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동성당 게시판

여가와 교회 그리고 그리스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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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중 [kjj6502] 쪽지 캡슐

2004-03-29 ㅣ No.2376

                                                           

 

주휴 2일제(주 5일제 노동)

 

어른들이 애들을 데리고 놀러 가버려서 재미있는 재판이 벌어졌다. 영국에서 벌어진 사건인데, 우선 신문기사를 살펴보자.

 

여름휴가가 시작되기 전인 스키휴가 기간동안 싼 요금으로 휴가를 떠나려는 부모들 때문에 교실에 자리가 줄줄이 비어서 담임 선생들의 불만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오는 수요일에는 모두 13명의 부모들이 무단결석 재판을 받기 위해 법정에 서게된다.

그러나 교육부 장관 이반 루이스(Ivan Lewis)는 무단결석이 아니라 정부의 이중잣대가 유죄라고 말함으로써 파문을 일으켰다. 즉, 학교에 보내지 않고 거리를 배회하게 만든 빈곤층 학부모는 처벌하면서 학기 중에 휴가를 떠나고 쇼핑을 하기 위해서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은 중산층 학부모는 처벌하지 않는 이중잣대를 비판한 것이다.

담임 선생과 상의하면 연중 10일 이내에서 학기 중이라도 휴가를 떠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녀를 무단 결석시키고 휴가를 떠난 학부모 중에서 38%만이 차후로 담임 선생의 허락을 받는 문제를 고려해 보겠다고 말했다(The Observer, 23rd February 2003).

 

’싼값에 휴가를 떠나기 위해서 무단결석을 한다. 크리스마스 쇼핑을 하기 위해서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는다.’ 일과 공부를 우선하고 여가는 뒷전으로 미뤄 온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 영국에서 벌어진 것이다. 이 사건은 우리가 주 5일제라고 부르는 주휴 2일제 그리고 연휴와 깊은 관계가 있어서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가 있는가? 왜 우리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휴가 일 쇼핑 공부 등이 무슨 관계가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주 이틀의 휴일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여가활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주 5일제를 실시하고 있는 유럽 선진국과 미국의 예를 살펴보면, 금요일 저녁이 주말이 되고 토요일은 가족과 함께 외식이나 쇼핑을 하고 일요일은 월요일부터 시작될 또 한 주간의 노동을 준비한다. 따라서 시내의 백화점과 양판점은 붐비지만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여가를 즐기면서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자본은 소비의 증가로 더 큰 이익을 보게 될 것이다. 또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의 노동시간을 늘림으로써 빼앗긴 토요일 4시간 동안의 노동을 보전하려고 할 것이다. 퇴근시간이 되어도 퇴근하지 못하고 상사의 눈치를 봐야 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자본의 음성적인 노동시간 연장시도는 관철될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주 5일제 노동으로 자본은 이중 삼중의 이익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연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생각해 보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예를 들어서, 2주 14일을 한 단위로 해서 10일 동안 일하고 4일의 연속적인 휴일을 갖는다고 생각해 보자! 선진국의 사례를 보면 이 또한 쉽게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 영국에는 뱅크 홀리데이가 있다. 노는 월요일을 일컫는 말로써 이 날에는 은행도 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영국의 은행은 남들이 다 노는 토요일에도 일을 하기 때문에 은행이 쉰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사회적 의미를 갖는다. 월요일을 쉬게 되면 자연히 3일간의 연휴를 즐길 수 있다. 뱅크 홀리데이가 낀 연휴 때에는 보통 때의 주말과는 정반대의 상황이 연출된다. 시내는 텅텅 비고 해외항공편은 만석이 된다. 영국내 유명 휴양지로 떠나는 패키지 관광요금은 평소보다 약 20% 가량 인상된다. 물론 3개월 전에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비싼 돈을 줘도 관광을 떠나기 힘들다.

3일간의 연휴를 즐긴 다음에 직장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여독이 풀리지 않은 노동자들과 여가를 즐길 때의 마인드를 노동마인드로 전환하지 못한 직장인들로 화요일은 뒤숭숭하다. 힘든 첫 날을 보내고 나면 초저녁부터 펍(pub)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다음 뱅크 홀리데이 때는 어디로 떠날 것인지에 대해서 이야기 꽃을 피우기도 하고, 지난 뱅크 홀리데이 때 즐거웠던 에피소드를 쏟아 놓느라 펍은 평소 때보다 더 시끄럽고 또 화기애애하다.

삶의 질을 높이고 실질적인 여가활동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하려면 주휴 2일제가 아니라 3일 이상의 규칙적인 연휴가 있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주휴 2일제를 둘러싼 삶의 질 논쟁과 여가사회 도래 주장은 여가를 다시 한 번 자유와 해방의 이데올로기로 전락시키는 기만일 수 있다(Rojek, 2002: 340-347).

