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하느님의 의지/뜻, 가해 연중 제22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자료 <가연중22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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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8 ㅣ No.2095

 

[내용 추가 일자: 2023년 8월 31일] 

게시자 주 1: (1) 오늘의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동영상게시자 주 2 다음에 있습니다. 본글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95.htm 에 접속하면, 본글 중에서 제시되고 있는 출처 문헌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q&a.htm 에 접속하면, 본글의 제목이 포함된, "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제공의 모든 게시글들의 제목들의 목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i) 2006년 12월 16일에 개시(開始)하여 제공 중인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날마다 영어 매일미사 중의 독서들 듣고 보기, 그리고 (ii) 신뢰할 수 있는 가톨릭 라틴어/프랑스어/영어 문서들 등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손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  (PC용, 날마다 자동으로 듣고 봄) [주: 즐겨찾기에 추가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m (스마트폰용) [주: 네이버 혹은 구글 검색창 위에 있는 인터넷 주소창에 이 주소 입력 후 꼭 북마크 하십시오] 

 

(2)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341.htm <----- 필히 시청 요망

 

"KF94 마스크 미착용, 착용 시의 커다란 차이점을 잘 보여주는 실험 동영상들 - 오미크론 출현 이전인 2021년 10월 14일에 확보한 자료들임" 제목의 졸글에 추가된 중요한 방역 수칙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게시자 주 2: [첫 공지 일자: 2022년 7월 17일(다해 연중 제16주일)]

(1) [PC 혹은 노트북의 경우] 바로 아래의 제(2)항에 제시된 이들 제1독서, 제2독서, 그리고 복음 말씀 본문들을 눈으로 읽으면서 이들을 또한 귀로 듣고자 할 경우에는 다음과 같이 하십시오: 바로 아래의 주소를 클릭하면, New American Bible (NAB)에서 발췌된 오늘의 영어 전례성경 본문(즉, 제1독서, 제2독서, 그리고 복음 말씀)들을, 화답송 등과 함께, 청취할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 이어지는 제(2)항 으로 이동하여 안내대로 하십시오.][원 출처: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http://ch.catholic.or.kr/pundang/4/cbs/Cycle_A/Ordinary/a_ot_22_mp3 <----- 여기를 클릭하라  


[스마트폰의 경우] 바로 아래의 제(2)항에 제시된 이들 제1독서, 제2독서, 그리고 복음 말씀 본문들을 눈으로 읽으면서 이들을 또한 귀로 듣고자 할 경우에는 다음과 같이 하십시오:
(i) 위의 주소를 손가락으로 살짝 누르고 가만히 있으면 가지게 되는 작은 메뉴판 한 개에서, 다른 브라우저로 열기를 선택하십시오. 그런 다음에, (ii) 사용 중인 스마트폰에 이미 열려있는 본글의 브라우저를 찾아서 거기로 이동한 후에, 바로 아래의 제(2)항에 있는 주소를 누르면, 이들 제1독서, 제2독서, 그리고 복음 말씀 본문들을 눈으로 읽으면서 이들을 또한 귀로 들을 수 있습니다.

 

2006년 12월 10일(다해 대림 제2주일)부터 지금까지 바로 아래의 제(2)항에 안내된 English Bible Study 까페[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영어 성경공부 자료실]에서 필자가 지속적으로 전달 제공해온 자료이므로, 여기에 진작에 올려드릴 수도 있었으나, 혹시라도 거부감을 가지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 그동안 그러지 않았던 것인데,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바로 위의 제(1)항에서 듣게 되는 NAB에서 발췌된 영어 전례성경 본문들 등을 또한 눈으로 직접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lub.catholic.or.kr/community/asp/club/attboard/read.asp?type=attboard&schcode=pundang4biblestudy&seq=8&id=1283 <----- 또한 필독 권고   

 

이것도 또한 여기에 진작에 올려드릴 수도 있었으나, 혹시라도 거부감을 가지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 그동안 그러지 않았던 것인데,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3) 바로 위에 제(1)항제(2)항 제공의 정보들을 반복적으로 꾸준히 함께 활용하면, 영어 듣기 및 읽기 능력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상, 게시자 주 2 끝) 

[이상, 2023년 8월 31일자 내용 추가 끝]

 

 

가해 연중 제22주일 온라인 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자료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동영상 청취 주소: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23/가해연중제22주일.mp4 <----- 여기를 클릭하여 청취(聽取) 혹은 시청(視聽)하십시오 

가해/나해/다해 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동영상 목록: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13.htm  

동영상 교재: 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가해 II, 가톨릭출판사, 2008년.

