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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 작위적/자의적 번역 용어 2/3 [용어번역오류_종교개혁] 1049_그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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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개혁 - 2/3 [122.128.44.*]

2011-05-24 ㅣ No.1051

 
+ 찬미 예수님
 
 
 
"종교 개혁"이라는 번역 용어가,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가톨릭 보편 교회의 문헌에, 이 글자 그대로의 의미를 가진, 대응하는 용어가 없는, 작위적/자의적 번역 용어임을, 모두가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검색 결과들의 제시와 함께, 구체적으로 지적하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위의 글에서 말씀드린 내용을 대단히 간략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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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시작)

여기를 클릭하면 알 수 있는,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영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색인이,
 
"the Reformation(그 개혁, 제1400항)" = "the Prosestant Reformation(프로테스탄트 개혁, 제406항)"
 
임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듯이, 그리고 여기를 클릭하면 알 수 있듯이, 실제로 검색을 하여 찾아 보아도,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전체에 걸쳐 제406항제1400항 이렇게 두 항에서만 "16세기의 개혁"(즉 프로테스탄트 개혁")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406항제1400항에서는 위의 두 용어들을 우리말 번역 용어들로 번역할 때에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습니다:
 
우리말 CCC 제406항에서, "the Prosestant Reformation""프로테스탄트의 종교 개혁"으로 번역을 하였고,
 
우리말 CCC 1400항에서, "the Reformation""종교 개혁"으로 번역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용어 번역에 있어 문제가 되는 것은,
 
도대체 어떠한 이유로, 라틴어 정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중의 해당 본문 중에 없는 "종교" 라는 단어를 추가하여 번역한 것인가?
 
하는 것이며, 이러한 의역 번역은, 교리적으로 문제가 많은, 매우 작위적/자의적인 용어 번역 오류이므로 바로잡아져야 한다는 것이 전번 글의 요지였습니다.
 
참고: 다음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1400항입니다. 영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400항에서 "the Reformation" 으로 번역되는 표현에 해당하는, 파란 색으로 굵게 표시한 표현들을 비교/검토해 보십시오. 어디 쯤에 "religious" 등의 단어가 추가로 있는지요?
 
 
(라틴어 정본)
1400 Communitates ecclesiales e Reformatione ortae, ab Ecclesia catholica seiunctae, « praesertim propter sacramentum Ordinis defectum, genuinam atque integram substantiam mysterii eucharistici non » servant. Hac de causa, pro Ecclesia catholica, intercommunio eucharistica cum his communitatibus possibilis non est. Hae tamen communitates ecclesiales « dum in sancta Cena mortis et resurrectionis Domini memoriam faciunt, vitam in Christi communione significari profitentur atque gloriosum Eius Adventum exspectant ».

(아탈리아어본)
1400 Le comunità ecclesiali sorte dalla Riforma, separate dalla Chiesa cattolica, « specialmente per la mancanza del sacramento dell’Ordine, non hanno conservato la genuina ed integra sostanza del mistero eucaristico ». Per questo motivo, non è possibile, per la Chiesa cattolica, l’intercomunione eucaristica con queste comunità. Tuttavia, queste comunità ecclesiali, « mentre nella santa Cena fanno memoria della morte e della risurrezione del Signore, professano che nella Comunione di Cristo è significata la vita e aspettano la sua venuta gloriosa ».
 
(프랑스어본)
1400 Les communautés ecclésiales issues de la Réforme, séparées de l’Église catholique, " en raison surtout de l’absence du sacrement de l’Ordre, n’ont pas conservé la substance propre et intégrale du mystère eucharistique " (UR 22). C’est pour cette raison que, pour l’Église catholique, l’intercommunion eucharistique avec ces communautés n’est pas possible. Cependant, ces communautés ecclésiales, " lorsqu’elles font mémoire dans la sainte Cène de la mort et de la résurrection du Seigneur, professent que la vie consiste dans la communion au Christ et attendent son retour glorieux " (UR 22).
 
