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성당 게시판

내가 만난 예수 -막달라 여자 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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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이 [pear] 쪽지 캡슐

2000-07-03 ㅣ No.3501

 

 내가 잔을 가져 오자 그가 식시기도를 했는데, 그 기도문들은 어린 시절 이후 잊고 있었있던 것이었습니다. 그가 진한 포도주와 물을 섞는 모습 -다른 많은 손님들도 그랬듯이-을 지켜보면서 그가 나를 찾아온 본래의 목적이 과연 무엇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빵을 나누어 한 쪽을 내게 주며 포도주도 한 잔 따라 주었습니다.

 

 우리는 함께 먹고 마셨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은 나자렛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자랐으며 그 곳에서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고향과 고향사람들을 무척 사랑했지만 그 곳 생활에 만족할 수가 없어 결국 고향을 떠나 남쪽으로 가 세레자 요한을 만나기로 결심했고 세례자 요한은 그에게 삶의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요한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사람들이 위대한 랍비에게 드리는 존경심을 가지고 이야기했습니다. 요한과 함께 지낸 후에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그의 귀향은 실망과 고통뿐이었다고 했습니다. 고향 사람들은 예수에게 일어난 변화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난 또다시 고향을 떠나게 되었소.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목적이었소. 귀향은 처음에 고향을 떠날 때 간직했던 나의 뜻을 다시 확인시켜 주었지요. 우리가 삶안에서 선택하는 결정들이 결국에는 우리 자신이 영원히 속해 있다고 믿는, 바로 그 곳으로부터 우리를 떼어놓는다는 사실이 재미있지 않소?"

 

 "하지만 어차피 나자렛에 머무르지는 않을 작정이었잖아요."

 

 "아니오. 자신이 어딘가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과 또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오. 그러나 나는 나자렛으로 돌아갈 수 없소."

 

 "고향 사람들의 반응에 너무 놀랄 필요는 없어요. 예언자보다는 목수와 함께 사는 것이 훨씬 쉽고, 망가진 인생보다는 망가진 의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쉬우니까요. 정말이에요. 저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거든요."

 

 그는 웃으며 포도주를 또 한모금 마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꺼냈습니다. 그의 말의 요지는 하느님은 이 세상을 사랑하시어 모든 사람이 당신 안에서 평화를 누리기를 바란다. 사랑과 용서가 변화를 향한 유일한 원동력이다. 사랑과 용서는 사람들을 죄스런 과거의 멍에로부터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감추려 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것들 -고뇌하며, 상처받기 쉽고, 불안하며, 외롭고, 지쳐있으며, 엉뚱하고,  죄를 범한 것- 은 소중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하느님은 사람들을 소중하게 끌어안을 수 있을 만큼 강하시며, 모든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자비로우시며, 당신 선택의 의외성으로 사람들을 아연케 하는 그런 사랑을 간직하신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를 보세요."  내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의 관심은 그만두고라도 그 분의 관심에서조차 벗어난 그런 생활을 하고 있어요. 내가 이 일을 그만두고 안식일 날 회당에 나갔다고 가정해 보세요. 사람들은 나를 붙잡아서 이층 난간에 머리채를 묶어 매달걸요. 그래도 아무도 그들을 탓하지 않을 거에요. 나는 온 세상에 나쁜 여자로 소문이 나 있고, 그것은 절대로 바뀔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나는 영원히 막달라의 창녀일 뿐이죠."

 

 "하지만."

 

 "그만두세요"  내가 그의 말을 가로막았습니다. "당신 고향 사람들이 당신을 죽이려 했을 정도라면 막달라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할 지 한 번 상상해 보세요. 그리고 당신은 이 사회에서 공인된 죄인도 아니잖아요? 물론 당신이 이곳에 다녀갔다는 소문이 나면 사정이 달라지겠지만요. 어쨋든 나를 만난다는 것은 당신에세 유익할 것이 없습니다."

 

 "알고 있소. 그리고 나는 그 또한 감수하고 있소. 하지만 내가 염려하는 것은 당신이오. 그래서 내가 여기에 온 것이고."

