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St. John Chrysostom)를 말하는 번역 용어 金口(금구)의 출처는 1659년 이후, 1692년 이전에 마련된 쿠플레 신부님의 영첨례표이다1242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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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7 ㅣ No.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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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면서

 

질문 1: 요즈음도 주변에, 자신의 세례명이 "금구"(金口)라고 말하는 교우님들이 있는데, 우리나라 조선의 천주교회 내에서 언제부터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St. John Chrysostom)를 "금구" 성인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는지 구체적으로 알고 싶습니다.

 

질문 1에 대한 간략한 답변: 지금까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아무리 빠르더라도, 1890년대부터일 것으로 파악됩니다. 그러나 그렇게만 부르는 것은,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심각한 잘못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세례명은 "요한"(John)이기 때문입니다.

 

질문 1에 대한 더 자세한 답변은, 이어지는 제2항에 제시된 실증적으로(positively) 고증/입증하는 졸글을 읽도록 하십시오.

 

2. 유관 사료 분석

 

연대순에 있어, 거슬러 올라가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2-7.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우리나라 천주교회에 의하여 1923년에 출판된 "회장직분"의 부록으로서 첨부된, 셩인의 본명 첨례일을 들여다볼 수 있는데, "Chrysostomus", 금구, 쥬교학자, 1월27일이라고 밝히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923_회장직분/성인의_본명_첨례일_in_회장직분_부록_제1-20쪽.pdf  

(발췌 시작)

금구(1월27일)_in_1923_회작직분_부록_셩인의_본명_첨례일_제2쪽.jpg

(이상, 발췌 끝)

 

2-6. 다음은, 1904년판 우리말본 "셩경직해"에서 발췌한 바인데, "금구 성인"이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발췌 시작)

금구_셩인_in_1904년판_셩경직해_권1_제4a쪽.jpg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다섯 번째 열(column)을 보라.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2-6: 바로 위에 발췌된 우리말본 "셩경직해"의 초판은 1892-1895년 동안에 출판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2-5. 다음은,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퍄견된 예수회 소속의 드 메야/미이야 신부님(1669-1748년)에 의하여 저술되어 1740년에 초간된, "성경광익", 하권, 성신강림후제2주일, 제16a쪽에서 발췌한 바입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669-1748_모이리악_드_메야/1740_성경광익.htm  

(발췌 시작)

금구_in_1740_성경광익_하권_성신강림후제2주일_제16a쪽.jpg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네 번째 열(column)을 보라.

(이상, 발췌 끝)

 

2-4. 다음은,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퍄견된 예수회 소속의 드 메야/미이야 신부님(1669-1748년)에 의하여 저술되어 1738년에 초간된, "성년광익", 춘계, 1편, 1월27일, 제83a쪽에서 발췌한 바입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669-1748_모이리악_드_메야/1738_성년광익_춘계_1월.htm

(발췌 시작) 

 

금구(1월27일)_in_1738_성년광익_춘계_1편_제83a쪽.jpg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두 번째 열(column) 등을 보라. 

(이상, 발췌 끝)

 

2-3. 다음은,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쿠플레 신부님(1624-1692년)에 의하여, 중국 본토에 입국한 이후인 1659년부터 1692년 사이에 마련되어, "수진일과"(즉, "천주성교일과")의 한 개의 부록으로서 첨부된 속권2, "영첨례문"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1: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59-1654_니콜라스_롱고바르디_et_al/수진일과.htm  

출처 2: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624-1692_필립푸스_쿠플레/영첨례표_in_수진일과_속권2(1659년_이후-1692년_이전)_제62a쪽.htm 

(발췌 시작)

금구(1월27일)_in_수진일과_속권2(1659년_이후-1692년_이전)_영첨례표_제64b쪽.jpg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첫 번째 열(column)을 보라. 

(이상, 발췌 끝)

 

2-2.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주니오르 디아스 신부님(1574-1659년)에 의하여 저술되어 1636년 - 1642년 사이에 초간된 한문본 "천주강생성경직해"에서,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St. John Chrysostom)은, 처음부터 끝까지, 성 基所(기소)로 음역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74-1659_엠마누엘_주니오르_디아스/1636_천주강생성경직해.htm 

(발췌 시작)

권14_10_사말지공론_368-399 (<---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주: (번역 오류) 여기서 잘못 사용되고 있는 차용 번역 용어인 "천국"은, [교회 안에 있는] "하늘 나라(kingdom of heaven, 즉, 천국, 즉, 하늘나라)"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하늘(heaven, 천당)"을 말함을 꼭 상기하도록 하라. 즉, 영어로 "heaven" 으로 직역 번역되는 용어가 여기서, "천(天)"으로 올바르게 직역 번역되는 대신에, [교회 안에 있는] "천국(kingdom of heaven, 즉, 하늘 나라, 즉, 하늘나라)"로 잘못 번역됨] [주: 이 부분은, 여기를 클릭하면 가지게 되는 "국립중앙도서관 국가전자도서관" 화면 제공의 우리말본 "성경직해" 자료에서, 원문 보기 > vol : 권 2에 실려있지 않음] [(2017년 1월 6일) 주: 제35쪽 각주에서 "천주지자"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음.]  

