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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9일[이콘]성조 아브라함과 사라.멜기세덱과의만남♬14.Lau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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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정 [wjyou57] 쪽지 캡슐

2003-10-08 ㅣ No.1411

 

[이콘] 세 천사를 대접하는 아브라함.16세기 중반. 148.9x113.5cm.러시아박물관

 

성자는 잔의 한가운데에 있다.

성자는 두 손가락으로 강생을 통한 신성과, 인성을 겸비한 희생양이 되시는

당신의 사명을 암시하고 계시며,

왼쪽의 성부는 축복하시는 손짓으로 성자를 격려하고 계신다.

그 반대편의 성령은 식탁 아래의 열린 사각형을 가리키며,

이 거룩한 희생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희생임을 말씀하고 계신다.

이 사각형은 동서남북의 모든 창조된 세상을 상징하고 있으며,

하느님의 집으로 가는 좁은 길, 즉 고통의 길을 나타내고 있다.

 

★삼위일체는 모든 종교적 체험.모든 신학. 모든 사회적 행위의 원천이다.

우리가 존재의 충만함,

모든 현존하는 것의 목적과 그 의미를 탐구할 때 발전하게 되는 것은 바로 하느님 즉 삼위일체이다.

그자체의 충만함에서 삼위일체의 신비를 안다는 것은

하느님과의 완전한 합일에로 들어가는 것이며,피조물인 인간의 신화를 선취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말하면 신적인 생명,삼위일체의 지고한 생명에로 참여하는 것이고,

베드로 성인의 말처럼 "신적인 본성에 참여하는자"가 되는 것이다.★

 

☆구약성서의 삼위일체

삼위일체-성부,성자,성령-는 시간에 있어 시작도 없고 마침도 없다.

성자는 니케아 신경에 따르면 온 세계 이전에 성부로 부터 낳음을 받았다.

더군다나 성령은 성부로 부터 발출했다.

삼위일체의 이콘이 표현하고자 추구하는 것이 이 영원성이다.

 

성서의 삼위일체의 하느님과 우리와의 첫 만남은 창세1,26의 창조설화에서 발견되는데,

성부께서는 "우리자신의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고 말씀하신다.

두번째 만남은 마므레의 떡갈나무에서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세명의 천상 방문객들이 나타나

아들 이사악의 탄생에 관해 소식을 전해 준 18장에서 나타난다.

 

동방교회에 있어서 이 삼위일체의 첫 현시는 오순절, 바로 그날에 충만하게 드러날 약속의 시작이다.

옛계약은 새 계약의 예표이며, 그 새 계약은 삼위일체 교리에서 완성 된다.

만약, 주의 세례 축일에,거룩한 삼위일체의 현시를 외적인 감각만으로도 접할 수 있었다고 한다면,

세례자 요한은 성부의 목소리를 듣고, 성자를 보고, 비둘기 형상으로 강림하는 성령을 보았을 것이다.

오늘 하느님의 아들에 의해 회복된 성령의 은총이 인간 전 존재에 주어진 빛으로서

인간을 신화(deification)시키고 있다.

 

-이콘.신비의 미.장긍선신부-

*구약성서의 삼위일체(러시아의 안드레이 루블레프의 1425년 작):게시판1224번 참고.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The Sacrifice of Abraham-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35,Oil on canvas, 193 x 133 cm.The Hermitage, St. Petersburg

 

 

축일: 10월 9일

성조 아브라함

St. Abraham

Sant’ Abramo Patriarca d’Israele

Abramo = grande padre, dall’ebraico

Ur dei Caldei - Canaan, XIX secolo a.C.

 

 

 

아브라함은 신앙의 성조이며,

이사악의 아버지이며, 아브라함에게서 야훼 신앙이 도래되었다.

아브라함의 아내는 사라이다.

 

성조 아브라함은 하느님께 대한 특별한 믿음을 가졌던 사람으로서 유대인, 그리스도인, 무슬림들에게 믿음의 모범 또는 믿음의 조상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셈의 후손이며 데라의 아들이고 사라(Sara)의 남편이며, 이사악의 아버지로서 히브리 민족의 선조이다. 그리고 아들인 이스마엘을 통하여 퍼지게 된 다른 셈족들의 선조이기도 하다(창세 17,5; 25,10-18). 그의 삶에 관해서는 주로 창세기(11,26-25,10)에 소개되어 있고, 사도행전 7장 2-8절에 요약되어 있다.

