재: 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가해 II, 가톨릭출판사, 2008년.

동영상 교안(敎案)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86.htm

 

 

시작 기도: 대성호경, 주님의 기도

 

이 십자성가 표적(表迹)으로써, (이마 위에 +)

우리의 주님이신 천주께서는 (입 위에 +)

우리의 원수들로부터 우리를 구하소서. (가슴 위에 +)

성부와 (이마 위에 손끝을 찍음) 

성자와 (배 위에 손끝을 찍음) 

성령의 이름으로. (왼쪽 어깨 위에 손끝을 찍은 후에 그리고 곧바로 직선으로 이동하여 오른쪽 어깨 위에 손끝을 찍음)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들을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복습 0: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주일 전례성경 학습자들을 위한 입문자료 모음 동영상을 청취할 수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 세례를 받으신 새교우님들께서 꼭 청취하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79.htm

 

복습 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하느님이 한 말단인, 적어도 3자들 사이에 있어, "경의/존중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piety)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49.htm

 

복습 2: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악"(evil), "윤리적 악"(moral evil), "죄"(sin), 원죄"(original sin) 등의 용어들의 정의(definitions)들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68.htm  

 

복습 3: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자/하느님의 아드님"(the Son of God)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60.htm


복습 4: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은총"(grace)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47.htm 

 

복습 5: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영광"(glory) 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s)들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45.htm  

 

복습 6: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하늘 나라(천국)"(the kingdom of heaven)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80.htm 

[제목: 하늘 나라(천국)의 흔적이 있는 곳과 지상의 그 현존처는 구분하여야]

 

 

<가연중19주일> 가해 연중 제19주일  

 

1열왕 19,9ㄱ.11-13ㄱ; 마태오 복음서 14,22-33; 로마 9,1-5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lerus/homilies/a_ot_19.htm <----- 전문 필독 권고

[주: 교황청 성직자 및 수도자들을 위한 홈페이지 제공]

(발췌 시작)   

THEME of the READINGS


오늘 독서들의 주제


God reveals himself to Elijah in the soft murmur of the breeze on Mount Horeb (first reading). Jesus Christ reveals himself to the disciples as the Son of God by mastering the rough waves of the sea and with his mysterious words. "It’s me! Don’t be afraid" (Gospel). On his part, Paul is very aware that God has revealed himself to the People of Israel. "To them belong the sonship, the glory, the covenants, the giving of the law, the worship, and the promises" (Rom 9: 4). Elijah’s reaction is one of sacred fear before the presence of Yahweh. "He covered his face with his cloak" (1 Kings 19: 13). Peter’s response is one of doubt. "You have so little faith, why did you doubt?" (Mt 14: 31). The response of the group of disciples is one of faith. "Truly, you are the Son of God" (Mt 14: 33). Paul knows full well that the People of Israel have not responded to God and have not been faithful to divine Revelation. Thus he feels great sorrow and unremitting agony in his heart (second reading). God’s Revelation and man’s response – here in summary is the message of the liturgy.

 

하느님께서는 호렙 산 위에서 미풍의 부드러운 속삭임으로 [예언자] 엘리야(Elijah)에게 당신 자신들 드러내십니다(제1독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갈랠래아 호수의 거친 파도들을 정복하심으로써 그리고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라는 당신의 신비로운 말씀들과 함께, 당신의 제자들에게 하느님의 아드님(성자)로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십니다(복음 말씀). 바오로(Paul)는, 자신의 견해로(on his part),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당신 자신을 이미 드러내셨음을, 다음과 같이, 매우 잘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입양 자녀가 되는 자격, 영광, 여러 계약, 율법, 예배, 여러 약속이 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로마 9,4). 엘리야의 반응은, 다음과 같이, 하느님의 현존 앞에서 성스러운 두려움(sacred fear)의 하나입니다: "엘리야는 그 소리를 듣고 겉옷 자락으로 얼굴을 가렸다" (1열왕 19,13ㄱ). 베드로(Peter)의 응답은, 다음과 같이, 의심(doubt)의 하나이다: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마태오 복음서 14,31). 제자들로 구성된 집단의 응답은, 다음과 같이, 믿음(faith)의 하나이다: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마태오 복음서 14,33). 바오로는 이스라엘의 백성이 하느님께 응답해오지 않았고 그리고 신성적 계시(divine Revelation) 쪽으로 충실하지 않아 왔음을 충분하게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심장 안에서(in his heart) 커다란 슬픔(sorrow)과 끊임 없는 고뇌(agony)를 느낍니다 (제2독서). 하느님의 계시와 사람의 응답 - 바로 여기에, 요약하여, 이 전례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DOCTRinal MESSAGE

