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기동성당 게시판

너어디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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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형 [peter208] 쪽지 캡슐

1999-07-25 ㅣ No.824

성서 연수를 다녀오신분은 제목의 글이 생소하지 않을 듯 싶다.

자기 존재의 현실과의 접점을 파악하는 일이며

예수님이 그랬듯이 2000년전 이전부터 우리에게 그 사명으로

일깨워주기위한 일종의 '화두' 인 셈이다.

우리는 가끔 현재 살고 있는 "현실"에서 자신의 신원을 잃어

버리는 경우가 가끔있다.

TV를 봐도 그렇고 지나다니는 사람을 보더라도 나와는 아무런

관계속에 있질않고 그저 "남"인것이 너무나 자명한 그런 경우

말고도 나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사이에도

그러한 느낌이 강하게 들곤할 때가 있다.

"소속감의 부재"

이것이 바로 문제이며 해결의 시발점이 되곤 한다.

그리스도를 그냥 멀찌감치 모셔두고 땅에 떨어진 바늘을 찾듯이

바로 땅만 뚫어지게 보고 있다.

지평선의 노을처럼 저멀리의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보고자 한다면 바로 눈앞에 펼쳐진 그리스도와의

'대면'을 접어둔채 말이다.

 

                   - 이야기 하나 -

북부 백러시아의 한 랍비가 페테르부르그에서 부당하게 투옥된

다. 언제 어디서나 의인들은 수난을 겪게 마련이듯이.

그의 근엄하고 평온한 얼굴을 보고 간수장도 호감을 갖는다.

어느 날 간수장이 랍비에게 묻는다.

"전능하신 하느님이 아담에게 '너 어디 있느냐?'고 하셨다는데

이말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하느님은 사람 하나하나에게, 너는 네 세상 어디에 있느냐?"

네게 주어진 몇몇 해가 지나고 몇몇 날이 지났는데 그래, 너는

네 세상 어디쯤까지 와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그러니까 하느님이

하시는 말씀은,

너는 이제 마흔여섯 살을 살았는데 그래 어디쯤

와 있느냐 하는 식이지요"

 

간수장은 자기 나이를 듣자 정신이 번쩍 들어 얼떨결에 랍비의

어깨에 손을 엊고 '암 그럼요' 하고 외쳤으나 마음은 떨렸다.

 

간수장이 물은 것은 아담의 죄에 대해서였겠지만, 랍비의 대답은

네가 바로 아담이다, 너 어디 있느냐고 하느님이 물으시는 사람은

바로 너 자신이란 말이란 뜻.

 

우리도 한번 물어보자. 나는 내 세상 어디에 와 있을까? 내게 주어진

몇몇 해가 지나고 몇몇 날이 지났는데, 나는 내 세상 어디쯤까지 와

있을까? 우리는 우리 세상 어디쯤에 와 있을까?

 

"사람은 하나하나 세상에서 새로운 존재이고, 세상에서 자기의 특성을

실현하도록 소명을 받고 있다. 참으로 이같이 행하지 않는 것이 바로

메시아의 왕림이 늦어지고 있는 까닭이다."

 

즉 아집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자기로부터 시작하라고 했지 자기에게서

그치라고 하지는 않았다. 자기를 출발점으로 삼되 목표삼지는 말라는

것. 자기를 파악하되  자기에게 사로잡혀서는 안된다는 가르침이다.

 

"네가 잘못한 것에 대해서 계속 근심하지 말고, 지금 자책하느라 낭비하고

있는 정신력을 오히려 본연의 소명대로 세상과의 적극적인 관계에 쏟으라.

네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곳은 자신이 아니라 세상이다."

 

좋은 말씀을 듣고 나면 피가 맑아지고 숨결이 한결 트이는 것 같다.

우리들의 일상은 무익한 사물과 소리에 얼마나 많이 눈멀고 귀먹고 있는가.

밤이 깊었다. 두견새가 피맺힌 소리로 울고 있다. 눈멀고 귀먹은 채 어찌

편히 잠들까보냐고 외치는 소리인가.

 

'하느님은 인간이 받아들이느 곳이면 어디서나 머무르십니다."

                        

               - 법정스님글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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