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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느냐? 는 세 번의 질문들 - 요한 21,1-19 [성경용어_사랑] [교리용어_사랑] #<다부활3주일복음> 773_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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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15 ㅣ No.1364


질문: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세번이나  `너는 나를 사랑 하느냐 ` 하고 묻습니다.

모든것을 알고 계시는 주님이 왜 세번이나 물었을까요?? 그 깊은 뜻이 궁금합니다...과연 깊은뜻이 있긴 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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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 찬미 예수님!

1. 들어가면서
우선적으로, 요한 복음서 21,1-19는,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다해 부활 제3주일 복음 말씀입니다.

2.
왜 세 번씩이나 질문하셨느냐? 하셨는데, 이것은 언뜻보기에, 요한 복음서 21,15-19아닌, 일반적인 경우에는 답변을 드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만, 그러나, 요한 복음서 21,15-19에서는 획일적으로 말씀드릴 수 없는 면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요한 복음서 21,15-19에 있어, 비록 질문의 횟수는 세 번이었으나, 그러나 이들 세 개의 질문들이 세 번 다 동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숫자 3은, 히브리 수비학(Hebrew Numerology)에 있어, 완전(completeness) 혹은 완성(completion)을 나타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서는, 예를 들어, "가톨릭 교회의 말씀 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출판사: 가톨릭출판사, 엮은이: 소순태), 다해-I, 부활 제3주일 제2독서(요한 묵시록 5,11-14)의 제3절에 대한 해설과 매년 부활 대축일 제1독서(사도행전 10,34ㄱ.37-43)의 제40절에 대한 해설을 참고하십시오.

3.
3-1.
다음은 요한 복음서 21,15-19 전문입니다. 

     다들 잘 아시겠지만, 우리말본 성경은 번역된 문헌이며, 사용 중인 대부분의 우리말 용어들은, 기존에 사용되어온 우리말 단어들 중에서"차용된 번역 용어들"인데, 가능한 한, 번역되기 이전에 원 단어들이 지니고 있던 의미가 우리말로 번역된 이후에도 잘 보존되어 전달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말로의 번역 과정에서, 혹시라도 두 개의 동일하지 않은 개념을 나타내는 단어들이 동일한 우리말 단어로 번역이 되어, 결과적으로, 우리말 본문에 있어, 전후 문맥 안에서의 특정 문장의 내용이 번역 이전의 해당 문장의 내용과 동일하지 않게 되는 일이, 특히 요한 복음서 21,15-19에서, 발생하고 있는지를 정밀하게 비교/검토하기 위하여, 괄호 안에 해당 원 그리스어 단어와 라틴어 단어를 추가하고, 글자를 굵게 하고, 그리고 색깔을 입힌 것은 필자가 하였습니다:

(발췌 시작)
15 그들이 아침을 먹은 다음에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γαπ?ς, diligis, care for)?”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φιλ?, amo, love)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 양들을 돌보아라(β?σκε, pasce, feed).” 

16 예수님께서 다시 두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γαπ?ς, diligis, care for)?”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φιλ?, amo, love)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πο?μαινε, pasce, tend).” 

17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φιλε?ς, amas, love)?”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φιλε?ς, amas, love)?” 하고 물으시므로 슬퍼하며 대답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φιλ?, amo, love)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β?σκε, pasce, feed) .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젊었을 때에는 스스로 허리띠를 매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 그러나 늙어서는 네가 두 팔을 벌리면 다른 이들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 주고서,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19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어,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할 것인지 가리키신 것이다. 이렇게 이르신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다. 
(이상, 발췌 끝). 

참고 자료 1: http://biblelexicon.org/john/21-15.htm
참고 자료 2: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라틴어 불가타 성경 요한 복음서 21]
참고 자료 3: http://www.newadvent.org/bible/joh021.htm 
              [그리스어본, 라틴어본, 영어본(Douay-Rheim Version)]

3-2. 위의 제3-1항에서 살펴본 바로부터 우리는 다음을 알 수 있습니다:

3-2-1. 예수님께서는 요한 복음서 21,15-19에서 세 번의 질문을 베드로에게 하셨는데,

(i) 예수님의 첫 두 개의 질문에서 사용한 "사랑하다"라는 번역 단어에 대응하는 원 그리스어 단어는 "?γαπ?ς(아가페)" 이다.

