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필독] 에페소 1,7 및 콜로새 1,14에서 속량 곧 죄의 용서/죄사함를 받았다/얻었다는 논리적 등가 및 과거형 번역은 심각한 번역 오류이다 1122_ 1242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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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9 ㅣ No.2106 게시자 주: 본글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06.htm 에 접속하면, 본글 중에서 제시되고 있는 출처 문헌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q&a.htm 에 접속하면, 본글의 제목이 포함된, "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제공의 모든 게시글들의 제목들의 목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i) 2006년 12월 16일에 개시(開始)하여 제공 중인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날마다 영어 매일미사 중의 독서들 듣고 보기, 그리고 (ii) 신뢰할 수 있는 가톨릭 라틴어/프랑스어/영어 문서들 등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손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 (PC용, 날마다 자동으로 듣고 봄) [주: 즐겨찾기에 추가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m (스마트폰용) [주: 네이버 혹은 구글 검색창 위에 있는 인터넷 주소창에 이 주소 입력 후 꼭 북마크 하십시오]
1. 들어가면서
1-1.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예수님의 위업들 중의 하나인 "구속"/"속량"(redemption)은 "죄들의 용서"(forgiveness of sins) 혹은 "구원"(salvation) 어느 것과도 논리적으로 동치일(logically equivalent) 수가 없음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ot_15.htm <----- 꼭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05.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29.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69.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redemption_objective_vs_subjective.htm <----- 필독 권고
[내용 추가 일자: 2022년 11월 25일] 1-2. 다음은, 바로 위의 첫 번째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에페소서 1,7-8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입니다. 참고로,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우리말 번역을 완료한 시점은, 아무리 늦더라도, 2021년 7월 10일이었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ot_15.htm#Paschal_Mystery (발췌 시작) 7-8. St Paul now centers his attention
on the redemptive work of Christ--the third blessing--which has implemented
the eternal divine plan described in the preceding verses. 7-8. 성 바오로는 이제 자신의 주의를 , 세 번째
축복인,그리스도의 구속하는/속량하는 위업(the
redemptive work of Christ)에
집중시키는데(centers), 이 위업은 앞서는 절들에서 묘사된 영원한 신성적 계획을 이미 이행한 것입니다.
구속/속량(Redemption)은 "해방함/석방함"(setting free)를 의미합니다.(*) 하느님의 구속하는/속량하시는 행동은, 다음과 같이, 당신께서 이스라엘의 백성을 이집트에서 그들의 노예 상태(enslavement)로부터 해방하실 때인, 구약 성경에서 시작하였습니다 (탈출 11,7 및 이어지는 몇 개의 절들을 참조하라): 어린 양의 피로 그들의 문들의 상인방(lintels)들을 바름으로써, 그들의 맏이가 죽음(death)으로부터 보호되었다. 바로 이 구원에 대한 기억으로 하느님께서 과월절 어린양의 의식(rite)이라는 경축을 명하셨습니다 (탈출 12,47 참조). 그러나, 이집트에서의 노예 상태(slavery)로부터 구속/속량(redemption)은 다만(but) 그리스도께서 초래하실 유일한 구속/속량(the Redemption)의 한 개의 예형(prefiturement)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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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우리의 주님께서는, 당신의 복받으신 수난(blessed passion), 죽은 이들로부터 부활(resurrection from the dead), 그리고 영광을 발하는 승천(glorious ascension)으로 구성된(*) 파스카 신비(the paschal mystery)에 의하여 주되게(principally) [인류의 구속/속량(redemption) 그리고 하느님께 완미한 영광(perfect glory)을 바침이라는] 바로 이 과업(task)을 성취하셨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Vatican II, 1962-1965년),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 "거룩한 공의회"(Sacrosanctum Concilium), 제5항]
[내용 추가 일자: 2022년 11월 25일]
출처: https://www.vatican.va/archive/ENG0015/__P1L.HTM
512 Concerning Christ's life the Creed speaks only about the mysteries of the Incarnation (conception and birth) and Paschal mystery (passion, crucifixion, death, burial, descent into hell, resurrection and ascension). It says nothing explicitly about the mysteries of Jesus' hidden or public life, but the articles of faith concerning his Incarnation and Passover do shed light on the whole of his earthly life. "All that Jesus did and taught, from the beginning until the day when he was taken up to heaven",171 is to be seen in the light of the mysteries of Christmas and Easter.
