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십리성당 게시판

모두들 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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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하 [domini0727] 쪽지 캡슐

2005-12-24 ㅣ No.3681

 

1월 1일 새벽에 토론토에서 날아온 고마태오 신부님의 부음으로 한 해가 시작 되더니

여름에는 아들이 꼭 국회의원이 되는 걸 보시겠다고 하시던 내 친한 친구의 아버님께서 그 소원을 풀지 못하고 세상을 뜨시고 가을에는 또 친한 친구가 오랜 투병 끝에, 그리고 한 해가 저무는 12월에는 기도로 주님께 매달리며 살려달라고 애원했던 강 요안나 자매님의 부음을 듣고.....

왜 올해는 내 주위에 정붙여 살던 사람들이 이렇게 한꺼번에 내 곁을 떠나갈까?

그러고 보니 내 나이도 60을 너머 중반에 다다랐으니 나도 이젠 서서히 떠날 준비를 하라는 암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토론토 까지 나를 부르셔서 “이 이야기는 권형제가 설령 얘기를 약간 보태서 쓰더라도 내 이름으로 꼭 책을 내 줘야 해. 그래야 내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미 저 세상에 먼저 가서 나를 기다리겠다고 하던 신애(信愛)한테 내가 한 약속을 이 세상에서 지키고 가는 것이 되니까” 하시며 눈물을 글썽이시며 지난날의 슬픈 사랑얘기를 구술하시던 고 신부님과의 약속은 아직도 미완의 작품으로 남아 있고,

“내 아들이 꼭 국회의원이 되는 걸 내 눈으로 봐야겠어. 내 아들을 좀 도와줘”하시면서 병 위문을 간 내 손을 꽉 잡으시던 그 어르신의 체온이 아직도 내 손 끝에서 느껴지는데.....


지난여름 6월초 어느 날 신록의 풀냄새가 싱그러운 태안 백화산 중턱의 평평한 나무 그늘 아래에서 굿자만사 사람들과 둘러 앉아 김밥에 막걸리를 나눠 먹으며 처음 뵈었던 강은실 요안나님. 얼굴색이며 피부색이 하얗고 입성까지도 시골사람 같지 않던 그분.

내겐 사돈네 집 부인이 되고 또 내가 숫기가 없어서 그 자리가 끝나고 저녁식사 때 횟집에서도 자리를 함께 했지만 멀리 앉아서 단 한마디 말조차 나눈 적이 없는 사이었지만 토담가에 핀 하얀 박꽃 한 송이처럼 어딘가 쓸쓸해 보이고 가냘퍼 보이기만 하던 그림자가 저혈압이었다니.....그걸 내가 먼저 알았더라면 저녁에 잠들기 전에 포도주나 맥주를 한잔씩 꼭 마시고 주무시라고 말이나 한 마디 건넸을 것을.....

엄마 곁은 뱅뱅 돌던 그 어린 남매가 자꾸만 눈에 밟혀서 촛불 켜놓고 하느님께 그토록 간절히 빌었건만.....


그래. 모두가 가는 거야. 우리 모두가 지금 서서히 그곳을 향해 가고 있는 거야.

고 종옥 마태오 신부님이 가시고 내 친구의 아버님이 가시고 내 친구가 가고 또 요안나님이 가신 그곳을 향해서 우리 모두가 지금도 가고 있는 거야.

뭘 그리 안타까워하나? 뭘 그렇게 집착하려고 하느냔 말이야? 놓자. 그리고 버리자.

살아 있으면서 죽음을 배우는 것 그것이 어쩌면 참 신앙이 아니겠는가?

언젠가 버리고 떠나갈 것에 집착하는 노추의 모습은 보이지 말자. 내년에는 내 자리도 내 주고 살아온 날을 돌아보며 정리하는 여유를 가져보자.

먼저 가신 내 아버지 내 어머니 그리고 형님, 누나를 만날 생각을 하자. 고마태오 신부님과의 약속도 미완으로 남겨둘 것이 아니라 매듭을 짓고 주변정리를 해서 언제라도 주님이 부르실 때 “예. 저 여기 있습니다.”하고 따라나설 준비를 하자.


2005년을 보내며 저를 사랑해주신 답십리 교우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으로 송년인사를 드립니다. 새해 건강하시고 주님과 더욱 친해지는 한 해가 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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