 

   구약성서에 보면 그의 이름은 ‘아브람’과 ‘아브라함’이라는 두 가지 형태로 언급되어 있다. 즉 창세기(11,26-17,4)와 일부 다른 성서의 구절(1역대 1,27; 느헤 9,7)에서는 아브람으로, 그리고 그밖의 부분에서는 모두 아브라함으로 표기되어 있다. ‘아브람’은 ‘아브’(아버지)와 ‘룸’(높다, 존귀하다)에서 파생된 ‘람’의 합성어로, ‘존귀하신 아버지’라고 번역할 수도 있지만 ‘(나의) 아버지는 존귀하시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옳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의 어원론적 해석은 불투명하다. 하느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면서 그의 이름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꾸어 주었다(창세 17,4-5). 여기에서 하느님은 약속 성취의 징표로 ‘많은 민족의 아버지’라는 의미를 부여하신다. ‘아브’는 아버지를 의미하며 ‘라함’은 많은 민족을 의미하는데, 이 이름에 대한 성서의 해석은 유음 현상에 의해 만들어진 대중적인 해석에 근거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우르에서 태어난 아브라함은 아버지 데라와 동생인 나홀과 하란, 아내인 사라와 조카 롯과 함께 하란으로 이주하였다(창세 11,26-32). 아버지 데라가 죽은 후 하느님의 명령을 받고 하란을 떠나 가나안 지역으로 이주하였는데, 그때 그의 나이 75세였다(12,1-4). 그가 세겜에 이르렀을 때 그곳에는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약속의 땅의 중심인 그곳에서 야훼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그 땅을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12,6-7). 그러자 그는 제단을 쌓아 야훼께 바친 뒤 그곳을 떠나 베델 동쪽에 있는 산악지대로 옮겨가, 서쪽으로는 베델이 보이고 동쪽으로는 아이가 보이는 곳에 천막을 쳤다. 아브라함은 여기에서도 제단을 쌓고 야훼의 이름을 불러 예배하였다. 그리고는 네겝 쪽으로 옮겨 갔다가 흉년이 들자 이를 피하여 이집트로 갔다(12,8-10). 그리고 다시 베델 쪽으로 와서(13,3) 롯이 분가를 한 다음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나무 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 제단을 쌓아 야훼께 바쳤으며(13,18), 그 후 브엘세바에 정착하였다(20,1-2. 14-15; 21,22-34; 22,19). 그의 조카 롯이 아브라함으로부터 분가하여 소돔 근처에 살게 되었을 때 소돔 지역의 왕들과 북쪽 지역의 왕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는데, 이때 롯은 북쪽 왕들에게 끌려가게 되었다(14장). 그러자 아브라함은 롯을 구하기 위하여 북쪽 왕들과 전쟁을 벌였는데, 여기에서 그는 이미 공인된 지도자로서 행동하였다. 그리고 이집트와 그랄과 브엘세바에서도 한 집단의 존경받는 지도자로 나타날 뿐만 아니라, 그들과 대등한 관계에 있었다.

   아브라함은 많은 목축과 재산을 가지고 있었고(13,20), 부하들도 많았다(14,14). 또 가나안족과 브리스족(12,6; 13,7)과 함께 어울려 살았으며, 블레셋 사람들(21,34)과도 어울려 살았고, 헷 사람들과 거래를 하기도 하였다(23장).

 

   우르와 하란을 떠나기 전에 도시를 배경으로 살았던 아브라함은, 하란에 살고 있는 그의 친척들이 천막생활을 한 것과는 달리(24,10-11), 유랑하는 반유목민적인 삶을 살기 시작하였다(12,8-9; 13,18; 18,1). 그러나 그는 마므레, 브엘세바, 블레셋 지역에서는 상당히 오랫동안 머물렀으며(13,18; 18,1; 22,19; 21,3-4). 그곳 정착민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였다(23,10. 18). 이 지역 왕들과도 동등한 관계를 유지하였을 만큼 그는 상당한 세력을 가진 외국인 거주자였던 것 같다(15,13; 23,4).