(ii) 이 그리스어 표현을 성 예로니모(St. Jerome)는 "diligis" 라는 라틴어로 번역하였다.

(iii) Douay Rheims Bible 영어 성경에서는 이 단어를 "care for" 로 번역하였다.

(iv) 따라서, 이들 번역자들에 따르면, 요한 복음서 21,15-19에서 사용되고 있는 "?γαπ?ς(아가페)" 라는 원 그리스어 단어의 의미에, 라틴어 "diligis" 의 의미, 즉 영어로, "care for" 라는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다.

(v) 그리고, "care for(돌보다, 시중들다)" 에서의 동사 "care"는, 다음의 주소에 있는, Merriam Webster's On Line Dictionary에 주어진 사전적 설명에 의하면, "give painstaking or watchful attention(수고를 아끼지 않는 혹은 주의 깊은 배려를 제공하다)" 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출처: http://www.merriam-webster.com/dictionary/care

(vi) 따라서, "care for"의 의미가 단순히 "돌보다, 시중들다"의 의미가 아니라, 예를 들어, 마치 자녀를 양육 중인 여성이 자신의 젖먹이 아기를 자나깨나 항상 온갖 정성을 다 쏟으면서 돌보듯이, "수고를 아끼지 않으면서 혹은 주의 깊은 배려와 함께, 돌보고, 시중드는 것" 을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그리스어 단어로 "아가페(agape)"로 불리는, 향주삼덕(three theologiccal virtues)들 중의 하나인 애덕(charity, 사랑)은 예를 들어, 마치 자녀를 양육 중인 여성이 자신의 젖먹이 아기를 자나깨나 항상 온갖 정성을 다 쏟으면서 돌보듯이, "수고를 아끼지 않으면서 혹은 주의 깊은 배려와 함께, 돌보고, 시중드는 것" 을 의미함을 알 수 있다.

(vii) 그리고  이 사랑, 즉 "아가페(agape)" 는 당연히, 베드로가 답변할 때에 언급한 "φιλ?(phileo, 필레오, 우정/형제애/동포애)"를 보다 한층 더 헌신적인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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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 다른 한편으로, 

여기를 클릭하면,

베네딕토 16세 교황님회칙(제목: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으로부터 우리는, 그리스어 단어 "아가페(agape)" 에 대응하는 히브리어 단어가 "ahabà" 임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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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요한 21,15-19에서 베드로에게, 그리스어가 아니라, 히브리어의 방언인 아람어로 세 번의 질문들을 하셨을 것이므로, 베드로가 요한 21,15-19에서 실제로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들었을 말은 "ahabà" 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 말을, 두 번씩이나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φιλ?(phileo, 필레오, 우정/형제애/동포애)"로 알아들었기에, 세 번에 걸친 자신의 답변들 모두에서, "φιλ?(phileo, 필레오, 우정/형제애/동포애)"로 답변하였다는 생각입니다.

즉, 베드로는  "ahabà" 를 두 번씩이나 듣고서도 , 그리고 또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ahabà" 가 무슨 의미인지에 대하여 예수님께 질문함도 없이,

(i) 자의적으로, "φιλ?(phileo, 필레오, 우정/형제애/동포애)"로 이해하였거나, 혹은

(ii) 당시의 유다인들에 있어, "ahabà""φιλ?(phileo, 필레오, 우정/형제애/동포애)"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는 생각입니다.

(iii) 즉,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ahabà" 의 의미를 올바르게 알아듣지 못하였다는 생각입니다.