 

휴일과 교회

 

그렇다면 주휴 2일제나 연휴는 교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교회는 주휴 2일제와 연휴로 대변되는 시간편성의 변화에 어떻게 대처해야할까? 여가의 사회사를 살펴보면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쉽게 얻을 수 있다. 우리가 휴일이라고 말하는 규칙적으로 쉬는 날(holiday)에는 세 종류가 있다. 하나는 성일(holy day)과 금기일(the tabooed day)인데, 이는 종교와 관련해서 쉬는 날을 말한다. 둘 다 노동에 대한 금지를 특징으로 하지만, 금기일에는 일상적인 활동까지도 중지한다는 점이 다르다. 성일과는 달리 금기일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두려움 속에서 집안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전자의 예가 주일이고, 후자의 예가 유월절이다. 다른 하나의 휴일은 장날(market day)이다. 장날에는 일을 멈추고 휴식하면서

물물교환과 상거래를 하였다. 그 과정에서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는 사회적 기회를 누릴 수 있었기 때문에 장날은 농촌의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했다. 중세 때까지만 해도 휴일은 성일과 금기일 그리고 장날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지만 종교개혁과 과학혁명, 산업화 등을 거치면서 근대사회가 등장하는 일련의 사회적 과정을 통해서 근본적인 사회구조적 변동이 발생했다.

주일예배에 참석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입법이 이루어졌고(1551년 영국통일법), 주일에는 상인들이 상거래를 할 수 없도록 했으며(1667년 일요일 준수법), 1781년부터는 일요일에 입장료를 받는 공공오락을 전면 금지했다. 일요일이 거룩한 주일(성일)이기를 바랬던 개신교회는 즐겁게 안식하는 것과 장날의 사회적 기회를 박탈하고 일요일을 예배드리는 성일과 집에 가만히 있는 금기일로 만들어 버렸다. 따라서 교회의 원래 의도와는 달리 교회는 결과적으로 바래새적 율법주의의 덫에 빠지고 만다.

교회는 노동자들을 교회로 불러들이기 위해서 사회에서 여가를 제거하는 입법을 추진하고 성사시켰지만, 노동자들은 바리새의 집이 되어버린 교회를 떠났다. 대신 즐겁게 안식하는 날과 장날을 빼앗김으로써 여가를 박탈당한 노동자에게 곰때리기·투계·도박 등 잔인하고 야만적인 여가활동을 제공해 주는 술집으로 달려갔다. 교회와 국가가 여가를 폐기하려고 할 동안, 여가에서 사업의 기회를 발견한 자본가들은 여가를 상업화함으로써 노동자들의 주머니에 남아 있는 임금을 자본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여가의 상업화가 노동자를 교회 밖으로 끌어낸 것이 아니라 노동자를 신실한 신앙인으로 양육하고자 했던 교회가 노동자를 교회 밖으로 내 몰았던 것이다. 교회를 등진 노동자들을 보면서 뒤늦게 여가의 중요성을 깨달은 교회는 19세기 중반부터 합리적 레크리에이션 운동과 클럽(social club) 운동을 전개하여 건전한 여가활동을 유도하고, 노동시간 단축과 상점 일찍 문닫기 운동을 펼쳐서 파괴적인 음주관행을 일소시키고 여가의 상업화에서 오는 폐해를 시정하기 위해서 배전의 노력을 경주해야만 했다(Rybczynski, 1992: 50-80; Clark & Critcher, 48-89).

 

주휴 2일제와 교회 그리고 그리스도인

 

서구교회와는 달리 여가로 인한 선교위기 상황에 직면한 적이 없는 한국교회는 주휴 2일제 논의와 그에 따른 가치관 변동 상황에서 상당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여가 때문에 한국사회는 갈등을 겪고 있으며, 한국교회는 전례가 없는 상황을 목전에 두고 혼선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방금 살펴 본 바와 같이 여가의 사회사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새로운 상황이 아니라 고전적인 상황이다. 휴일과 관련된 여가현상이기 때문이다. 장날의 기능만이 일방적으로 강화되면 사람들은 파괴적인 여가활동에 몰입하게 되고, 반대로 성일의 기능만이 일방적으로 강화되면 교회를 멀리하게 된다. 따라서 한국교회가 주휴 2일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려면 성일과 장날의 조화를 이룬 이틀간의 휴일이 될 수 있도록 대안을 찾아야 한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여가를 도외시 한 교회의 오류를 반복하지 말고 하느님께서 주신 달란트를 노동에서처럼 여가에서도 발휘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늘어나는 휴일을 이윤창출의 기회로 전환하려고 하는 자본의 여가상업화 시도에 맞서서 절제와 균형을 유지하면서도 선한 즐거움을 추구(여가생활)할 수 있도록 연단 해야 할 것이다(Ryken, 1995: 259-268).

 

 

참 고 문 헌

 

Clark & Critcher. 1985. The Devil Makes Work - Leisure in apitalist Britain.       

     McMillan.

Rojek, Chris. 2002. 『포스트모더니즘과 여가』 최석호·이진형 역. 일신사.

Rybczynski, Witold. 1992. Waiting for the Weekend. Penguin.

Ryken, Leland. 1995. Redeeming the Time - A Christian Approach to Work and

     Leisure. Baker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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