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5주일(가해) 마태 5,13-16; ’23/02/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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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5주일(가해) 마태 5,13-16; ’23/02/05
언젠가부터 교계 일각에서 ‘교회쇼핑’이라는 단어가 생겨났습니다. 우리가 쇼핑센터에 가서 마음에 드는 물건을 골라 사듯이, 교회도 자기 마음에 드는 교회를 찾아다닌다는 현상을 가리키는 단어였습니다. 이것이 자칫 잘못되면, 우리가 예수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우리 마음에 드는 예수님을 만들어 내려고 하지는 아닐까 하는 위기감마저 들게 합니다. 비슷한 유형으로, 최근 들어서는 점점 내가 기도하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되새기고 깨달아 내 삶에 적용하며 하늘 나라를 만들어 내려는 노력보다는, 누군가가 대신 만들어 놓은 하늘 나라를 마치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처럼 여겨서 취사 선택하려고 하는 모습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내가 스스로 연구하여 참고, 희생하는 영적 수련 과정을 거쳐, 주님의 뜻을 이루려는 자세보다는 누군가가 해설해 놓은 주석서나 훌륭히 신앙생활을 하는 사제나 수도자나 영성가를 아는 것으로 대리 만족하기도 합니다. 또는 그분들의 인격과 삶에 맞는 신앙생활 양식을 다른 인격체인 나에게 무조건 대입하려고 하는 우를 범하기도 합니다. 좋은 책이나 영신 서적을 읽거나 예술작품이나 성화를 보거나, 음악회나 성가를 듣거나, 영화나 성극 등을 감상하면, 가슴으로 찐한 감동이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감동이 나를 주님께 한껏 다다르게 해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감동은 일정 시기 동안 나에게 영향을 주기는 하지만, 자신이 만들어 낸 것이나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기에, 그냥 시간이 지나면 스쳐 지나가고 맙니다. 그 감동을 받은 후에 그 감동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한 내 방식의 무슨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나와는 관계없는 성직자, 수도자, 영성가들의 성스러운 한 장면이 되고 맙니다. 작가와 주인공의 피나는 노력에 걸맞은 노력을 우리 스스로도 기울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이 자본주의 사회경제체제와 더불어 신앙인 개인과 교회 공동체 활동도 영적인 노력과 헌신도 돈으로 사는 것으로, 희생과 봉사도 돈으로 대신하게 됩니다. 애써 일해서 번 돈을 기부하는 것이 좋은 일이지만, 대상자와의 공감과 교류 없이 단순히 생색내기나 의무방어전으로 그치지 않도록 유념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마치 화장품 광고에서 이 화장품을 사면 이 광고의 모델처럼 예뻐질 수 있다는 식의 헛된 허상의 유혹에 빠지기 쉽듯이, 신앙생활도 같은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으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자신의 몸과 영으로 더 많이 기도하고 더 많이 실현하고 이루려는 노력이 아니라, 더 찐하고 깊은 감동을 주는 것을 찾아 헤매게 됩니다. 심지어는 경제적으로 풍요하고 안락한 삶을 누리거나 행사를 거창하게 치르는 것이, 역설적으로 주님의 모범을 따라 기도하고 절제하고 희생봉사하며 도달하게 되는 깊이 있는 영성 생활의 신비를 대신하는 것으로 혼동하기까지 합니다. 그러자니 끝까지 남는 것은 나 자신의 채워지지 않는 갈망과 허전함이며, 만족하지 못하고 기쁘지 않은 신앙입니다. 하루아침에 부자가 될 수 없듯이, 신앙생활도 복음을 읽고 깨닫고 그 깨달은 주님의 뜻을 내 삶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에 수많은 실패와 좌절에 떨어지기도 하고, 단계마다 다른 난관과 고비를 겪으면서, 주님의 도우심과 이끄심으로 매번 되살아나는 체험을 해야만이 주님께서 나와 함께하시면서 나를 이끌어주고 계시다는 깨달음으로 감사드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비록 우리 머릿속으로는 주님께 맡기고 주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주님의 도우심으로 살아간다고 믿고 있지만, 실제로 내가 그렇게 신앙의 길을 따라 우여곡절을 살아가면서 스스로 깨닫게 되는 주님과의 영적 체험이 없으면, 선배신앙인들의 체험에서 비롯된 신앙의 신비나 교회의 가르침은 한낱 도서관이나 내 집안의 책장에 비치된 책 안에나 쓰여있는 명제나 공염불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맙니다. 더군다나 그러한 체험이 쌓이지 않으면, 계속 또 다른 책을 사거나, 또 다른 강의를 듣거나, 또 다른 찐한 체험을 내 노력 없이 다른 곳에서 듣고 보고 채우려고 허상을 좇아 허공 속에서 헤매며 돌아다닐 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 그렇게 하여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4-16)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이 말씀은 듣느라 보면, 우리에게 커다란 부담이 되어 돌아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할 능력도 자격도 없음을 잘 압니다. 