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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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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엄지 [abcd1] 쪽지 캡슐

2000-01-05 ㅣ No.300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내가사랑하는 당신은...

             

                                                 -지은이 도종환-

             

            저녁숲에 내리는 황금빛 노을이기보다는

            구름 사이에 뜬 별이었음 좋겠어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버드나무 실가지 가볍게 딛으며 오르는 만월이기보다는

            동짓달 스무 날 빈 논길을 쓰다듬는 달빛이었음 싶어.

             

            꽃분에 가꾼 국화의 우아함보다는

            해가 뜨고 지는 일에 고개를 끄덕일 줄 아는 구절초이었음 해.

            내 사랑하는 당신이 꽃이라면

            꽃 피우는 일이 곧 살아가는 일인

            콩꽃 팥꽃이었음 좋겠어.

             

            이 세상의 어느 한 계절 화사히 피었다

            시들면 자취 없는 사랑 말고

            저무는 들녘일수록 더욱 은은히 아름다운

            억새풀처럼 늙어갈 순 없을까

            바람 많은 가을 강가에 서로 어깨를 기댄 채

             

            우리 서로 물이 되어 흐른다면

            바위를 깎거나 갯벌 허무는 밀물 썰물보다는

            물오리떼 쉬어가는 저녁 강물어었음 좋겠어

            이렇게 손을 잡고 한 세상을 흐르는 동안

            갈대가 하늘로 크고 먼바다에 이르는 강물이었음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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