동영상 교안(敎案)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95.htm

 

 

시작 기도: 대성호경, 주님의 기도

 

이 십자성가 표적(表迹)으로써, (이마 위에 +)

우리의 주님이신 천주께서는 (입 위에 +)

우리의 원수들로부터 우리를 구하소서. (가슴 위에 +)

성부와 (이마 위에 손끝을 찍음) 

성자와 (배 위에 손끝을 찍음) 

성령의 이름으로. (왼쪽 어깨 위에 손끝을 찍은 후에 그리고 곧바로 직선으로 이동하여 오른쪽 어깨 위에 손끝을 찍음)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들을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복습 0: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주일 전례성경 학습자들을 위한 입문자료 모음 동영상을 청취할 수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 세례를 받으신 새교우님들께서 꼭 청취하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79.htm

 

복습 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하느님이 한 말단인, 적어도 3자들 사이에 있어, "경의/존중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piety)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49.htm

 

복습 2: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악"(evil), "윤리적 악"(moral evil), "죄"(sin), 원죄"(original sin) 등의 용어들의 정의(definitions)들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68.htm  

 

복습 3: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자/하느님의 아드님"(the Son of God)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60.htm


복습 4: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은총"(grace)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47.htm 

 

복습 5: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영광"(glory) 이라는 용어와, "영광을 발하는"(glorious), "영광을 더하다"(glorify), "자랑하다"(glory in) 등의 그 파생어들의 정의(definitions)들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45.htm  

 

복습 6: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하늘 나라(천국)"(the kingdom of heaven)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80.htm 

[제목: 하늘 나라(천국)의 흔적이 있는 곳과 지상의 그 현존처는 구분하여야]

 

복습 7: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 1225-1274년)"신학 대전"(Summa Theologiae)에 제시된 '애덕'(charity)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한 글[제목: 애덕(charity)이라는 덕; 게시일자: 2013-11-04]을 학습할 수 있다[본문 중에 포함된 key word: Christoph Cardinal Schönborn]: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65.htm 

 

 

<가연중22주일> 가해 연중 제22주일  

 

예레미야 20,7-9; 마태오 복음서 16,21-27; 로마 12,1-2 

 

"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가 II, 제265-274쪽

 

오늘의 제1독서 중에서:

 

 "뼛속에 가두어 둔 주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오르니 제가 그것을 간직하기에 지쳐 더 이상 견뎌 내지 못하겠습니다"(예레미야 20,9ㄴ)

 

오늘의 복음 말씀 중에서:

 

"너는 하느님의 일(Opus Dei)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태오 복음서 16,23ㄷ) 

 

오늘의 제2독서 중에서: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미한(perfect)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 (로마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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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하느님의 의지/뜻"(God's will)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08.htm <----- 필독 권고

 

(2)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의지/뜻(will, rational appetite)"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83.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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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전례성경이 가르치는 바를 학습하기 위하여,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합시다.   

