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납동성당 게시판

[자료]풍납동 본당10년사-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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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근 [pnc339] 쪽지 캡슐

2001-07-23 ㅣ No.1237

안녕하세요!

 

지난날 우리의 신앙이 어떠한 변화를 거쳐 왔는지

다시금 그때의 추억과 정열과 사랑을 되돌아 보며

사귐, 섬김과 나눔을 통한 대희년을 거쳐온 현재의 신앙을

어떻게 승화 시킬 것인가를 잠시만이라도 묵상을 가져 보았으면 하는 뜻에서

작년 8월에 발간된 풍납동 본당 10년사 책자에 기록된 글을 순서대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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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납동 본당 10년사   

 

 - 차 례 -

 

 1부 풍납동 교회사

   1장 풍납.성내동의 여명기

 1) 유래

 2) 신앙공동체의 형성   

 

 -------- 1장 ------

 

   2장 초기 공소 시절

 1) 공소 설정 배경과 경위

 2) 공소추진위원회의 구성과 활동

 3) 초기 공소활동 및 성전건립의 꿈

 

 -------- 2장 ------

 

   3장 풍납동 본당설립

 1) 초대 이재철 신부의 부임과 활동

 2) 초기의 사목조직과 복음생활

 3) 이웃과 함께하는 공동체

 4) 사목협의회의 구성과 신심단체의 활성화

 5) 성전건축 추진위원회

 

   4장 성전신축을 위한 노력

 1) 주상배 신부의 부임과 소공동체 활성화

 2) 부임 초기의 사목 조직과 활동

 3) 성전 착공을 위한 노력과 성전건립기금 모금

 ① 신립금 모금

 ② 바자회 모금

 ③ 주임신부의 모금강론

 ④ 폐품 수집

 4) 청소년사목과 여름캠프

 5) 난항을 겪은 초기 건립 공사

 

   5장 새성전 축성과 대희년의 준비

 1) 임시성전에서의 첫미사

 2) 신자배가운동

 3) 새성전의 축성 및 봉헌식

 

  2부  풍납동 성전 건축약사

   1장 당시의 상황과 성전건축의 취지

   2장 성전건축의 준비-성전건축의 횃불이 타오르다

 1) 성전부지 구입과정

 2) 성전부지의 조건

 3) 형질변경

 4) 성전 건축설계 지침 결정

 5) 설계의 공모

 6) 시공회사의 선정

 

   3장 성전의 착공

 1) 기공식

 2) 토목 공사와 주변민원 발생

 3) 골조 공사와 설계변경

 4) 부분입주와 공사일정

 5) 성전건축상의 세부문제

 6) 성탄미사

 7) 성전의 내부장식과 성물들

 

   4장 축성미사와 본당설정 10주년 기념

 

  3부  사진으로 보는 풍납동 본당 10년

 

  4부  우리 본당의 단체사

 

  5부  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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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풍납동 교회사

 

제2장 초기 공소시절

 

1) 공소 설정 배경과 경위

이미 천호동 제 7대 주임신부인 이삼복(요한), 유구영(토마스 아퀴나스)회장 시절부터 풍납, 성내지역에 새 성전을 지을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당시 천호동본당은 암사동 10개반, 명일동 3개반, 풍납동 3개반, 성내동 3개반, 길동 3개반, 둔촌동 1개반을 포함해 모두 34개 반으로 구성되었다.

 

따라서 신자들의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게 되자 새 성전 조성의 문제가 불가피했다.

 

이때부터 천호동 본당은 우선 암사동, 풍납?성내, 둔촌동 세곳의 성전건립을 추진하기로 하고 1980년 3월부터 건립기금을 모금하게 되었다.