512 그리스도의 삶에 관하여 신경(the Creed, 사도 신경)은 강생 신비(수태 및
탄생)들 그리고 파스카 신비(수난, 십자가형, 죽음, 묻힘, 저승(hell) 안쪽으로 내려감, 부활 및
승천)에 관하여 오로지 말합니다. 이 신경은 예수님의 감추어진 생활 혹은 공생활의 신비들에
관하여 명시적으로(explicitly) 아무 것도 말하지 않으며, 다만 당신의 강생(Incarnation) 및
과월(Passover)에 관한 신앙의 조항[the articles of faith, 즉, 신조]들은 당신의 지상에서의 삶의 전체를
밝히고 있습니다(shed light on). "예수님께서, 처음부터 당신께서 하늘로 들어올림 받으셨을 때까지, 행하셨고 가르치셨음
모두"171 는 크리스마스 및 부활의 신비들의 빛 안에서 보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피를 흘림으로써,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들을 죄의 노예 상태(the slavery of sin)로부터, 악마의 힘(the power of the devil)으로부터, 그리고 죽음(death)으로부터 이미 구속하셨습니다/속량하셨습니다(has redeemed) (로마 3,24-25에 대한 주석 참조). 그분은 유일한 참된 과월절 어린양(passover Lamb)입니다 (요한 복음서 1,29 참조).
"우리가 '은 혹은 금과 같은 썩기 쉬운(perishable) 사물들로써가 아니라 다만, 아무런 흠(blemish) 혹은
결점(spot) 없는 한 마리의 어린양의 바로 그것처럼, 그리스도의 가치있는(precious) 피로써, 속죄를 받았음(have been
ransomed)' (1베드로 1,18 및 이어지는 절)을 우리가 성찰할(reflect) 때, 우리는, 하느님의 이루
말할 수 없는 섭리(providence) 및 우리들 쪽으로 향하는 당신 사랑의 과잉(excess)을 선포하는, 죄들을 용서하는
[이 유일한 교회에 주어진] 바로 이 힘보다 더 유익한(salutary) 어떠한 선물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는 쪽으로
우리가 자연스럽게 인도된다" ["성 비오 5세 교리서"(St Pius V(1504-1572년) Catechism), I,
11, 10].
그리스도에 의하여 초래된(wrought) 구속/속량(Redemption)은 우리들을, 죄의 노예 상태인, 모든 노예 상태들의 최악으로부터 자유롭게 합니다(frees).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이것을 진술하듯이,
"사람은 자신이 악의 맹렬한 공격을 자기 스스로 성공적으로 극복할 수 없음을 발견하며 그리하여 그 결과 각자는 마치 쇠사슬들로 묶여있는 것 같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주님 당신 자신께서 사람을 자유롭게 하고 굳세게 하기 위하여 오셔서, 그를 내부에서(inwardly) 새롭게 하시고 그리고, 그를 죄의 속박 상태(bondage of sin)에 붙잡고 있는, '이 세상의 지배자'를 쫓아내셨습니다 (요한 12,31). 왜냐하면 죄가 사람을 어떤 더 낮은 지위로 데려갔으며, 그로 하여금 획득하여야 하는 자신의 충만함(fullness)(*15)으로부터 멀어지도록 강제하였기 때문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Vatican II, 1962-1965년),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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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획득하여야 하는 자신의 충만함(fullness)'이란 곧 '완미'[perfection, 즉,
완전하고(complete) 그리고 마땅히 갖추고 있어야 하는 선(good)에 있어 어떠한 결함/부족도 없는 상태]를
말한다.