 

교리 메시지


God reveals himself to men not through concepts but by means of symbolic action or an interpersonal relationship. After Elijah flees from(*) Mount Carmel to avoid being killed by Jezebel (1 Kings 19: 1-3), God makes him cross the land of Palestine from north to south to Mount Horeb. On the mountain, in solitude and prayer, God reveals himself to Elijah. God had revealed himself to Moses as the Lord of the powers of nature in the midst of lighting, fire, and thunder (cf. Ex 19: 16-19). Centuries later and on the same mountain, he will reveal himself to Elijah in the murmur of a soft breeze, with the softness of a mother’s kiss.

 

-----

(*) 번역자 주: 전후 문맥에 비추어 볼 때에, 원문에 "to"로 잘못되어 있어, "from"으로 바로 잡았다.

-----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는데, 개념(concepts)들을 통하여서가 아니라 상징적 행동 혹은 어떤 개인간의 관계의 상태(an interpersonal relationship)에 의하여서 입니다. 엘리야이제벨(Jezebel)에 의하여 죽임당함을 피하기 위하여 카르멜 산(Mount Carmel)으로부터 도망합니다(1열왕 19,1-3). 하느님께서 그로 하여금 팔레스티나 땅을 북쪽에서부터 동쪽으로, 호렙 산(Mount Horeb) 쪽으로, 가로지르게 합니다. 이 산 위에서, 홀로 그리고 기도 중에, 하느님께서 엘리야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번개가 침, 불, 우뢰/천둥 한 가운데에서 자연의 힘들의 주님으로서, 모세(Moses)에게 당신 자신을 이미 드러내셨습니다(탈출 19,16-19 참조). 여러 세기들 후에 그리고 바로 이 동일한 산 위에서, 당신께서는 어떤 미풍의 속삭임으로, 한 어머니의 입맞춤의 부드러움과 함께, 엘리야에게 당신 자신을 장차 드러내실 것입니다.


Jesus Christ spent long hours in prayer and dialogue with the Father (cf. Mt 14: 23). The disciples almost powerlessly fought the rough waves on Lake Tiberias. All of a sudden they see a human figure resembling Jesus coming towards them. They are frightened. They think they are seeing a ghost. Jesus takes advantage of this circumstance to reveal himself to them in his most intimate identity, by means of a symbolic gesture. Like Yahweh (cf. Job 9: 8; Ps 77: 20), he walks over the waves of the sea, thus showing that he is the lord of the sea and of nature. Like Yahweh (cf. Ex 3: 15), he reveals his divine name, "I am." Jesus shows his divine power, but he especially reveals his divine sonship to the disciples.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기도 그리하여 성부와의 대화에 긴 시간들을 보내셨습니다 (마태오 복음서 14,23 참조). 제자들은 티베리아스 호수(Lake Tiberias, 즉, 갈릴래아 호수) 위에서 거칠은 파도들과 거의 아무런 힘없이(powerless) 싸우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그들은 자신들을 향하여 다가오는 예수님을 닮은 한 명의 인간의 모습을 봅니다. 그들은 겁에 질렸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한 유령(a ghost)를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상징적 제스처로써, 당신의 가장 깊은 정체성(an intimate identity)으로 그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당신께서는, 하느님답게(like God)(욥 9,8; 시편 77,20), 이 바다의 파도들 위를 걸으시는데,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당신이 바다의 그리고 자연의 주님이심을 보여주십니다. 당신께서는, 하느님답게(like God)(탈출 3,15), 당신의 신성적 이름(divine name)을, 다음과 같이, 드러내십니다: "나는 있는 나다(I am)."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신성적 힘(divine power)을 보여주시는데, 다만(but) 당신께서 신성적 아들되심(divine sonship)을 이 제자들에게 특별히 드러내십니다.   
  
