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6주간 월요일 ’23/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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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3-01-27 ㅣ No.5295

연중 제6주간 월요일 ’23/02/13

 

아담과 하와라고 하는 첫 번째 인간의 범죄가 하느님과 같아지려고 한 교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면, 두 번째 범죄는 형제간의 질투에서 비롯됩니다. 카인은 아벨이 자신보다 더 인정받는 듯한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벨을 죽입니다. 그러자 주 하느님께서 카인에게 묻습니다.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창세 4,9) 그러자 카인이 대답합니다.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9)

 

어떤 성서사회학자들은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보기도 합니다. 아벨은 양치기로 부족이 다 같이 양을 치고 거기서 나오는 소득을 다 같이 나누어 굶어 죽는 이가 없는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삶의 양식을 대표하고, 카인은 가나안 정착 이후 땅을 나누어 받고 자기 땅에서 농사를 짓고 소득이 나오면 자기 창고에 보관하며 자신과 자신의 가정을 꾸려나가는 새로운 이스라엘로 봅니다. 그런데 땅을 나누어 받은 사람 중에 소출을 얻지 못하거나 적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소출로 자신의 가정을 꾸리지 못한 채 굶어 죽는 사람이 생겨나자, 소득의 개인화와 개인주의로 말미암아 손상되는 공동체의 약하고 처진 사람들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고 이를 해결하고 이스라엘 공동체의 생존과 문화를 유지하기 위한 신앙의 방안으로 카인과 아벨의 기사를 성경에 넣었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주 하느님께서는 에덴동산의 행복을 차버리고 떠나는 첫 번째 인간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만들어 입혀주셨듯이, 비록 동생을 죽인 죄인 카인에게 카인을 죽이는 자는 누구나 일곱 곱절로 앙갚음을 받을 것이다.”(15) 라고 하시며 자비를 베푸십니다. 아울러 우리는 이 구절에서 인간의 생명은 그 생명을 주신 오직 주 하느님께서만 거두실 수 있음을 되새겨봅니다.

 

주 하느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오늘날 사회에서 굶주리고 고달파하고 힘겨워 자신의 생명을 저버리는 사람들을 알고 있느냐? 외적 환경과 경제적인 이유로 인간적인 삶을 유지못하고 있는 이들을 알고 있느냐? 또 그들을 돌보고 있느냐? 우리는 저기 저 멀리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이들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 가족과 일가친척, 우리 주변에서 내 눈에 띔으로써 마치 하느님께서 우리가 보도록 맡겨주신 형제자매들의 사정을 헤아려주기를 바라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대답해야 합니다. 카인과 같이 내가 그들을 지키고 돌보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의인도 아닌 죄인인 우리를 구하시기 위해 주님의 생명을 바치신 주 예수님의 뒤를 따라갈 것인지? 나 혼자는 만족스럽게 풀어나갈 수 없을지 모르지만, 소공동체 구역반과 소공동체 단체, 그리고 뜻을 같이하는 선한 이들과 함께 하나씩 조금씩 풀어나가기로 합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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