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의 작은터

벙어리 편지

인쇄

최지영 [jychoi] 쪽지 캡슐

2000-04-27 ㅣ No.5105

비가 와서 그런지 날씨가 꾸리꾸래해서 그런지...

그냥... 꿀꿀하네요...

빨리 비가 그쳤으면 좋겠습니다..

비 온뒤 하늘은 맑으니까요...

한번도 의식적으로 하늘을 쳐다본적은 없지만..

오늘은 보구 싶네요.. 맑은 하늘을...

 

다들 저처럼 꿀꿀하게 지내지 마시구여.(전 비만 오면 꿀꿀해 집니다,ㅠ.ㅠ)

 

오늘하루도 화이팅입니다..

 

--------------------------------------------------------------------------

 

 

나는 말을 할 줄 모르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나를 당신들은 벙어리라고 부르더군요.

 

 

아무래도 좋았습니다.

 

 

저 역시 크게 하고 싶은 말은 없었던 때라 살아 가는데

 

큰 불편은 없었으니까.

 

 

다만 가끔씩 누군가 내 생각을 읽어주고 내 마음을 함께 느껴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부질없는 바람 따위는 조금 있었지요.

 

 

그렇지만 워낙에 힘든 일이었고, 내게는 두번 죽었다 깨어나도

 

일어나 줄 것 같지 않은 일이었기에 그런 마음이 커질 때마다

 

 

’괜찮아 괜찮아. 그 대신 나는 더 많은 생각으로 살 수 있잖아’

 

 

라며 위로하고.. 말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보다 오히려 행복하다며..

 

스스로 다독거리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이 얘기를 함께 만들어준 그녀를 만났지요.

 

참 착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착한 맑은 마음을 가지며 살아올 수 있었는지.

 

 

처음에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보지 않고 내 몸짓이나 표정만으로도

 

내 마음을 읽어 주는 눈빛에 끌려 편하게 기대고 살았었는데

 

어느날 아침 눈을 떠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내 마음을 대충 읽어주고 다독거려 주는 정도가 아니라

 

지난 세월과 나를 스치며 지나갔던 사람들이 남기고 간 상처를

 

감싸주고 있었습니다.

 

 

눈물 한 번 보인 적 없는데..느끼게 해주고 싶지 않았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어떤 대화를 나누어 보고 싶었는지

 

애써 몸짓 보이지 않아도 그렇게 다 알고 따뜻하게 안아주던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

 

아마도 행운의 신이 다른 사람에게 쏘려던 행운의 화살을 내게 쏘았나 봅니다.

 

그리고 그 잘못 쏜 화살을 실수했는지도 모르고 그냥 지나쳤던가 봅니다.

 

 

나는 그 화살을 누구도 빼앗아가지 못하게 내 마음 깊숙히 꼭꼭 숨겨 놓았습니다.

 

그러믄요..너무너무 행복했죠.

 

 

매순간 그녀에게 감사했고, 이 감정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어떻게

 

갚아주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감사함의 마음이 넘치고 있었습니다.

 

 

손짓 발짓 없이도 내가 기분이 어떤지..어디가 아픈지..

 

왜 짜증을 내는지 알아주던 사람.

 

 

아! 이 사람에게 무엇으로 보답해야 하나?

 

 

한참을 신중하게 생각하고 몇 밤을 고민한 끝에 ’사랑해요’라는 말을

 

건네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도 다른 사람들처럼 남자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할 테니

 

내가 힘겹더라도 노력해야지 다짐을 했습니다.

 

 

「아니에요,틀렸어요. 내가 당신에게 원하는 건 그게 아니에요..생각을 바꿔주세요」

 

 

이상한 일이었지요..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얼굴까지 하얗게 질려가며 말리는 그녀가..

 

 

그러나 나는 당장 인생이 끝난다 해도 남기고 갈 말은..

 

’사랑해요..당신을’ 뿐이라 내 마음을 설명하며

 

간절히 너무도 간절한 몸짓으로 부탁을 했습니다.

 

 

「아닌데요..제발 그건 아닌데요..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영원히 잃게 될 건데요」

 

 

그때 나는 그 소중한 것이 내 목숨이라 생각했습니다.

 

나머지 삶..그래 어차피 생명의 소중함을 그녀 때문에 알고 살게 되었으니

 

그녀를 위해 버릴 수 있다면 오히려 행복할 거란 확신을 가지고 말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무척 힘든 일이었습니다.

 

가르치는 그녀 역시 힘에 벅찼는지 얼굴이 점점 빛을 잃어가고 있었지요.

 

 

그때마다 조금만 더 노력해서 사랑을 말할 수만 있다면

 

그녀의 얼굴이 다시 밝아질거라고 생각하고 노력에 노력을 다했습니다.

 

 

어느날 완벽하지는 않지만 내 마음 정도는 아름다운 말들로 표현할 수가 있게 되었지요.

 

사랑해요..당신에게 감사해요..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내 말을 듣는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며 그녀는 쓰러지고 었습니다.

 

내 노력에 감동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하기에는 그녀의 얼굴색이 너무 하얘져 있었습니다.

 

 

「고마워서 그래요..괜찮아요..울지 마세요..여기까지였나봐요.

 나도 당신을 사랑해요... 이제 남들처럼 살아보세요. 미안해요.....

 여기까지였나봐요.」

 

 

더욱 가슴이 내려앉았던 것은 그녀가 왜 아픈지 어디가 아픈지를 전혀 읽어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녀의 마음은 읽어지지 않았지요.

 

 

그때부터 빌었습니다. 내가 숨을 조금 덜 쉬고 산다해도 괜찮으니

 

그녀를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그렇게만 해준다면 무슨 짓이든 다 할 수 있다고.

 

 

아무도 내말을 들어주지 않았고 그녀의 얼굴에는 점점 핏기가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아! 행운의 신에게 빌여야 되겠구나.내가 화살을 숨기고 돌려주지 않은 심술을 그녀에게 부리는거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빌었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행운의 화살도 돌려주고 더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내 목숨이라 할지라도 웃으며 건네줄 수 있다고 무릎을 꿇고 빌고 또 빌었습니다.

 

그녀를 일어나게 해달라고 다시 예전처럼. 맑은 마음으로 착하게 살 수 있게 해달라고.....

 

 

나는 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런 나를 당신들은 벙어리라 부르더군요.

 

 

내가 한때 말을 할 줄 알았다고 아무리 정교한 손짓 발짓으로 설명하고..

 

선한 마음의 어느 여인과 사랑을 나누었다고 설명해도 당신들은 믿어주지 않더군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살게 되어 있었다고 생각하며 살면 되니까.

 

예전과 틀려진 건 하나, 어느 얼굴이 몹시 보고 싶어진다는 것, 그럴 때면 아무것도 못하고

 

가슴만 친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때 눈물이라도 나와주니 조금 덜 답답합니다.

 

어디에 누구와 있던지 두 번 다시 눈물 흘려지는 일 없이 살았으면

 

그것으로 행복해야지요.

 

 

다시는 말을 배우지 않겠지만 그래도 살다가 어쩔 수 없이 말을 배우기

 

된다면 그 이름 한 번 큰 소리로 불러보고 싶어질 것 같습니다.

 

 

아! 물론 지금 이렇게 많이 울어보는 이유는 혹시나 그 이름 불러질 날이 올 때

 

눈물 없이 불러보고 싶어서입니다.

 

 

                                           원태연 시집 中에서...

--------------------------------------------------------------------------

                                            

                 

 



47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