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영혼의 눈'뜬 20대 신부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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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순 [son-maria] 쪽지 캡슐

2002-10-15 ㅣ No.3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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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눈' 뜬 20대 신부의 죽음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쓰신 글을 읽다가 '김재문'이라는 낯익은 이름을 접하고 보니, 용산본당 성직자묘지에 계신 신부님이심을 알았습니다. 두꺼운 안경너머로 연민이 느껴지게 하는 외모의 소유자였던 신부님. 너무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신 김재문 신부님의 가슴 메어지는 이야기를 만나고 보니, 반가운(?) 마음에 가족들과 함께 나누고자 이렇게 올려 봅니다. ㅠ_ ㅠ **************************************************************** 80년 7월에 김재문 신부라는 젊은이가 신부된 지 1년밖에 안 되는데 죽었습니다. 신부전증이었습니다. 그런데 김 신부는 합병증으로 죽기 4∼5개월 전, 약 한 달 남짓 되는 사이에 두 눈의 시력을 잃게 되었습니다. 시력을 잃는 과정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굉장히 고통스러웠습니다. 어느 날, 김 신부는 나에게 "주교님, 제 나이 이제 겨우 스물 여섯인데, 왜 이렇게 되어야 합니까?"라고 울면서 말했습니다. 나는 그를 껴안고, 위로의 말을 하고자 했으나, 사실 위로할 수가 없었습니다. 김 신부가 실명한 지 얼마 안 되어 다시 병실로 가 보았을 때, 김 신부는 마침 수녀님 한 분과 간병하는 이와 함께 실명된 뒤 처음으로 미사를 봉헌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갔을 때에는 '말씀의 전례'가 다 끝나고 봉헌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김 신부는 봉헌기도문을 읽을 수 없으니 말로써, "하느님 아버지, 이 제물을 저보다 더 고통받는 병자들을 위해 바치오니 받아 주소서"라고 말했습니다. 나도 옆에서 성찬전례를 도우면서 미사를 계속 진행했습니다. '주의 기도'를 바치게 되었는데, 김 신부는 '천주의 자녀 되어 구세주의 분부대로 삼가 아뢰오니.....'라고 일상 하는 말씀을 외우는 대신,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가 갑자기 두 눈의 시력을 잃고 앞 못 보는 소경이 된 이래, 누구의 도움 없이는 한 걸음도 걸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예수님은 참으로 나의 길이시다'라는 말씀을 굳게 믿습니다. 그분 없이 저는 한 순간도 살 수 없습니다. 그분은 참으로 우리의 길이십니다. 우리의 길이신 주께서 가르쳐 주신 주의 기도를 바칩시다." 나는 이 말을 들었을 때 깊이 감동했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그 신부로 하여금 그리스도가 길임을 확신하게 하였고, 또 다른 이들에게 그렇게 전달할 수 있게 하였습니까? 나는 김 신부가 그 불치병의 고통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깊이 일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는 분명히 실명으로 말미암아 실망과 좌절에 빠져 있는 김 신부와 함께 있으며, 그의 마음을 당신의 빛으로 밝히고 있었습니다. 김 신부는 '육신의 눈'은 잃었으나 '영혼의 눈'은 떠서 주님을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영혼의 눈'을 떠야 합니다. 그것은 많은 경우, 김 신부나 많은 병자들, 또는 사형수들이 기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에서 보듯이 고통을 통해서 우리 마음이 정화될 때입니다. 우리 마음이 참으로 주님 앞에 가난하고 겸손한 마음, 빈 마음이 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수난의 의미를 더 깊이 깨닫고 그분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또 빛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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