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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32,9 - 성무일도(시간경) 매월 첫 목요일 저녁기도 외 [cbs][trans_error][성경공부][번역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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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6 ㅣ No.1540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질문 1:

성경을 읽다가 문맥상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영어 성서랑 대조해서 읽어 봤습니다.

시편 32편 9절 번역이 우리나라 말로 맞게 번역된것인지요?

아래 두 번역본을 비교해 주시기 바랍니다.

신자들이 헷갈려합니다.

 

9 Do not be senseless like horses or mules;

with bit and bridle their temper is curbed,

else they will not come to you.

 

9 지각없는 말이나 노새처럼 되지 마라.
재갈과 고삐라야 그 극성을 꺾느니.
그러지 않으면 네게 가까이 오지 않는다.

 

위의 밑줄친 '네게' 가 제대로 번역된 건지요?

신자들이 우리나라 번역의 문맥상 '네게' 즉 '너에게'라는 번역에서

무슨말인지 헷갈려합니다.

 

영어 번역 문맥으로 보면

'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내게 오지 않을 것이다' 이므로

'내게'라고 표현해야 할 것 같은데, 아닌가요?

묻는 신자들께 뭐라 설명해야 할지 난감합니다.

-------------------- 

 

답변:

+ 찬미 예수님!

 

[위의 밑줄친 '네게' 가 제대로 번역된 건지요?]

 

<----- 우리말 어법에도 맞게, 제대로 번역되었다는 생각입니다.

 

[영어 번역 문맥으로 보면

'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내게 오지 않을 것이다' 이므로

'내게'라고 표현해야 할 것 같은데, 아닌가요?]

 

<----- 아닙니다.

 

1. 들어가면서 (질문 1에 대한 답변 시작)

우선적으로,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시편 32는 매월 첫 목요일 시간경(성무일도) 저녁기도에서 발췌되어 바쳐지는 기도로 파악됩니다.

 

그리고 지금 말씀드린 바는, 다음의 주소들에서 제공하는 정보들로부터 그리 어렵지 않게 도출될 수 있고 그리고 확인됩니다:

 

1-1. http://ch.catholic.or.kr/pundang/4/psalter/jp2_b16_commentaries.htm

1-2. http://info.catholic.or.kr/divine_office/default.asp?sunseo=1&gomonth=2014-04-10&stype=ev

 

1-3. 다음은 시편 32 전문입니다:

 

출처 1: http://info.catholic.or.kr/divine_office/default.asp?sunseo=1&gomonth=2014-04-10&stype=ev

출처 2: http://info.catholic.or.kr/bible/bbl_read_sori.asp?gubun=old2&code=123&JangNo=32&JangSum=150

(발췌 시작)
1 [다윗. 마스킬] 행복하여라, 죄를 용서받고 잘못이 덮인 이! 
2 행복하여라, 주님께서 허물을 헤아리지 않으시고 그 얼에 거짓이 없는 사람! 
3 제가 입 밖에 내지 않으려 하였더니 나날이 신음 속에 저의 뼈들이 말라 들었습니다. 
4 낮이고 밤이고 당신 손이 저를 짓누르신 까닭입니다. 저의 기운은 여름날 한더위에 다 빠져 버렸습니다. 셀라 
5 제 잘못을 당신께 자백하며 제 허물을 감추지 않고 말씀드렸습니다. “주님께 저의 죄를 고백합니다.” 그러자 제 허물과 잘못을 당신께서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셀라 
6 그러므로 당신께 충실한 이들이 모두 곤경의 때에 기도드립니다. 큰물이 닥친다 하더라도 그에게는 미치지 못하리이다. 
7 당신은 저의 피신처. 곤경에서 저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환호로 저를 에워싸십니다. 셀라 
8 나 너를 이끌어 네가 가야 할 길을 가르치고 너를 눈여겨보며 타이르리라. 
9 지각없는 말이나 노새처럼 되지 마라. 재갈과 고삐라야 그 극성을 꺾느니. 그러지 않으면 네게 가까이 오지 않는다. 
10 악인에게는 고통이 많으나 주님을 신뢰하는 이는 자애가 에워싸리라. 
11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마음 바른 이들아, 모두 환호하여라.  

(이상, 발췌 끝)

 

2.

2-1. 위의 질문에 발췌된 영어본 시편 32,9는 1970년에 초판 발행된 NAB(New American Bible)에서 발췌된 것인데, 이것을 직역 번역하면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발췌 시작)

9 Do not be senseless like horses or mules;

with bit and bridle their temper is curbed,

else they will not come to you.