Paul reminds us of the extraordinary prerogatives of God in relation to Israel, underscoring that "To them belong the patriarchs, and of their race, according to the flesh, is the Christ" (Rom 9: 5). With the patriarchs the historic revelation of God begins. With Christ such revelation culminates and reaches its plenitude, and this mystery is fulfilled among the Chosen People. This is how God reveals himself to us as the faithful one par excellence, as the one who does not regret his choice or his promises. God’s covenant with Israel continues in spite of Israel’s infidelity. God’s Revelation is a dialogue with each person, and by its very nature requires an answer. Elijah responds with the obedience of faith (1 Kings 19: 15-18) so that belief in Yahweh would be preserved in the land. Peter responds with fear and doubt to a situation he caused, challenging the power of Jesus. The People of Israel responded by rejecting the Revelation of Jesus as Messiah and of his divine sonship. Finally, the disciples are the ones who gave the best and most exhaustive response; "Truly, you are the Son of God." 

 

바오로는 우리들에게, 이스라엘에 관련하여, 하느님의 비상한 특전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강조함으로써, 상기시킵니다: "그들은 저 조상들의 후손이며, 그리스도께서도 육으로는 바로 저들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 (로마 9,5). 하느님의, 역사에 있어서의, 드러내심은 이 조상들과 함께 시작하였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그러한 드러내심은 정점에 이르고 그리고 그 풍부에 도달하며, 그리고 바로 이 신비/오적(mystery)은 선택된 백성(the Chosen People) 사이에서 구현됩니다. 바로 이것이 하느님께서, 탁월하게(par excellence) 충실한 분으로서, 당신의 선택 혹은 당신의 약속들을 후회하지 않으시는 분으로서, 우리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는 방식입니다. 이스라엘과 하느님의 계약(covenant)은 이스라엘의 불충실에도 불구하고 계속됩니다. 하느님의 계시/드러내심은 각 인격(each person)과의 어떤 대화이며, 그리고 이 대화의 바로 그 본성(nature)에 의하여 하나의 답변(an answer)을 요구합니다. 엘리야는 믿음/신앙의 순종(the obedience of faith)과 함께 응답하는데(1열왕 19,15-18) 그리하여 그 결과 하느님 쪽으로 믿음(believe in Hahweh)이 이 땅에 보존될 수도 있도록 합니다. 베드로는 두려움(fear) 및 의심(doubt)과 함께 자신이 야기한 한 상황(a situation) 쪽으로 응답하여, 그 결과 예수님의 힘/권능(power)에 도전합니다. 이스라엘의 백성은, 메시아로서 예수님의 계시 및 당신의 신성적 아들 되심(his divine sonship)을 거부함으로써, 응답하였습니다. 끝으로, 제자들은, 다음과 같은, 최상의 그리고 최고의 남김없는 응답을 하는 바로 그러한 자들입니다: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Our response to God’s Revelation, preserved and passed on to us by the Church, must be in the words of Vatican Council II, "The obedience of faith…. By faith man freely commits his entire self to God..., willingly assenting to the Revelation given by him" (DV 5).

