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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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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인 [yisangin] 쪽지 캡슐

2006-04-28 ㅣ No.1280

봄날은 간다 | 삶을 유익하게 하는 말
2006.04.27

 

봄날은 간다
   
 

고백해야겠다.

나는 요즘 노래 <봄날은 간다> 때문에 숫제 죽을 지경이다.
자나 깨나 어디를 가나 머릿속에 노래가 늘 달라 붙어있는 것이다.
아무 때나 흥얼거려진다. 열병이다.
노래 때문에 이렇게 시달렸던 적이 있었던가.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아마 두 사람의 연인이 맹세를 했던 모양이다.
여러 가지 맹세를 했을지 모르겠다.
너만을 사랑하겠다. 행복하게 해주겠다. 여행을 함께 가자.  
그런 맹세도 했을까?

아무튼 남자가 약속을 지키지 못했나 보다.
그래서 여자는 늘 남자가 그리웠다.
언제 올지 모를 연인을 위해 오늘도 예쁜 옷을 입는다.
가장 예쁜 옷, 연분홍 치마를.
오지도 않는데 이미 부끄러워져 옷고름을 씹는다.
소리 내지 않으려고  옷고름 씹는다. 울음이 나더라도 참으려고.

두 사람이 사랑을 맹세했던 곳은 신성한 곳이었다.
성황당이었다.
여자는 그 길에 들어서기만 하면 기도하였을 것이다.
아니, 저절로 기도가 되었을 것이다.
맹세가 이루어지기를,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아무도 없는 길에  
산제비가 우짖는다.

그들의 여러 맹세 중에는 ‘알뜰한’ 맹세가 있었다.
어떤 맹세보다도 여자에게는 이 맹세가 가장 절실했었나 보다.
맹세의 내용이 이랬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자는” 것이다.

가슴이 찡하다.
함께 웃고 함께 울자는,
내가 웃을 때 너도 함께 웃고 내가 울 때 너도 함께 울듯이  
네가 웃을 때 나도 함께 웃고 네가 울 때 나도 함께 울자는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닌...

사랑이란 것이 저렇게도 간단한 것인가를 생각하다가 가슴이 늘 멍해진다.
생각이 많아져서인지 박자를 놓친다.
으레 가사를 까먹기 일쑤다.
아직도 나는 일 절도 다 외우지 못하고 있다.

이것 때문이다.
그 말, 알뜰한 맹세...
너무 싱거워서 웃음이 났다가
너무 짠해서 눈물이 났다가 하게 만들어버리는
...

네 눈에 내가 있고 내 눈에 네가 있었지.
그대로 잠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슬이 곱다한들 네 눈동자만 하랴
그 안에는 내 삶이 오롯이 들어있거늘... 무엇에 견줄 수 있으랴.

어제처럼 예쁜 달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밝다기보다, 크다기보다...예뻤다.
벚꽃처럼 고왔다. 너무 예뻐서 차마 오래 바라볼 수 없었다.
구름 한 오라기 없이 깨끗한 하늘이었다.
달도 나를 보고 있었다.

그랬으면 좋겠다.
곁에서 늘 너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너와 함께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모든 사람에게 아름다운 달이 아니라 내게만 아름다운 달이었으면 좋겠다.

내 바이칼
내 기차
내 봄비
내 달
내 노래
내 산
내 바다
내 어머니

내 가장 소중한 것들 속에서 항상 너를 보았으면 좋겠다.
내 삶이 너였으면 좋겠다.
내가 너였으면...



신영길님의 수필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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