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원동성당 게시판

연중 2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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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웅 [mathias] 쪽지 캡슐

2004-01-20 ㅣ No.2851

월요일에 북한산에 다녀왔습니다. 산에 갔더니 이 겨울에 벚꽃(?)이 만발해 있었습니다.

 

 

연중 2주일

요한 2,1-11

가나의 혼인 잔치

 

+ 찬미 예수님

 

우리는 오늘 이 짧은 복음 안에서 참으로 많은 것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성모 마리아의 위치. 과연 그분의 전구라고 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살펴볼 수 있고. 둘째. 하인들의 모습에서 순종이라는 덕목을 살펴볼 수 있고. 셋째. 물이 포도주로 변한 사건. 이 사건은 또한 이 미사 중에 포도주가 예수 그리스도 피로 변함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물이 포도주로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피로.

 

이 기적 사건은 단순히 물이 포도주로 변했다는 단편적인 사건이 아니라 이렇듯이 복합적인 사건임을 먼저 인식해야 하겠습니다. 이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 가나의 혼인잔치는 이제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공생활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가실 것인가를 미리 보여주시는 한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첫 번째 성모 마리아의 위치. 우리는 성모 마리아를 신으로 모시는 마리아의 종교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교. 즉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구속의 사건을 믿는 신자들입니다. 그리스도교는 바로 성모님께서 사람이 되신 사건이아니라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계시다는 사실을 믿는 이들의 공동체입니다.

 

그렇다면 성모님의 위치는 과연 어디일까요? 오늘 복음상의 성모님의 위치를 잠시 바라보도록 합시다.

 

유대인들의 혼인잔치는 단 하루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거의 일주일 동안 계속 진행된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가난한 이들은 잔치를 시작했으되 끝을 맺지 못하게 되고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되면 잔치를 벌이는 당사자들은 참으로 난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 이 사건의 시작은 바로 이러한 난처한 상황, 즉 잔치가 파장이 되기 바로 직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리고 그 상황을 처음 간파한 사람은 잔치를 맡았던 잔치장이 아니라 바로 성모님이셨습니다. 그렇다면 성모님께서 어떻게 그 누구보다도 먼저 이 사건을 파악할 수 있었을까요? 성모님께서 술을 좋아하셔서 술을 드시려다 빈 독을 발견하실 걸까요? 아니죠?

 

이는 어머니들의 예감입니다. 어머니들은 보지 않아도 감으로 때려 잡습니다. 아무리 우리 형제님들이 날고 기어도 자매님들의 그 예감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미리 미리 이실직고하시고 미리 미리 항복하십시오.

 

성모님께서는 이렇듯이 우리의 아픔을 어느 누구보다도 먼저 파악하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것은 바로 어머니의 사랑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모님의 그런 요청에 딱 잘라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어머니, 이 사건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이 이야기는 “이는 우리의 잔치가 아닙니다. 그냥 그들에게 맡겨놓죠”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성모님께서는 마치 사오정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체도 하지 않으시고 하인들에게 다음 사항을 부탁하시고 그 자리를 떠나십니다.

 

이는 성모님께서 예수님의 뜻을 단지 어머니로서 내리누르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아들을 믿으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모든 불쌍한 이들을 사랑해 주시는 예수님의 측은지심을 믿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당신의 요청을 들어주실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성모님의 위치는 이렇듯이 가난하고 불쌍한 우리들의 처지를 어느 누구보다도 가장 먼저 파악하시고 하느님께, 당신의 아드님께 도와달라 청하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이 바로 전구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예수님께서는 성모님의 그 전구를 절대 마다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께서 너무도 사랑하시는 분의 청이시니 말입니다.

 

둘째. 하인들의 순종의 모습을 보도록 합시다. 어찌 보면 예수님의 말씀처럼 그 잔치와 예수님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단지 예수님께서는 손님일 뿐입니다. 그렇기에 아무리 그 잔치집에 하인이긴하지만 그 분의 말씀을 따를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당신이 무언데 우리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십니까”라고 말대꾸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인들은 무슨 영문인 줄 몰랐지만 그 기적의 협조자로서의 수고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당신께서 하라하시니, 내가 그렇게 똑똑하지도 않고 능력도 없지만 당신께서 하라하시니. 그리고 그 상황에서 드디어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 기적은 엄청난 사건이었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납니다. 단지 예수님의 한 말씀 “이제는 퍼서 잔치 맡은 이에게 갖다 주어라.” 그러나 이 사건은 성모 마리아의 사랑과 아들 예수님을 신뢰하였던 믿음과 하인들의 순종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고자 하시는 의지가 담겨있는 하나의 커다란 사건이었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기적을 원하십니까? 기적을 보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모든 이들을 안을 수 있는 사랑과 그분께서 하고자만 하시면 반드시 이루시라는 믿음과 그분께서 원하시면 무엇이든지 따르려는 순종의 마음과 결국 그 일을 이루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느님의 의지를 청하십시오.

 

셋째. 마지막 한 가지는 물의 변화 사건입니다. 재료로서의 물. 우리는 이 물을 하나의 무생물로서 아무런 의지가 없는 것으로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장미의 시인이라고 불리우는 릴케라는 시인이 있습니다. 그 시인이 세례를 받기 위해 교리를 받을 때 신부님께서 예비신자들을 모아놓고 시험을 보셨다고 합니다. 시험의 주제는 바로 이 가나의 혼인잔치에 대한 복음 묵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시험 시간은 한 시간었구요. 그런데 시험이 시작되고 얼마 안 있어 한 사람이 시험지를 작성하고 나가더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 사람이 릴케였습니다. 다른 예비자들은 어떻게 묵상할지 몰라 끙끙대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 시험지에는 딱 한 구절의 성서묵상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물이 사랑하는 님을 만나 얼굴이 붉어졌다네.” 물의 변화. 이는 단순히 무생물의 자기의 의지와는 무관한 변화라기보다는 자신의 창조주 하느님을 알아본 피조물의 존경과 흠숭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 하느님을 받아들이고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오직 인간만이 하느님에 대한 존경과 흠숭의 이유를 따질 뿐입니다.

 

우리도 또한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의 도구가 되었던 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면 하느님께서 원하시면 그 무엇으로라도 변화될 수 있는 그분의 도구, 재료로서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변화할 수 있는 근본적인 힘은 그분을 나의 사랑하는 임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의 창조주 하느님으로 받아들일 때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단순히 기적만을 바라는 제3자의 입장이 아니라 그 기적의 정 중앙에 그분의 기적에 재료가 되는 그분의 도구가 되도록 합시다. 주님께서는 오늘 이 순간에도 당신과 함께 하느님 나라를 건설할 당신의 동반자를 끊임없이 찾고 계십니다.

 

“물이 사랑하는 님을 만나 얼굴이 붉어졌다네.” 여러분 기적을 원하십니까? 하느님을 온 마음으로 진정으로 사랑하도록 하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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