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총귀(總歸)/총괄복귀, 가해 연중 제23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자료 <가연중23주일> _새창조] _새아담] _새하와] _recapitulation 1181_ 881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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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04 ㅣ No.2097

 

[내용 추가 일자: 2023년 9월 7일] 

게시자 주 1: (1) 오늘의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동영상게시자 주 2 다음에 있습니다. 본글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97.htm 에 접속하면, 본글 중에서 제시되고 있는 출처 문헌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q&a.htm 에 접속하면, 본글의 제목이 포함된, "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제공의 모든 게시글들의 제목들의 목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i) 2006년 12월 16일에 개시(開始)하여 제공 중인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날마다 영어 매일미사 중의 독서들 듣고 보기, 그리고 (ii) 신뢰할 수 있는 가톨릭 라틴어/프랑스어/영어 문서들 등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손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  (PC용, 날마다 자동으로 듣고 봄) [주: 즐겨찾기에 추가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m (스마트폰용) [주: 네이버 혹은 구글 검색창 위에 있는 인터넷 주소창에 이 주소 입력 후 꼭 북마크 하십시오] 

 

(2)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341.htm <----- 필히 시청 요망

 

"KF94 마스크 미착용, 착용 시의 커다란 차이점을 잘 보여주는 실험 동영상들 - 오미크론 출현 이전인 2021년 10월 14일에 확보한 자료들임" 제목의 졸글에 추가된 중요한 방역 수칙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게시자 주 2: [첫 공지 일자: 2022년 7월 17일(다해 연중 제16주일)]

(1) [PC 혹은 노트북의 경우] 바로 아래의 제(2)항에 제시된 이들 제1독서, 제2독서, 그리고 복음 말씀 본문들을 눈으로 읽으면서 이들을 또한 귀로 듣고자 할 경우에는 다음과 같이 하십시오: 바로 아래의 주소를 클릭하면, New American Bible (NAB)에서 발췌된 오늘의 영어 전례성경 본문(즉, 제1독서, 제2독서, 그리고 복음 말씀)들을, 화답송 등과 함께, 청취할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 이어지는 제(2)항 으로 이동하여 안내대로 하십시오.][원 출처: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http://ch.catholic.or.kr/pundang/4/cbs/Cycle_A/Ordinary/a_ot_23_mp3 <----- 여기를 클릭하라  


[스마트폰의 경우] 바로 아래의 제(2)항에 제시된 이들 제1독서, 제2독서, 그리고 복음 말씀 본문들을 눈으로 읽으면서 이들을 또한 귀로 듣고자 할 경우에는 다음과 같이 하십시오:
(i) 위의 주소를 손가락으로 살짝 누르고 가만히 있으면 가지게 되는 작은 메뉴판 한 개에서, 다른 브라우저로 열기를 선택하십시오. 그런 다음에, (ii) 사용 중인 스마트폰에 이미 열려있는 본글의 브라우저를 찾아서 거기로 이동한 후에, 바로 아래의 제(2)항에 있는 주소를 누르면, 이들 제1독서, 제2독서, 그리고 복음 말씀 본문들을 눈으로 읽으면서 이들을 또한 귀로 들을 수 있습니다.

 

2006년 12월 10일(다해 대림 제2주일)부터 지금까지 바로 아래의 제(2)항에 안내된 English Bible Study 까페[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영어 성경공부 자료실]에서 필자가 지속적으로 전달 제공해온 자료이므로, 여기에 진작에 올려드릴 수도 있었으나, 혹시라도 거부감을 가지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 그동안 그러지 않았던 것인데,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바로 위의 제(1)항에서 듣게 되는 NAB에서 발췌된 영어 전례성경 본문들 등을 또한 눈으로 직접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lub.catholic.or.kr/community/asp/club/attboard/read.asp?type=attboard&schcode=pundang4biblestudy&seq=8&id=1284 <----- 또한 필독 권고   

 

이것도 또한 여기에 진작에 올려드릴 수도 있었으나, 혹시라도 거부감을 가지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 그동안 그러지 않았던 것인데,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3) 바로 위에 제(1)항제(2)항 제공의 정보들을 반복적으로 꾸준히 함께 활용하면, 영어 듣기 및 읽기 능력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상, 게시자 주 2 끝) 

[이상, 2023년 9월 7일자 내용 추가 끝]

 

 

가해 연중 제23주일 온라인 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자료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동영상 청취 주소: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24/가해연중제23주일.mp4 <----- 여기를 클릭하여 청취하십시오

가해 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동영상 목록: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13.htm  

동영상 교재: 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가해 II, 가톨릭출판사, 2008년.