3-2-4. 다른 한편으로, 다음의 [개신교측 제공인 듯한] 자료에서는, 그리스어본 성경인 칠십인역 구약 성경(LXX)의 번역자들이 히브리어본 구약 성경 본문 중의 히브리어 "ahabà""agape(아가페)"로 번역을 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단어의 의미는, 히브리어 구약 성경 본문에서, 비록 신성(神性)적 사랑(divine love, amour divin)(*)에 대하여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그러나 주로(primarily), "인간적 사랑(human love)"에 대하여 사용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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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추가 일자: 2016년 4월 30일]

(***) 번역자 주: 신성(神性)적 사랑(divine love, amour divin)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는 다음의 글에 있으니 꼭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91.htm <----- 필독 권고

[이상, 내용 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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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비록 성경 이전의(prebiblical) 그리스어에 있어 두드러지지 않았으나, "agape(아가페)"는 사랑(love)를 나타내는 가장 통상적인 신약 성경의 단어라는 언급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φιλ?(phileo, 필레오, 우정/형제애/동포애)"는 성경 이전의(prebiblical) 그리스어에 있어 사랑(love)을 나타내는 가장 통상적인 단어이나, 그러나 칠십인역 구약 성경에서 자주 사용되지 않고 있다는 언급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록 "φιλ?(phileo, 필레오, 우정/형제애/동포애)"라는 단어가 "agape(아가페)"와 일부분이 일치하기는 하지만, 이 단어는 우정(friendship)과 관련하여 애정(affection)과 함께인 어떤 사랑(a love)이라는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출처: http://mb-soft.com/believe/txw/agape.htm

(발췌 시작) 

Biblical Terms

 

OT

There are many Hebrew words to express the concept of love. By far the most prominent one (used over two hundred times) is the verb aheb, denoting both divine and human love as well as love toward inanimate objects such as food (Gen. 27:4), wisdom (Prov. 4:6), sleep (Prov. 20:13), agriculture (II Chr. 26:10), and the good (Amos 5:15). The noun ahaba (used about thirty times) is used primarily of human love, as seen in its frequent use in Song of Solomon, although it is also used of divine love (Isa. 63:9; Jer. 31:3; Hos. 11:4; Zeph. 3:17). Another frequently used word (over forty times), the noun dod, has the sexual sense of a man being addressed as "lover" or "beloved"; it is frequently used in the Song of Solomon (e.g., 1:13, 14, 16; 2:3). Finally, there is the often used noun, hesed, which is translated most of the time as "mercy" in the AV, "steadfast love" in the RSV, "lovingkindness" in the NASB, and "love" in the NIV, all of which have the idea of loyal covenantal love.


NT

There are several words for love in the Greek language, but only two are used with any frequency in the NT. Although not prominent in prebiblical Greek, the verb agapao/noun agape is the most common NT word for love. This verb/noun combination is the most frequently used in the LXX in translating aheb/ahabah. Basically it is a self-giving love that is not merited. The second most frequently used word for love in the NT is the verb phileo. It is the most common word for love in prebiblical Greek, but it is not often used in the LXX. Although this word overlaps with agapao/agape, it is a love with affection in connection with friendship. Its derivatives such as philos, friend (used twenty-nine times), and philia, friendship (used only in James 4:4), support this connotation. It is a love that is warm and merited. Two common Greek words for love are never used in the NT: storge, having the idea of family love or affection, as borne out by the negative adjective astorgos used only in Rom. 1:31 and II Tim. 3:3; and eros, expressing a possessive love and used mainly of physical love. In contrast to agape, "eros has two principal characteristics: it is a love of the worthy and it is a love that desires to possess. Agape is in contrast at both points: it is not a love of the worthy, and it is not a love that desires to possess. On the contrary, it is a love given quite irrespective of merit, and it is a love that seeks to give" (Leon Morris, Testaments of Love, p. 128). Although eros does not always have a bad connotation, certainly agapao/agape is far more lofty in that it seeks the highest good in the one loved, even though that one may be undeserving, and hence its prominence in the Bible can be understood.

3-2-7. 다른 한편으로, 다음은 NAB(New American Bible)의 주석들입니다.
 
