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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반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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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 [clarapak] 쪽지 캡슐

2003-11-20 ㅣ No.412

윗 마을에 살아 얼굴만 아는 그 아이가 중학교 때 같은 반이 되었습니다. 그 애는 말수도 적고 착했는데, 소극적이다 보니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 하고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그 땐 잘 몰랐지만 외로워하는 그 아이를 보고만 있던 저 역시 그 따도림에 한 몫한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느 날, 그 애가 교실에 혼자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제 손에는 마침 친구가 먹으라고 준 사과 반쪽이 들려있었는데, 배가 불러 무심코 그 아이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사과 반쪽을 건네받은 아이의 표정은 감동에 벅차 보였습니다.

 

중학교 졸업식 날, 그 아이가 슬그머니 다가오더니 졸업 선물이라며 예쁘게 포장된 꾸러미를 내밀었습니다. 내가 당황해하자 아이는 "괜찮아, 자 받아"하며 ㅅ이긋 웃었습니다. 집에 가서 풀어 보니 앙증맞은 거울이었습니다.

 

대학생이 된 어느 날, 옷가게에서 우연히 우리는 다시 만나씁니다. 머저 알은 체하는 그 아이를 한참만에야 알아보았답니다. 연락처를 주고받은 뒤 우리는 헤어졌고 저는 또 까맣게 잊은 채 지냈습니다.

 

며칠 전 전화가 한 통 왔습니다.

"여보세요?"

"...나야..."

수화기 너머 망설임을 담은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한참 뒤에야 그 친구라는 걸 알았습니다. 조금 당황스러웠습니다. 제 맘을 눈치챘는지 그 애는 "놀랐지? 그냥 네 생각이 나서..."하고 말끝을 흐렸습니다. 그 아이는 지금 시집가서 잘 살고 있으며 얼마 전에 예쁜 딸을 낳았다며 축하해 달라고 했습니다. 얼떨결에 "정말 축하해. 부럽다"는 말을 건넸습니다. 그런데 친구가 뜻밖의 말을 꺼냈습니다.

 

"네가 중학교 때 나한테 준 사과 반쪽... 난 아직도 잊지 못해. 그 사과 받고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아무도 나한테 관심을 보인 적이 없었거든. 정말 고마웠어."

먹고 싶은 생각이 없어 준 것뿐인데, 내가 베푼 친절에 감격해 친구는 그날 밤잠을 설쳤답니다. 그 날 이후 자기의 존재감을 느꼈다는 친구 말에 제 얼굴은 붉어졌습니다.

 

내 작은 행동이 그 아이에게 기쁨과 용기를 주었다니... 전화를 끊고 난 뒤 저는 그 애가 선물해 주었던 거울을 꺼내 들여다보며 오랜만에 호나하게 웃어보았습니다. 이젠 제가 더 친구에게 고마워해야겠네요. 이런 기쁜 날을 선물해주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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