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29주일(나해) 마르 10,42-45; ’21/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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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1-10-10 ㅣ No.4810

연중 제29주일(나해) 마르 10,42-45; ’21/10/17

 

 

 

 

 

 

 

 

언젠가 한 번 어느 본당에서 어떤 분이 돈은 벌어야 하는데 정작 몸을 많이 상하셔서 고생하시는 것을 보시고는, 주임신부님께서 그분을 본당 관리인으로 임명하셨습니다. 그때는 각 본당에서 야간 방호 관리인 제도가 있어서, 방에 출근하여 성당 문을 닫고 잠을 자고는 아침에 성당 문을 열고 새벽미사를 준비한 다음 사무실에서 출근하면 퇴근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그렇게 성당에서 야간 방호 관리 일을 하는데, 자꾸 집안의 중학생 딸이 자주 가출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한동안 속을 썩다가 그분은 결국 자식을 위해 사회의 어려운 막일을 선택하여 직업을 옮기고는 몸은 힘들지만, 저녁에 집으로 퇴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아버지가 집으로 퇴근하여 돌아와서 그런지, 그렇게 집을 나가서 속을 썩이던 딸 아이가 안정을 찾고, 그때부터는 더 이상 가출해서 이리저리 떠돌아다니지 않고, 집에서 가족과 함께하게 되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 사례가 모든 것을 다 말해 주지는 않지만, 우리는 나름 각자의 소임이 있고 역할이 있습니다. 성직자 수도자가 성당에서 신자들을 위해 수고하듯이, 평신도들은 가정을 꾸미고 세상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며, 가정을 성화시켜야 할 소명과 책무가 있습니다. 가정에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자녀들이 가정을 꾸리고 살아갑니다. 서로가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고 아끼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가정 구성원 서로는 서로를 알게 모르게 존재적으로 필요로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보고 있으면 답답하고 미움이 북받쳐 오르기도 할지 모르지만, 자신이 인지적으로 느끼고 판단을 하는 관계와는 다르게, 자신도 모르게 자신 안에 내재된 존재적이고 감성적인 무의식 속의 또 다른 관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함께 같은 공간과 같은 순간을 공유하지 못하면 그 공허함이 허전함과 불안, 조바심과 갈등을 일으키게 됩니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의 근본적이고 필수적인 존재의 관계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함께 있을 때는 잘 모르지만, 떨어져 있을 때 더 보고 싶고 서로를 더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존재적으로 절감하는 이치입니다. 평신도 신자분들은 가정을 꾸리고 이루어야 합니다. 결혼을 하여 자식을 낳고 사는 것만이 아니라, 사랑으로 한 가족이 되어 가고, 가족이 모여 같은 공간과 같은 시간을 공유하며 함께 살면서 한 가정을 이루며, 더 나아가 신자 가정은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을 이루어야 할 소명이 있습니다.

 

제가 부임하여 얼마 안 되었지만, 우리 본당 신자들이 얼마나 주 예수님을 사랑하고 이 등촌3103위 한국순교성인 성당 공동체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지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성당 공동체를 유지하고 성숙시키기 위해 얼마나 헌신적으로 봉사하고 계신지 피부 깊숙이 다가옵니다. 여러분의 노고로 이 성당 공동체가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있고 풍요로워졌음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여러분께 찬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한 성당 공동체가 유지되고 성숙하기 위해서는 성직자 수도자들뿐만 아니라, 많은 신자들의 노고가 마치 비료처럼 쌓이고 녹아내려야 합니다. 주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의 미사 한 대를 드리기 위해서도 제단을 꾸미는 분들, 제대를 차리는 분들, 방송장치를 준비하는 이들, 해설하는 분들, 독서하는 분들, 그리고 사제와 수도자와 함께 미사에 참례하여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올려드리는 신자분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 공동체가 굴러가기 위해서는 수많은 이들의 보이지 않는 노고와 희생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다 평신도 신자 여러분이 채워주시고 있는 몫입니다. 얼마나 많은 신자분들이 먹고 살기도 힘든데, 없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희생하고 계심을 너무나도 잘 압니다. 비단 미사 전례뿐만 아니라 교회 공동체의 건설과 유지, 선교와 교육에 이어 이웃 사랑에도 헌신하셔야 합니다.