요한 복음서 21,15-19에서, [베드로가 아니라복음사가 요한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agape(아가페, 즉 charity, caritas)"를  "φιλ?(phileo, 필레오, 우정/형제애/동포애)"의 동의어(synonym)로서 이해하였던 것 같다고 주석하고 있습니다:

출처: http://old.usccb.org/nab/bible/john/john15.htm

(발췌 시작)
[John 15:13] For one's friends: or: "those whom one loves." In John 15:9-13a, the words for love are related to the Greek agapao. In John 15:13b-15, the words for love are related to the Greek phileo. For John, the two roots seem synonymous and mean "to love"; cf also John 21:15-17. The word philos is used here.

[요한 15,13] 친구를 위하여: 혹은: "사랑하는 이들". 요한 15,9-13ㄱ에서, 사랑(love)을 나타내는 단어들은 그리스어 agapao(아가페)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요한 15,13ㄴ-15에서, 사랑(love)을 나타내는 단어들은 그리스어 phileo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복음사가] 요한의 경우에, 이 두 어근(roots)들은 동의어인 것으로 생각되며 그리고 "사랑하다(to love)"를 의미하는데, 또한 요한 21,15-17을 참조하십시오. 여기에서는 philos 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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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old.usccb.org/nab/bible/john/john21.htm

(발췌 시작)
[John 21: 15-17] In these three verses there is a remarkable variety of synonyms: two different Greek verbs for love (see the note on John 15:13); two verbs for feed/tend; two nouns for sheep; two verbs for know. But apparently there is no difference of meaning. The threefold confession of Peter is meant to counteract his earlier threefold denial (John 18:17, 25, 27). The First Vatican Council cited these verses in defining that Jesus after his resurrection gave Peter the jurisdiction of supreme shepherd and ruler over the whole flock.

[요한 21,15-17] 이들 세 개의 절들에 있어 동의어(synonyms)들에 있어서의 어떤 주목할 만한 다양성이 다음과 같이 있습니다: 사랑하다(love)를 나타내는 두 개의 다른 그리스어 동사들 (요한 15,13에 대한 주석을 보라), 그리고 먹이다/돌보다(feed/tend)를 나타내는 두 개의 동사들, 그리고 양을 나타내는 두 개의 명사들, 그리고 알다(know)를 나타내는 두 개의 동사들. 그러나 언뜻보기에 의미에 있어서의 차이점은 없는 것 같습니다. 베드로의 삼중의 고백은 그의 더 이른 시기의 삼중의 부정을 (요한 18,17.25.27) 중화시킴을(counteract) 의미하게 됩니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부활 후에 베드로(Peter)에게 지고의 목자의 재치권(jurisdiction)과 전체 그리스도교 신자들에 대한 지배권(rule)을 부여하셨음을 정의함(defining)에 있어, 이들 절들을 인용하였습니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3-2-6.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 구약 및 신약 성경 본문 전체에 걸쳐 "agape(아가페, 즉 charity, caritas)"에 대하여 상당한 공간을 할애하면서 설명하고 있는 구절들은,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다해 연중 제4주일 제2독서인, 성 바오로에 의한 1코린토 12,31-13,13뿐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제2독서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 중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주어져 있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c_ot_4.htm

(발췌 시작)
...: charity is a love which is to be found in the new order of things established by Christ; its origin, context and purpose are radically new; it is born of the love of God for men, a love so intense that he sacri-
ficed his only-begotten Son (Jn 3:16).

...: 애덕(charity, 즉 아가페)그리스도에 의하여 제정된 사물들 중의 새 질서(new order)에서 발견되는 어떤 사랑(a love)이며, 그리하여 그 원천, 문맥 그리고 목적들은 근본적으로 새로운 것이고, 그리고 이 사랑은, 너무도 강렬하여 당신께서 당신의 유일한 독생자를 희생하셨던 어떤 사랑(a love)인, 사람들을 위한/대한 하느님의 사랑(the love of God for men)에서 태어납니다 (요한 복음서 3,16).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작성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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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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