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 ’21/07/29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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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1-07-20 ㅣ No.4730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 ’21/07/29 목요일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성녀 마르타, 성녀 마리아, 성 라자로 기념일729일로 정하셨습니다. 삼남매는 주 예수님을 자신들의 집에 모시고, 마음을 다해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그분께서 부활이요 생명이심을 믿는” “중요한 복음적 증거를 강조하였습니다. “주 예수님은 베타니아의 집에서 마르타, 마리아, 라자로의 가족 정신과 우애를 경험하셨고, 이런 까닭에 요한 복음은 예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셨다고 말합니다. 마르타는 예수님께 너그러이 환대를 베풀었고, 마리아는 주님의 말씀을 온순하게 경청했으며, 라자로는 죽음을 굴복시키신 분의 명령으로 무덤에서 즉시 나왔습니다.”

 

루카 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을 초대해 놓고 마르타는 예수님을 대접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고,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예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교황님은 마르타와 마리아의 태도를 대조되는 두 가지 태도라고 하지 않고, 오히려 결코 서로 분리될 수 없으며, 깊은 일치와 조화에서 체득되는태도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봉사와 사랑의 활동은 주된 원천에서 결코 떼어낼 수 없는것입니다. 주된 원천이란, “주님의 말씀에 대한 경청”, 다시 말해 마리아처럼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머무는 것입니다. 아울러 교황님은 가난하고, 병들고, 도움이 필요한 형제, 어려움에 처한 형제를 향해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끌지 않는 기도는 무익하고 불완전한 기도에 불과하다.”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교회 봉사에 있어서 단순히 활동에만 주의를 기울일 때, , 역할, 조직에 더 치중하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중심성을 망각하며, 기도 안에서 주님과 대화를 위한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고, 도움이 필요한 형제 안에 계시는 하느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섬기는 위험을 초래합니다.”

 

오늘날의 환대

아울러 교황님은 예수님께서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라고 마르타에게 대답하신 완전한 의미를 우리의 존재와 행동 모두를 뒷받침하고 밝혀주는,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고 명확히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만일 우리가 십자고상 앞으로 기도하러 가서, (우리가 하고 싶은 말만) 말하고, 말하고, 말하고 돌아온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에 말씀하시도록 하지 않는 겁니다.” ...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에서, 예수님은 주님이자 스승이시기 이전에, 순례자요 손님이셨습니다.” 그래서 마르타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다음과 같은 아주 직접적이고 우선적인 의미를 지닌다. “(마르타야, 너는) 어째서 손님을 위해, 그의 존재를 잊어버릴 정도로 많은 일을 해야 하느냐? (...) 손님을 모시기 위해서는 많은 일이 필요하지 않단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그의 말을 듣는 것이다. (...) 그에게 형제적 태도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가족 안에 있다는 걸 깨닫도록 말이다.” 이 같이 환대는 자비의 행위 중 하나이며, 참으로 인간적이고 그리스도인의 덕목으로 드러나지만, 오늘날의 세상에서 경시될 위험이 있는 덕목이 됐다고 하십니다.

 

관상과 활동

교황님은 물론 주일 미사에 참례하러 가지만, 그런 다음에도 항상 바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멈추지 않는, 수많은 그리스도인을 마르타에 비길 수 있다고 말합니다. “마리아는 예수님 가까이에 머물기 위해 하던 일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분의 말씀 중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분께서 우리의 인생에서 우리를 방문하시려고 오실 때, 그분의 현존과 말씀이 모든 것보다 먼저 오기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은 한쪽으로 제쳐 놓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항상 우리를 놀라게 하십니다. 진심으로 그분의 말씀을 들으려고 앉을 때, 먹구름은 사라지고, 의심은 진리에 자리를 내어주며, 두려움은 평온함으로 변하고, 삶의 여러 가지 상황들도 올바른 위치를 찾게 됩니다.”

 

교황님은 이어서 말합니다. “그분과 함께 잠시 외딴 곳에머물려는 용기를 찾고 ‘(우리 곁을) 지나가시는주님께 자리를 내어 드리기 위해, 다만 몇 분이라도, 침묵 중에 집중하고, 일과 중에 멈추어 서고, 그런 다음 평온하고 힘있게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 “예수님께서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루카 10,42)고 마리아의 자세를 칭찬하시며, 우리 각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해야 할 일들로 압도되도록 자신을 맡길 것이 아니라, 삶이 너에게 맡긴 의무를 잘 수행하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주님의 목소리를 들어라.’”

 

마르타에게도 배워야 할 점이 있다고 말합니다. 교황은 이 여인이 손님을 맞이하는 카리스마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까닭에, 그녀의 모범을 따라, “특히 보잘것없는 이들과 가난한 이들이 문을 두드릴 때, 각자가 자신의 집처럼느낄 수 있도록, 우리의 가족과 우리의 공동체 안에서, 환대의 의미, 형제애의 의미를 살아가겠다고 결심해야 한다. 그래서 교황은 마르타와 마리아는 우리에게 길을 알려준다며, 그들의 두 가지 태도를 조화롭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만물의 비밀을 계시해주시는 그분의 말씀을 듣기 위해 예수님의 발치에 앉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분께서 (우리 곁을) 지나가시면서 휴식과 형제애의 순간이 필요한 친구의 얼굴로 우리의 문을 두드리실 때, 손님을 맞이하는 환대에 친절하고 즉각적으로 준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마르타의 믿음과 라자로의 부활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요한 11,43) 무덤에서 그가 나왔던 내용입니다. 교황님은 우리 모두는 죽을 운명이기 때문에 이 결정적인 외침은 인간 각자에게 향해 있다고 명시하며, “손과 발은 천으로 감기고 얼굴은 수건으로 감싸인 채 나왔던라자로의 즉각적인 모습을 강조합니다. 라자로는 죽어서 무덤에 묻혔지만,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어떤 일을 행하실 수 있으리라 굳게 믿었다.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한 11,25-26)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교황은 이 말씀의 큰 빛이 오빠(라자로)의 죽음으로 야기된 깊은 애도의 어둠 위를 비추었다고 말합니다. “마르타는 그 말씀을 받아들였고 확고한 신앙고백을 표현합니다. ‘,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먼 미래에서 현재로 죽음의 희망이 지나가게 합니다. 부활은 이미 그녀 가까이에 있고, 바로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전문: https://www.vaticannews.va/ko/pope/news/2021-02/papa-francesco-calendario-romano-memoria-marta-maria-lazzaro.html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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