 

   창세기 15장에는 아브라함이 가졌던 특별한 체험에 관해 언급되어 있다. 우선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이 되게 해줄 것을 약속하였는데(12,1-3), 이 약속은 13장 16절에서 다시 확인된다. 이 약속 실현의 첫 번째 과제는 그가 아들을 얻는 것이었다. 아직 그에게는 대를 이을 아들이 없었고, 그의 마음속에는 이것이 해결되지 않은 의문이었다. 그런데 환시 중에 하느님을 만났고(15,1), 여기에서 다시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별처럼 많은 자손을 주실 것을 약속하였다(15,5-6). 아브라함은 이것을 믿었고, 이로써 “주님께서 그것을 정의로 인정해 주셨다”(15,6). 그리고 하느님은 그와 언약을 맺었다(15,7-21). 이집트에서 큰 강, 곧 유프라테스 강에 이르는 모든 땅을 그의 후손에게 줄 것을 약속하셨다(15,18). 여기에서 하느님은 희생제물 사이로 지나감으로써, 만일 그가 약속을 어기면 이 제물처럼 되리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셨다(15,8-17). 즉 하느님은 자신의 존재를 걸고 약속하신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에 한 가지 조건을 붙였는데, 아브라함의 자손이 200년 동안 다른 나라에서 종살이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15,13-16). 이는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이것이 성취될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리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아브라함은 초월적인 신앙 체험을 하게 되는데, 이것은 깊은 감정적 움직임이 동반된 것이었다. 이 순간 그는 분명히 하느님의 약속을 완전히 믿었고, 이러한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의롭다고 여김을 받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의 이러한 믿음도 훗날 흔들렸다.

 

   그의 아내 사라는 아직 아이가 없었으므로 당시의 관습대로 남편에게 자기의 여종 하갈을 주어 아이를 갖게 하였다(16,1-16). 결국 아브라함과 이집트인 여종 하갈 사이에서 이스마엘이 태어났는데, 그때 그의 나이 86세였다(16,15-16).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하느님은 다시 언약을 하셨고(창세 17장), 이때 그의 나이는 99세였다(17,1). 여기에서 하느님은 다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줄 것이며 후손을 번창하게 해줄 것을 약속하고(17,1-8), 이 새 언약의 징표로 할례를 지시하였다(17,9-14). 이 약속과 함께 부인 사라의 이름도 사래에서 사라로 바뀌었다. 이는 고대인들의 사고에 따르면 그의 운명이 바뀌는 것으로, 결국 사라가 하느님의 역사(役事)에서 다른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하느님의 약속은 사라의 불신앙에도 불구하고 다시 확인되었다(18,1-19).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에 이사악이 태어났고, 이로써 약속 실현의 결정적인 조건이 갖추어졌다(21,1-7). 그러나 이사악을 매체로 아브라함의 신앙이 시험대 위에 놓이게 된다(22,1-14). 모리아 산에서 이사악을 하느님께 제물로 바치라는 지시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하느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써 하느님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증거하였다. 그의 아내 사라는 127년을 살고 죽어서(23,1) 헤브론 맞은편 막벨라 밭에 있는 동굴에 안장되는데(23,17-20), 이 땅은 헷 사람 에브론에게 산 땅이었다(23,3-16). 아브라함 역시 자신의 죽음이 가까이 오자 엘리에젤에게 하란 지역에 사는 자신의 친척 중에서 이사악의 아내를 구해 주도록 하여 리브가를 며느리로 맞이하였다(24장). 아브라함이 늦은 나이에 크투라와 결혼하여 얻은 자식들은 드단과 미디안 부족의 조상이 되었고(25,1-6), 아브라함은 175세에 죽어 막벨라 동굴에 안장되었다(25,7-11).

 

   신약성서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언급되고 있다(사도 13,26). 아브라함은 레위 제사장들의 선조로 언급되며(히브 7,5), 메시아인 예수 그리스도의 선조라고 선포된다(마태 1,1). 그러나 신약에서는 아브라함의 혈통과 관련하여 새로운 이해가 선포되었다.

 

   세례자 요한과 사도 바오로는 아브라함의 혈통을 이어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하느님의 복을 받는 조건이라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중적 믿음을 부인하였다(마태 3,9; 로마 9,7).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신자들이 새로이 선택된 민족, 왕다운 제관들, 거룩한 겨레, 하느님의 소유, 곧 새로운 이스라엘, 새로운 아브라함의 후손이 된 것이다(1베드 2,9-10).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다짐한 맹세(루가 1,73)와 약속하신 축복(갈라 3,14)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참고자료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8권 - '아브라함',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1년, 5673-5676쪽. 

(가톨릭대사전에서)

 

 

창세 22,1-13

1 이런 일들이 있은 뒤에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해 보시려고 "아브라함아!" 하고 부르셨다.

"어서 말씀하십시오" 하고 아브라함이 대답하자

2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분부하셨다.

"사랑하는 네 외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거라.