그 결과 둔촌동 주공아파트 입주로 인한 신자 수의 증가에 따라 둔촌동공소가 1980년 7월 27일 설정되고 같은 해 11월 2일 암사동공소에서 첫미사가 봉헌되었다.9)  

 

1981년 둔촌동, 암사동본당 공소가 설정될 당시 풍납?성내 지역에 성전 건립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으나 아직은 시기가 무르익지 못했다. 당시 여건상 성전 건립금을 마련하기가 어려웠고 이 문제는 나중으로 미뤄지게 되었다.

 

그후 200주년 행사가 한창이던 1984년, 고덕동과 길동 지역에 새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고 신자 수가 급증함에 따라 우선적으로 고덕동, 길동의 성전추진이 시급해졌고 따라서 풍납,성내 지역의 성전추진문제는 또다시 미뤄지고 말았다.

 

이러한 지지부진한 상황은 천호동본당 제 10대주임 오태순(토마) 신부의 부임(1986년 8월 24일)으로 달라지게 되었다.

 

1987년부터 오태순 신부는 풍납,성내 공소를 설정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굳히고 봉사자 양성을 하기 시작했다.

그당시 풍납,성내 지역에서는 이미 부회장 김용만(데오필로), 교육분과 김두봉(스테파노) 등 많은 신자들이 열심히 자력봉사를 하고 있었다.

오태순 신부는 봉사자 교육을 실시하는 중에 봉사자 하나하나를 후일에 쓰일 하느님의 재목으로 보고 많은 투자와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어찌보면 이미 그 때 봉사자들에게 성전건립 준비운동을 시킨 것이리라.

오태순 신부의 단호한 한마디, 바로 ’봉사를 하려고 마음을 먹었으면 열심히 하고, 그렇지 않을 바에야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좋다’라는 말은 봉사자들에게 중요한 일침이 되었다.

 

오태순 신부의 주요한 사목방향은 ’지역사회에 봉사하고 함께하는 교회, 적극적인 재교육 활동을 통한 신자로서의 자세와 신심함양’이었다. 이러한 사목지침은 그의 재임기간동안 꾸준히 강조되고 실천에 옮겨졌다.

 

오신부는 풍납,성내 지역의 가정 방문과 반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석하였다. 공동체의 활성화를 위한 그의 노력은 많은 교우들에게 활력소가 되었고, 그의 행동은 보다 나은 신앙생활과 바른 신자로서의 표양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당시 신자들이 미사에 열심히 참여한 데에는 오신부의 강론에 담긴 해박한 시국론과 열성적인 언변으로 분위기를 달구어 이끄는 강론때문이기도 했다.

 

오신부의 적극성과 추진력으로 풍납?성내지역의 본당추진은 서서히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그는 평신도 지도자 양성, 각 개인의 신앙심 배양, 공동체 의식강화, 이웃과 더불어 나누는 신앙, 지역발전에 도움을 주는 교회 등 사목지침을 실천하는 한편 당시 천호동 사목회 부회장이었던 염금천(스테파노, 작고) 형제와 상의하면서 풍납?성내동 공소준비를 시작하였다. 이러한 공소준비는 본당설립을 전제로 한 것이었음은 물론이다.

오신부는 공소를 추진하면서 작은 일에서부터 큰 일에 이르기까지 조직적으로 기획하고 여러 번에 걸쳐 준비하고 점검하여 체계적으로 일을 진행하였다.

 

2) 공소추진위원회의 구성과 활동

우선 각 지역에서 공소추진위원이 임명되었고 성내동 54명, 풍납동 65명을 모태로 하는 추진위원회가 결성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1987년 2월초 천호동 본당에서 첫모임을 실시함으로써 이제 공식적인 공소추진위원회가 발족하게 되었다. 추진위원회 워원진은 다음과 같다.