 

기소_in_성경직해_권14_10_사말지공론_제40b쪽.jpg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네 번째 열(column)의 첫 번째 줄을 보라.

(이상, 발췌 끝)

 

2-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들여다볼 수 있는, 필자에 의하여 마련된 한문 문화권 천주교회 성인명 음역 대조표[착성일자: 2020년 4월 10일]를 들여다보면,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한문문화권_천주교회_성인명_음역어_대조표.htm <----- 필독 권고 

 

1629년 경에 초간된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의 "천주성교성인행실"에는 그리스 교부였던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St. John Chrysostom)에 대한 전기가 없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3. 유관 사료 분석의 결과들

 

바로 위의 제2항에서 실증적으로(positively) 고찰한 바로부터, 다음의 결론들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압니다:

 

3-1. (이 글의 결론 1) 그리스 교부(*)성 요한 크리소스토모(St. John Chrysostom, 347-407년)를 말하는 중국어 번역 용어 金口(금구)의 출처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쿠플레 신부님(1624-1692년)에 의하여, 중국 본토에 입국한 이후인 1659년부터 1692년 사이에 마련되어, "수진일과"(즉, "천주성교일과")의 한 개의 부록으로서 첨부된 속권2, "영첨례문"이 포함됨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

(*) 게시자 주: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라틴 교부들(즉, 라틴어로 자신의 저술들을 남긴 교부들)과 그리스 교부들(즉, 그리스어로 자신의 저술들을 남긴 교부들)의 목록들을 들여다볼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21.htm

-----

 

3-2. (이 글의 결론 2) 비록 한문본 "천주강생성경직해"가 조선의 임금 정조의 친부인 사도세자 시절에 이미 조선에 전래되어 있었기에,(*) 이 한문본 책의 본문에서 대단히 많이 언급되고 있는 基所(기소) 성인에 대하여, 한문본 "천주강생성경직해"를 학습한 우리나라 조선의 초기의 신앙의 선조들이 익히 잘 알고 있었으나,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1780년대에 우리나라 조선에 전달된 "수진일과"의 부록으로 첨부된 "영첨례표"에서 基所(기소)라는 세례명을 가진 성인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에, 현재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는, 우리나라 조선의 신앙의 선조들의 세례명이 기록된, 우리나라 조선의 천주교회의 문헌들에서 그 세례명이 基所(기소)이라고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되는 분을 찾아 볼 수가 없을 것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

(*) 게시자 주: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졸글/논문[제목: 이벽 성조의 성교요지 29,6에서 의염(擬鹽)의 출처와 기원에 대하여; 게시일자: 2017-04-28]에서, 이 역사적 사실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하는 정보으로의 안내를 접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807.htm <----- 필독 권고

-----

 

3-3. (이 글의 결론 3)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St. John Chrysostom)가, (i) 아무리 늦더라도 1780년대에 이르면 우리나라에 전래된 드 메야/마이야 신부님의 "성년광익""성경광익"을 통하여 우리나라 조선의 초기의 신앙의 신조들에게 금구 성인 "若望"(약망, 요왕)으로 알려지고, 그리고 또한 (ii) 1780년대에 우리나라 조선에 전달된 "수진일과"의 부록으로 첨부된 "영첨례표"에서 금구 "若望"(약망, 요왕)으로 얄려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위의 제2-3항, 제2-4항, 그리고 제2-5항에서 실증적으로(positively) 고찰한 바가 명백하게 가리키고 있듯이, 왜냐하면, 한문본 천주교 문헌들에서 중국어로 음역된 성인의 이름의 경우에 이 사실을 밝히기 위하여 오른쪽에 줄을 긋기 때문에, 우리나라 조선의 신앙의 선조들이 이분의 세례명을, 단순히, 사도 요한과는 동일 인물이 아닌 또다른, "若望"(약망, 요왕)으로 이해하였을 것이며, 따라서, "금구 성인"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우리말본 "셩경직해"가 출판된 1890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조선의 신앙의 선조들의 세례명이 기록된 우리나라 조선의 천주교회의 문헌들에서 그 세례명이 金口(금구)이라고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되는 분을 찾아 볼 수가 없을 것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3-4.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다음의 굵게 쓴 파란색 글자들을 클릭하면, 구글 검색 결과들을 접할 수 있는데, 중국과 일본에서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St. John Chrysostom)를, 189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천주교회에서처럼,  단순히 "금구 성인"이라고 부르지 않는 데에 있습니다:

 

"金口" "Chrysostom" <----- 여기를 클릭하여 꼭 확인하라  


이건 상당히 아니다 싶어, 그래서 좀 더 확인을 하였더니, 다음과 같습니다:

 

즉,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영어 "가톨릭대사전"에 수록된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St. John Chrysostom)에 대한 설명을 읽을 수 있는데,

 

(i) 그리스어 "Chrysostomos""golden-mouthed"(황금의 입을 가진)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그리고

 

(ii) 553년에 처음으로 그가 "Chrysostomos", 즉, "golden-mouthed"(황금의 입을 가진) 자 라고 불리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따라서, 그의 세례명은 "요한"(John)인 것이지, 어떠한 경우에도, "금구"가 결코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https://www.newadvent.org/cathen/08452b.htm 

(발췌 시작)

St. John Chrysostom

 

(Chrysostomos, "golden-mouthed" so called on account of his eloquence).