거기에서 내가 일러 주는 산에 올라 가 그를 번제물로 나에게 바쳐라."

3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얹고 두 종과 아들 이사악은 데리고

제물을 사를 장작을 쪼개 가지고 하느님께서 일러 주신 곳으로 서둘러 떠났다.

4 길을 떠난 지 사흘만에 아브라함은 그 산이 멀리 바라보이는 곳에 다다랐다.

5 아브라함은 종들에게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에 머물러있거라.

나는 이 아이를 데리고 저리로 가서 예배드리고 오겠다." 하고 나서

6 번제물을 사를 장작을 아들 이사악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씨와 칼을 챙겨 들었다.

그리고 둘이서 길을 떠나려고 하는데,

7 이사악이 아버지 아브라함을 불렀다. "아버지!" "얘야! 내가 듣고 있다."

"아버지! 불씨도 있고 장작도 있는데, 번제물로 드릴 어린 양은 어디 있습니까?"

8 "얘야! 번제물로 드릴 어린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신단다."

말을 마치고 두 사람은 함께 길을 떠나,

9 하느님께서 이러 주신 곳에 이르렀다. 아브라함은 거기에 제단을 쌓고 장작을 얹어 놓은 다음

아들 이사악을 묶어 제단 장작 더미위에 올려 놓았다.

10 아브라함이 손에 칼을 잡고 아들을 막 찌르려고 할 때,

11 야훼의 천사가 하늘에서 큰 소리로 불렀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어서 말씀하십시오."

아브라함이 대답하자 야훼의 천사가 이렇게 말하였다.

12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 머리털 하나라도 상하지 말라. 나는 네가 얼마나 나를 공경하는지 알았다.

너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마저도 서슴지 않고 나에게 바쳤다."

13 아브라함이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들어 보니 뿔이 덤불에 걸려 허우적거리는 수양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아브라함은 곧 가서 그 수양을 잡아 아들 대신 번제물로 드렸다.

 

 

 

성녀 사라

St.Sara

Santa Sara Moglie di Abramo

Sara = principessa, signora, dall’ebraico

 

사라는 구약의 인물로서 아브라함의 아내이며, 이사악의 어머니이다.

창세 17장, 18장에 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축일은 따로 없고, 아브라함의 축일인 10월 9일에 함께 지낼 수 있다.

 

 

 

[이콘]구약 성서적인 성 삼위일체. 팔레히(Palech)화파.31.5 x 27cm. 18세기

 

세 명의 천사, 왼쪽에는 상징적인 성부(聖父), 중앙에는 그리스도,

오른쪽에는 성령(聖靈)이 책상보가 깔린 책상 주위에 모여 있다.

배경에는 암산(巖山)과 집의 중간에 위치한 숲 속에 떡갈나무가 우뚝 솟아 있다.

 

세 명의 천사들은 아브라함, 사라, 그의 아내로부터 식사 대접을 받는다.

아브라함 집에서의 식사는 미래에 행해질 그리스도의 인간화와 인류를 위한

그의 희생을 천사들이 미리 예상하는 것이다.

 

희랍 정교 지역에서는 삼위일체의 묘사를 모세 1책 18장에 의거하는데 다음과 같은 문구로 시작된다.:

"마므레(Mamre) 숲에 사는 아브라함이 오두막집 문앞에 앉아 있을 때

하느님이 재현하셨다...그가 위를 쳐다보자 세 명의 천사들이 그의 앞에 서있었다..."

-유럽 聖畵(ICON)集에서-

 

 

 

Abraham - LIPPI, Filippino. 1502.Fresco.Strozzi Chapel, Santa Maria Novella, Florence

 

 

[성서의 풍속] 아브라함의 고향, 우르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고향은 어디였을까?

창세기에 보면 아브라함은 노아의 10대손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리고 노아의 맏아들 셈의 후손인 아브라함의 고향을 갈대아의 우르라고 가르쳐주고 있다(창세 11,28 참조).

그러다가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고향을 떠나 가나안 땅을 향해 길을 떠난다.

당시 사람들에게 자신이 살던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죽음과 같은 위험한 행위였다.

창세기는 아브라함의 가족이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을 향하여 길을 떠나다가

하란에 이르러 자리잡고 살았다고 전한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고향인 갈대아의 우르는 어떤 곳이었을까?

일부학자들은 갈대아의 우르는 지금의 이라크 지역인 ’텔 엘 무카이야르’로 추정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분명한 것은 갈대아의 우르는 현재 이라크 영토에 속한 메소포타미아 남부에 위치한 수메르와

바빌론의 대도시들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따라서 우르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메르를 먼저 잘 알아야 한다.