     

공소추진위원회

공소추진위원회 위원장:염금천(스테파노)

부위원장:전홍재(미카엘), 김학렬, 유성환(그레고리오), 김재열(시몬), 장안식,    

          김영운(루까)

감    사:이일우(안드레아), 임성규(프란치스꼬)

총    무:박정길(에바리스토), 정영택(베드로)

기    획:박성목(요한), 전익환(미카엘), 김종배(사도요한), 강태승(미카엘), 권용운,  

          이영림, 유기찬(베드로)

재    정:김용인(그레고리오), 정영훈, 한종수(베드로)

홍    보:김길환(이시도로), 조칠성(베드로), 조춘성(니노), 박영기(발렌티노)

구 역 장:이금순(도로테아), 정향초(리드비나), 최태자(파라), 이해구(요세피나),

          원경연(유스티나)

지 회 장:박정길(에바리스토), 서창은(베드로), 이형제(루치아노), 이창수(토마), 안덕원

추진위원:최민규, 심만택(안드레아), 김명천(방지거), 노정운, 김창현(그레고리오),  

          조병진(바오로), 조범현(바오로) 등.10)

 

공소추진위원회의 발족으로 성당신축문제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온화한 성격과 나눔과 봉사의 삶을 실천하는 염금천(스테파노) 추진위원장을 주축으로 추진위원회에서는 우선적으로 성당부지를 물색하기 위해 여러 군데의 땅을 보러 다니고 부동산중개소를 방문했다.

 

이 과정에서 총무 박정길(에바리스또) 형제가 많은 수고를 하였다. 여러번 답사한 성전 부지들이 우리 여건에 맞지 않거나 가격과 위치가 적절하지 못해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부동산 소개소를 통해 현 성전부지를 매각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면서 성당부지문제를 구체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당시의 지목은 밭(田)으로 되어 있었으나 사실상 밭으로는 도무지 사용할 수 없는 늪지였다. 게다가 태양금속(지금의 현대 아파트)공장 뒤편의 외진 지역이고 주변이 높은 담장으로 가려져 있어 자칫 우범지역처럼 보였다. 행여 성당을 건립한다 해도 신자들이 마음놓고 다니기에는 여간 불편하지 않은 곳이었다.

성전위치로는 아무래도 부적합하다고 여겨졌고 일부 신자들의 반대의견도 나왔다.

게다가 천호동 본당 자체에서도 여러 공소가 연이어 분리되어 나감으로써 지쳐있던 상황이라 풍납,성내 지역의 성당분리를 다음으로 미루자는 의견이 대두됨으로써 풍납,성내의 공소문제가 약간 지연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미 부지매입을 끝낸 명일동 본당 신자들을 보면서, 풍납,성내동 성전의 부지매입을 서두르지 않으면 몇 년 이내에 성전 분할을 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판단이 생겨났고, 이는 신자들 사이에서 결속력과 의욕을 불러 일으켰다.

 

즉 명일동 분리와 때를 맞추어 풍납,성내 지구도 성전분리의 기초가 되도록 성전부지(현 성전부지) 계약을 서둘러 마쳐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 되었다.  

 

1987년 2월 27일 신축성전부지 700여 평을 확보했다(위치:송파구 풍납동 339번지). 총 5억 1천만 원으로 박정길 형제가 서면증인이 되어 계약하였고, 자금의 조성내용은 교구차용금으로 2억 원, 둔촌동성당 지원금 8천만 원, 신자들 모금액 2억 3천만 원, 바자회 수입금 1억 원 중에서 5천만 원이었다.

 

한편 천호동본당에서도 장차 분할될 명일동, 풍납,성내동 지역을 염두에 두고 1987년 5월 9일-10일 양일간 영파여고 운동장에서 성당기금마련을 위한 바자회를 개최하였다.

명일동 신자들과 풍납,성내동 신자들의 열성은 대단했다.

 

바자회 준비위원회의 구성, 기증품 수집, 바자회 판매상품 계약 등의 과정을 거치고 난 후, 많은 신자들이 귀중품을 품목별로 구분 작업하기 위해 밤을 세우면서도 힘든 줄도 모르고 봉사하였다.