 

신자분들이 이 모든 일들을 주 대전에 봉헌하면서 자신과 자신의 가정이 화목하고 평안하기를 바라면서, 자신이 성당에 와서 봉사할 때 자신의 가정을 지켜주십사 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희생합니다. 그런데 만일,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가정의 평화와 안녕을 기도하며 봉헌하면서도 그 부작용으로 가정이 거꾸로 불안해진다면, 만일 내 가정의 구성원들이 내가 집을 잠시 떠나 성당에 나와서 일함으로써 불안해하고 불편해하며, 나의 부재로 인해 그 부재의 아쉬움과 존재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며 함께하기를 바라고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성당에 와서 기도하고 성당에서의 봉사를 통하여 성가정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기를 바리기보다, 가정에서 머물며 함께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며 성가정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자신들을 높은 자리에 앉혀 달라고 청하자, 예수님께서는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라는 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42-45) 라고 이르십니다.

 

가정은 가족 구성원들이 세상살이에서 겪는 어려움과 상처를 사랑으로 감싸 안고 치유해주는 가정교회라고 합니다. 세상살이에서 겪는 모든 어려움과 상처를 안고 집에 돌아왔을 때, 가족 구성원들이 그를 반기고 감싸 안아주며 위로해주면서 치유해 줍니다. 그래서 다시 회복하여 그 다음날 건강하게 험난한 세상에 나가 복음의 가르침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만일 세상살이에서 지쳐서 집에 돌아왔을 때, 가정에서 자신을 품어 안아주는 사람이 없다면?

만일 세상에서 상처입은 가슴을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자식은 자식대로 각자 자기를 사랑해주기만 바라고, 다른 가족 구성원의 아픔과 상처를 보듬어주지 못한다면?

있어야 할 순간에 없고, 채워주어야 할 아쉬움과 공허함을 사랑으로 채워주지 못한다면?

그 가정은 허전해지고, 불안해지고, 문제의 가정이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스도 예수님을 따라 매일 성전에서 아버지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여러분, 누가 가정에서 이 몫을 담당해야 하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를 구하시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셨지만, 그 구원의 희생제사를 바라본 아버지 하느님께서 예수님께 다시 생명을 주셔서 부활하셨음을 믿는 나,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랑스러운 제자요 사도인 내가 그 몫을 담당해야 합니다.

 

성당에 와서 기도하고 희생하면서 그러한 숭고한 봉사와 희생 때문에, 가정의 평화가 손상된다면 아전인수격이 되고 맙니다. 성당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 신자들이 필요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신자 모두 주님의 뜻대로 말씀을 실현하여 사랑함으로써 성가정이 되어 화목하고 평안하게 살도록 성당 공동체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름답고 활발하며 제 몫을 다하는 성당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다른 한 쪽으로 생각해 보면, 성당이 꼭 활발하지 않아도, 성당에 와서 기도하는 이들의 기도가 이루어져서 신자들이 평안하고 행복하면 더 좋지 않겠습니까?

 

상처 난 가정은 결과적으로 성당 공동체를 무너뜨립니다. 만일 우리가 성당 봉사는 무슨, 자기 집안 꼴은 돼지 우리로 만들어 놓고 다니는데?!’ 또는 성당 봉사는 무슨, 자기 집안은 매일 싸우고 긴장과 갈등 속에서 소리를 높여서 이웃의 악표양이 되고 있는데?!’ 라는 손찌검을 받는다면, 우리가 선교할 때 누가 우리를 따라 성당에 오겠습니까?

 

이러한 부작용을 피하기 위해, 우리 서로 서로의 가정을 아끼고 돌봐 주는 마음으로 성당에서 봉사하는 시간과 노력을 줄이고 가정으로 돌려 성가정을 이루도록 합시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거룩하고 화목한 사람이 되어서 성당에 가는 모습을 보고, 주위 사람들이 성당에 모이게 합시다. 어느 성당에서 무엇을 하고, 어느 신부님, 수녀님이 어떤 강의화 행사를 하는가 보다, 당분간은 성당 신자들이 각자 자기 가정에서 주님의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주님 사랑 안에서 화목하고 평화로워져서 성당이 얼마나 거룩해지는지를 바라봅시다.