동영상 교안(敎案)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97.htm

 

 

시작 기도: 대성호경, 주님의 기도

 

이 십자성가 표적(表迹)으로써, (이마 위에 +)

우리의 주님이신 천주께서는 (입 위에 +)

우리의 원수들로부터 우리를 구하소서. (가슴 위에 +)

성부와 (이마 위에 손끝을 찍음) 

성자와 (배 위에 손끝을 찍음) 

성령의 이름으로. (왼쪽 어깨 위에 손끝을 찍은 후에 그리고 곧바로 직선으로 이동하여 오른쪽 어깨 위에 손끝을 찍음)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들을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복습 0: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주일 전례성경 학습자들을 위한 입문자료 모음 동영상을 청취할 수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 세례를 받으신 새교우님들께서 꼭 청취하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79.htm

 

복습 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하느님이 한 말단인, 적어도 3자들 사이에 있어, "경의/존중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piety)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49.htm

 

복습 2: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악"(evil), "윤리적 악"(moral evil), "죄"(sin), 원죄"(original sin) 등의 용어들의 정의(definitions)들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68.htm  

 

복습 3: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자/하느님의 아드님"(the Son of God)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60.htm


복습 4: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은총"(grace)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47.htm 

 

복습 5: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영광"(glory) 이라는 용어와, "영광을 발하는"(glorious), "영광을 더하다"(glorify), "자랑하다"(glory in) 등의 그 파생어들의 정의(definitions)들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45.htm  

 

복습 6: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하늘 나라(천국)"(the kingdom of heaven)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80.htm 

[제목: 하늘 나라(천국)의 흔적이 있는 곳과 지상의 그 현존처는 구분하여야]

 

복습 7: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 1225-1274년)"신학 대전"(Summa Theologiae)에 제시된 '애덕'(charity)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한 글[제목: 애덕(charity)이라는 덕; 게시일자: 2013-11-04]을 학습할 수 있다[본문 중에 포함된 key word: Christoph Cardinal Schönborn]: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65.htm 

 

게시자 주: 유구한 교회의 역사 안에서, 기원후 4세기 - 5세기를 거치면서 삼위일체 교의가 정식화 되고 나서, 그 이전의 시기에 그리스도교를 온갖 이단들로부터 지켜주었던 "새창조", "새아담", "새하와" 관련 내용들이 참으로 오랜 기간에 걸쳐 감추어져 있었는데, 최근의 교부학 연구자들의 노력 등에 의하여 재조명되고 또 복원되어, "가톨릭 교회 교리서"를 통하여 비로소 생생하게 제시되고 있다는 생각이며, 특히, 이 내용, 즉, "총귀(總歸)/총괄복귀"(總括復歸, recapitulation, recapitulatio) 교의(dogma, 믿어야 하는 교리)는 장차 교회의 일치를 위하여서도 필수적인 내용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의 안식일이 주일인 근거도 바로 이 "새창조"를 경축하기 위함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성직자 및 수도자들 그리고 개신교회 측의 목회자들의 필독을 권고 드립니다.

 

 

<가연중23주일> 가해 연중 제23주일  

 

예제키엘 33,7-9; 마태오 복음서 18,15-20; 로마 13,8-10 

 

"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가 II, 제275-282쪽

 

오늘의 제1독서 중에서:

 

"너 사람의 아들아, 나는 너를 이스라엘 집안의 파수꾼으로 세웠다. 그러므로 너는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해야 한다." (에제키엘 33,7)

 

오늘의 복음 말씀 중에서: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마태오 복음서 18,19-20) 

 

오늘의 제2독서 중에서:

 

"...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말 안에서 총귀(總歸)/총괄복귀(總括復歸) 됩니다(is recapitulated)[주: 1979년에 개정된 "새 대중 라틴말 성경" 본문을 반드시 잠조하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구현/실행입니다. (로마 13,9ㄴ-10) 

 

 

오늘의 전례성경이 가르치는 바를 학습하기 위하여,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합시다.   