(포르투칼어본)
1400. As comunidades eclesiais saídas da Reforma, separadas da Igreja Católica, «não [conservaram] a genuína e íntegra substância do mistério eucarístico, sobretudo por causa da falta do sacramento da Ordem» (242). É por esse motivo que a intercomunhão eucarística com estas comunidades não é possível para a Igreja Católica. No entanto, estas comunidades eclesiais, «quando na santa ceia fazem memória da morte e ressurreição do Senhor, professam que a vida é significada na comunhão com Cristo e esperam a sua vinda gloriosa» (243).
 
(스페인어본)
1400 Las comunidades eclesiales nacidas de la Reforma, separadas de la Iglesia católica, "sobre todo por defecto del sacramento del orden, no han conservado la sustancia genuina e íntegra del misterio eucarístico" (UR 22). Por esto, para la Iglesia católica, la intercomunión eucarística con estas comunidades no es posible. Sin embargo, estas comunidades eclesiales "al conmemorar en la Santa Cena la muerte y la resurrección del Señor, profesan que en la comunión de Cristo se significa la vida, y esperan su venida gloriosa" (UR 22).
 
(영어본)
1400 Ecclesial communities derived from the Reformation and separated from the Catholic Church, "have not preserved the proper reality of the Eucharistic mystery in its fullness, especially because of the absence of the sacrament of Holy Orders."236 It is for this reason that Eucharistic intercommunion with these communities is not possible for the Catholic Church. However these ecclesial communities, "when they commemorate the Lord's death and resurrection in the Holy Supper . . . profess that it signifies life in communion with Christ and await his coming in glory."237
 
(이상 요약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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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록 지금까지도 국내의 일부 가톨릭계에서 이 요상한 번역 용어 "종교 개혁"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기는 하나, 그러나 이것은 용어 번역 과정에서 작위적/임의적으로 추가된 "종교"라는 단어 때문에, 가톨릭 보편 교회의 문헌들에서 전혀 사용하고 있지 않은 굉장히 잘못 번역된 번역 용어를, 우리말로 번역된 가톨릭 교회 교리서 본문 중에서 사용하는 것은 허용된 권한 밖의 잘못된 행위이므로, 가톨릭 신자라면, 교황청 홈페지 제공의 핵심 문헌들에서처럼, 이 용어의 사용을 모두들 회피하고 또 자제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은, 국내의 가톨릭 교우님들이 모여 투표하여 결정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닙니다.
 
   
     위의 글에 이어지는 글로서 이번의 글에서는, 도대체 어느 지역/나라에서 이 요상한 단어를 번역 용어로서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는지에 대하여 인터넷으로 조사한 결과를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인터넷 검색 결과들에 의하면, 이 용어가 우리나라 가톨릭계에서 처음으로 번역 용어로서 사용된 것이 아니고, "일본 가톨릭계" 보다는 "중국 가톨릭계"에서 처음으로 번역 용어로서 이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잠정적인 결론을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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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이 글의 주제를 향하여 나가가면서, 질문 한 개를 드리고자 합니다.
 
질문 1; "종교 개혁"이라는 번역 용어에 대한 도서출판 작은예수 및 최형락 신부님 제공의 다음의 굿뉴스 서버 가톨릭 용어사전에 실린 설명은 무엇일까요?
 
질문 1에 대한 답변: "종교 개혁"이라는 단어는 있으나, 이 요상한 번역 용어에 대한 설명은 아예 주어져 있지 않습니다.
 
 
이 용어 사전에는  "종교 개혁"이라는 용어에 대한 설명이 아예 주어져 있지 않음을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질문 2: 그러면 왜 이 "종교 개혁"이라는 번역 용어에 대한 설명이 아예 주어져 있지 않을까요?
 
질문 2에 대한 답변: 이에 대한 답변은
 
 
"루터와 소위 종교 개혁"이라는 제목 하에 주어진 다음의 설명 안에 주어져 있다는 생각입니다. 전문을 함께 읽어보는 것이 유익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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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와 소위 종교 개혁 ◆
한자 ~宗敎改革
[참조단어] 면죄부의 진상  대사 
 

   1. 마르틴 루터 :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1483년 독일의 빈농에서 태어나, 20세에 철학,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설에 의하면 1505년 친구죽음을 회상하던 중, 옆의 친구가 벼락으로 급사하자, 성녀 안나에게 수도 생활을 맹세하고 아우구스티노 수도원에 들어가 2년 만에 수사 신부가 되었다. 그 후 그는 비텐베르크의 대학 교수가 되었고, 1512년에는 신학 박사 학위를 획득하였다.

