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성당 게시판

가죽나무

인쇄

강선미 [jahanna] 쪽지 캡슐

2000-07-03 ㅣ No.3489

가죽나무

 

  

 

 

나는 내가 부족한 나무라는 걸 안다.

내 딴에는 곧게 자랐다 생각했지만

어떤 가지는 구부러졌고

어떤 줄기는 비비 꼬여 있는 걸 안다.

그래서 대들보로 쓰일 수도 없고

좋은 재목이 될 수 없다는 걸 안다.

다만 보잘 것 없는 꽃이 피어도

그 꽃보고 기뻐하는 사람 있으면 나도 기쁘고

내 그늘에 날개를 쉬러 오는 새 한마리 있으면

편안한 자리를 내 주는 것 만으로도 족하다.

내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하는 사람에게

그들의 요구를 다 채워줄 수 없어

기대에 못미치는 나무라고

돌아서서 비웃는 소리들려도 조용히 웃는다.

이 숲의 다른 나무들에 비해 볼품이 없는 나무라는 걸

내가 오래 전부터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 한 가운데를 두 팔로 헤치며

우렁차게 가지를 뻗는 나무들과 다른 게 있다면

내가 본래 부족한 나무라는 걸 안다는 것 뿐이다.

그러나 누가 내 몸의 가지하나라도

필요로 하는 이 있으면 기꺼이 팔 한짝을

잘라줄 마음 자세는 언제나 가지고 산다.

부족한 내게 그것도 기쁨이겠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가죽나무일 뿐이기 때문이다.

 

 

 

 

 

                        - 도종환 -

 

 

 

 

 

 

 

 

 

사람 때문에 힘들 때가 많습니다.

어쩌면 그 대부분은 기대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이 나에게서 바라는 기대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기준...

그에 미치지 못하면 비난과 비웃음을 받고 스스로도 자책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자책이 나의 능력보다 더 크면 더 많은 실수와 괴로움을 가져 옵니다.

 

우리에겐 끊임 없는 노력과 반성으로 고쳐야 할 것이 많이 있지만 때로 싫어도 나의 일부분으로 인정해야 할 것도 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괴로워 하고 사람들의 비난에 계속 힘들어 한다면 그건 헤어날 길이 없는 고통이 되겠지요.

 

내가 살아가는 기준이 다른 사람의 눈이여서는 안됩니다.

다른 이의 눈에는 보잘 것 없는 부족한 나무라 할지라도

필요로 하는 이 있으면 기꺼이 팔 한 짝을 잘라줄 마음 자세가 내 안에 있고

내 그늘에 날개를 쉬러 오는 새 한 마리 있다면

시인은 부족한 나무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세상에서 가장 크고 행복한 나무가 아닐런지요.



24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