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초막절 호산나 외 [성경해석][_호산나][_초막절][_과월절][_파스카][_대추야자나무] 1378_호산나 782_ |
---|
2013-05-08 ㅣ No.1378 질문: 안녕하세요. 아래 내용은 요한복음 7장 7절부터 10절 사이입니다. 형제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는 장인데요... 아래 내용에 보면 예수님께서 초막절을 지내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내용 중에 예수님의 형제들이 올라가자 할 때 안 가신다고 하고 나서, 형제들이 올라가고 나서 남몰래 올라가셨다고 하셨는데... 예수님이 거짓말을 하신 것인가요? 그 뒤의 상황 전개 때문에 필요한 말씀이셨다라는 생각도 들고... 아니면 "나의 때가 아직 차지 않았다"고 했는데, 형제들이 떠나고 때가 찬 것인지 아니면 다른 뜻이 있나요? 7 세상이 너희를 미워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세상은 나를 미워한다. 내가 세상을 두고 그 일이 악하다고 증언하기 때문이다. 8 너희나 축제를 지내러 올라가라. 나는 이번 축제에는 올라가지 않겠다. 나의 때가 아직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 9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갈릴래아에 머무르셨다. 초막절에 가르치시다 10 형제들이 축제를 지내러 올라가고 난 뒤에 예수님께서도 올라가셨다. 그러나 드러나지 않게 남몰래 올라가셨다. -------------------- 당부의 말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글들은 어떤 특정인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하여 마련된 글들이 결코 아니기에, 다음의 당부의 말씀을 드립니다: (1) 지금까지 필자의 글들을 읽고서 필자에 대한 "분노(anger)" 혹은 "질투(envy)"를 가지게 된 분들은, 혹시라도 그분들께 "걸림돌(stumbling block)"일 수도 있는, 많이 부족한 죄인의 글들을 더 이상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2) 그리고 위의 제(1)항의 당부의 말씀을 읽고도 굳이 이 화면의 아래로 스스로 이동하여, 많이 부족한 죄인의 아래의 본글을 읽는 분들은, 필자에 대한 "분노(anger)"와 "질투(envy)" 둘 다를 가지지 않을 것임에 동의함을 필자와 다른 분들께 이미 밝힌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3) 그리 길지 않은 인생 여정에 있어, 누구에게나, 결국에, "유유상종[類類相從, 같은 무리끼리 서로 사귐 (출처: 표준국어대사전)]"이 유의미할 것이라는 생각에 드리는 당부의 말씀입니다. 답변: + 찬미 예수님! 1. 들어가면서 우선적으로, 위의 질문에서 인용된 요한 복음서 7,7-10은, 가톨릭 전례력에 있어, 매년 사순 제4주간 금요일 복음 말씀(요한 7,1-2.10.25-30)에 그 일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위의 질문글 중에서 인용한 바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 약 6개월 전에 발생하였다고 합니다. 출처: "가톨릭 교회의 말씀 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가해-I, 나해-I, 다해-I" (출판사: 가톨릭출판사, 엮은이: 소순태), 성령 강림 대축일 전야 복음 말씀(요한 7,37-39)에 대한 입문. (이 글의 결론) 따라서, 아직 "때가 차지 않았기"에(*), 요한 복음서 7,10에서 언급되고 있는 "초막절 행렬"에 참여하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원치 않으셨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 (*) 게시자 주: 여기서 말하는 "때가 차지 않았다" 란, 크로노스(chronos/kronos), 즉, 단순히 흘러가는 시간이 아닌, 카이로스(kairos), 즉, 시간에 있어 하느님의 의지가 충만하게 개입되는 시간이 되지 않았음을 말한다: 출처: 총 6권이 한 질을 이루는, "가톨릭 교회의 말씀 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출판사: 가톨릭출판사, 엮은이: 소순태), 가해-I, 대림 제1주일 제2독서(로마 12,11-14)의 제11절 해설 및 이 해설서 시리즈를 위한 다음의 인터넷 각주들: http://ch.catholic.or.kr/pundang/4/tdnt/kairos.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tdnt/chronos.htm ----- 게시자 주: 지금 말씀드린 바를 일정 수준 이상 깊이있게 이해하려고 하면, 바빌론 유배 이후, 자신들을 현실적으로 구해 줄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던, 요한 복음서 제6장과 제7장 전체의 문맥의 이해에 필요한, 예수님 공생활 당시의 유다인들의 전통에 대하여 먼저 이해하여야 하는데, 다음의 제2항은 이들에 대한 자료들입니다. 2. 2-1. 다음은 위대한 알렐/할렐(the Great Hallel, the Hallel of Egypt) 시편들에 대한 자료들의 모음입니다: 2-1-1. 우선적으로 여기를 클릭하면, 다음과 같은, 영어 가톨릭 대사전에 주어진 "위대한 알렐 시편들"이 노래 불러졌던 유다인들의 축제들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성전 봉헌 축일(Feast of the Dedication) 초막절(Feast of Tabernacles) 과월절/파스카(Passover) 2-1-2. 그리고 여기를 클릭하면 "위대한 알렐 시편들" 즉, "Hallel of Egypt"이 다음의 축일들에 노래로 불렸다는 설명을 읽을 수 있습니다. 신월제(Feasts of the New Moons), 성전 봉헌 축일(Feast of the Dedication), 오순절(Feast of Weeks), 초막절(Feast of Tabernacles), 과월절/파스카(the Pasch). 2-2. 2-2-1. 유다교측의 예제(Example) 한 개: 초막절, 마지막 날 출처: http://www.newadvent.org/cathen/14425a.htm (발췌 시작) After the Exile, the feast was protracted to the twenty-fifth of the month, and two new rites were added to the old ceremonial. Every morning of the celebration a priest went down to the Siloe Fountain, whence he brought in a golden ewer water which was poured on the altar of holocausts amidst the singing of the Hallel (Pss, cxii-cxvii) and the joyful sound of musical instruments. It was possibly the performance of this ceremony (the institution of which may have been suggested by Isaiah 12:3) which afforded to Our Lord the occasion to compare the action of the Holy Ghost in the faithful to a spring of living water (John 7:37-39). The other new feature added to the ritual of the feast was the illumination of the women's court, together with the singing of the Psalms of the Degrees (Pss. cxix-cxxxiii) and the performance of dances or processions in the sacred precincts. On the eighth day a procession went seven times around the alter, the people carrying myrtle-boughs and palms and shouting: "Hosannah!" in memory of the fall of Jericho.