 

성전부지 구입 후 신자들의 열성과 관심은 날로 드높아졌다. 앞으로 들어설 성전부지에 찾아가 기도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88년 초봄에는 천호동본당 뒷산 성모동산의 정비작업에서 좋은 흙을 가져와 성전부지에 매립하려고 하였으나 진입로가 좁고 대형차량 출입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농성으로 중지해야만 한 적도 있다.

 

성모동산에서 나온 은행나무를 캐서 성전부지 담장 주변에 심었으나 성전 토목공사 때에 모두 제거되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이 지역 구역체계의 변모과정이 나타나는데, 이는 천호동본당의 구역조정과 맞물려있다. 1987년 8월 명일동 본당이 천호동본당에서 분리한 후 풍납,성내동 지역은 5개구역으로 조정되었다. 위원장에는 염금천(스테파노), 부위원장에는 한점순(데레사)이 각각 임명되었다.11)

그후 구역조직은 ’말씀회’조직으로 운영되었고, ’말씀회’에서는 1987년 9월 29일 구역지부 회장제도를 도입하여 5개 구역별로 각 지회장을 임명하였다.

 

그러나 남성구역장들의 경우에는 ’말씀회’의 각 지회장과 인적 구성면이나 활동면에서 서로 중복되어 있었다.

이런 문제 때문에 1988년 11월, 천호동본당에서는 ’말씀회’가 해체되었다.12)

 

그 당시 ’말씀회’ 조직으로 운영되었던 풍납?성내지역의 구역조직 속에서 활동한 지회장 명단은 다음과 같다.13)

 

성내1지회장:김명회(데오도로)

성내2지회장:정영효(베드로)

풍납1지회장:조칠성(베드로)

풍납2지회장:정정해(시몬)

풍납3지회장:김윤상(베드로)

 

3) 초기 공소활동 및 성전건립의 꿈

1988년 2월 13일 8시, 공소추진위원회14)는 천호동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공소 임대에 관한 회의를 소집하였다.

회의에는 성내동 108-11호 동신상가 3층 189평의 임대계약에 따른 제반문제를 협의하고자 5개구역 구역장 및 공소추진위원 30명이 참가했다.

성전 완공 때까지 풍납동본당으로써의 역할을 수행할 장소로서 동신상가 3층 건물은 풍납,성내동 지역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으며, 예전에는 영파여중에서 교실로도 사용하던 곳이었다.

그리고 시설 수리비도 적게 드는 등 장점이 많아 대다수가 찬성을 하여 계약을 하게 되었다. 이 계약에는 당시 천호동본당의 신협이사장 오천근(요셉) 형제의 도움이 컸다. 임대계약금은 1억 8천만원이었는데 그 당시 190평에 이르는 넓은 건물을 물색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려나갔다.

 

추진위원회에서는 공소에서의 첫 미사봉헌을 1988년 5월 15일 ’예수승천 대축일’에 드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잔금을 지불하기 전에 시설계획 및 도면을 작성하여 첫미사 봉헌준비작업을 착수하기로 했다.

 

관재분과(현재의 시설분과) 김석운(안드레아) 형제가 담당하고 회장단이 주축이 되어 공소 시설작업은 조성호(요한) 형제가 추진 본부장역을 맡아 열심히 봉사하였다.

 

한편 천호동본당에서는 1987년 11월 초부터 풍납?성내동 사제관 준비금신립운동이 전개되었다. 그리하여 11월 8일 현재 이 지역에 거주하는 534세대에서 총 23,100,000원이 신립되었다. 아울러 천호동 신자들도 하나 둘씩 이 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해 1988년 7월부터는 본격적으로 풍납,성내동 성당건립을 위한 모금운동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명일동 본당의 분할로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어오던 터라 모금운동이 예전처럼 활발하지 못했다. 이에 성내,풍납동에 거주하던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모금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신자들은 내부 시설비를 포함하여 1억 5천만 원을 목표로 신립을 시작하였다.

각 구역단위로 저녁 8시마다 모여 11차에 걸쳐 다음과 같이 실시하였다.

