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원동성당 게시판

선생님, 선생님, 우리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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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 [kimpaul25] 쪽지 캡슐

2004-06-28 ㅣ No.3045

 

선생님, 선생님, 우리 선생님!



옛날 옛적

열 살쯤의 초등학교 시절

새 담임선생님이 오신다는 날

우리는 동구 밖 버스 정거장에 갔지요.

짐짝을 내리시는 늙은 아저씨를 보았지요.

에이 저이는 아니겠지 하면서 집에 돌아갔지요.

아침나절, 우리 교실에

그 아저씨가 일찍이 기다리고 계셨어요.

우리 선생님이라고.

너도나도 말없이 흐르는 하루가 허전했지요.


공부도, 청소도, 운동도, 효도도, 일도, 심부름도,

모두 모두 찐디기처럼 붙어 끝장을 보란다.

별명이 찐디기가 된 선생님은

학생들 옆에서 찐디기가 되어 귀찮게 말씀이 많으셨다.

교실 여기저기 득실거리는 찐디기가 징그러워

선생님 옆을 꺼리는 아이들이지만,

찐디기처럼 잡은 연필에는

징그럽게 어려운 수학이 술술 풀리고

찐디기처럼 눌어붙었던 아슬아슬한 높은 철봉도

다람쥐 재주넘듯 빙글빙글 돈다.

외톨박이 친구 하나 못 사귀던 바보도

찐디기처럼 악착같이 우정을 만들었네.

닭이 세 번 울기 전에는

뭐든지 해결하는 노익장(老益壯) 찐디기 사령관

꼬끼오, 세 번째 이별 나팔이 울리고

훌훌히 떠나신단다.


어린 날, 징그러웠던 어미 아비  잔소리

장성하여 쳐다보면 한없는 그리움인 것을

부모님 한숨 깊은 자식 걱정 헛된 것이 있었더냐!

그물 깊게 던지라 호령하시는 아버지

목숨 같은 새끼들 장래 걱정뿐이었네!


새벽 닭 세 번째 우렁차게 우는데

못 잊어 못 잊어 자식들 차마 못 잊어

떠나실 길 위에서 눈물로 서성이도다.

신부님, 신부님,

고맙고 고마운 우리 신부님!


회자정리(會者定離)라던가.

호랑이 꼬장꼬장하신 우리 신부님, 환갑을 넘기시고, 가을 어느 날 낙엽 따라 가셔야 할 시간 앞에서 뒷모습이 사뭇 쓸쓸하시군요. 제 나이 내년에 또한 환갑이고 보니 이심전심 느낌이 아프군요. 제 말 남의 말, 섞어서 버릇없이 어리광처럼 지껄여 보았습니다. 짓궂은 표현 용서하소서! 그리고 내내 건강하소서!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만수무강하소서.

일백년을 채우소서. 꼭꼭! 제가 신부님을 위하여 연도 드려드리려면, 저도 그렇게 살아야 하겠지요. 저를 위하여도 기도하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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