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사동성당 게시판

잠도 오지 않는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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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영 [bjbj] 쪽지 캡슐

2001-06-18 ㅣ No.7035

창 밖을 보면, 비는 오는데...

괜실히 마음만 울적해

울적한 마음을 달랠 수가 없네

잠도 오지 않는 밤에

 

  비가 주룩주룩 오는 주일 밤입니다.

편지를 쓰듯이 자신의 마음을 불특정한 누구에겐가 띄워 보내는 글들을 참 좋아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부모님께 편지를 쓸 때도 내가 읽었던 그 사람의 문체를 흉내낼려고 노력했던 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마음이 아주 울적했답니다. 왠지 이유를 몰라서 한참을 그냥 멍하니 앉아 있었어요. 그리고 당신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뭐, 이런 식으로 말이죠...아주 냉정한 분들이 보시면, 싸구려 3류 영화에 나오는 그런 뻔한 스토리라고 치부해 버릴 법한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 싶을 때가 있죠.

  아침에 눈을 뜨자 마자 정말이지 마음속 깊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게 되는 그런 아침이 있습니다. 미사 시간에 늦을 뻔 하다가 시계도 맞춰놓지 않았는데 잠이 깬 그런 날이 아니라도, 아니면 눈을 뜨자마자 그 날 맞이할 기쁨들이 눈 앞에 펼쳐지는 그런 날이 아니라도 말이죠.

  술에 취해서 언젠가 성당에 성체조배를 하겠다고 가서 잠이 들었는데, 얼마나 잤는지 다리가 져려서 한 참을 부동의 자세로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고는 혼자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않아 있는 제 자신을 보면서 말이죠. 누가 봤으면 미친놈이라고 생각했을거예요.

  고3때 친구들과 함께 무료함을 달래느라고 귀신놀이를 참 많이 했었는데, 하도 많이 했더니 나중에는 깜깜한 길을 친구와 단 둘이 걷는것이 제일 무섭더군요. 이 녀석이 정말 사람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는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식은 땀을 흘렸던 적도 있답니다. 공포라든가 분노라든가 하는 감정들은 사실 자신의 상상안에 몰입되어 있는 경우에 가장 많이 느끼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됬죠. 그래서 전 정말 화가 날 때에는 아주 사소한 것 까지도 그 사람에게 물어보려고 노력한답니다. 정말 내가 화를 내고 있는 것이 착각은 아닌지 하고 말이죠.

  비 소리가 점점 거칠어지는군요. 그 동안 비도 이 땅을 만나지 못해서 많이 아쉬웠을까요. 땅이 입을 크게 벌리고 있을 것 같군요. 마음 고생 많이 하신 분들은 이 빗소리가 새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들리시겠죠. 좋은 꿈 꾸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졸립습니다. 기쁜 한 주 보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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