  

Doctor of the Church, born at Antioch, c. 347; died at Commana in Pontus, 14 September, 407.

 

John — whose surname "Chrysostom" occurs for the first time in the "Constitution" of Pope Vigilius (cf. P.L., LX, 217) in the year 553 — is generally considered the most prominent doctor of the Greek Church and the greatest preacher ever heard in a Christian pulpit. His natural gifts, as well as exterior circumstances, helped him to become what he was.  

[...]

(이상, 발췌 끝)

 

따라서, 다음의 결론들을 추가로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의 결론 4) 1892-1895년 사이에 우리말본 "셩경직해"가 출판되면서,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St. John Chrysostom, 347-407년)가 단순히 "금구 성인"으로 번역된 것은, 명백한 번역 오류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 글의 결론 5) 위의 제2-7항에서 들여다본, 우리나라 천주교회에 의하여 1923년에 출판된 "회장직분"의 부록으로서 첨부된, 셩인의 본명 첨례일에서, "Chrysostomus", 금구, 쥬교학자, 1월27일이라고 밝히고 있음이 명백한 번역 오류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심지어, 더 나아가,

 

(이 글의 결론 6)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주니오르 디아스 신부님(1574-1659년)에 의하여 저술되어 1636년 - 1642년 사이에 초간된 한문본 "천주강생성경직해"에서,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St. John Chrysostom)가, 처음부터 끝까지, 단순히 성 基所(기소)로 음역된 것이 명백한 번역 오류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왜냐하면,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St. John Chrysostom)의 경우에, 위에 발췌된 영어 "가톨릭대사전"에 수록된 기술에서 명확하게 밝히고 있듯이, 생전에 불리지도 않았던 이분의 별명(surname)인 "Chrysostomus"의 중국어 음역 용어의 약어인 基所(기소)는, 어떠한 경우에도, 이분의 세례명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상, 이 글의 결론 6 끝)

 

(이 글의 결론 7) 바로 위의 (이 글의 결론 6)에서 지적한 이유 때문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쿠플레 신부님(1624-1692년)에 의하여, 중국 본토에 입국한 이후인 1659년부터 1692년 사이에 마련되어, "수진일과"(즉, "천주성교일과")의 한 개의 부록으로서 첨부된 속권2, "영첨례문"에서,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St. John Chrysostom)가 중국어로, 위의 제2-3항에서 확인하였듯이, "聖 基所"(성 기소)아니라 "聖 金口 若望"(성 금구 약망)으로 번역되었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20년 10월 7일] 

3-5. 다른 한편으로, 다음의 굵게 파란색칠을 한 글자들을 클릭하면, 구글 검색 결과들을 접할 수 있는데,

 

"St. Chrysostom" -John <----- 필히 확인 권고

 

본글에서 이미 실증적으로 고찰하였듯이, 비록 "크리스토모(Chrysostom)""성 요한 크리소스토모(St. John Chrysostom)"의 세례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치 "크리스토모(Chrysostom)"가 이분의 세례명이라고 착각하도록, "성 크리소스토모(St. Chrysostom)"라고 이분을 부르는 경우들이 지금까지도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할 때에, 위의 제2-2항에서 이미 함께 고찰하였듯이,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주니오르 디아스 신부님(1574-1659년)에 의하여 저술되어 1636년 - 1642년 사이에 초간된 한문본 "천주강생성경직해"에서,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St. John Chrysostom)은, 처음부터 끝까지, 성 基所(기소)로 음역되었음을 감안할 때에, 유럽 지역 및 동방 정교회 지역에서, 아무리 늦더라도, 이미 17세기 초반 이전의 시기에 이분을 이렇게 부르기 시작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설사 관습적으로 사정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위의 제2-7항에서처럼, 우리나라 지역 교회의 공식 문헌/자료인 성인들의 첨례표/축일표에서, 이분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 통용되기 시작한, 따라서, 이분의 부모님들도 틀림없이 몰랐던, 이분의 별명인 것이 분명한"크리소스토모(Chrysostomus)"를 이분의 세례명(Christian name)이라고 표기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이라고 아니 지적할 수 없습니다.

[이상, 2020년 10월 7일자 내용 추가 끝]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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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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