 

A.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경 본문에 근거한, (i) ‘의로운 자들’(the just), (ii) ‘의롭지 않는 자들’(the unjust)에 마땅히 포함되는 ‘사악한 자들’(the wicked), 그리고 (iii) ‘사악하지 않은 의롭지 않은 자들’(the unjust who are not wicked)들, 이들 세 구분들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10.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19_wed.htm

 

B.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1요한 4,12를 제시하는 마태오 복음서 18,20에 대한 성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버(St. J. Escriva, 1902-1975년)의 탁월한 해설을 읽을 수 있습니다. 꼭 학습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19_wed.htm 

 

C.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354-430년)에 의하여 십계명들의 조항들의 구분이, 이후에 가톨릭 보편 교회가 수용한 하느님 쪽으로 셋 그리고 이웃 쪽으로 일곱으로, 마련될 당시에 성 아우구스티노가 들여다본 성경 본문들에 대한 정밀한 비교/분석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특히, 신명기 5,17-21에 기록된 십계명이 탈출기 20,13-17에 기록된 십계명보다 더 오래되었음에, 따라서, 원본에 더 가까움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04.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31.htm

 

D.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516항, 제517항, 그리고 제518항에서, (i) 성부 하느님의 계시, (ii) 구속/속량 신비, 그리고 (iii) 총귀(總歸)/총괄복귀(總括復歸) 신비로 구성된다고 가르치는, 예수님의 신비/오적(奧跡)(mysteries)들에 공통인 특징들 중의 하나인, 이 세상의 질서가 아담과 하와가 원죄를 범하기 이전의 원 상태, 즉, ‘코스모스(cosmos)’로 회복되기 시작하였음을 말하는, 예수님의 부활에 의하여 이미 개시된, 성경 용어인 ‘총귀(總歸)/총괄복귀’(總括復歸, recapitulation, recapitulatio)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필독하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recapitulation_of_St_Irenaeus.htm <----- 필독 권고

 

E.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1583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새 창조’의 핵심 성경 용어인 'recapitulation/recapitulatio'의 차용 번역 용어로서 채택된 ‘총귀(總歸)’라는 용어의 출처와 기원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15.htm 

(발췌 시작)

3-1. 다음은, 1615년에 초간된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1566-1640년)"교요해략", 상권에서 발췌한 바입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66-1640_알퐁소_바뇨니/1615_교요해략.htm 

(발췌 시작)

교요해략_권지상_3_천주10계_19-32 (<---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2017년 1월 31일) 주: 1584년에 초간된 것으로 알려진 미카엘 루지에리 신부님(1543-1607년)"천주성교실록"에 수록된, 그 제8계 전문 그리고 제1계의 첫 번째 문장이 소위 말하는 "조전천주십계"와 동일한, 1584년 직전에 증국 본토에 최초로/처음으로 도입되었던, "적응주의" 원리가 반영된, "십계명"의 본 계명들과 그 해설들을 따르지 않고, 여기에 있는, 1610년-1622년 기간 동안 중국 예수회 제2대 장상/관구장을 역임한, 그러나 중국 예수회 초대 장상/관구장을 역임한 마태오 리치 신부님(1552-1610년)"적응주의" 원리를 극력 반대하였던, 니콜라스 롱고바르디 신부님(1559-1654년))의 "원칙주의" 원리를 따르는 "십계명"으로 교체됨. 특히 "적응주의" 원리가 반영된 "천주성교실록"제8계와 제1계의 본문들 자체가 여기 "교요해략"에 제시된 문장들로 교체되고(주: 교체된 시점은 중국 예수회 제2대 장상/관구장을 역임 중(1610-1622년)의 시기인 1610-1615년 사이임이 실증적으로(positively) 고증(考證)되며, 따라서 교체자는 니콜라스 롱고바르디 신부님(1559-1654년))인 것으로 결론내림.) 이에 따라 해당 계명들의 해설들도 교체됨. 다른 한편으로, "만천유고"에 수록된 우리말 노래 "십계명가"의 가사는 미카엘 루지에리 신부님(1543-1607년)"천주성교실록"에 수록된 "십계명"과 해설들을 그 근거로 하고 있음. 이에 대한 더 자세한 글은 다음에 있으니 꼭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67.htm ; (2019년 5월 17일) 제16a쪽에 "상주(上主)"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음. 제12b쪽에 "총귀"(總歸, 라틴어: recapitulatio, 영어: recapitulation, 총괄복귀, i.e., altogether revert to)"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음] 