 

9 [그대는] 말들과 노새들 처럼 지각없게 되지 마라;

재갈과 고삐로써 그들의 성질이 꺾이느니,

그러지 아니하면 그들은 장차 그대에게 가까이 오지 않을 것이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2-2. 따라서, 시편 32,9는, 다음과 같이, 독자(즉, 그대, you)에게 권고하고(exhort) 있다는 생각입니다:

 

(바꾸어 말하기, paraphrase) 

말들과 노새들은, 재갈과 고삐로써 그들의 성질이 꺾이지 않으면, 장차 그대에게 가까이 오지 않을 것이듯이, 마찬가지로, 그대 또한 그대의 성질이 [스스로] 꺾이지 않으면(즉, 그대가 나에 대하여 온순/유순하게 되지 않으면),(*) 장차 나에게 가까이 오지 못할 것이다.

 

-----

(*) 게시자 주: 아래의 제3-1항에 발췌된, 예루살렘의 성 치릴로(St. Cyril of Jerusalem, 4세기) 의 세례자들에 대한  교리 가르침에서 밑줄이 그어진 문장을 읽은 후에, 또한 아래의 제3-3항질문 2질문 2에 대한 답변을 이어서 읽도로 하라.

 

그리고 이것으로부터, 예루살렘의 성 치릴로(St. Cyril of Jerusalem, 4세기)의 세례 교리 교육 가르침이,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831항에 주어진 성령칠은을 포함하는, 소위 말하는, "성령의 선물(the gifts of the Holy Spirit)들"작용에 대한 가르침임을,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시편 32에 대한 해설로부터 알 수 있음에 주목하라.
-----

(이상, 바꾸어 말하기 끝).

 

2-3. (번역 미숙/오류) 다른 한편으로,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생각에, 주어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는 수동형 문장인 영어본 with bit and bridle their temper is curbed 에 대응하는, 그러나 주어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는 다음의 능동형 우리말 번역문,

 

(*) --- 재갈과 고삐라야 그 극성을 꺾느니.

 

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번역 대신에,

 

(**) --- 재갈과 고삐로써 그들의 성질(their temper)이 꺾이느니,

 

로 번역하는 것이 더 나는 우리말 번역일 것입니다.

 

그리고 (**) 로 번역이 되었더라면, 아마도 질문자께서 헷갈리지 않으셨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상, 질문 1에 대한 답변 끝)

 

3.

3-1.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매달 첫 주일 목요일 시간경(성무일도) 저녁기도에서 발췌되어 바쳐지는 기도인 시편 32에 대한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해설은 다음에 있습니다. 대단히 좋은 해설이라는 생각이며, 영어가 가능한 분들께서는 읽고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http://www.vatican.va/holy_father/john_paul_ii/audiences/2004/documents/
hf_jp-ii_aud_20040519_en.html

 

특히 다음은 위의 출처 제5항에서 발췌한 예루살렘의 성 치릴로(St. Cyril of Jerusalem, 4세기) 의 세례자들에 대한  교리 가르침입니다:

 

(발췌 시작)
"God is merciful and is not stingy in granting forgiveness.... The mountain of your sins will not rise above the greatness of God's mercy, the depth of your wounds will not overcome the skilfulness of the "most high' Doctor: on condition that you abandon yourself to him with trust. Make known your evil to the Doctor, and address him with the words of the prophet David: "I will confess to the Lord the sin that is always before me'. In this way, these words will follow: "You have forgiven the ungodliness of my heart'" (Le Catechesi, Rome, 1993, pp. 52-53).

 

"하느님께서는 자비로우시고 그리고 용서를 허락하심에 있어 인색하지 않으시다. ... 그대의 죄들로 이루어진 산맥이 하느님의 자비의 위대하심 위로 오르지 못하리라, 신뢰와 함께 계시는 그분에 의하여 그대 자신이 완전히(fully) 제어당하거나 혹은 영향을 받게되는 것을 그대가 허락한다는 조건으로(시편 32,9 참조)(*) 그대의 상처들의 깊이가 '가장 높으신' 의사(Doctor)의 능숙함을 압도하지 못하리라. 이 의사에게 그대의 [윤리적(moral)] 악(evil)이 알려지게 하라, 그리고 다음과 같은 예언자 다윗(David)의 말들로써(시편 32,5) 그분께 말을 걸도록 하라: '항상 제 앞에 있는 죄(sin)를 주님께 제가 장차 고백할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다음의 말들이 장차 뒤따를 것이다: '당신께서 저의 심장의 하느님께 대한 불순명/부정(ungodliness)을 이미 용서해 주셨습니다.'" [예루살렘의 성 치릴로(St. Cyril of Jerusalem, 4세기), Le Catechesi, Rome, 1993, pp. 52-53].

 

-----

(*) 번역자 주: 다음의 Merriam Webster Learner's Dictionary에 주어진 "abandon oneself to"에 대한 설명을 따른 것이다:
http://www.learnersdictionary.com/definition/abandon

-----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게시자 주3-1: 이 정보는 위의 제1-1항에 안내된 주소에 마련된 정보로부터 확보된 것입니다.

 

3-2.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시편 32,9에 대한 해설은 다음의 주소의 제i항에 있습니다:

 

출처: http://www4.desales.edu/~philtheo/loughlin/ATP/Psalm_31.html

(발췌 시작)
Then, when he says, With bit, he sets forth the threat, first expressed in a prayerful way, then by means of a prediction at, Many are the scourges.