수메르는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두 강으로 형성된 지방으로 B.C 5000년께부터

농경민이 정착하기 시작한 곳이었다.

수메르 사람들은 두 강의 중, 상류 지역 또는 엘람 지방에서 이주하여 온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지역은 B.C 3000년께 세계 최고의 문명을 창조했다.

특히 이 지방에는 늪과 연못이 많고 두 강에서 일어나는 홍수나 페르시아만의 높은 조수로 인하여

일찍부터 간척, 배수, 관개 등의 토목공사가 발달했다.

그러나 수메르인의 민족이나 언어, 원주지에 관해서는 분명하지 않은 점이 많다.

그리고 이 무렵의 정치에는 대략적으로 촌락 공동체 시대의 평등한 원리가 남아 있었다.

그래서 일반 시민의 성년 남자로 구성되는 민회(民會)와 씨족장들의 장로회가

민주적으로 운영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쟁과 같은 도시의 사활에 직결되는 상황에서는 일시적으로

도시의 전권을 위임받는 왕이 선출되어 나라를 통치했다고 한다.

그런데 초기 왕조시대에는 500년간 각 도시국가가 난립하여 서로 싸움을 벌였다.

이때 각 도시는 신의 소유라고 생각되어 성벽으로 둘러싸인 신전을 중심으로

한 중심 지역과 주위의 농경지로 이루어져 있었다.

도시에서는 정치, 경제, 군사 생활 등이 모두 신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당시의 나라는 신전공동체 또는 신전국가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초기 왕조시대에 우루크, 우르, 키시, 니푸르 등의 유력한 도시국가가

서로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패권을 다투었다.

수메르 문화는 세계 최고의 문명으로서 오리엔트 역사에 많은 공적을 남겼다.

 

그들은 그림문자로부터 독특한 설형문자를 발명하여 고대 오리엔트에서 널리 사용했다.

또한 12진법과 태음력을 사용하였고, ’수메르 법’이라는 법전도 만들어 높은 문화적 발전을 과시했다.

 

그런데 우르는 일찍부터 지형 특성상 무역을 통해 크게 번영하였다.

수메르에서는 점토 이외의 원료가 산출되지 않아 석재나 광석, 귀금속은 모두 무역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일찍부터 동쪽은 인더스 유역, 서쪽은 아나톨리아, 시리아, 이집트 등과 원격지 무역을 시도했다.

또한 그 무역을 통하여 수메르 문명은 오리엔트 각지로 전파되었다.

그런데 수메르는 역사의 부침을 거듭하다가 한때 다시 번영하여 우르 제3왕조를 일으켰으나

결국 동방 엘람인의 침입으로 멸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수메르는 셈족에게 동화되었고, 이후 수메르는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아브라함의 고향 우르는 지금의 이라크 지방에 해당하는데

남부 유프라테스강 가까운 곳에 있던 수메르의 발달된 도시국가였다.

따라서 우르가 오늘날로 치면 세계적으로 가장 발전되고 세련된

뉴욕이나 파리와 같은 도시라고 하면 너무 지나친 과장일까.

그런 도시를 떠나 미지의 척박한 땅으로 떠난 아브라함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의 성조로 추앙하고 있는 것이다.

- 평화신문에서 www.pbc.co.kr

 

 

The Meeting of Abraham and Melchizedek-RUBENS, Pieter Pauwel

1625,Oil on wood,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히브7,1-3.15-17

1 이 멜기세덱은 살렘왕이며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사제였습니다.

그는 여러 왕들을 무찌르고 돌아 오는 아브라함을 맞아 축복해 주었고

2 아브라함은 그에게 모든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첫째로 멜기세덱이라는 이름은 정의의 왕이라는 뜻이고 그 다음 살렘왕이라는 칭호는

평화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3 그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으며 생애의 시작도 끝도 없이

하느님의 아들을 닮아서 영원히 사제직을 맡아 보는 분입니다.

15 멜기세덱과 같이 다른 계통의 사제가 나타나셨으니 일은 더욱 명백해졌습니다.

16 그분이 사제가 되신 것은 인간의 율법의 규정을 따라 되신 것이 아니고

불멸의 생명의 힘을 따라 되신 것입니다.