   2. 루터와의 논쟁 : 성 베드로 대성전 건립을 위해 대사령(大赦令 : 성 베드로 대성전 전대사)이 공포되자, 독일은 알베르토 대주교가 책임을 맡게 되었고, 당시 명성이 높던 테첼(Tetzel) 신부가 선전 위원으로 임명되었다. 이때 루터는 그를 은근히 시기하였다.

   마침내 1517년 신학자들이 논문을 발표하는 관례에 따라, 테첼 신부가 비텐베르크에 오자, 루터는 그를 반박하기 위한 95개조 조항의 논문을 성당 문에 부착하였다. 이때 루터는 신학자 에크와의 논쟁에서, 교황 수위권공의회 무류성을 거부하였다.

   그 후 논박이 더욱 심해지자, 교황 레오 10세는 루터의 오견(誤見)을 정정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루터가 계속 고집하자, 1520년 교황은 엑수르제(Exsurge)라는 교서를 통해 반성을 촉구하였다. 그래도 루터는 반성은 고사하고 공개 석상에서 교서를 불태우며 교황에 도전하였다.

   결국 이듬해 루터는 파문(破門)을 당하고 말았다. 그러자 루터는 공공연히 교황을 배척하면서 성체, 세례 만 제외하고 다른 5개 성사는 폐기하였다. 그리고 다음의 3대 원리를 내세웠다. “사람은 원죄로 완전히 부패되어 자유가 없다. 그리고 구원은 예수를 믿음으로만 얻는 것이지, 인간선행, 고행 등으로 얻는 것이 아니다. 또한 신앙의 규범은 성서뿐이다”가 그것이었다.

   3. 교회의 분열 : 그 후 루터는 1525년 26세의 카타리나 폰 보라 수녀와 결혼하였고, 1546년 세상을 떠났다. 물론 이때 루터를 따르던 일부 타락한 성직자도 있었다. 그러나 이 논쟁들은 소위 종교 개혁과는 무관하다. 그가 하느님께서 세우신 교회를 개혁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가 된 것은 정통 교리를 자신의 임의대로 고치려는 데에 있었다.

   결국 그의 반박은 종교 개혁이라기보다는 종교의 분열을 조장한 셈이다. 그 후 성서의 자유 해석 결과만 보더라도, 한국에서만도 수백 개의 종파가 난립하고 있다. 이는 “사람은 율법을 지키는 것과는 관계없이,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다고 우리는 확신합니다”(로마 3,28)라는 성서 구절을 인용하여 ‘믿음으로만 구원’을 주장한 데에도 그 원인이 있다.

   그러나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과 마찬가지로 행동이 없는
믿음도 죽은 믿음입니다”(야고 2,26)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인간원죄로 부패해서 어떤 선행도 할 수 없다는 주장은 엉뚱하게도 인간선행을 무시한 결과만 가져왔음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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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가톨릭 용어사전의 설명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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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이 논쟁들은 "소위 종교 개혁"과는 무관하다. 그가 하느님께서 세우신 교회를 개혁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가 된 것은 정통 교리를 자신의 임의대로 고치려는 데에 있었다.
 
   결국 그의 반박은 "종교 개혁"이라기보다는 종교의 분열을 조장한 셈이다. 그 후 성서의 자유 해석 결과만 보더라도, 한국에서만도 수백 개의 종파가 난립하고 있다. 이는 “사람은 율법을 지키는 것과는 관계없이,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다고 우리는 확신합니다”(로마 3,28)라는 성서 구절을 인용하여 ‘믿음으로만 구원’을 주장한 데에도 그 원인이 있다.
 
   그러나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과 마찬가지로 행동이 없는 믿음도 죽은 믿음입니다”(야고 2,26)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인간은 원죄로 부패해서 어떤 선행도 할 수 없다는 주장은 엉뚱하게도 인간의 선행을 무시한 결과만 가져왔음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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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용어사전의 설명에서는 "소위 종교 개혁"이라고 불렀지, "종교 개혁"이라고 부르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를 이어지는 그 다음 문장에서 바로 밝히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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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논쟁들은 "소위 종교 개혁"과는 무관하다.
 