 

Therefore he says, With bit and bridle. This is stated metaphorically. If a man conducts himself like a man, God treats him like a man, with admonishment and teaching, but when he falls away from the dignity of man, he is dealt with like a brute animal, which is coerced by means of punishment and violence, i.e. With bit and bridle. It is as if he were saying: "I have warned you not to become like a horse or a mule." If they do not obey, deal with them like a horse or a mule, namely With bit and bridle bind fast their jaws, by subduing their loquacity, and taking away their food with which they feed their voracity. For jaws are used both for speaking and eating: "I will put a ring in thy nose, and a bit between thy lips." (Isaiah 37:29) Or With bit and bridle, he means with greater or lesser tribulation.

 

그러고 나서, 그분께서 재갈로써(with bit) (제9절) 라고 말씀하실 때에, 그분께서는, 우선 한 개의 기도와 같은 방식으로, 그런 다음에 고통이 많으리라 (제10절) 에서 한 개의 예건에 의하여, 이 위협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재갈과 고삐로써(with bit and bridle)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은유적으로(metaphorically) 서술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한 명의 사람처럼(like a man) 스스로를 처신하면, 하느님께서는 권고와 가르침으로써 그를 한 명의 사람처럼 대우하실 것이나, 그러나 그가 사람의 품위(the dignity of man)로부터 떨어져 나가면, 그는, 벌과 폭력에 의하여 강제되는, 즉,재갈과 고삐로써, 한 마리의 난폭한 짐승처럼 다루어질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그분께서 "내가 그대에게 한 마리의 말 혹은 한 마리의 노새처럼 되지 말라고 이미 경고하였다" 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처럼 입니다. 그들이 복종하지 않으면, 그들을, 그들의 수다(loquacity)를 압도함으로써, 그리고 그것으로써 그들의 탐욕(voracity)을 만족시키는 그들의 음식을 치움으로써, 한 마리의 말 혹은 한 마리의 노새처럼 그들을 다루십시오, 즉 재갈과 고삐로써 그들의  입(jaws)을 꽉 묶으십시오. 이는 입이 다음과 같이 말하기와 먹기 둘 다를 위하여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나는 네 코에  나의 갈고리를 꿰고 네 입술에 나의 재살을 물리리라." (이사야 37,29) 혹은 재갈과 고삐로써, 더 크거나 혹은 더 작은 시련으로써 를 그분께서 의미하십니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게시자 주 3-2: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시편 32에 대한 해설을 찾아가는 경로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i) http://org.catholic.or.kr/conservatory/frames/mp34todayreading.shtml 을 클릭한다.

(ii) 새로 가지게 되는 화면에서, 성 토마스 아퀴나스 저술들 을 클릭한다.

(iii) 새로 가지게 되는 화면에서, 오른쪽 메뉴에서,

     blical Commentaries  아래의 Psalm (Latin & English /) 을 클릭한다.

     (iii-1) 새로 가지게 되는 화면에서, 오른쪽 메뉴 Awaiting translation: 아래의 

              Psalm 31 (Heb 32) 을 클릭하였을 때에 에러 메시지가 나오지 않고 정상적으로 접속이 되면,

              아래의 제(vi)항으로 이동한다.

     (iii-2) 아니면(Otherwise), 아래의 제(iv)항으로 이동한다.

(iv) 새로 가지게 되는 화면에서, Introduction 을 클릭한다.

(v) 새로 가지게 되는 화면에서, 맨 아래에 있는 The Aquinas Translation Project (http://www4.desales.edu/~philtheo/loughlin/ATP/index.html) 을 클릭한다.

(vi) 새로 가지게 되는 화면에서, Psalm 31 and commentary 을 클릭한다.

(이상, 게시자 주 3-2 끝)

 

3-3.

질문 2: 시편 32,9 에서 우리들이 하느님께 대하여 가질 것을 권고하는 바로 이 온순/유순(docility)을 우리가 획득하는 데에 필수적으로(necessarily) 도움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요?

 

질문 2에 대한 답변; 성령칠은을 포함하는, 령의 선물들(the gifts of the Holy Spirit)입니다.

 

3-3-1. 이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에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969.htm <----- 필독 권고

 

위의 주소에 접속한 후에, 제1-1항, 그리고 1-2항에서 전달해드리고 있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편(CCCC) 제389항" 을 읽고 묵상하도록 하십시오.

 

3-3-2.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제목: 영적 완미(perfection)에 있어 성장을 위하여 필수적인 양심은 어떤 양심?]제3-5항도 읽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80.htm <----- 필독 권고

 

게시자 주 3-3-2: 바로 위의 주소에 있는 글은, 위의 제3-2-1항의 근거 항들 중의 한 개인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831항"에 있는 대단히 심각한 번역 오류 한 개에 대한 지적의 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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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업에 소요된 시간: 약4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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