 

총귀_in_1615_교요해략_권지상_3_천주10계_제12b쪽.jpg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세 번째 열(column)부터 읽도록 하라.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3-1: (1)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1615년에 초간된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교요해략"아 우리나라 조선의 이벽 성조에 의하여 작문된 "성교요지"의 근거 문헌들에 포함됨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하는 필자의 졸들/논문들을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76.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84.htm <----- 필독 권고

(이상, 게시자 주 3-1 끝)

(이상, 발췌 끝) 

 

F.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가톨릭 교회의 교황 교도권에 매우 충실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오늘의 독서들에 대한 해설들[주: 일부 해설들은 우리말로 번역되었음]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a_ot_23.htm <----- 필독 권고 

 

G.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lerus/homilies/a_ot_23.htm <----- 전문 필독 권고

[주: 교황청 성직자 및 수도자들을 위한 홈페이지 제공]

(발췌 시작) 

THEME of the READINGS

 

오늘의 독서들의 주제


On the basis of Vatican Council II, the Catechism presents various symbols of the Church: sheepfold, cultivated field, building of God, temple, family, Mystical Body of Christ, People of God (cf. 753-757). Today’s liturgical celebration introduces one more symbol, the Church as communion. The Gospel text chosen for this Sunday is taken from the so-called ecclesial discourse, whose core is fraternal love. In the first reading, Ezekiel, having been appointed watchman for the People of Israel, feels it is his responsibility to correct the wicked in order to be faithful to his vocation. In addressing the Christians of Rome, Saint Paul has no doubt in asserting peremptorily "Love is the fulfillment of the Law."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기초로 하여,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교회의 다양한 상징(symbols)들을 다음과 같이 진술합니다(presents): 양우리(sheepfold); 경작지, 하느님의 집, 성전(temple), 가족(family), 그리스도의 신비로운 몸(Mystical Body of Christ), 하느님의 백성(가톨릭 교회 교리서 753-757항들 참조하라). 오늘의 전례 경축은, 하나됨(communion, 통공)으로서 교회라는, 상징(symbol) 하나 더를 도입합니다. 오늘 주일을 위하여 선택된 복음서 본문은 소위 말하는 교회 강화(ecclesial discourse)로부터 발췌된 것인데, 이 강화의 핵심은 형제들 사이의 사랑(fraternal love)입니다. 제1독서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파수꾼으로 이미 임명된, 에제키엘은 자신의 소명(vocation)에 충실하기 위하여 사악한 자(the wicked)들을 교정하는 것이 자신의 책임(responsibility)이라고 느낍니다. 성 바오로는,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사랑(love)이 모세 율법(the Law)의 구현이다"를 결정적으로(perememtorily) 주장하면서, 전혀 의심하지 않습니다.

 

DOCTRinal MESSAGE

 

교리 메시지


The Church as communion is first and foremost the sacrament of the intimate union of humans with God. This communion with God is the purpose of the Church. In the Gospel, Jesus says, "For where two or three are gathered in my name [to pray to the Father], there am I in the midst of them" (Mt 18: 20). Ezekiel’s voice must resound among the people in order for the wicked to correct their conduct and convert to God (first reading). Therefore, the Church is responsible for inviting individuals to union with God, and all legitimate and effective means must be used to achieve this. There would cease to be communion without this vertical dimension, which emphasizes both the instrumental nature of the Church and its universal vocation (no man or woman is excluded from the Church’s calling to communion with God). The Church must become more conscious of its vocation as an instrument of communion. She does this first of all in relation to her children, to whom she offers God’s Revelation in Jesus Christ and the means to give an adequate and generous response. Secondly, she does this by means of ecumenical and inter-religious dialogue with those who are not visible members, two contemporary forms of this ecclesial conscience.