 

A. 소위 말하는 ‘양심’(conscience)이, 마음(mind)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심장(heart) 안에 있음에 대하여서는,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글들을 학습하도록 하라. 특히, ‘양심’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는 제1026번 글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conscience.htm 

 

B.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우리들의 성화(sanctification)의 끝/마지막 상태(end, terminal)를 나타내는, 그리스의 가르침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차용 번역 용어인 ‘완미(完美)’(완전미호, perfection)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및 그 출처에 대한 글들을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perfection.htm

 
C. (1) 교회의 전례 용어인 라틴어 “Sursum corda”(우리들의 심장들을 들어 올립시다)에 등가인 표현이, 아무리 늦더라도, 3세기에 이르면 그리스도교 성찬전례 중의 감사기도의 시작 부분에서 사용되었음은 널리 잘 알려져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96.htm

 

(2) 우리말본 “미사통상문”의 성찬전례 중의 각 감사기도의 시작 부분에서, (i) 영어로 “Lift up our hearts”로 번역된 표현은 “마음을 드높이”로 번역되었고, (ii) 영어로 “We lift them up to the Lord”로 번역된 표현은 “주님께 올립니다”로 번역되었는데, 그러나 여기서 “마음을 드높이”로 번역된 문장이 명백한 그리고, 교의 신학적으로, 대단히 심각한, 번역 오류임에 반드시 주목하라. 왜냐하면, 여기서 말하는 “마음”이, 전후 문맥 안에서, 예수님의 구속/속량(Redemption) 위업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성경 용어인 “심장들”(hearts)를 말함을 아무도 알아차릴 수 없기 때문이다.

 

D. 마태오 복음서 16,23에서 “내게서 물러가라”로 번역된 표현은 NAB에서 “get behind me”로 번역되었는데, 전후 문맥 안에서, 바로 이어지는 말씀에서 "너는 나의 걸림돌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더라도, “내 뒤로 물러서라”로 번역되어야 할 것이다.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글들을 학습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68.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856.htm [주: 이 번역 오류의 최초 출처]

 

E.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걸림돌’, 즉, ‘악한 표양’/ ‘나쁜 표양’이라는 번역 용어의 의미에 대한 글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58.htm   

 

F.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삼구(三仇)’라는 천주교회의 고유한 용어의 정의(definition) 및 최초 출처 문헌 등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58.htm 

(이상, 온고이지신 끝) 

 

 

G.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가톨릭 교회의 교황 교도권에 매우 충실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오늘의 독서들에 대한 해설들[주: 일부는 우리말로 번역되었음]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a_ot_22.htm <----- 필독 권고 

 

H.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lerus/homilies/a_ot_22.htm <----- 전문 필독 권고

[주: 교황청 성직자 및 수도자들을 위한 홈페이지 제공]

(발췌 시작) 

THEME of the READINGS


오늘 독서들의 주제


The will of God is the supreme norm for the prophet Jeremiah, for Jesus Christ and for Christians. The cross and the sacrifice to be faithful to it are inseparable from God’s will. Jeremiah feels the stimulus of rebellion, the temptation to throw everything overboard; but "there is in my heart as it were a burning fire shut up in my bones, and I am weary with holding it in, and I cannot" (first reading). Today’s Gospel follows Peter’s proclamation of Jesus as the Messiah and Son of God (previous Sunday). Now, Jesus makes very clear what this means for him, as the Messiah, according God’s plan. "He must go to Jerusalem and suffer many things from the elders and chief priests and scribes, and be killed, on the third day be raised" (Gospel). Saint Paul teaches us that true worship consists in the offering of oneself as a living sacrifice, holy and pleasing to God (second reading).

 

하느님의 의지/뜻(will, rational appetite)(*)는, 예언자 예레미야의 경우에, 예수 그리스도의 경우에,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의 경우에, 유일한 지고한 기준/표준(the supreme norm)입니다. 이 기준/표준에 충실한 십자가와 희생은 하느님의 의지로부터 분리될 수 없습니다. 예레미야는 반란(rebellion)의 충동, 모든 것을 내던져 버리고 싶은 유혹을 느끼나, 그러나 "뼛속에 가두어 둔 주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오르니 제가 그것을 간직하기에 지쳐 더 이상 견뎌 내지 못하겠습니다" (제1독서). 오늘의 복음 말씀은 예수님을 메시아 및 하느님의 아드님으로서 베드로가 선포하는 것(지난 주일 복음 말씀)을 뒤따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메시아로서, 당신의 경우에 바로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다음과 같이, 매우 분명하게 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예루살렘에 가서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사흗날에 되살아나야 한다" (복음 말씀). 성 바오로는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참 예배는 자기 자신을, 거룩한 그리고 하느님께 마음에 드는, 하나의 살아있는 희생 제물(a living sacrifice)로서 봉헌함을 주된 부분으로 가지고 있다(제2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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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하느님의 의지/뜻"(God's will)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08.htm <----- 필독 권고