 

유일한 교회(the Church)에 의하여 보존되고 그리고 우리들에게 전해지고 있는, 하느님의 계시/드러내심 쪽으로 우리의 응답은, 다음과 같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말씀들 안에 있음이 틀림없습니다: "믿음/신앙의 순종(the obedience of faith) ..., 하느님에 의하여 제공되는 이 계시에 기꺼이(willingly) 동의함으로써(assenting to), 믿음(faith)에 의하여 사람은 자신의 전체 자아를 하느님께 자유롭게 의탁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하느님 계시에 관한 교의적 헌장, 하느님의 말씀(Dei Verbum(DV)), 제5항].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가 II, 제211-218쪽

 

오늘의 제1독서 중에서:

 

 "엘리야는 그 소리를 듣고 겉옷 자락으로 얼굴을 가렸다" (1열왕 19,13ㄱ)

 

오늘의 복음 말씀 중에서: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마태오 복음서 14,27) 

 

오늘의 제2독서 중에서

 

"하느님의 입양 자녀(NAB: adopted children)가 되는 자격, 영광, 여러 계약, 율법, 예배, 여러 약속이 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로마 9,4)

 

 

오늘의 전례성경이 가르치는 바를 학습하기 위하여,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합시다.  

 

A.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오늘 가해 연중 제19주일 제1독서, 복음 말씀, 그리고 제2독서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들을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a_ot_19.htm <----- 필독 권고

 

B.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예수님을 믿다’(believe Jesus)와 ‘예수님 쪽으로 믿다’(believe in Jesus)의 교의 신학적 커다란 차이점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49.htm <----- 필독 권고

 

C.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이유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958.htm <----- 필독 권고

 

D. 선(good)의 반대가,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마땅히 갖추고 있어야 할 선의 결여/결핍, 즉, (evil)이듯이, 마찬가지로, ‘믿음’의 반대는,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마땅히 갖추고 있어야 할 믿음의 결여/결핍, 즉, ‘의심’(doubt)이다.

 

E.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경험에 따라 변하는 따라서 가톨릭 교회의 교도권에 의한 교화의 대상인, ‘양심’(conscience)이라는 성경 용어의 정의(definition)와 이에 대한 글들을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conscience.htm <----- 필독 권고

 

F.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강생하신 성자, 따라서 성부의 친자이신 예수님과는 달리, 우리가 세례를 받음으로써 성부 하느님의 입양 자녀(adopted children)가 됨을 말한다. 이에 대하여서는 다음의 주소들에 있는 글들을 학습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43.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44.htm <----- 필독 권고

 

G.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영광’(glory)이라는 대단히 중요한 성경 용어의 정의(definition)와 유관 개념들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glory.htm <----- 필독 권고

 

 

� 3분 복음/교리 묵상

 

CCCC 521. 진리를 향한 사람의 의무는 무엇입니까?
CCC 2464-2470, 2504


각 인격마다 다(every person) 행동하고 말함에 있어 정직할 것(sincerity)과 진실할 것(truthfulness)을 요청 받습니다. 각 사람마다 다(everyone)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를 지키고, 그리고 진리의 요구들에 따라서 자신의 전체 삶을 정돈할/규제할(order)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진리 전부가 드러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진리 그 자체”이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진리의 성령 안에서 살게 되며 생각과 말과 행동에 있어 모순적인 이중성(duplicity), 거짓 모습 하에 감춤(dissimulation), 그리고 위선(hypocrisy)을 경계합니다(엮은이 번역).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a_ot_19_c2464.htm 

 

CCCC 522. 진리에 대하여 우리는 어떻게 증언하는지요?
CCC 2471-2474, 2505-2506 

 

그리스도인 누구라도, 그의 공적 및 사적 활동(activity)의 모든 영역에 있어, 그리고 또한 만약에 필요하다면, 그의 단 하나뿐인 목숨의 희생과 함께, 그리스도의 가르침인 복음이라는 진리에 대하여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순교(martyrdom)는 신앙의 진리에 바쳐지는 최상의 증언입니다(엮은이 번역).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a_ot_19_c2471.htm 

 

 

마침 기도: 성모송, 영광송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306 2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