바로 이 구속/속량(Redemption)을 성취함(carrying out)에 있어, 우리들의 주님께서는 사람(man)에 대한 당신의 무한한 사랑에 의하여 움지여지셨습니다(is motivated). 사람(man)이 희망할 수 있거나, 혹은 공로로서 획득할 수 있는(merit) 어떤 것도 훨씬 능가하는, 바로 이 사랑은 무엇보다도 먼저 하느님의 용서(God's forgiveness)의 보편적 관대(universal generosity) 안에서 볼 수 있는데, 왜냐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though) "죄(sin)가 증가하게 되면, 은총(grace)이 훨씬 더 풍부해지기" (로마 5,2) 때문이며,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에 의하여 성취된 바로 이 용서는 우리들에 대한 하느님 사랑의 최고의 표시(supreme sign)인데, 왜냐하면 "어떠한 사람도 한 사람(a man)이 자신의 벗들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내려 놓는(lay down) 것보다 더 커다란 사랑을 가질 수 없기" (요한 15,13) 때문입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예수님의 구속/속량(Redemption) 위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우리들을 상기시킵니다: 성부 하느님께서 사람들의 죄들의 사면(remission)을 위하여 당신의 성자(Son)를 내주셨다면(gave up),
"그것은 피조물(creation) 전체보다 항상 더 커다란 사랑을,당신 자신인 사랑을, 드러내고자 하셨던 것인데, 왜냐하면 '하느님은 사랑이기' (1요한 4,8)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사랑은 죄(sin)보다 더 크고, 나약함(weakness)보다 더 크며, '피조물의 허무함(futility of creation)'보다 더 크기 때문이며 (로마 8,20 참조), 그리고 죽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St. John Paul II, 1920-2005년), "인간의 구속자/속량자"(Redemptor Hominis), 제9항](*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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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왜냐하면,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확인할 수 있듯이, 예수님을 가리키는, 고유
명사인 라틴어 "salvator"가 "savior"(구원자)로
번역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3) 그리고 또한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확인할 수 있듯이, 라틴어 "Redemptor"/영어
"Redeemer"(구속자/속량자)와 라틴어 "salvator"/영어
"Savior"(구원자)는, 예를 들어,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항에서부터 확실하게 구분되고
있다:
"redeemer and savior" "Catechism of the Catholic Church" site:vatican.va
(4) 왜 이러한 지적을 드리는가 하면,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확인할 수 있듯이,
"천주교 용어집"에 제시된 언제 "구원자"와 "구속자"를 구분할 필요가 있는지를 판단하는
행위는, 우리말로의 번역 과정에서 판단자가 누구이냐에 따라, 자의적/작위적인 의역
번역(free translation)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러한 종류의 번역 오류들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도
파악할 수 없는, 우리말로 번역이 된 교회의 핵심 문헌들을 자신의 신학적 사고의 기본 지식들로서 열심히 습득한 후에, 로마 혹은
프랑스로 유학을 갔을 경우에, 석사, 박사 학위 과정에서, 바로 이러한 종류의 번역
오류들 때문에 어떠한 일들이 발생할 것인지에 대하여서도 또한 고려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term paper들 혹은 학위 논문을 우리말로 작성한 후에,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혹은 라틴어로 번역을 하여 제출하면, 이들 두
용어들 사이의 차이점을 모르고 있는 문제점이 확실하게 드러나, 즉시, 거부당하기 십상일 것은, 상당히 분명하다는
생각이다.
우리들의 죄들이 용서 받는 것을 가능하게 하심으로써, 예수님에 의하여 초래되었던 구속/속량(Redemption)은 사람의 품위(dignity)를 이미 회복시켰습니다.
