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회성당 자유게시판

흰 바람벽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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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윤 [novita] 쪽지 캡슐

2003-09-05 ㅣ No.3092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여 어늬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골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 백석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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