 

지금 혹시 가정에서 내가 성당에서 봉사하는 문제로 긴장과 갈등관계가 형성되고 있거나, 자녀의 중독이나 가출 등의 일탈과 이상증세가 생성되고 있다면, 이 미사를 마치는 동시에 성당에서 하는 모든 봉사를 중단하고 가정으로 돌아가서 가정교회에 봉사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15,12) 라고 하시며, 특별히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라고 명하셨습니다. 지금 가정에서 가장 작은 이가 누구인지, 가장 작은 사람의 처지에 놓여있는 이가 누구인지 되새겨 보고 그 가장 작은 이가 스스로 모자람이 없다고 느낄 때까지 희생봉사 하십시오. 가정에서 배우자와 자녀에게 인정받고 존경받고 싶다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하시기 위해 하신 것처럼 섬기고 봉사하여 가정교회를 이루십시오.

 

어떤 신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만일 성당에서 일하는 정도의 반만이라도 집에서 그렇게 일한다면, 아마도 우리 집안에서 나를 떠받들고 살거야!” , 그렇게 헌신적으로 사랑하여, 가정이 화목하게 되고 가족들에게서 떠받쳐질 정도로 행복한 가정교회를 이루십시오.

 

아울러 지금부터 육 개월 안에, ‘한 사람, 한가지 활동하기를 권고합니다. 개인적으로 미사를 봉헌하면서 또는 신심단체에 속해서 기도하면서, 활동으로는 성당 내부에서, 또는 선교의 일선에서, 또는 이웃 사랑 부문에서 한 가지 활동만을 하는 것에 만족하기로 합시다. 그리고 그 나머지는 가정에서 주님 사랑의 뜻대로 주님 사랑의 말씀을 실현하기를 본당 주임사제의 사목지침으로 명합니다.

 

아버지 하느님께서 세상 모든 사람을 하나 하나 귀하게 만드셨고, 각기 다른 은총을 선물로 주셨음을 우리 모두 믿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애초에 회장감이 어디 있고, 단장감이 따로 어디 있겠습니까? ‘맡을 사람이 없어요,’ ‘할 사림이 없어요.’ 하지 말고 주 하느님의 창조의지를 믿고 역할을 나누기로 합시다. 그래도 모자라면 선교하세요.

 

어떤 분들은 아무나 맡길 수는 없지 않아요?”라고 말합니다. 우리도 한 때는 아무나였습니다. 우리는 단지 교회 공동체를 통해 우리를 쓰시겠다고 부르시는 초대에 응답을 했을 뿐이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 직책을 수행할 수 있는 만큼의 은총을 주셔서 그 직무를 무난히 수행해 왔고, 그 은총을 통해 성숙되었습니다.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을 믿고 응답하여, 성령의 이끄심에 맡기면서 우리 소명을 다 하기로 합시다.

 

모든 단체장의 임기는 2년으로 하고, 큰 대과가 없어서 2년을 더할 수는 있어도, 2년이 지나면 그 짐을 과감히 나누기로 합시다. 그것이 서로 사랑하는 방법이지 않겠습니까?

 

만일 그로 인하여 성당에서 어디선가 삐끗하고 잘 돌아가지 않는다면, 저는 감수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 당장 레지오 마리애 쁘레시디움 숫자가 줄어들 수도 있고, 성당이 조금 덜 활발해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성당에 나와서 봉사를 하면 할수록 더욱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께 다가서고 싶기보다, 거꾸로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고 떠나고 싶고, 지치고 부담스럽게 된다면, 그것이 어찌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되겠습니까?

 

여러분의 가정이 주님 사랑의 뜻대로 성가정이 되어 화목하고 평안하다면, 저는 그것을 큰 기쁨으로 여기고, 주님께 찬미와 영광을 돌려 드리겠습니다. 주님께서도 아름답고 활발한 성당보다 주님 말씀과 사랑을 실천하는 화목하고 평화로운 가정의 신자들의 기도를 즐겨 받으실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성당 공동체의 외적 영광보다 주 예수님의 말씀대로 가정 안에서 서로 사랑함으로써 교우 성가정들로 빛나는 사랑의 본당 공동체를 만들어 나갑시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르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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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9주일 꽃꽂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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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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