"그리스도의 신비(Christ's mystery)(*17)의 전체를 점점 증가하게(increasingly) 관상한 결과(contemplating), 죄 때문에 상당한 정도에 이르기까지(to a considerable extent) 잃어버렸던 한 개의 의미인, 십자가를 통하여 발생한 구속/속량(Redemption)이 사람에게 자신의 품위를 결정적으로 이미 회복시켰음을, 교회는 신앙의 확신 모두와 함께 알고 있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St. John Paul II, 1920-2005년), "인간의 구속자"(Redemptor Hominis), 제10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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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편에서의 바로 이러한 행동(action)은 당신의 지혜(wisdom) 및 현명(prudence)을 드러냅니다. (이상, 발췌 씉) [이상, 2022년 11월 25일자 내용 추가 끝]
1-3. 본글에서는, 에페소서 1,7 및 콜로새서 1,14에서 속량 곧 죄의 용서/죄사함를 받았다/얻었다는 논리적 등가 및 과거형 번역이 심각한 번역 오류임에 대하여 정밀하게 고찰하도록 하겠습니다.
2. 유관 자료/사료 분석
작성 중입니다.
가톨릭 교회의 공인 대중 라틴말 성경(Clementine Vultate) 에페소서 1,7: 번역 과정에 아무런 낱글자 추가 없음. https://www.newadvent.org/bible/eph001.htm
가톨릭 교회의 공인 대중 라틴말 성경(Clementine Vultate) 콜로새서 1,14: 번역 과정에 아무런 낱글자 추가 없음. https://www.newadvent.org/bible/col001.htm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의 "신학 대전", https://www.newadvent.org/summa/4049.htm
트리엔트 공의회: http://www.intratext.com/IXT/ENG0432/__PJ.HTM
덴징거(Denzinge, DS), 제1523항: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956.htm
라틴어 정본 출처: http://catho.org/9.php?d=bx2#b5t (발췌 시작) 1523 795 Cap.3. "Qui per Christum justificantur" - Verum etsi ille "pro omnibus mortuus est" (Cor2 5.15), non omnes tamen mortis ejus beneficium recipiunt, sed ii dumtaxat, quibus meritum passionis ejus communicatur. Nam sicut revera homines, nisi ex semine Adae propagati nascerentur, non nascerentur injusti, cum ea propagatione per ipsum, dum concipiuntur, propriam injustitiam contrahant: ita nisi in Christo renascerentur, numquam justificarentur (can. 2 et 10), cum ea renascentia per meritum passionis ejus gratia, qua justi fiunt, illis tribuatur. Pro hoc beneficio Apostolus gratias nos semper agere hortatur Patri, "qui dignos nos fecit in partem sortis sanctorum in lumine" (Col 1.12), et eripuit de potestate tenebrarum, transtulitque in regnum Filii dilectionis suae, in quo habemus redemptionem et remissionem peccatorum (Col 1.13s). (이상, 발췌 끝)
프랑스어본 출처: http://catho.org/9.php?d=bwq#dnb (발췌 시작) 1523 Mais, bien que lui soit " mort pour tous " 2Co 5,15, tous cependant ne reçoivent pas le bienfait de sa mort. mais ceux-là seulement auxquels le mérite de sa Passion est communiqué. En effet, de même qu'en toute vérité les hommes ne naîtraient pas injustes s'ils ne naissaient de la descendance issue corporellement d'Adam, puisque, quand ils sont conçus, ils contractent une injustice personnelle par le fait qu'ils descendent corporellement de lui, de même ils ne seraient jamais justifiés s'ils ne renaissaient pas dans le Christ , puisque, grâce à cette renaissance, leur est accordé par le mérite de sa Passion la grâce par laquelle ils deviennent justes. Pour ce bienfait l'Apôtre nous exhorte à toujours "rendre grâce au Père qui nous a rendus dignes d'avoir part à l'héritage des saints dans la lumière et nous a arrachés à la puissance des ténèbres et transférés dans le Royaume de son Fils bien-aimé, en qui nous avons la Rédemption et la rémission des péchés" Col 1,12-14 (이상, 발췌 끝)