 

하나됨/통공(communion)으로서 교회는, 첫 번째로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인간(humans)들과 하느님의 친밀한 결합이라는 성사의 표적(表迹, a sensible sign)[the sacrament, 聖事之迹, 거룩한 일, 즉, 하느님의 일(opus Dei)의 표적]을 말합니다.(*) 하느님과의 바로 이 하나됨/통공은 교회의 목적입니다.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 (마태오 복음서 18,20)라고 말씀하십니다. 에제키엘의 목소리는, 사악한 자(the wicked)들이 자신들의 처신을 교정하고 그리하여 하느님 쪽으로 회심하도록(convert) 하고자, 이 백성 사이에서 울려퍼져야 합니다(resound)(제1독서). 그러므로, 교회는 개인들을 하느님과의 결합 쪽으로 초대할 책임이 있으며, 그리고 모든 적법하고 효과적인 수단들은 바로 이것을 성취하기 위허여 사용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도구적 본성(instrumental nature) 및 그 보편적 소명(universal vocation)(즉, 사람 혹은 여자 어떤 자도 하느님과의 하나됨/통공 쪽으로 교회의 부름으로부터 배제되지 않음) 둘 다를 강조하는, 바로 그러한 수직적 양상(vertical dimension) 없이는 하나됨/통공이 되기 위함에 중지/멈춤(cease)이 있게 될 것입니다. 교회는 통공/하나됨의 한 개읜 도구로서 자신의 소명에 대하여 더 의식하게(conscious)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무엇보다도 먼저, 그들 쪽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느님의 계시 및 그리고 [이 계시에 대한] 어떤 적절한(adequate) 그리고 관대한 화답(response)을 주는 수단들을 제공하는, 자신의 자녀들 쪽으로 관계 안에서 바로 이것을 행합니다. 두 번째로, 교회는, 가시적 구성원들이 아닌 자들과, 공의회적인(ecumenical) 및 경신에 관한 상호(inter-religious), 대화(dialogue)에 의하여, 바로 이것, 즉, 바로 이 교회의 자각(conscience)인 두 개의 동시대의 형태(forms)들을 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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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Sacramentum의 애초의 번역 용어가, 성사(聖事)가 아니고, 자구적으로 훨씬 더 정확하게, 성사[聖事, 즉, 하느님의 일(opus Dei]의 적(聖事之迹, sensible sign, mystery) 이었음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하는 졸글을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34.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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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hurch is also a sign and instrument of union among people. The communion with God almost spontaneously leads to fraternal union. It is the union of love, as we are all brothers and sisters in the Faith, but each fulfills their own task. Those who are watchmen and guides express their love by leading, and if necessary, correcting those who have lost their way. The Church as communion compels us to foster union and love, to seek the good of others, to love them and wish them the best. In some circumstances, excommunication may become a requirement of communion, to preserve unity and peace among the faithful. "If he refuses to listen even to the church, let him be to you as a Gentile or a tax collector," Jesus teaches us in the Gospel. In fact, it is not the Church that excommunicates one of its members. Rather it is the individual who freely excludes himself from communion. Indeed, it is well known that the Church has made great efforts to maintain communion whenever positions of dissent arise in connection with essential points of dogma or morality. The Church as communion always opens her arms to welcome the brother or sister to make them part of the ecclesial family once again. The stories in the press that portray the Church as being anchored to its power, closed-in, backward, authoritarian, and an enemy of progress are anachronistic and stereotypical cliches, and as such are not worthy of our attention.

