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기동성당 게시판

성체성혈 대축일

인쇄

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1999-06-04 ㅣ No.704

聖體聖血 대축일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서울 시민의 식수원인 한강을 모르는 분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한강에 대한 추억이 한가지 있습니다. 어릴 적에(1968년도) 겁도 없이 버스를 타고 내린 곳이 지금의 노량진 이였습니다. 그 노량진에서 검푸른 물이 흘러가는 것을 보았는데, 저는 그것이 말로만 듣던 바다인 줄 알았습니다.

 

 물론 나중에 그 검푸른 물은 바다가 아니라 "한강"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때의 느낌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집을 잃어버린 저는 파출소에서 하루 신세를 졌고, 나중에 아버님께서 찾으러 오셨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집을 떠났으니, 집과는 인연이 없는가 봅니다. 그러니 이렇게 집을 떠나 평생을 돌아다니는 사제가 된 것은 아닌가 생각도 해봅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한강 다리를 건너고, 또 많은 분들이 저 한강의 신세를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언제가 저무는 태양이 한강에 비추이는 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강물이 빨갛게 물들고, 물든 그 강물위로 철새가 날아가는 모습을 본적이 있습니다. 석양과 구름 그리고 날아가는 철새와 말없이 흘러가는 강물은 참으로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오늘도 말없이 흘러가는 저 한강은 넉넉한 어머니의 품처럼 우리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언젠가 텔레비젼에서 "한강"의 시발점은 어디인가! 라는 프로를 본적이 있습니다. 세계의 어느 강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우리의 아름다운 한강의 시발점은 태백산의 아주 작은 샘물 이였습니다. 아주 작지만 옹골찬 그 샘물에서 우리들 서울 시민의 젖줄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오늘은 성체 성혈 대축일입니다.

저 커다랗고, 웅장한 한강의 시발점은 태백산의 작은 샘물이었듯이, 그 샘물이 있기에 우리의 한강이 존재할 수 있었듯이 "성체 성사"의 신비는 우리 가톨릭 교회의 시발점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의 주님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는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샘물처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생명의 양식이 되어 주십니다.

 

 지난주에 기념했던 삼위일체 대축일이 하느님의 존재 방식에 관한 신학적인 문제에 대한 성찰이라면, 성체성혈 대축일은 가톨릭 교회의 존재 방식과 근거, 이유, 그리고 개인의 구원에 관한 신학적 성찰이라고 하겠습니다.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1347-1380)는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대화' 서문에서 "영성체 때 영혼이 하느님과 친밀하게 일치되고 그분의 진리를 깊이 파악했기 때문에 물고기가 바닷물 속에 있고 바닷물이 물고기 속에 있는 것처럼 내 영혼은 하느님 안에 있고 하느님은 내 영혼 안에 계시다."며 성체성사에서 오는 은총을 찬미했습니다.

 

 성체, 성혈의 사전적 의미는 빵과 포도주라는 외적인 형상 속에 실재로, 본질적으로 현존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입니다. 이 성체는 세상 끝 날까지 인간과 함께 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에서 비롯된 실재적인 현존입니다. 그리고 미사성제를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이 계속됨으로써 모든 인류는 구원된다고 하겠습니다.

 

 또 이 성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과 직접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의 몸이 현존하는 성체는  예수의 수난과 부활을 체험하게 하고 성부께로 이르게 합니다. 성체는 우리를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성부께도 돌아가게 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성체께 대한 신심은 가톨릭 신앙인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성체의 의미가 더없이 큼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신자들의 성체 신심은 미약한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미사에 참례는 하면서도 영성체는 하지 못하는 교우분들이 계십니다.

주님을 모시는 거룩한 미사에 늦게 오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죄 중에 있으면서도 주님의 성체를 모시는 분도 계십니다.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이 2000년이 지난 지금 이 순간에도 실재적으로 매일 미사안에서 재현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우리는 성찬례에 보다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또한 성체성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과 피를 직접 내주신 그 희생적인 사랑의 모범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점에서 성체성사는 그리스도의 끊임없는 인간 사랑을 드러낸다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성체성사를 통해서 이러한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언제고 읽었던 시를 한편 들려드리면서 강론을 마칠까 합니다.

"나는 꽃이어요.

잎은 나비에게 주고 꿀은 솔방 벌에게 주고

향기는 바람에 날려 보냈어요.

그래도, 난

잃은 것 하나도 없어요.

가을이 오면, 더 많은 열매로 태어날 테니까요."

 

 꽃잎도 꿀도, 향기도 다 주어도, 하나도 잃어버린 것이 없이 오히려 더 많은 열매를 맺는 꽃의 신비에 대한 노래입니다. 이 꽃의 신비는 우리들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의 신비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사셨고 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가르쳐 주신 생활 법칙의 요약이라고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33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