 

 "고맙군요. 하지만 내가 심각한 죄인이라는 것을 생각지 않으시는 것 같군요. 말하자면 나는 잘못을 범하고 그 때마다 더 잘 살아보겠다고 나름대로 애쓰는 평범한 죄인이 아니라구요. 나는 죄의 수렁에 깊숙이 빠져 있는 사람에다가 소문난 죄인이지요. 어쩔 수 없는 일이죠. 난 죄 말고는 아무것도 몰라요. 죄가 곧 나죠. 당신은 지금 죄, 그 자체를 보고 있는 거예요."

 

 "하느님이 용서해 주신다는 것을 믿으시오?" 그가 물었습니다.

 

 "매춘에 관해서는 ’아니오’ 라고 답할 수 밖에 없군요."

 

 "하느님이 당신을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고 있소?"

 

 "저를요?"나는 깔깔대고 웃었습니다.  "하느님은 바보가 아니에요. 그분은 쓸데없는 곳에 당신 사랑을 퍼붓지 않을걸요. 그렇지 않나요?"

 

 "하느님의 사람은 무한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엔 계산이 없소. 스스로의 뜻대로 자유롭게 베풉니다. 상대방이 사랑을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문제가 되는 않지요.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를 통제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기 만족을 추구하지 않으며 상대방의 거부까지도 감수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을 베푸시고 기다리실 뿐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통제하는 것은 사람이오.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약점이지요."

 

 "어떻게 하느님이 상처받을 만큼 약하다고 할 수 있지요?"

 

 "그 분은 사랑이시기 때문이지요. 하느님의 사랑은 언제나 상처받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하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의 사랑은 영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은 영원히 용서하십니다."

 

 "내 인생을 바꾸고 싶은 만큼 그것을 믿고 싶지요. 하지만 솔직히 말헤서 내게는 그럴 만한 의지가 없어요. 하느님이 용서하실 것이 너무 많고 내가 그분을 사랑할 수 있는 여지는 너무 적거든요."

 

 "이야기를 하나 들려 드릴까요?"

 

 "이야기요? 원하신다면. 전 항상 남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편이죠."

 

 그는 상심한 것 같았습니다,  "그런 종류의 이야기가 아니오."

 

 "미안해요. 말씀하세요."

 

 "옛날에 어느 돈놀이꾼이 있었는데 그에게 빚을 진 사람이 둘이 있었소.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또 한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지요. 그런데 그 두 사람은 모두 빚을 갚을 능력이 없었소. 그래서 돈놀이꾼은 그들이 빚을 모두 탕감해 주었소."

 

 "행운아들이군요."

 

 "그렇다면 두 사람 중 누가 그 돈놀이꾼을 더 사랑하겠소?"

 

 "당연히 빚을  더 많이 탕감받은 자겠죠."

 

 "바로 맞추었소."

 

 "하지만 그것은 단지 돈....."

 

 "회피하려 하지 마시오." 그가 나의 말을 가로 막았습니다. 그러고는 내 손을 꼬옥 잡아주었습니다.  "마리아, 마리아. 들을 귀가 있다면 내가 당신에게 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시오."

 

 "듣고 있어요. 그리고 당신의 친절함과 동정심에 대해 고맙게 생각해요. 진심이에요. 하지만 당신은 내 인생이 얼마나 험악한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군요."

 

 " 왜 사람들은 내가 동정적이기 때문이 당연히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는 말을 멈추었습니다. 한참 동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입이 바짝 바짝 타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침을 삼키는 것도 힘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나같은 여자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우습게 들리겠지만 지금까지 그렇게 한 남자의 관심을 깊게 느껴 본적이 없었습니다. 내가 어색해하고 있는 것을 느꼈는지 그는 쥐고 있던 내 손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열려 있는 문께로 갔습니다. 그러고는 그 자리에 서서 호수를 바라보았습니다.

 

 황혼이 지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앉은 자리에서 바라보는 그 광경은 마치 알 수 없는 커다란 슬픔이 호수에 스며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먼 들판 어디에선가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와 맑은 웃음 소리가 들렸습니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등잔에 기름을 채웠습니다. 등잔불을 켜자 올리브 기름의 은은한 향기가 방안 가득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자리에 앉았습니다. 나는 지금 말하지 않으면 분명히 후회하게 되리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나는 그가 몸을 돌려 다시 자리로 돌아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말이 없었습니다. 끝내 침묵할 모양이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마치 나의 처지를 바라보는 제 삼자의 입장에서 말하듯- 입을 열어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차츰 신뢰심을 가지고 평생 처음으로 내 자신과 내 처지에 대해 털어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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