 

교회는 또한 사람들 사이의 결합의 한 표적(表迹, sign) 및 도구(instrument)입니다. 하느님과 하나됨/통공(communion)은 형제들 사이의 결합(fraternal union) 쪽으로 거의 한 순간적 충동의 한 결과로서(spontaneously) 인도합니다(lead to). 이 하나됨/통공은, 왜냐하면 우리가 신앙(Faith) 안에서 모두 형제들과 자매들이면서, 그러나 각자는 자신들의 고유한 임무를 구현하기 때문에, 사랑의 결합(the union of love)입니다. 파수꾼(watchmen)들 및 안내자(guides)들은 자신들의 길을 이미 잃은 자들을 인도함으로써, 그리고 필요하다면, 교정함으로써, 자신들의 사랑을 표현합니다. 하나됨/통공으로서 교회는 우리들로 하여금 결합과 사랑을 육성하도록(foster), 다른 이들의 선을 추구하도록(seek), 그들을 사랑하도록(love) 그리하여 그들에게 최선을 바라도록(wish) 의무지웁니다(compels). 어떠한 여건들에서, 파문(excommunication)은, 열심 신자(the faithful)들 사이의 결합과 평화/화목을 보존하기 위한, 하나됨/통공의 한 개의 요건(a requirement)이 될 수도 있습니다.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라고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오늘의 복음 말씀에서 가르치십니다. 사실, 그 구성원들 중의 한 명을 파문하는 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을 하나됨/통공으로부터 자유롭게 배제하는(freely excludes) 자는 바로 그러한 행위를 하는 개인입니다. 정말로, 교의(dogma) 혹은 윤리(morality)의 본질적인 점들과 관련하여 이의(異議, dissent)의 자세(position)가 일어날 때마다 교회가 하나됨/통공을 유지하기 위하여 커다란 노력들을 해왔음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나됨/통공으로서 교회는 그러한 형제 혹은 자매를, 그들로 하여금 한번 더 이 교회 가족(ecclesial family)의 일부로 만들고자, 환영하기 위하여 자신의 팔들을 항상 벌립니다. 보도 기관(press)에서 교회를 그 힘(power)에 닿을 내린, 억압적으로 폐쇄된(closed-in), 역행하는(backward), 권위적인(authoritarian), 그리고 전진(progress)의 원수인 것으로서 묘사하는(partary) 이야기들은 시대착오적(anachronistic) 및 대표적인(stereotypical) 진부(陳腐)한 표현(cliches)들이며, 그리하여 그러한 이야기들은 우리가 주의를 기울일 만한 가치가 없습니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 3분 복음/교리 묵상

 

CCCC 420. 새 법 혹은 복음이라는 법은 무엇입니까?
CCC 1965-1972, 1983-1985


그리스도에 의하여 선포되었고 또 구현된, 새 법(New Law) 혹은 복음이라는 법은, 자연적이거나 혹은 계시된, 신성적 법(divine law, 신법)의 충만함이며 완성입니다. 새 법은,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서로 사랑하라는, 바로 이 계명(commandment) 안에서 총돨복귀/총귀(總歸)됩니다. 새 법은 또한, 그러한 사랑을 가능하게 하는 성령의 은총이라는, 하나의 내면적 실체(interior reality)입니다. 새 법은 “자유로움의 법(the law of freedom)”(야고보 1,25)인데, 왜냐하면 이 새 법이 사랑/애덕(charity)의 고무(prompting)에 의하여 우리에게 자발적으로(spontaneously) 행동하는 경향을 가지게 하기 때문입니다(엮은이 번역).

 

     “새 법은 그리스도 쪽으로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성령의 은총 바로 그것과 대개는
      (mainly) 동일한 은총입니다.”(성 토마스 아퀴나스).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a_ot_23_c1965.htm 

 

CCCC 421. 우리는 새 법을 어디에서 발견하는지요?
CCC 1971-1974, 1986
새 법은 그리스도의 전체 삶과 설교 안에서 그리고 사도(Apostles)들의 윤리 교리교육(moral catechesis) 안에서 발견됩니다. 산중수훈/산중성훈(Sermon on the Mount)(*)는 이 새 법의 주된(principal) 표현입니다(엮은이 번역).

 

(*)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이 번역 용어의 출처, 그리고 이 용어가 산상설교라는 오역으로 바위어져 그리고 우리나라에 전달되는 과정 등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22.htm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a_ot_23_c1971.htm

 

 

마침 기도: 성모송, 영광송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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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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