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광장

여행

인쇄

박노선 [delltapose] 쪽지 캡슐

2007-01-29 ㅣ No.1633

 원문출처 : 시골 살면서

 

     크기변환_STA40022.jpg

 

[여행]


천년부동의 시선을 허공중에 놓아두고

이대로 살며시 흙집을 빠져나온 나그네 되어

억겁의 우주를 나 홀로 여행한다 해도

결코 외롭다 말 하지는 아니할 것입니다.


넋 나간 빈 집이야

바람이 세월을 데리고 와서 놀다 가던지

사랑이란 이름으로 희롱하며 불꽃처럼 사위어서

한 줌 재가 되어 흩어져 가던지


남자는 남자의 이야기를 남기고

여자는 여자의 이야기를 남기고


아버지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남기고

어머니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남기고


그렇게 또 아련한 전설처럼

밤이 깊은 어느 하늘나라 별빛이 되어 영롱하게 빛나던지

이미 길 떠난 사람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순간으로 순간으로

낱낱이 조각나 있는 영원의 기나 긴 구슬들을 꿰어서

단 한 줄 가슴속에 걸어두는 보배인양 하여도


떠나고 보면

 

세상은

 

아무것도


내 것이 없는 곳입니다.


소금이 어찌 빛으로 맛을 내겠는지요.

현란한 이름들로 언어가 소통되는 광장에서

줄 없는 거문고처럼 

마음이 슬픈 날은 언제나 혼자 울어야했습니다.

 

때로는 그렇게 혼자 남겨지게 되는 두려움에 쫓겨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심의 빌딩 숲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보기도 하였지만

세상의 모든 절망 중에서도 가장 큰 마지막 절망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어두운 사막이 되어 가로 누워 있었습니다.


가혹한 형벌처럼

아무에게도 건너 갈 수 없는 그 사무쳤던 외로움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되어

무시로 소리 없이 창백한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러나 만약 살아야 한다면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한줄기 가나한 삶의 의미가 남아 있다면

건너가야 할 마을이 있다면

칠흑 같은 어둠의 장막을 걷고 한줄기 가난한 빛을 밝혀야 한다면


소금은 다만 스스로를 녹여 그 맛을 내는 것은 아니겠는지요.

사무치도록 외로운 날은 언제나 혼자 울어야했지만   


날은 쉬이 지나가고

세월이 아주 흘러서


지금 창밖에는 고요히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바람 한 점 없는 허공중에

새하얀 축복처럼

하염없이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이런 날 이런 때에는

버릇처럼 또 우두커니 창가에 앉아 근심도 시름도 모두 놓아버립니다.

 

때로는 내가 눈 내리는 풍경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또 눈 내리는 저 풍경이 내가 되기도 하고

그렇게 안팎을 열어두고 나는 또 시나브로 사라져버리기도 하고...

 


     크기변환_STA40028.jpg

 

 

어느 듯 산천에 눈이 쌓여

재 너머 길 끊어지고

세상이 모두 純白의 雪景 속에 가만히 잠든 즈음

幻視인양 낯익은 어린아이 하나

하얀 마당 위에 혼자 뛰노는 모습을 나는 또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습니다.


너무 일찍 이승 떠난 저 아이의 아버지는

큰물에 살아야 큰 고기가 될 수 있다는 말을 유언처럼 남겼지만

건너지 못할 사막은 어디에도 없고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 바다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 주지는 않았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우연히

깃들 곳 없는 작은 새들이 날아와서

맨 처음 저 어린 영혼의 벗이 되어 주었을 때

아이는 작은 날갯짓으로도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장 가벼운 몸이 가장 멀리

간섭받지 않는 정신이 더 높이  飛翔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것은

외로운 눈빛이 더 깊이 사물을 바라보게 되는 것과 무관하지 않고

마음이 비어 있는 사람이 더 자유로운 것과도 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思惟는 외로움에 숙성되어 자유롭고

나누고 돌아서면 더욱 그윽해지는

물빛 맑은 차 한 잔의 향기처럼

말이 없어도

진실은 언제나 외로운 사막을 건너갈 수 있는 용기가 되어주나 봅니다.


마당에서 놀던 아이는

새가 되어 숲 속으로 날아가 버리고

四圍는 차츰 어둠 속으로 묻혀가고 있습니다.

 

 

      크기변환_STA40052.jpg

 

 

머나 먼 여행에서 돌아온 사람처럼

나는 다시 부동의 시선을 안으로 거두어들이며 자리에서 일어섭니다.

홀로 걷는 길이 자유롭다고는 하지만

굴러도 흙냄새 넘어져도 사람냄새 나는 이승은 아름다운 곳이지요.


그저께 목요일에는

예정대로 여주 가서 창에 비친 달님 내외분과 함께 그 유명한? 꾀꼬리 봉을 올랐습니다.

그전부터 꼭 한 번 같이 올라보자 약속하였던 참이었기로

드디어 우리들은 약속을 지켰노라 하는 기쁨도 컸지만

실은 두 분이 날마다 손을 잡고 다정하게 산책하는 그 모습을 담아 놓으신

창에 비친 달님의 빛깔 고운 수필을 읽었을 때

저도 꼭 한 번 그 길을 걸어 보고 싶단 생각을 하였던 것이지요.


글로써 알게 된 길 보다는

몸으로써 알게 되는 길이 더 미더울 것 같은 생각에서였는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 


내친김에 욕심으로는 신륵사 조사당 뒤뜰도 찾아가서

500년 石鐘 앞에 귀를 기울이며

儒와 佛이 서로 만났던

나옹화상과 목은이색이 

生死의 境界를 넘나들며 펼쳐 둔

성숙한 영혼들의 자유로운 友情의 이야기들도 다시 한 번 새겨보고 싶었지만 

저녁노을이 뉘엿하여 서둘러 돌아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크기변환_STA40048.jpg

 


고맙습니다.

07.1.28.


Evening Bell- Sheila Ryan (Celtic Music)



64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