 

(2)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의지/뜻(will, rational appetite)"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83.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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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TRinal MESSAGE


교리 메시지


The Will of God is history’s divine set of norms for the salvation of mankind. Being divine, this set of norms has a logic that differs from human logic, and may even appear to be contradictory and hostile to it. The prophet Jeremiah knows something about that. He was a peaceful man, but God called him to a vocation that was the opposite of his natural inclination: he would have to cry "ruin, destruction." In spite of everything, the power of God’s will shakes him up inside and devours him, and is such that he cannot refuse. Jeremiah’s "passion" as he narrates it in his "confessions," is the most faithful expression of his fidelity to God’s mysterious plan for human history.

 

하느님의 의지/뜻은, 인류의 구원을 위한 기준/표준들로 구성된, 역사에 있어서의 신성적 집합(divine set)입니다. 신성적(divine)이기 때문에, 이들 기준/표준들로 구성된 바로 이 집합은, 인간의 논리(human logic)와는 다른, 하나의 논리(a logic)를 가지고 있으며, 그리고 심지어 인간의 논리에 모순이고 그리고 적대적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예언자 예레미야는 바로 그것에 관하여 어떠한 것(something)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온화한 사람이었으나,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의 본성적 성향에 반대인, 한 개의 소명(a vocation) 쪽으로 그를 부르셨으며, 그리하여 그가 "파멸이다, 파괴다"라고 외칠 수도 있었습니다.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의지의 힘(power)은 안쪽에서 그를 세게 흔들어 버리고 그리고 그를 삼켜버려, 그리하여 그 결과 그가 [이 소명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고백들"(confessions) 안에서 그가 이야기한 것으로서 예레미야의 "수난"(passion)은 인간의 역사를 위한 하느님의 신비한 계획 쪽으로 그의 충실(fidelity)에 대한 가장 성실한(faithful) 표현입니다.

In the Gospel’s account, Jesus announces for the first time the will of God for him in the future. "From that time Jesus began to show his disciples that he must go to Jerusalem and suffer many things" (Gospel). Moved perhaps by his will to stand out and by his misunderstood love for Jesus, Peter wants to steer him away from the path of God’s will, a path of passion and the cross. Jesus knows the will of the Father and cannot allow anyone to interfere with his personal relationship with God. As a man, he has a very hard time in accepting God’s plan, so hard and painful. Yet, fidelity to his Father’s will is so important in his life that nothing or no-one can separate him from it. His passion is such that he does not hesitate to call Peter "Satan," for in his eyes he is like a devil seeking to steer him away from God’s plan.

 

복음서의 기술에서, 예수님께서는 미래에 있을 자신의 경우에 대한 하느님의 의지를 처음으로 선포하십니다.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가시어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을 것임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 (복음 말씀). 베드로는, 아마도 눈에 띄고자 하는 자신의 의지에 의하여 및 예수님에 대한 자신이 잘못 이해하게 된 사랑에 의하여 움직여져, 그분을 하느님의 의지의 경로(path)로부터, 이 수난(the passion)과 이 십자가(the cross)로 구성된 한 경로로부터, 멀어지도록 조종하는 것을 원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의지를 알고 계시며 그리하여 어떤 자가 하느님과 당신의 인격적 관계의 상태를 방해하는 것을 허락할 수 없습니다. 한 명의 사람으로서, 그분께서는, 매우 힘들고 괴로운, 하느님의 계획을 받아들임에 있어 매우 힘든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성부의 의지 쪽으로 충실(fidelity)은 당신의 삶에 있어 너무도 중요하여 어떠한 것도 혹은 어떠한 자도 그분을 이 충실로부터 분리할 수 없습니다. 그분의 수난(passion)은 그분께서 베드로를 "사탄"(Satan)이라고 부르는 것을 망설이지 않음과 같은(such) 것인데, 왜냐하면 그분의 눈들에 있어 그는 그분을 하느님의 계획으로부터 멀어지도록 조종하고자 노력하는 한 명의 악마(a devil)과 같기(like) 때문입니다.