[바빌론] 유배 이후에, 이 축제는 이 달의 제25번째 날로 늦추어졌으며(was protraced), 그리고 오래된 의식 절차(ceremonial)에 두 개의 새로운 의식(rites)들이 추가되었습니다. 이 경축(celebration)의 각 아침에 한 명의 사제가 실로암 연못(Siloe Fountain)으로 내려갔고, 거기로부터 그는 한 개의 금으로 만든 주둥이가 넓은 물병(a golden ewer water) 안에 물을 길어왔는데, 이 물은 알렐[Hallel, 시편 113(112)-118(117)]의 노래부름과 음악 악기들의 기쁜 소리가 한창인 중에 번제물(holocausts)들의 제단에 부어졌습니다. 우리의 주님께서 열심 신자들에 대한 성령의 작용을 한 개의 생수의 샘(a spring of living water, 요한 복음서 7,37-39)에 비교하는 기회를 제공하였던 것은 아마도 (그것의 제정이 이사야 12,3에 의하여 이미 제시되었을 수도 있는) 바로 이 의식(ceremony)의 수행이었을 것입니다. 이 축제의 의식(ritual)에 추가되었던 다른 새로운 특징(feature)은 [성전 안쪽에 있는 유다 여인들에게 허락된 공간이었던] 여인들의 뜰(the woman's court)(*)의 조명이었는에, 이 조명은 순례의 시편[Pilgrim Psalms/Psalms of the Degrees(계단 시편)/Gradual Pslams(층계 시편)/Psalms of Ascents(오름 시편)](**)의 노래부름 및 이 성스러운 구역들 안에서 춤들 혹은 행렬들의 수행과 함께 였습니다. [초막절의 마지막 날인] 여덟 번째 날에 [성전의 제단] 둘레를 일곱 번 도는 한 개의 행렬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화석류(花石榴, 소귀나무, 은매화, myrtle) 가지들과 종려나무/대추야자나무 가지(palms)들을 들고서 다음과 같이 외쳤습니다: 예리코(Jericho)의 함락(여호수아 6,1-21)을 기념하여 "호산나!"(***) The second cup
The dish is then replaced and the shank bone, roasted egg, etc. restored to their places above it. All sit down, and the youngest son asks why this night above all other nights they eat bitter herbs, unleavened bread, and in a reclining posture. The head of the house then tells how their fathers were idolaters when God chose Abraham, how they were slaves in Egypt, how God delivered them, etc. God is praised and blessed for His wondrous mercies to their nation, and this first part of the ceremony is brought to a close by their breaking forth with the recitation of the first part of the Hallel (Psalms 112 and 114) and drinking the second cup of wine, which is triumphantly held aloft and called the cup of the Haggadah or story of deliverance. ... The fourth cup After this the fourth cup is filled and the great Hallel (Psalms 115-118) and a prayer of praise are recited. Before drinking the fourth cup, the Jews of some countries recite five poetical pieces and then the fourth cup is drunk. At the end a prayer asking God to accept what they have done is added. Among the German and Polish Jews this prayer is followed by popular songs. (이상, 발췌 끝).2-3. 2-3-1, 그리스도교측의 예제(Example) 한 개: 다음은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2006년 4월 9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강론 말씀 중의 시편 118 해설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특히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는 복되시어라" 라는 환호송에 주목하십시오. 출처: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발췌 시작) This connection becomes quite clear in the other words from the Old Testament which characterize and explain the Palm Sunday liturgy and its special atmosphere. The crowds acclaim Jesus: "Hosanna! Blessed is he who comes in the name of the Lord" (Mk 11: 9; Ps 118[117]: 25ff.).
These words are part of the rite of the Feast of Tabernacles, during which the faithful move in a circle around the altar, holding in their hands branches of palm, myrtle and willow.
Now, their palms in their hands, the people raise this cry before Jesus, in whom they see the One who comes in the name of the Lord. The phrase: "He who comes in the name of the Lord", in fact, had long before become the designation of the Messiah.
이제, 그들의 손들에 그들의 종려나무 가지들을 들고서, 이 백성은 예수님 앞에서, 그분 안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바로 이 거룩한 분(the One)을 그들이 보는, 이러한 외침을 소리지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이라는 표현은, 사실은, 메시아에 대한 칭호(designation)가 이미 오래 전부터 되어버렸습니다. 다음은, 굿뉴스 서버 제공의 "전례사전"에 주어진 "호산나" 라는 용어의 설명입니다. 대단히 유익한 설명을 제공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0 1,358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