그저 우리는 주님의 빛을 반사할 뿐이며, 때로는 반사는커녕 오히려 주님에게서 나오는 빛을 우리의 부족하고 나약한 삶으로 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자신을 내 세우자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주님의 뜻을 따르고자 했지만, 실패하고 포기하고 싶은 그 순간에, 주님께서 나에게 다가오셔서 나를 일으켜 주시고 이끌어주셔서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는 체험과 고백이 세상 다른 이들에게는 빛일 수 있습니다. 현실 안에서는 불가능하게만 여겨 망설이다가 실현하려고 시작했더니 신비롭게도 주님의 도우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체험이 세상의 빛입니다. 오히려 ‘내가 잘했다.’고, ‘내가 이루었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오만불손한 사람이겠습니다. 지금 당장 우리 삶의 한 단면이 어떠하냐가 아니라, 주님과 함께하는 신앙의 여정이 우리 신앙인의 빛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나와 함께하시면서 나와 함께 내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 겪으시고, 함께 아파하시고 흐뭇하시면서 나를 보호하시고 이끌어주시고 계시다는, 주님께서 나와 함께하고 있는 내 신앙 체험이 세상의 빛입니다. 오늘 두 번째 독서에서 사도 성 바오로는 증언합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갔을 때에, 뛰어난 말이나 지혜로 하느님의 신비를 선포하려고 가지 않았습니다.”(사도 2,1) 바오로는 자신이 빛이라거나 자신의 말로 하느님의 신비를 드러낼 수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바오로는 내가 아니라 내 생애와 함께하시는 예수님에 대해 말합니다. “나는 여러분 가운데에 있으면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하였습니다.”(2절) 바오로는 사람들 앞에 섰을 때, 스스로 자신감에 차서 또는 스스로 이루어낸 뭔가 자랑스러운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고 고백합니다. “사실 여러분에게 갔을 때에 나는 약했으며, 두렵고 또 무척 떨렸습니다.”(3절) 사도 성 바오로는 자신이 나약하고 부족한데도 주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기에, 주님께서 무엇을 어떻게 말하도록 이끌어주시기에, 사람들 앞에 서서 자신이 주님을 따르면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루어지는 신비에 대해 깨닫고 알게 된 체험에서 나온 신앙을 선포하게 되었다고 증언합니다. “나의 말과 나의 복음 선포는 지혜롭고 설득력 있는 언변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4절)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스스로 주 예수님을 찾고 그 말씀을 통해 드러난 주님의 뜻을 이루어나가려고 시작하면, 주님께서 주님을 따르는 이들에게 함께하시면서 이끌어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주님의 이름으로 자신이 옳고 좋다고 여기는 것을 이루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비우고 주님의 뜻을 이루려고 하는 것임도 밝혀줍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의 힘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5절) 지난 2월 2일 봉헌축일이었습니다. 이날 서울대교구 20분의 부제서품식이 그리고 3일 24분의 사제서품식이 있었습니다. 새로 사제와 부제로 서품되신 분들과 인사이동을 하시는 사제분들과 수녀님들의 삶 속에 사도직과 복음삼덕의 기쁨이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지난 주간에 정 아가다 수녀님께서 떠나셨고, 오늘 배 젬마 수녀님께서 새로 오셨습니다. 어려운 시기에 우리 본당에 오셔서 여러 가지 부족한 가운데에서도 불편한 내색을 일절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사도직을 수행하면서 복음삼덕을 살아내고 계신 유 신부님과 수녀님들께 존경과 감사의 정을 드립니다. 주님과 함께 꾸준하고 성실히 수도생활을 하고 계신 수녀님들께 감사드리며, 기도와 축하의 인사를 드리기로 합시다. 여러분이 사제생활이나 수도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분 인생을 통해 주님께 나아가는 길은 같은 여정이지 않겠습니까? 저는 사제생활로 수녀님은 수도생활과 교회생활로, 여러분은 여러분의 가정생활과 사회생활로. 여러분께서 살아가시면서 매 순간 주님과 함께하고 있다는 체험을 통해 행복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그리고 잘 살고, 훌륭하냐의 여부가 아니라, 주님과 함께하는 삶으로 세상의 빛이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태 5,14) ------------------------------- 연중 제5주일 꽃꽂이 https://bbs.catholic.or.kr/home/bbs_view.asp?num=1&id=190475&menu=frpeterspds2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