17 그렇기 때문에 성서에 "너는 멜기세덱의 사제 직분을 잇는 영원한 사제다"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시편 109,1.2.3.4(◎ 4ㄴ)

◎ 너는 멜기세덱의 품위를 따라 영원한 사제이니라.

○ 하느님께서 내 주님께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들을 네 발판으로 삼기까지 내 오른편에 앉아 있어라.” 하셨도다. ◎

○ 하느님께서 시온으로부터 권능의 홀을 뻗치시며 말씀하시리라. “네 원수들 가운데서 왕권을 행사하여라. ◎

○ 거룩한 빛 속에 네가 나던 날, 주권이 너에게 있었으니, 샛별이 돋기 전에 이슬처럼 내가 너를 낳았노라.” ◎

○ 하느님께서 이미 맹세하셨으니, 다시는 뉘우치지 않으시리라.

“너는 멜기세덱의 품위를 따라 영원한 사제이니라.” ◎

 

창세14,13-20

13 한 사람이 도망쳐 나와서 히브리인 아브람에게 이 일을 알렸다.

아브람은 그 때 아모리인 마므레의 상수리나무가 무성한 곳에 살고 있었다.

마므레는 에스골과 아넬과 동기간으로서, 이들은 아브람과 계약을 맺은 사이였다.

14 아브람은 자기 골육이 끌려 갔다는 소식을 듣고 집에서 길러 낸 사병 삼백 십 팔 명을 소집하여

단까지 쫓아 갔다.

15 아브람과 그의 부하들은 여러 패로 나뉘어 밤을 틈타 그들을 기습,

다마스커스 북쪽에 있는 호바까지 추격해 가면서

16 모든 것을 되찾았다. 조카 롯과 그의 재물과 부녀자들과 그 밖의 모든 사람들을 되찾아 냈다.

17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동맹을 맺은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 오는데

소돔 왕이 왕의 골짜기라고도 불리는 사웨 골짜기까지 나와 그를 맞았다.

18 살렘 왕 멜기세덱은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였다.

19 그는 아브람에게 복을 빌어 주었다.

"하늘과 땅을 만드시고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내리소서.

20 그대의 원수를 그대의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찬양을 드리어라."

아브람은 자기가 가진 것 전부에서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다.

 

 

 

♬14.Lauda Sion - monastic chants-christdesert(Benedict)

 

update 2006.12.20.

 

 

 

 

 

 

 

 

 

 

 

 

 

 

 

 

 

 

 

 

Sant’ Abramo Patriarca d’Israele

 

9 ottobre

Ur dei Caldei - Canaan, XIX secolo a.C.

Etimologia: Abramo = grande padre, dall’ebraico

 

Padre di tutti i credenti, cosi e chiamato Abramo patriarca del Vecchio Testamento e che rappresento l’umanita nella grande alleanza che Dio propose.

Con la vicenda di Abramo, inizia la storia dei Patriarchi d’Israele, che va dal XIX al XVII secolo a.C., raccontata dal capitolo 12 al capitolo 50 nel primo libro della Bibbia, la Genesi.

Egli era discendente di Sem, uno dei tre figli di Noe e dimorava con il padre Terah e con tutta la famiglia ad Ur dei Caldei, antichissima citta della Bassa Mesopotamia (attuale Iraq).

Terah poi con Abramo e sua moglie Sara e con il nipote Lot, lascio Ur per emigrare nella terra di Canaan, arrivarono fino ad Harran (Carran) stabilendosi li per lungo tempo, fino alla morte di Terah che visse 205 anni. Qui avvenne il fatto umanamente inspiegabile, Dio irrompe nella vita ordinaria di Abramo e gli parla chiamandolo ad una missione tanto grande quanto misteriosa: “Vattene dal tuo paese, dalla tua patria e dalla casa di tuo padre, verso il paese che ti indichero. Faro di te un grande popolo e ti benediro, rendero grande il tuo nome e diventerai una benedizione. Benediro coloro che ti benediranno e coloro che ti malediranno, malediro e in te si diranno benedette tutte le famiglie della terra”.

Abramo risponde con la fede; sara poi sempre l’uomo della fede, il primo e il modello dei credenti e in quanto tale e padre di ogni credente, non soltanto della comunita ebraica, cristiana ed islamica, ma anche di tutti gli esseri umani, in cammino alla ricerca di Dio.

