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계동성당 자유게시판 : 붓가는대로 마우스 가는대로 적어보세요

할머니! 기도 밖에 없어요.

인쇄

임철균 [zoster] 쪽지 캡슐

2008-02-25 ㅣ No.6376

오늘 진료실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심부전증으로 오래전 부터 저의 진료실을 방문하시는 키도 자그마하시고
말씀도 조분조분 하신 80대 할머니 한분이 오셨습니다.
늘 인상이 좋으시고 조용한 분이셨습니다.
오늘은 친구할머니 한분이 같이 모시고 진료실을 
들어오시는데 한눈에도 안색이 너무 안돼 보이셨습니다.
"어디가 안좋으세요?"
"1달전 부터 도무지 식사를 못해요. 입맛이 너무 없어서요."
보통 심부전증이 심해져도 식사를 못하시기 때문에
이리저리 검진을 해 보았지만 다른 이상소견은 발견 되지 않았습니다.
"왜 이런거예요? 나 밥 좀 먹게 해줘요."
신체적인 증상이라도 상당히 많은 경우가 정신적인 원인에서 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스트레스나 우울증 등을 꼭 체크해 봐야 합니다.
그러나 자기의 허물을 남한테 밝히기를 꺼려하는 환자분들은
쉽사리 마음의 문을 열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는 마음의 문을 열어드리기 위해 여러가지 방법을 사용합니다.
그리하여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한집에 사는 딸과 사위로 부터 마음의 상처를
받으신 것이 문제였습니다. 할머니가 얹혀 사는 것이 아니고 딸네 식구가
할머니집에 와서 얹혀 산지 8년이 되었는데, 딸의 성격이 급하고 말을
가리지 않고 막 해대는 성격이라서 그동안 말로 받은 상처가 이만저만이
아니셨던가 봅니다. 최근 그 현상이 더 심해져서 급기야 할머니께서 식사를
거의 못하실 정도로 힘들어하셨던 것입니다.
"할머니. 힘드시겠어요."
"아이고 그동안 신앙의 힘이 아니었으면 견디지 못했을 거예요."
아. 할머니도 신앙을 가지고 계시는구나.
"할머니. 따님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해 보세요."
"당장 매일 눈앞에서 미워죽겠는데 어떻게 기도를 해?"
"그래도 하루에 하나씩이라도 따님 칭찬을 해 보세요. 그리고 하느님께
불쌍한 따님을 위해 기도하세요. 그 길 밖엔 없어요."
진료가 어느덧 신앙에 대한 이야기로 바뀌어 갑니다.
"그동안 아무한테도 이런 얘기 해보신적이 없으시죠? 다른 사람은 다 몰라줘도
하늘에 계신 하느님께서는 할머니의 고통을 다 기억하시고 훤히 알고계세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할머니를 위해서 기도해 드릴께요."
한참을 얘기하고 나니 할머니 안색에 화색이 좀 돌아옵니다.
"그리고 당분간 드실 약을 처방해 드릴께요."
처방전을 끊어드리면서 처방전에 이렇게 써 드리고 싶습니다. 
 
"할머니!  오직 기도 밖에 없어요." 
 


64 1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