 

 1차-3월 10일 선인 주산학원 추진위원 구역장, 반장

 2차-3월 11일 유천파크 6동 303호, 풍납 1구역

 3차-3월 13일 풍납 2구역장, 풍납 2구역

 4차-3월 20일 우성 아파트 노인정, 풍납 3구역

 5차-3월 21일 구청 앞 호수정, 성내 1구역

 6차-3월 23일 현대 아파트 102동 411호, 성내 2구역

 7차-3월 25일 성내 2구역 4반장, 성내 2구역

 8차-3월 26일 풍납 1구역장, 풍납 1구역

 9차-3월 27일 성내 1구역지회장, 성내 1구역

10차-3월 28일 미성 아파트 3동 503호, 풍납 2구역

11차-3월 29일 우일 아파트 12동 506호, 풍납 3구역

 

짧은 기간동안 모두 650명이 참가했으며 총 1억 6천 883만 원을 모금하였다.

그 후 사무실로 직접 와서 신립한 신자들도 적지 않았으므로 나중에는 합산금액이 1억 8천만 원을 넘어섰다.

주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총으로 우리의 목표를 초과하는 모금액이 신립되었다.

그와 때를 같이하여 천호동본당에서 집기류, 장궤틀, 교리실 의자 등 사용하고 있던 집기들을 나누어 주었고, 성물은 신자들의 정성어린 기증으로 충당하였다. 성물기증에 참여한 신자들은 모두 176명이며 그분들께 적은 지면을 통해서나마 감사를 드린다.

             

10월 23일, 성내.풍납공소의 설정과 동시에 새로운 공소에서의 첫미사가 봉헌되었다.

 

1988년 10월 23일 오후 4시에 김옥균 주교의 집전으로 감격의 첫미사를 봉헌함으로써 새로운 공동체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첫미사는 천호동본당 설립 30주년 기념미사를 겸해서 봉헌되었다. 이 때의 공소설정이 본당승격을 예정하고 이루어진 일이었음은 물론이다.

약 800여명의 신자들이 참여했고 김옥균 주교, 오태순 신부, 송재남 신부, 최익철 신부, 박영근 신부가 첫미사를 집전하였다.

10월 23일 현재, 천호동본당에서 분할한 신자수는 1,502세대로 3,902명이었고 관할구역은 풍납1, 2동과 성내동이었다.

풍납,성내동 본당의 분리는 무엇보다도 오태순 신부가 아니었더라면 먼 훗날로 미뤄졌을 것이다. 우리 풍납동 본당 전신자들은 이에 대해 거듭 지면을 통해 깊히 감사드린다.

 

첫미사의 봉헌과 함께 한마음성가대, 울뜨레아, 초등부교사회, 중,고등부교사회가 설립되었다. 그후 1988년 12월 11일 성내,풍납동 공소의 사목회의가 정식으로 소집, 구성되었고 일주일 후에 다음과 같이 사목위원이 임명되어15) 조직적인 봉사활동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제1대 사목협의회 구성

사목회장:염금천(스테파노)

부 회 장:유성한(그레고리오), 박정모(파비아노), 전홍재(미카엘)

총    무:박정길(에봐리스또)

부 총 무:이일우(안드레아)

분과위원장:기획분과 정영택(베드로), 재정분과 김용인(그레고리오), 사회복지분과

            서영국(이냐시오), 관재분과 김창현(그레고리오), 홍보분과 김길환(이시도로), 선교분과 : 심만택(안드레아), 전례분과 이창수(토마),

교육분과 : 강태승(미카엘, 작고), 남성구역 조칠성(베드로),

여성구역 : 원경연(유스티나), 초등부 박영기(발렌티노),

중등부   : 이정춘(다비드), 연령회 조춘석(리노), 연령회 조범현(바오로) 및

           한금선(마리아), 성가대 김창현(그레고리오), 지휘 신영태(스테파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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