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6주일(가해) 마태 5,17-37; ’23/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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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3-01-27 ㅣ No.5294

연중 제6주일(가해) 마태 5,17-37; ’23/02/12




 

 

 

가끔 해외 성지순례를 가 보면, 아주 화려하고 웅장하게 지어진 성당을 방문하게 됩니다. 그 성당에 들어가기 전부터 성당 외관에서 비춰지는 모습을 보노라면, ‘정말 대단하다!’라는 느낌을 받게 해줍니다.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은 종탑과 외부 장식들이 정교하고 화려하고 온갖 정성을 다 들여 지은 성당이라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지금보다 훨씬 경제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한참 못 미쳤을 것만 같은 그때 그 시절에 저 성당을 지으려고 신부님과 신자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하는 존경심마저 들게 해줍니다.

 

그런 성당 안에 들어가면, 정말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의 갖가지 화려한 성물과 성화들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감동을 자아내게 해줍니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절로 이 정도는 되야 성당을 성당답게 지었다고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성당도 잘 지어 놓아야 두고두고 여기저기 세상 끝에서부터 찾아오는 신자들에게 관람료도 받아서 성당 관리도 되겠구나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성당을 구경하고(?) 나서면서 마음이 씁쓸할 때가 있습니다. 성당 안에 기도하는 본당 신자는 없고,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 성당에서 기도가 아니라 감상하고 나오는 관광객이 다수를 이루는 성당이 기도하는 집으로서 무슨 가치가 있을까? 그 성당은 그리스도교 문화 양식에 따른 건축물이나 그리스도교 신앙 문화박물관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의 성전에 들어가시어 강도들의 소굴이 되어 버린 성전을 안타까워하시며 하시며,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루카 19,46)라고 인용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그 본당 신자들이 우리 성당(건물)은 화려하고 멋있어요, 선조들이 갖은 희생과 노력으로 지은 성당이에요!”라는 자부심을 품고 사는 것은 좋겠지만, 정작 성당 건축의 본래 목적대로, 신자들이 주님 대전에 나아와 자신의 인생사에서 겪게 되는 희로애락을 바치는 기도하는 집이 아니라면, 주님께서는 얼마나 허전하고 아쉬워하실까 하는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주님께서는 그 신자들을 바라보시면서,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주님,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그때에 나는 그들에게,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게서 물러들 가라, 불법을 일삼는 자들아!’ 하고 선언할 것이다.”(마태 7,21-23)하시지는 않으실까 하는 염려마저 듭니다.

 

다른 또 한편으로 그 성당을 지을 때 많은 헌금과 희생이 필요했을 텐데, 화려한 성당 건축의 그늘 아래 가난한 이들의 한숨과 선교와 행사와 단체 보조는 또 어떻게 했을지, 당시 본당 신부님과 신자들의 고민을 엿보기도 합니다. 지금도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소박하고 검소한 기도하는 집보다 성당 건물이 크고 웅장해야 저기 뭔가 있나 보다!’ 하면서 찾아온다고들 하니, 세상의 죄를 짊어진 그리스도 예수님보다 화려한 부활의 영광만을 바라고 또 보여주고 싶어 하는 면에서는 신앙의 괴리를 느끼기도 합니다.

 

우리 신앙생활에도 비슷한 유혹과 아이러니가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면 주님과 형제자매들이 기뻐하실까?’하는 마음으로 기획하고 실행하는 데 정열을 다 쏟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다 보면, 자칫 내가 생각하는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떠올려서, 주님의 이름을 빌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유혹에 빠질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태 5,20)라고 하시면서, “너희는 말할 때에 .’ 할 것은 .’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37)라고 가르쳐주십니다.

 

신앙생활의 본질이 무엇이냐?’라고 묻는다면, ‘주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하기를 바라시는가?’를 미사성제와 기도와 복음나누기를 통해 찾고, 그렇게 찾아 얻은 주님의 뜻을 교회의 가르침에 맞춰 식별하여, 단순하고 소박하게 우리를 향한 주님의 뜻을 나와 내 가정, 내가 일하는 일터에 적용하면서 희생 봉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살면서 '무엇을 어떻게 하여, 주님과 형제자매들이 기뻐히실까?'를 찾는 노력에 그치지 않고, '주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하기를 바라실까?'를 미사성제와 기도와 복음나누기를 통해 찾고, 그렇게 찾아 얻은 주님의 뜻을 교회의 가르침에 맞춰 식별하여, 단순하고 소박하게 우리를 향한 주님의 뜻을 나와 내 가정, 내가 일하는 일터에 적용하면서 희생 봉사하며 살아갑시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외적 행동의 방향과 진퇴를 찾는 것과 아울러, 비록 달갑지는 않더라도 이 시대 이 자리에서 우리에게 과제처럼 주어진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채워나가면서,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내적으로 순수하고 진실하게 주님을 사랑하며, 우리를 향한 주님의 뜻을 이루는 신앙인이 됩시다.

 

지난 28일 사제수품 12주년을 맞은 유동철 리노 신부님에 이어, 오늘은 주 대전에 불충하고 부덕하고 부당한 저의 사제수품 35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사제생활을 하면 할수록 기도가 필요하다는 간절한 마음을 간직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함께해 주시지 않으면, 저의 모든 삶과 노력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며, 감히 여러분께 저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주님께서 저와 함께해 주시어, 제게 주님의 뜻을 일러주시고, 그 뜻을 잘 따를 수 있도록 이끌어주시고 채워주시며, 주님의 사랑 안에서 사제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기도 중에 기억해 주십시오. 나약하고 보잘것없는 인간 본성에 불과한 주제에, 꼴에 맞지 않을 정도로 지나치게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고 있는 저에게, 주님께서 함께하시어, 저를 주님 뜻에 맞갖은 사제가 되게 해 주시고, 주님의 뜻을 따라 교회와 형제들을 사랑하고 희생 봉사하는 일에 헌신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너희는 말할 때에 .’ 할 것은 .’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마태 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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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6주일 꽃꽂이

https://bbs.catholic.or.kr/home/bbs_view.asp?num=2&id=190596&menu=frpeterspds2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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