그가 하느님께서 세우신 교회를 개혁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가 된 것은 정통 교리를 자신의 임의대로 고치려는 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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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무슨 말씀인가 하면,
 
"교회의 일부 구성원들의 잘못"을,
 
마르틴 루터와 이 자에 동조하는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말씀으로 세우셨기에 항상 그리고 언제까지나 거룩한 교회의 잘못"으로
 
왜곡/호도하였고, 자신을 파문한 교도권에 대한 항의에 그친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가톨릭 교회의 교리에 하자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가톨릭 교회의 정통 교리를 루터 자신이 임의대로 고치려고 하였음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다음은 교회가 거룩한 이유에 대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편(CCCC) 제165항의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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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가톨릭 교회의 말씀 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출판사: 가톨릭출판사, 엮은이: 소순태) 모든 성인 대축일 3분 복음/교리 묵상
 
CCCC 165. 어떠한 면에서 교회는 거룩합니까?
CCC 823-829, 867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께서 교회의 창시자(author)이신 한 교회는 거룩합니다. 교회가 그 자신을 거룩하게 하고(sanctify) 또 교회를 성화의 원천(source of sanctification)으로 만들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스스로를 내어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사랑(charity)으로써 교회에 생명을 주십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는 구원을 위한 수단(means)들이 충만함을 발견합니다. 거룩함(holiness)은 교회의 지체(members)들 각자에 대한 하느님의 부르심(vocation)이며 그리고 교회의 모든 활동들의 목적입니다. 교회는 교회의 지체들 가운데에 동정 마리아와 수많은 성인들을 포함시키는데, 이들은 교회의 귀감(models)들이고 또 전구자(intercessors)들입니다. 교회의 거룩함은 이곳 지상에서 자신들을, 여전히 회심(conversion)과 정화(purification)를 필요로 하는, 죄인들이라고 인정하는 교회의 자녀(her children)(*)들을 위한 성화의 근원(fountain of sanctification)입니다(엮은이 번역).
 
(*): ‘her children’을 ‘교회의 자녀들’이 아닌 ‘하느님의 자녀들’로 번역한 것은 번역 오류로 보인다(CCC 827항을 참고하라.)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allsaint_c823.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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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종교 개혁"이라는 번역 용어가, 이미 전번 글에서 말씀드렸지만, 신학적으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잘못된 작위적/자의적 번역 용어임을 지적하고 있으며,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위의 가톨릭 용어사전에서 "종교 개혁"이라는 단어에  대한 아무런 설명도 주어져 있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즉, 이 번역 용어가 가톨릭 교회의 용어로서 매우 부적절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중간 결론1)
따라서, 기존의 "종교 개혁"이라는 번역 용어에 대하여 비판적인 설명을 하고 있는 이 용어사전의 설명으로부터, 우리는 "종교 개혁"이라는 요상한 용어가 국내의 가톨릭 사제들에 의하여 번역 용어로 처음으로 사용되지 않았음을 추론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추론은 위의 용어사전 설명의 제목에서 또한 정확하게 "종교 개혁"이라고 한자단어를 적시하지 않고, "~宗敎改革" 라고  ~ 를 사용하면서 표기한 것에 근거한 것이기도 합니다.
 
질문 3: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영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406항과 제1400항에서 각각 "the Protestant Reformation" 과 "the Reformation"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들에 대한 최근의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중국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대응하는 중국어 번역 용어들은 무엇일까요?
 
질문 3에 대한 답변:
 
3-1. 영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406항에 있는 "the Prosestant Reformation(프로테스탄트 개혁)" 를,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406항에서 "프로테스탄트의 종교개혁"으로 번역한 것과는 달리, 중국어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는 "新敎徒的改革(신교도적개혁)"으로, 즉 "the Protestant Reformation"을 직역 번역한 "프로테스탄트의 개혁"과 동일하게 번역하였습니다. 
 