A 75 anni prese con se la moglie Sara e il nipote Lot, figlio del defunto fratello Aran e si sposta alla maniera dei nomadi, con tutto il bestiame ed i servitori, lungo la regione montuosa della Palestina, toccando e soggiornando in vari luoghi, a Mamre nei pressi di Hebron, Canaan, Sichen, Bersabea nel Negheb, per un breve tempo a causa di una carestia, anche in Egitto; stabilendosi definitivamente nella steppa meridionale del Negheb.

In seguito a contrasti sorti fra i mandriani di Abramo e quelli di Lot che pure aveva grosse mandrie e greggi, per il poco spazio disponibile, Abramo e Lot si divisero; Lot si diresse allora verso la rigogliosa valle del Giordano, piantando le tende vicino a Sodoma, Abramo rimase nella terra di Canaan.

In quel tempo vi fu una scorreria al di la del Giordano e a sud della Palestina, di una spedizione di re orientali provenienti dall’est di Babilonia, i quali combattendo e vincendo i piccoli re della Pentapoli (Sodoma, Gomorra, Adma, Sebain, Soar) presero bottino e cittadini prigionieri, compreso Lot con i suoi beni.

Abramo avvertito di cio, intervenne con i suoi uomini piu esperti nelle armi e piombando di notte sugli invasori li sconfisse, libero Lot e gli altri prigionieri, recuperando i beni, inseguendoli fino oltre Damasco.

Del bottino fatto, Abramo offri una decima a Melchisedech, sacerdote dell’Altissimo e re di Shalem, che gli era venuto incontro benedicendolo e Dio gli confermo la promessa di dare il paese di Canaan ai suoi discendenti. Intanto la moglie Sara essendo sterile e vecchia, per dargli un figlio, cedette al marito la schiava Agar da cui nacque Ismaele; Dio rinnovo il patto con Abramo che aveva 99 anni, promettendogli grandi ricompense, allora lui disse, “Cosa mi darai? Vedi che a me non hai dato discendenza e che un mio domestico sara mio erede” e Dio a lui “non costui sara il tuo erede, ma colui che sara generato da te sara il tuo erede, guarda in cielo e conta le stelle, tale sara la tua discendenza” e poi mediante un sacrificio di animali, come era uso fra gli ebrei, Dio suggello la sua Alleanza con Abramo, sancita con la circoncisione di Abramo, di Ismaele e di tutti i maschi del gruppo, da perpetuarsi con ogni bimbo nato in seguito.

Dio apparve ancora ad Abramo alla Quercia di Mamre sotto le sembianze di tre uomini, ai quali lui offri cibo, bevande e ospitalita; i tre gli predissero che Sara avrebbe avuto un figlio da li ad un anno, benche molto vecchia, poi dissero di essere diretti a distruggere le citta di Sodoma e Gomorra per i peccati dei loro abitanti.

Abramo intercesse piu volte per loro, affinche venissero risparmiati in virtu dei buoni presenti fra essi; gli angeli, perche di angeli si trattava, concessero che anche per solo dieci giusti, essi avrebbero risparmiato le citta. Ma non si trovarono, il solo Lot e sua moglie furono risparmiati; le citta sotto una pioggia di fuoco e zolfo, bruciarono con tutti gli abitanti, mentre Lot e la moglie fuggivano, quest’ultima benche avvertita di non farlo, si volto a guardare l’incendio e si tramuto in una statua di sale.

Piu tardi nacque Isacco e Sara fece allontanare la schiava Agar con il figlio Ismaele, con grande dolore del patriarca, al quale pero il Signore promise anche per Ismaele una grande discendenza. A questo punto si arriva al momento piu drammatico della vita di Abramo, ma anche piu rivelatore della sua grande fiducia in Dio; il Signore volle metterlo ancora alla prova, lo chiamo quando Isacco era gia fanciullo e gli disse di portarlo sul monte nel territorio di Moria e di sacrificarlo, come si usava per i sacrifici di animali offerti a Dio.

Nonostante il dolore provato per questa richiesta di sacrificare quell’unico figlio, nato cosi prodigiosamente nella tarda vecchiaia e che secondo le promesse di Dio, avrebbe assicurato la sua discendenza, Abramo obbedi, ma quando stava per portare a compimento con il coltello, l’uccisione del figlioletto, un angelo apparso lo fermo dicendo: “Non stendere la mano contro il ragazzo e non fargli alcun male! Ora so che tu temi Dio e non mi hai rifiutato il tuo unico figliuolo”.