Jeremiah and especially Jesus show us the need and the importance of knowing God’s will and adhering to it with all one’s heart and strength without hesitation or complicity with evil, however minor. A transition must be made in real life from the knowledge and love of the divine will to action. Do the will of God, with the difficulties, pain, and hardships this may imply. Jesus is very clear about this. "If any man would come after me, let him deny himself and take up his cross and follow me" (Gospel). In other words, if anyone wants to do the Father’s will in everything, let him renounce his own thoughts and desires, so human and so far from God’s thoughts and desires. Saint Paul, on his part, asks the Christians of Rome to offer their bodies "as a living sacrifice, holy and acceptable to God" (second reading). 

 

예레미야와 특히 예수님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및, 아무리 중요하지 않다고(minor) 하더라도, 악(evil)과의 공모(complicity) 없이, 자신의 심장(heart) 및 굳셈(strength) 모두와 함께, 하느님의 의지를 앎(knowing) 그리고 이 지식에 집착함(adhering)의 필요성 및 중요성을 우리들에게 보여줍니다. 이 신성적 의지(the divine will)에 대한 지식과 사랑으로부터 행동(action)으로의 어떤 변이(變移, transition)는 실제 삶(real life) 안에서 행해져야 합니다. 하느님의 의지를 행하십시오, 바로 이 행함이 의미할 수도 있는 어려움들, 아픔, 그리고 고난들과 함께.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것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매우 분명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복음 말씀). 다른 말로, 누구든지 모든 것에 있어 성부의 의지를 행하기를 원한다면, 하느님의 생각(thoughts)들과 욕망(desires)들로부터 너무도 멀리 있고 그리고 너무도 인간적인, 자신의 고유한 생각들과 욕망들을 포기하도록 하십시오. 성 바오로는, 자신의 편에서,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의 몸들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서" 봉헌할 것을 요구합니다 (제2독서).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 3분 복음/교리 묵상

 

CCCC 232. 일곱 성사[의 적(迹, 느낄 수 있는 표시, sensible sign)]들과 영원한 생명 사이의 관계는 무엇입니까? 

CCC 1130


일곱 성사[의 적(迹, 느낄 수 있는 표시)](the sacraments)들(*) 안에서 교회는, “복된 희망이 이루어지기를, 우리의 위대하신 하느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티토 2,13) 동안에, 이미 영원한 생명을 미리 맛보게 됩니다(엮은이 번역).

 

(*):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1583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번역된 ‘sacrament’/'sacramentum'의 애초의 한자 번역 용어는, ‘성사’가 아니고, ‘聖事之迹’(성사지적)이었음에 대한 글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34.htm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a_ot_22_c1130.htm

 

CCCC 294. 성찬례는 왜 “미래의 영광에 대한 보증”인지요?
CCC 1402-1405


성찬례(the Eucharist)는 미래의 영광에 대한 보증인데 왜냐하면 성찬례가 우리를 모든 은총과 천상의 축복으로 채우기 때문입니다. 성찬례는 현재의 삶 안에서 우리의 순례를 위하여 우리를 고무시키며(fortifies)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생명을 갈망하게 합니다. 성찬례는 우리를, 성부의 오른편에 앉아 계신 그리스도에게, 천상 교회에, 그리고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모든 성인들에게, 이미 결합시킵니다(엮은이 번역).

 

     성찬례 안에서, “우리는 불멸의 약, 죽음에 대한 해독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하는 음식인 바로 그 유일한 빵을 나눕니다.”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Saint Ignitius of Antioch)].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a_ot_22_c1402.htm

 

 

마침 기도: 성모송, 영광송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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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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