여기를 클릭하면, 이 사실을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중간 결론2)
이것으로부터 우리는,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406항에서 "the Protestant Reformation""프로테스탄트의 종교개혁"이라고 번역한 것이 잘못된 번역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였습니다.
 
3-2. 그러나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400항에 있는 "the Reformation(그 개혁)" 을,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400항에서처럼, 중국어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도 "宗敎改革(종교개혁)"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여기를 클릭하면, 이 사실을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언뜻 보기에, 이 중국어 번역만을 참고하면, "the Reformation(그 개혁)""종교 개혁"으로 번역한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같습니다만,
 
그러나, 위에서 살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편 제165항의 가르침에 비추어 보더라도, 이렇게 번역하는 것이 교리적으로 문제가 있음을 저도 지적하였고 또 굿뉴스 서버 제공의 가톨릭 용어사전도 지적하고 있듯이, 그러한 번역은 번역 오류입니다.
 
그리고 이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선적으로, "the Reformation"에서 정관사 "the"를 적절한 중국어 단어로 번역할 수 없는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나, 그러나 시간적으로 이보다 더 우선적으로,
 
(1) 이렇게 번역한 번역자들이 "宗敎改革"이라는 이상한 번역 용어에 대하여, "the Reformation" 단어를 접하기 이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는 생각입니다.
 
다음의 항들에서 말씀을 드리지만, 그리고
 
(2) 또한 이것은, 우리나라 가톨릭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중국어권 가톨릭계에서도 이 요상한 번역 용어인 "종교 개혁"의 부분별한 사용으로 헷갈리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다음의 이어지는 항들에서, 중국 가톨릭계의 이러한 혼란에 대하여 설명을 더 자세히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3-3. 대만 천주교회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the Protestant Reformation(프로테스탄트 개혁)"에 대한 번역 용어가 다음과 같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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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ormation, the Protestant:宗?改革;改?運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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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the Protestant Reformation" = "宗敎改革(종교개혁)"; "改?運動(개교운동)"
 
여기를 클릭하면, 이 사실을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참고: 대만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제공의 이 "天主?英漢袖珍辭典(2001년 초판 발행)은, 2010년경에 처음으로 교황청 홈페이지에 올려진 중국어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 비하여, 약 9년 정도 오래된 용어 사전입니다.
 
이상 살펴 본 바에 따라 우리는, 특히 한자를 사용하는 한자문화권 안에서, 구라파 지역과 영어권과는 달리,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400항의 "the Reformation""종교 개혁"으로 잘못 번역해 온 것이 파악하였습니다.
 
3-4. 위의 제3-1,2,3항으로부터 우리는 중국인 가톨릭 사제들도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406항의 번역에서, "the Protestant Reformation"을 매우 최근에는 "新敎徒的改革(신교도적개혁)"(즉, "프로테스탄트 개혁")으로 올바르게 직역 번역을 하였으나, 그러나 적어도 그 이전까지는 중국 가톨릭계에서 "the Protestant Reformation"을 "宗敎改革(종교개혁)"으로 잘못 번역을 하였을 것이라는 추론(reasoning)을 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를 뒷받침 하는 근거로서,
 
중국어권에 있어서의 "宗敎改革" "天主敎" 두 개의 key words 들에 대한 약 50개의 구글 검색 결과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를 클릭하면,
 
중국어권에 있어서의 "宗敎改革" 한 개의 key word 에 대한 약 2880개의 구글 검색 결과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확인 결과에 의하면,
 
중국 가톨릭계에서는, 우리나라 가톨릭계보다, "宗敎改革" 이라는 정체 불명의 작위적/자위적 번역 용어를 훨씬 적게 사용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들 두 개의 대단히 흥미로운 인터넷 검색 결과들에 의하면,
 
비록 중국의 가톨릭계에서는 "宗敎改革" 이라는 단어를 그리 많이 사용하지 않고 있으나(약 50개 사이트가 검색됨), 그러나 일반적으로 (개신교측을 포함) 일본에서는 "宗敎改革" 이라는 단어를 상대적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약 2,880개의 사이트가 검색됨).
 