Alzando gli occhi poi Abramo vide un ariete impigliato con le corna fra i rami di un arbusto e presolo, insieme ad Isacco, lo sacrificarono sull’altare improvvisato prima. Dio tramite l’angelo gli promise, per questa ubbidienza alla Sua volonta, anche quando tutto veniva rimesso in questione, ogni benedizione, la moltiplicazione della discendenza come la sabbia delle spiagge e le stelle nel cielo e saranno benedette tutte le Nazioni della terra.

Morta Sara a 127 anni, Abramo mando il servo Eliezer in Mesopotamia a cercare una moglie per il figlio Isacco, il quale ritorno con Rebecca della stessa famiglia di Abramo. Il patriarca poi sposo Ketura, dalla quale ebbe sei figli, Zimran, Ioksan, Medan, Madian, Isbak e Suach.

Mori a 175 anni nella terra di Canaan, lasciando erede universale Isacco e un appannaggio agli altri figli. Alla sua genealogia si riallacciano gli Ebrei attraverso Isacco, vissuto 180 anni e gli arabi attraverso Ismaele, che visse 137 anni; la sua importanza per gli ebrei crebbe sempre piu, venendo considerato il progenitore e l’uomo del primo patto con Dio; in tutta la tradizione che seguira, il Signore e spesso chiamato il “Dio di Abramo”.

Il drammatico episodio del sacrificio di Isacco, in cui Dio manifesta di non gradire i sacrifici umani, e stato in ogni tempo raffigurato nelle opere dei piu grandi artisti.

La Chiesa Cattolica ricorda Abramo, padre di tutti credenti, al 9 ottobre.

 

 

 

Santa Sara Moglie di Abramo

9 ottobre

Etimologia: Sara = principessa, signora, dall’ebraico

 

Nella Messa degli Sposi, la bella benedizione nuziale augura alla donna di essere " amabile come Rachele, saggia come Rebecca, longeva e fedele come Sara ". Il nome di Sara, o Sarai, voleva dire " principessa ", e come una principessa Abramo la condusse seco, quando, per la chiamata di Dio, usci dalla citta di Ur, in Caldea.

In una notte serena, Dio aveva fatto ad Abramo la grande promessa: " Guarda il cielo. La tua discendenza sara piu numerosa e piu fulgida di tutte le stelle che vedi nel cielo ". Ed ecco tre Angioli (simbolo della Trinita), presentarsi alla tenda di Abramo. Il Patriarca li serve come ospiti di gran riguardo, e uno di essi esce nell’incredibile promessa: " Sara, tua moglie, avra un figlio ".

La donna, che stava ad origliare, si mise a ridere: " Ora che sono vecchia e che il mio sposo e cadente, ridiventero giovinetta? ", penso. li Signore la rimprovero: " C’e qualcosa di difficile a Dio? ". E la donna, con un tratto di femminile finzione, cerco di negare: " Non ho riso! ". " Non e vero: tu hai veramente riso ".

E nacque Isacco, il " figlio del riso ". Qui s’inserisce uno degli episodi piu penosi della Bibbia, che ripugna fortemente alla nostra moralita. Avuto il sospirato figlio, Sara convince Abramo, addolorato e riluttante, a scacciare Agar con il figlio Ismaele.

Madre e bambino, con un pane e un otre d’acqua, furono allontanati dalla tenda di Abramo, ed andarono errando nel deserto di Bersabea. Finita l’acqua, Agar lascio il fanciullo sotto un albero e si allontano, per non vederlo morire. Poi si abbandono al pianto.

Il Signore scese in aiuto dei due miseri, e Ismaele visse, diventando, dice la Bibbia, " esperto nel tiro del-l’arco ". Nonostante cio, rimane nell’anima una punta di riprovazione per la condotta di Sara. Come si spiega tanta crudelta nella donna che univa la propria vita al Padre di tutti i credenti?

La cosa non si spiega, ma s’interpreta, come debbono essere interpretati molti altri episodi della Bibbia, sconcertanti alla prima lettura. Secondo San Paolo, Sara rappresenta la liberta, mentre Agar rappresenta la servitu. Isacco, figlio legittimo, e il simbolo del popolo eletto; Ismaele, figlio illegittimo, e il simbolo del popolo non eletto, che d’altra parte Dio non abbandona ne rinnega, ma soccorre anche fuori della Legge.

Sara, rimase al fianco di Abramo come madre dei credenti, fino a centoventi anni di eta. Per seppellirla, Abramo acquisto un intero campo, con una caverna, che guardava verso Mambre. E per secoli, tutti i discendenti di Isacco si additarono con venerazione quella tomba.

 

 

 

Fonte:   

 Archivio Parrocch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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