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게시판

[상아탑]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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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호 [jhp94] 쪽지 캡슐

1999-10-15 ㅣ No.1499

  단풍은 메말라 바스러지는 껍데기 뿐, 속살은 겨우살이의 인고를 위해 줄기에 녹아든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단풍의 화려함에 취하여 애처러움 하나 없이 감동한다. 장관이라며 탄성을

올린다. 凋落의 슬픔조차 장식으로 보고, 생명을 위해 희생하는 그들에게 밟히는 소리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

 

  자연은 그저 自然일 뿐, 인간의 기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주신 대로, 받은 대로 살다가 희

생한다. 주님께서는 자연을 통해 당신의 뜻을 보이시고자 하셨나 보다. 그렇게 살라고, 無念

과 無想의 純全함을 지니고 살라고.

 

  아이들과 낙엽을 쓸어 모아 불을 피우며, 그 생채기가 내음이 되어 번져감을 아련히 바라

본다. 떨어지고 버려지는 것들을 사랑하고픈 계절의 感傷인가. 불혹을 앞두고 다가서는 어설

픈 삶의 悔恨인가.

 

  고향집 앞뜰에 핀 단풍들이 자꾸만 자꾸만 눈에 밟히고, 그 속에 자식 전화 한 통에도 감

사하는 어머니, 아버지가 아린 영상으로 떠오른다. 잠들어 있는 아내와 자식들의 얼굴이 내

마음에 더 또렷함을 어찌하지 못하여 오늘도 단풍을 태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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