다른 한 편으로,
 
일본어권에 있어서의 "宗敎改革" "天主敎" 두 개의 key word들에 대한 구글 검색 결과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확인 결과에 의하면,
 
일본 가톨릭계에서는, 우리나라 가톨릭계보다, "宗敎改革" 이라는 정체 불명의 작위적/자위적 번역 용어를 훨씬 적게 사용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일본어권에 있어서의 "宗敎改革" 한 개의 key word에 대한 구글 검색 결과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들 두 개의 대단히 흥미로운 인터넷 검색 결과들에 의하면,
 
비록 일본의 가톨릭계에서는 "宗敎改革" 이라는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으나(약 1개의 사이트가 검색됨), 그러나 일반적으로 (개신교측을 포함) 일본에서는 "宗敎改革" 이라는 단어를 상대적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약 200개의 사이트가 검색됨).
 
 
이러한 검색 결과들로부터 우리는,
 
(중간 결론3)
한자를 사용하는 동양 문화권에 속하는 우리나라 주변의 나라들에 있어, "宗敎改革(종교개혁)"이라는 요상한 번역 용어가, 우리나라보다 먼저 천주교가 전파되었던 중국 가톨릭계에서 처음으로 번역 용어로서 사용되었을 것임 추론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4.
 
따라서 위의 중간 결론1중간 결론3 으로부터 다음의 잠정 결론을 내립니다:
 
(잠정 결론)
가톨릭 보편 교횡의 문헌들 중에 대응하는 용어가 없는, 정체불명의 작위적/자의적 번역 용어인 "宗敎改革(종교개혁)"이라는 단어는, 인터넷 검색 결과들에 의하면, 우리나라 가톨릭계에서 처음으로 번역 용어로서 번역하여 사용한 것이 아니고, "일본 가톹릭계" 보다는 "중국 가톨릭계"에서 처음으로 번역 용어로서 이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잠정적인 결론을 내립니다. 
 
 
참고: 앞으로 더 확인 하고 싶은 것은 다음의 것들입니다: 즉 잘못 번역된 번역 용어인 "宗敎改革(종교개혁)" 이라는 용어를 국내의 가톨릭계에서 처음으로 사용하게 된 시기와 관련하여,
 
(1) 약 한 세대 정도 일제에 의한 강점 시기를 벗어나 해방 이후에도 상당한 기간 동안, 구라파 문물을 일찍 받아들인 [예를 들어, 1549년에 예수회 소속 선교사였던 프란체스코 사비에르 신부에 의하여 일본에 천주교가 전파되었으나 1597년 경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그리스도교를 금지하는 바람에 그 이후로 계속 탄압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음], 잘 발달되어 있었던 구라파 지역 및 영어권 서적들에 대한 일본의 번역 문화의 결과, 일본어로 번역되어 일본에서 사용되고 있던 이 잘못된 번역 용어가, 일제에 의한 강점 시기 동안 혹은 그 이후에 우리나라로 수입되어, 우리나라의 가톨릭계 내에서 우리말 번역 용어로서 무분별하게 계속 사용되고 있는 경우인지, 아니면
 
(2) 예수회 소속의 선교사였던 마테오 리치 신부(1552-1610년)에 의하여 천주교가 중궁에 전파된 이후 [마테오 리치에 의한 천주실의 출판 년도: 1603년] 그러나 일제에 의한 강점 시기 이전의 어느 시점에, 중국의 가톨릭계에서 사용되고 있었던 이 잘못된 번역 용어가 우리나라로 수입되어, 우리날 가톨릭계에서 지금까지 무분별하게 계속 사용되고 있는 경우인지를,
 
더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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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 신앙의 토착화란
 
보편 교회를 지역 교회화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지역 교회를 보편 교회화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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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언)
조만간,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가톨릭 보편 교회의 문헌들에, 이 글자 그대로의 의미를 가진, 대응하는 용어가 없는, 교리적으로 수용할 수 없는 그리고 가톨릭 교회 밖에서 작위적/자의적으로 번역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 "종교 개혁"이라는 잘못된 번역 용어가, 우리나라 지역 교회의 언어로 번역된 교회의 핵심 문헌들에서 올바르게 바로 잡아졌으면 참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과 함께 이 두 번째 글을 끝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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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순태 마태오 교수
작업에 소요된 시간: 약 6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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