영어본 출처: http://www.clerus.org/bibliaclerusonline/en/dw5.htm#b0d (발췌 시작) 1523 Dz 795 But although Christ died for all (2Co 5,15), yet not all receive the benefit of His death, but those only to whom the merit of His passion is communicated. For, as indeed men would not be born unjust, if they were not born through propagation of the seed of Adam, since by that propagation they contract through him, in conception, injustice as their own, so unless they were born again in Christ, they never would be justified [can. 2 and 10], since in that new birth through the merit of His passion, the grace, whereby they are made just, is bestowed upon them. For this benefit the Apostle exhorts us always to "give thanks to the Father who has made us worthy to be partakers of the lot of the saints in light" (Col 1,12), "and has delivered us from the power of darkness, and has translated us into the kingdom of the Son of his love, in whom we have redemption and remission of sins (Col 1,13 ff.). (이상, 발췌 끝)
http://ch.catholic.or.kr/pundang/4/cb/전례력/트리엔트_전례력_used_in_1949년.htm
1670대 "미살경전", 강림후 제24주일 제1독서: "즉" 낱글자가 번역 과정에 삽입됨(번역 오류). (발췌 시작)
콜로새_1_9-14_in_1670_미살경전_성신강림후24주일_제138b-139a쪽.jpg (이상, 발췌 끝)
1704년경 장 바쎄 신부님의 신약 성경(로마 보존본): 해당 본문 번역 과정에서 논리적 등가를 의미하는 낱글자 추가 없었음..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662-1707_장_바쎄/콜로새_1.htm (발췌 시작)
콜로새_1-14_in_1704녁셩_장_바쎄_로마_보존본.jpg (이상, 발췌 끝)
1715년 이후에 저술된 푸아로 신부님의 고신성경: 해당 본문 번역 과정에서 논리적 등가를 의미하는 낱글자 추가 없었음.
츨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735-1813_안토니오_드_푸아로/고신성경_콜로새서.htm (발췌 시작)
콜로새_1-14_in_1775년이후_고신성경.jpg (이상, 발췌 끝)
1949년 중국 예수회 신부님들에 의한 번역: 콜로새서 1,14: 해당 본문 번역 과정에서 논리적 등가를 의미하는 낱글자 추가 없었음..
출처 1: https://bible.fhl.net/new/ob.php?book=81&chineses=51&chap=1&sec=14 [주: 옛 줄처] https://bible.fhl.net/new/ob.php?book=387&chineses=51&chap=1&sec=14 [(2024-01-12) 새 출처] 출처 2; https://bible.fhl.net/new/gm.php?fn=b081/m51_001_000_001_000.jpg 출처 3: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949_중국_예수회본_신약성경/콜로새_1_14_in_1949_중국_예수회본_신약성경.jpg <----- 왼쪽에서 네 번째 열(column)부터 필히 확인하라
가톨릭 교회의 공인 새 대중 라틴말 성경(Nova Vulgata) 에페소서 1,7: 해당 본문 번역 과정에서 논리적 등가를 의미하는 낱글자 추가 없었음.. http://www.vatican.va/archive/bible/nova_vulgata/documents/nova-vulgata_nt_epist-ephesios_lt.html
가톨릭 교회의 공인 새 대중 라틴말 성경(Nova Vulgata) 콜로새서 1,14: 해당 본문 번역 과정에서 논리적 등가를 의미하는 낱글자 추가 없었음.. http://www.vatican.va/archive/bible/nova_vulgata/documents/nova-vulgata_nt_epist-colossenses_lt.html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613항, 제1846항, 제2839항:
콜로새서 1,14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 RSV 성경 해당 본문 번역 과정에서 논리적 등가를 의미하는 낱글자 추가 없었음.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c_king.htm <----- 필독 권고
그리고 이 해설에서 논리적 등가의 의미를 전혀 가지지 않는 연결자 "and"가 사용됨: (발췌 시작) The struggle between light and the power of darkness is referred to in
many passages of Sacred Scripture (cf. Jn 1:5, 9-11). Darkness means both
evil and the power of the Evil One. Before the redemption took place, all
men--as a consequence of original sin and their personal sins--were slaves to
sin; this slavery darkened their minds and made it difficult for them to know
God, who is the true light. Christ our Lord, by carrying out the redemption
and obtaining forgiveness for our sins (cf. v. 14), rescued us from the
kingdom of darkness from the tyranny of the Evil One, and brought us into the
kingdom of light, the kingdom of truth and justice, of love and of peace (cf. "Preface for the Solemnity of Christ the King"), enabling us to enjoy "the
glorious freedom of the children of God" (Rom 8:21).
----- (이상, 발췌 끝)
에페소서 1,7-8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 RSV 성경 해당 본문의 번역 과정에서 논리적 등가를 의미하는 낱글자 추가 없었음.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ot_15.htm <----- 필독 권고
객관적 구속/속량과 주관적 구속/속량에 대하여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22.htm
새 번역 성경의 에페소서 1,7: 출처: (발췌 시작)
(이상, 발췌 끝)
새 번역 성경의 콜로새서 1,14: 출처: (발췌 시작)
(이상, 발췌 끝)
거의 대부분이 개신교회 측 성경들인 여러 영어본 셩경들의 에페소서 1,7: 해당 본문 번역 과정에서 논리적 등가를 의미하는 낱글자 추가 없었음. https://biblehub.com/ephesians/1-7.htm
거의 대부분이 개신교회 측 성경들인 여러 영어본 성경들의 콜로새서 1,14: 해당 본문 번역 과정에서 논리적 등가를 의미하는 낱글자 추가 없었음. https://biblehub.com/colossians/1-14.htm
https://bible.fhl.net/new/ob.php?book=all&chineses=51&chap=1&sec=14&submit=%E6%9F%A5%C2%A0%E8%A9%A2
1814년 로버트 모리슨: 번역 과정에 아무런 낱글자 추가 없음. https://bible.fhl.net/new/gm.php?fn=b233/m51_001_007_001_023.jpg
1823년 로버트 모리슨: 번역 과정에 아무런 낱글자 추가 없음. https://bible.fhl.net/new/gm.php?fn=b179/m51_001_007_001_014.jpg
1839년 귀츨라프: "併"(combine, annex) 낱글자가 번역 과정에 삽입됨(번역 오류). https://bible.fhl.net/new/gm.php?fn=b193/m51_001_011_002_002.jpg
https://bible.fhl.net/new/gm.php?fn=b428/m51_001_002_001_017.jpg
1855년 위판역본: 번역 과정에 아무런 낱글자 추가 없음. https://bible.fhl.net/new/gm.php?fn=b214/m51_001_001_001_028.jpg
1899년 위판역본: 번역 과정에 아무런 낱글자 추가 없음. https://bible.fhl.net/new/gm.php?fn=b012/m51_001_000_001_000.jpg
1906년 문리화합본: "즉" 낱글자가 번역 과정에 삽입됨(번역 오류). https://bible.fhl.net/new/gm.php?fn=b017/m51_001_000_001_000.jpg
1927년 新舊約串珠淺文理施約瑟主教譯本: "즉" 낱글자가 번역 과정에 삽입됨(번역 오류). https://bible.fhl.net/new/gm.php?fn=b004/m51_001_000_001_000.jpg
대한성서공회 제공의 개신교회 측 여러 우리말본 성경들의 에페소서 1,7: "즉" 낱글자가 번역 과정에 삽입됨(번역 오류).
대한성서공회 제공의 개신교회 측 여러 우리말본 성경들의 콜로새서 1,14: "즉" 낱글자가 번역 과정에 삽입됨(번역 오류).
작성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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